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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4.30  통권 119호  필자 : 안부섭  |  조회 : 2358   프린트   이메일 
[특집] - 특집/ 중국선교를 통한 북한선교
중국을 통한 북한선교와 통일한국

필자가 처음 중국을 방문하게 된 것은 1998년 2월 초이다. ‘통일선교학교’ 책임자로서 학생들과 함께 조ㆍ중 접경지역 선교여행을 다녀오면서이다. 그 뒤로 중국을 자주 방문했고, 중국의 변화를 몸으로 체험했다. 그러나 민족의 통일과 북한선교를 위해 일하면서도 중국선교를 생각하지 못했던 부끄러움을 고백한다. 굳이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전문 사역자가 아닌 필자에게는 중국선교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2009년 4월 말부터 5월 초까지 중국 현지 사역자들과 함께 심양을 출발하여 압록강 끝인 단동에서부터 두만강 끝인 방천까지 강을 따라가며 북한의 회복과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며 선교여행을 다녀왔다. 그때 현지 사역자들로부터 조선족들과 중국인 선교를 통해 북한선교를 꿈꾸는 사역자들을 보며 그 가능성에 전적으로 동감하며 중국인 선교 또한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1999년부터 중국에 선교사를 파송했고, 선교지를 후원하는 일을 지금까지 계속해오고 있다. 극히 작은 사역이었지만 직접 경험한 것을 토대로 중국선교 특히 조선족을 통한 북한선교에 접근해 보고자 한다.

조선족교회을 통한 북한선교
1995년부터 북한에서 극심한 식량난으로 굶어죽는 사람들이 나타나자 한국교회는 본격적으로 중국 연변지역을 중심으로 탈북자사역과 북한선교사역을 시작했다. 그 일환으로 탈북자사역과 북한선교를 감당하기 위해 조선족교회들을 지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사역은 긍정적인 역할보다는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지극히 순수한 조선족교회는 공산주의 사회에서 하나님만 바라보며 신앙생활 하던 것이 차츰 한국교회에서 제공하는 물질에 마음이 쏠리기 시작했다. 물가가 싼 중국에 한국교회의 물질주의 공세가 하나님의 역할을 대신했는지도 모른다. 철저한 현지 사역지의 연구가 필요한데 일부 조선족 사역자들에게 속아 많은 물질을 낭비하는 경우도 벌어졌다.

필자의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한 조선족 사역자는 이 부분에 대해 자주 안타까움을 토로하곤 했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어느 지역에 모 교회를 건축하고자 했는데, 구체적인 점검도 하지 않고 건축이 시작되기도 전에 몇 억 원씩 지원해 주었다. 갑자기 큰 돈을 만지게 된 조선족 사역자는 그 돈을 가지고 잠적하였다. 이와 비슷한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었다. 뭔가 사람들에게 사역하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업적주의를 내세우는 한국교회가 쓴 물을 마시게 된 경우이다.

결국 한국교회식 물량주의는 조선족교회를 서서히 타락하게 만들었고, 결국은 몰락으로 이어지게 했다고 볼 수 있다. 작년에 중국의 조선족교회를 몇 군데 방문하면서 다시 희망적인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다행으로 생각한다. 예전에는 한국교회와 한국사람들의 도움을 바랬는데 이제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역을 감당하고자 하는 조선족 사역자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한바탕 홍역을 치른 후에 가져온 결과이다.

한국교회이 이와 같은 시행착오는 북한선교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날 수 있다고 본다. 만약 통일이 되고 북한선교의 길이 열리면 한국교회가 조선족교회에 했던 잘못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재현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조선족을 사용하시는 하나님
한국교회는 조선족교회보다 선교적 우월감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외적인 면에서 교육, 열정 등 물질적인 면에서 조선족교회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우월한 것은 사실이다. 사실 공산권 사회에서 하나님만 바라보며 지켜온 순수한 신앙은 한국교회가 따라가기 힘든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순수한 신앙은 화려한 물질 앞에 초라하게만 느껴졌는지 모른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에 물질이 먼저 동원되었다.

필자는 여기서 하나님께서 조선족을 통한 북한선교를 이루어가시는 모습을 소개하고자 한다. 필자가 그 분을 처음 만나게 된 것은 10년이 조금 넘는다. 그 분은 하나님께로부터 북한선교의 부르심을 받고 000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만나기 몇 년 전부터 탈북자들을 섬기고 있었다. 북한선교와 탈북자 선교는 한국교회의 전유물처럼 여겨지고 있는 이 때에 하나님은 조선족 성도들을 부르시고 고난당하는 북한 동포들을 돕고 있었다. 그 분들은 한국교회와 여러 곳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의를 다 거절하고 순수한 신앙으로 사역하기를 원했다. 한국교회와 일을 하게 되면 대부분 사진을 찍어 자료를 만들어 줘야 하고, 실적을 보고해야만 한다. 처음에는 물질적인 도움을 받아 유익하지만 얼마가지 않아 사역이 노출되면 지금까지 이루어왔던 것을 한꺼번에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많은 사역들이 실적보고 때문에 지속되지 못하고 무너지고 말았다. 필자는 지금까지 그 분들과 10년이 넘도록 함께 일을 하면서도 사진 찍는 일이나 실적을 요구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또한 남한 사회에서도 이를 이용하지 않았다. 철저히 서로가 서로를 신뢰함으로 사역을 해왔다. 현장을 방문해도 현장 상황에 맞게 둘러 볼 수 있으면 현장을 살펴보는 정도였다.

그 분들은 북한 주민들이 먹을 것을 찾아 중국에 넘어오면 각 가정에 1~2명씩 보내 보호해주고, 성경을 가르쳐 주고, 일주일쯤 후에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어 다시 북한으로 들여보내었다. 그러기를 몇 년을 하다보니까 북한 전역에 처소교회가 생겨나고 북한 방방곡곡에서 기도하며, 신실하게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더 이상의 내용은 공개하지 않는 것이 그 분들을 돕는 일이라 여긴다. 그 분들은 늘 북한을 위해 기도하며, 탈북자들을 돕는 일을 마다하지 않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최선을 다해 섬긴다.

몇 년 전, 사역자 집을 방문했는데, 처음으로 매일 새벽마다 기도할 때 쓰는 북한지도를 보여 주었다. 그 지도에 현재 북한에서 처소교회를 이루며, 신앙생활하고 있는 지역을 표시해두고 매일 새벽마다 그 처소교회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지역이 국경지역은 물론이고 강원도에까지 미칠 정도로 광범위했다. 조선족들은 북한 사람들과 친척인 경우가 많다. 친척 방문을 위해 그 지역을 방문하면 어김없이 그들을 열심히 섬겼다. 성경말씀 대로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열심히 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 분들은 조선족의 이러한 점을 통해 북한선교 사역을 잘 감당하고 있었다.

한때는 중국에 북한선교와 탈북자를 돕기 위한 선교사가 1,000명이 넘었다고 한다. 급박한 상황속에서 성령의 강력한 역사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일이겠지만, 그렇지 못한 분들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조선족 사역자들이 필자에게 자주 하는 이야기는, 선교를 자칭하여 도리어 선교하는 데에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부분은 참으로 조심하고 주의해야 하는 부분이다.

한바탕 회오리바람처럼 지나간 과거를 되돌아보며 조선족과 조선족교회를 통한 진정한 대안을 모색해 보아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조선족들의 순수한 신앙을 바탕에 두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좇아 사역을 할 수 있도록 한국교회는 조용히 돕는 역할을 해야한다. 이러한 조용한 변화의 조짐을 조금이나마 느끼면서 하나님께 감사한다.

중국선교와 중국교회를 통한 북한선교
작년 봄, 중국을 방문하면서 중국인 대학생들을 상대로 복음을 전파한 적이 있다. 의외로 복음에 대해 마음이 열려 있다는 것을 알았다. 조선족교회들도 중국인을 위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 준비하는 모습을 보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조선족을 통해 중국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가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또 선교사님들 중에는 중국교회를 도와 중국인 성도들이 북한선교에 나설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도 보았다. 다소 뒤늦은 감은 있지만 매우 바람직한 변화이다. 한국의 많은 선교사들이 더 일찍 중국교회를 섬기고 선교에 나섰다면 북한선교를 휠씬 효과적으로 할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어쩌면 우리에게 북한선교는 우리(한국교회)만 해야 한다는 오만한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하나님은 머지않아 통일을 주실 것이다. 남북이 통일되면 국제관계는 단순하지 않다. 특히 중국과 통일한국의 관계는 미묘한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통일한국과 중국의 관계가 신뢰와 평화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중국은 우리를 견제하게 될 것이다. 압록강과 두만강은 더욱 철저한 국경선이 될 것이고, 남북한의 휴전선이나 중국과 러시아 간 국경선처럼 철조망이 쳐진다면 상상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한국교회는 통일한국을 추진하고 북한선교를 꿈꾸는 것 못지 않게 중국과 화해와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 그 중심에 중국교회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중국선교를 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있을 다각적인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지혜가 요구되는 시기이다. 특히 동북3성은 보이지 않는 영토분쟁이 존재하기 때문에 통일한국은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위협적인 사건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조선족교회와 한국교회 그리고 중국교회가 평화와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하며 노력해야 할 것이다.

조선족교회와 중국교회를 위한 제안
조선족 사역자나 탈북자 사역을 하시는 분들 중에 북한에 대한 분노가 상당히 많은 것을 듣게 된다. 당연하다. 멀쩡한 백성들을 바보로 만들고, 남의 나라 중국 땅에서 꽃제비로 살아가고 누이와 자매들은 인신매매 당하여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탈북자들의 삶을 보며 이 민족의 비극의 역사를 하나님께 내어놓고 통곡하며 하소연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비극적인 현실에 미워하고 분노만 한다는 것은 미래를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된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갈 때 고난당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이렇게 부탁했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게 한 모든 포로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에 살며 텃밭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아내를 맞이하여 자녀를 낳으며 너희 아들이 아내를 맞이하며 너희 딸이 남편을 맞아 그들로 자녀를 낳게 하여 너희가 거기에서 번성하고 줄어들지 아니하게 하라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렘 29:4~7)

민족적인 비극 앞에 예레미야는 백성들을 위로하며 부탁하기를, 미워하거나 분노하지 말고 집을 짓고, 전원을 만들고, 시집 가고 장가 가라, 그래서 가정을 이루고 번성하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땅이 평안하기를 위해 기도하라고 부탁하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이 원수의 땅에 포로로 잡혀와 수모를 당하며 살고 있는데, 증오하고 미워해도 부족할 판에 자신들을 괴롭히는 바벨론 땅이 평안하기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는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 선지자가 포로로 잡혀와 고난받고 있는 땅이 평안하기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바벨론이 계속 전쟁만 하게 되면, 노예로 잡혀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최전선에서 희생될 수 있으므로 비록 원수의 나라지만 그 땅이 평안하기를 위해 기도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탈북자 사역과 북한선교를 감당 할 때 북한이 평안하도록 기도해야 한다. 평화의 복음이 조선족 사역자, 조선족교회를 비롯하여 모든 사역자들이 가져야 할 신앙의 기본자세이다. 사역을 하면서 심판자의 자리에 머물지 않도록 기도해야 한다.

한국교회의 통일과 북한선교
올 봄은 유난히도 이상기온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생을 하고 있다. 올 봄에는 꼭 시간을 내서 꽃 사진을 찍어야지 하는 멋진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계속된 이상기온으로 봄이 오는 것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시간을 보냈다. 얼마 전 여명학교 학력인가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남산을 가게 되었다. 그런데 남산 입구에 벚꽃들이 활짝 피어 있는 것을 보고 순간 깜짝 놀랐다. 이상기온으로 추위가 계속되어 꽃이 핀다는 생각을 잊고 있었다. 다가오는 봄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사진 찍을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이다.

우리의 통일도 이와 같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있다. 우리나라는 지금 온통 천안함 침몰사건으로 말미암아 북한에 대한 증오로 가득하다. 그러다 보면 그 뒤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한국교회는 다가오는 통일을 준비하지 못하고 무방비 상태로 맞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65년 전 8.15해방을 준비 없이 맞이했듯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소리쳐 부르던 통일도 꿈꾸는 것 같이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해방을 꿈꾸는 것 같이 맞이한 결과는 많은 혼란이었다. 남북 통일도 꿈꾸는 것 같이 맞이한다면 우리 민족에게는 또 다시 큰 불행이다. 여러 가지 혼란스러움 속에서도 통일한국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시편 37편을 좋아한다.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

의분을 가지고 분노하는 것은 옳지만 분노에 함몰되어서 다가오는 역사를 준비하지 못한다면 더 큰 불행을 초래할 수 있다. 새벽이 가까워 올수록 어두움은 깊어간다는 진리를 항상 마음속에 새겨야 한다.

통일한국의 미래
지금의 북한은 지옥을 옮겨 놓은 것처럼 처참한 상황이다. 그러나 북한은 한때 ‘동방의 예루살렘’이라 칭송받던 아름다운 땅이었다. 그 땅이 지금은 황무한 땅이 되고 말았다. 지난 1월에는 부흥한국을 중심으로 ‘통일비전캠프’를 개최하였다. ‘마른 뼈의 골짜기에서 에덴동산으로’란 주제로 열린 캠프에 오대원 목사님이 주강사였다. 한국 사람도 아닌 외국인 목사님이 어떻게 저런 주제를 뽑을 수 있을까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재 북한은 마른 뼈의 골짜기와 같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저 땅은 에던동산과 같은 축복의 땅으로 바뀔 수 있다.

필자는 1982년 통일을 위해 부르심를 받았다. 30년이 가까운 세월 동안 하나님께서 통일한국을 이루어가고 계신 것을 눈을 보고 있다. 처음 부르심을 받았을 때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노래는 하면서도 통일의 가능성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지금처럼 중국을 통해서 북한에 복음을 전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전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역사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은 하셨다. 통일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한국교회를 향하여 필자는 통일한국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는 통일한국의 미래상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한다. 마른 뼈와 같이 황무한 저 북한 땅이 에덴동산처럼 변할 북한에 대해 이야기 한다.

작년과 올 연초에 세계적인 투자자문회사인 미국의 ‘골드만 삭스’는 ‘미래의 세계 경제에 관 한 보고서’에서 남북이 통일되면 남북의 시너지 효과가 강력할 것이며, GDP(국내 총생산)규모가 30~40년 내에 프랑스와 독일, 일본 등 선진 7개국(G7)을 웃돌 것이고, 미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의 부자 나라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필자는 이 부분에 대해 전적으로 공감한다. 북한은 지금 형언할 수 없는 고난가운데 있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받드시 회복될 것이다. 중국을 통한 북한선교에 있어서 이 부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십여 년 전, 처음 중국에 갔을 당시만 해도 중국의 화장실 문화는 많은 이야기 거리가 됐었다. 그런데 최근 필자가 상해에 있다가 서울에 오면 솔직히 서울이 초라하다는 생각을 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누가 감히 상상이나 했던 일인가? 중국이 개방된 지 30년 만에 어떻게 바뀌었는지 중국선교를 감당하시는 분들이 산 증인이다. 북한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한다. 통일이 되고 북한에 기회가 주어지면 중국보다 휠씬 더 빠른 속도로 발전할 것이고, 북한은 세계의 중심, 세계 선교의 중심지로 우뚝 설 것이다. 욥의 고백이 미래의 북한교회의 고백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10) 

이제 탈북자 선교나 북한선교에 있어서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세계 선교를 이끌어갈 북한교회 지도자를 세우는 사역으로 말이다.


안부섭│TNF 진리와자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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