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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만들기 어려운 영화
공자의 생애를 다룬 영화를 예술적인 동시에 역사적 사실에 입각해서 만드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세상의 어떤 유명한 감독이 메가폰을 잡는다 할지라도 좋은 평가를 받기가 어렵다. 그 이유는 교육적 가치와 오락적 가치 사이에서 조화보다는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교육적 가치를 강조하다보면 공자 영화는 단순한 위인전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대중들이 영화를 보는 이유는 진지하게 도덕책을 읽듯 삶에 교훈을 얻기 위함이 아니다. 관객들은 콜라와 팝콘을 먹어가면서 스트레스도 풀고, 시각적 즐거움도 얻고, 현실 세상에 얻지 못하는 환상도 체험하고 싶어한다. 즉 <아바타>와 같은 영화가 현대인들에게 딱 어울리는 영화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교훈은 오락의 끝자락을 잡는 것으로 족하다. 정신적으로 위안을 삼을 정도의 약간의 가치만 붙이고 나머지 대부분은 오락으로 밀고나가는 것이 대중영화의 전략이다. 그렇다고 공자에게서 오락적인 요소만을 추출해서 보여준다면 공자를 숭상하는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교육과 오락 사이에서 후메이 감독은 방황한 흔적을 곳곳에 노출시키고 있다.
첫째, 공자를 사상가로 보기 보다는 지략가로 내세운 점이다. 공자는 영화 <적벽대전>의 제갈공명처럼 처신하며 전쟁에 나선다. 실제로 위나라가 공자를 불러들인 이유는 싸움에서 승리할 전략가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었다. 공자 스스로는 예(禮)와 악(樂)으로 나라를 다스리기 원했지만 영화상에서 그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라를 구하는 뛰어난 전략가로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지략가로서 공자의 면모는 노나라 왕의 부탁으로 대사구(지금의 법무부장관)에 임용된 뒤 이른바 협곡지회(峽谷之會)라 전해 내려오는 제나라 왕과의 면담과정에서 드러난다. 제나라는 호시탐탐 노나라 정복을 원했고 그 계책의 일환으로 노나라 왕을 협곡에 불러들여 그를 사로잡으려 했다. 그러나 공자는 제갈공명처럼 선견지명이 있어서 만일의 일을 대비하는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책략을 잊지 않는다. 노나라를 움직인 세 가문 중에 하나인 계손씨에게 마차 500대와 군사를 빌려 노나라 왕과 동행하려고 하지만 거절당하자, 계손씨와 활쏘기 내기를 하기도 한다. 공자가 문무(文武)에 능함을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공자의 승리로 끝나지만 500대의 마차를 얻지 못한 공자는 제갈공명이 <적벽대전>에서 조조의 병사들로부터 십만 개의 화살을 얻는 것과 같은 위장전술을 구사한다. 즉 제나라가 노나라 왕을 위협할 때 협곡 너머의 보이지 않는 곳에 농부들이 끌고 온 소들이 내는 구름 같은 먼지를 통해 마치 500대의 마차와 많은 병사들이 있는 것처럼 위장하고 이를 통해 제나라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공자의 감춰진 면모를 보는 즐거움은 분명 있다. 그러나 <황후화>나 <적벽대전> 그리고 <영웅>에 익숙한 관객들이 단지 지략가로서의 공자를 보는 일에 만족할 수 있을까?
둘째, 공자의 인간적인 면모를 강조하였지만 그것이 도덕적 근엄함 속에 묻혀버리는 바람에 대중성을 약화시키는 위인전으로 끝나고 만 점이다.
위나라 위경공의 첩으로 실권을 쥐고 있었던 난즈(南子)가 황태자의 스승으로 공자를 모시기 위해 만나는 대목은 어쩌면 교육과 오락 사이에서 감독이 가장 고민했던 부분일 것이다. 즈지엔난즈(子見南子)로 전해내려 오는 이 에피소드는 역사서에는 자세한 언급이 없는 까닭에 공자에 대한 감독의 판단과 상상력이 매우 긴밀히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오락에 강조점을 두었다면 난즈가 미모로 공자를 유혹했다는데 초점을 맞출 것이고, 교육에 치중했다면 공자가 여색(女色)의 유혹에도 불구하고 정중한 예로써 물리쳤다는데 포커스를 맞출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유혹과 예의 모두 추상적인 언어유희를 사용함으로써 긴장감을 고조시키지 못할 뿐만 아니라 공자의 인간적 면모가 성인(聖人)의 위엄에 가려져 있음을 느낄 뿐이었다. 즉 인간이란 실수도 하고 희노애락의 감정을 드러내는데 익숙해야 하는 법. 그러나 공자는 안회가 죽었을 때를 제외한다면 감정을 억제하고 극도의 지성적이고 도덕적이며 흔들리지 않는 군자로서의 위대함이 돋보일 뿐이다. 교육은 승리했고 오락은 패배했다.
중국이 필요한 영화 ‘공자’
그렇다면 논어(論語)와 공자(孔子) 그리고 유교(儒敎)가 중국인들에게 무슨 매력이 있을까? 과연 공자의 삶을 영화화 한다면 사람들이 주목할 수 있을까? 서구 자본주의의 영향을 받고 사는 한국인들이나 유교의 가치에 대한 인식을 갖고 있지 않은 서구인들에게 공자는 단지 중국의 위인이며 과거의 사상가라는 생각을 갖게 할 따름이었다. 심지어 십년 전 한국에서는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적도 있었다. 유교의 가치관이 현대화되고 글로벌화된 한국사회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판단에서 이런 책들이 호응을 받았었다. 실제로 유교의 덕목들을 걷어내자 효과를 발휘한 부분들도 없지 않았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한국축구를 세계4강의 반열에 올려놓은 히딩크 감독은 축국국가대표팀을 책임지자마자 선수들 간의 선후배의식을 경기장에서 퇴출시켰다. 후배가 연장자인 선배를 위하는 일은 유교적 가치관의 반영이다. 그 때문에 후배 선수가 골을 넣을 수 있는데도 선배에게 양보하는 바람에 득점을 못하는 일이 벌어지고, 선배보다 잘 뛰는 후배 선수가 경기장에 나가지 못하는 등의 비합리적인 일들이 속출하기도 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 히딩크 감독은 한국의 전통적인 유교가치관인 장유유서(長幼有序)의 덕목을 공적인 영역에서 제거해 버렸다. 나이보다 실력이 우선이며, 형이라는 호칭 대신 선후배 가릴 것 없이 이름을 부르게 했고, 숙소 역시 2인실이 아닌 1인용 개별 숙소를 지정해 주었다. 선배 모시느라(?)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한국축구의 유교적 관습을 몰아낸 것이었다. 물론 결과는 매우 좋았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공자’의 삶을 조명하는 영화가 한국사회에서 의미가 있을까?
중국인들 역시 마찬가지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 이후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도입되고 많은 부분이 서구화된 상황에서, 더구나 불과 50년 전에 홍위병을 시켜서 공자의 묘를 파헤칠 만큼 유교의 전통을 몰라내려 했던 중국의 공산당정부가 비록 지도자와 세상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유물론 사상을 가지고 집권하는 현실 속에서 ‘공자’ 영화를 제작하고 관람을 독려하는 행위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후메이 감독의 영화 <공자:춘추전국시대>는 어떤 영화전문가로부터도 별 세 개조차도 받은 적이 없을 만큼 평가절하된 작품이다. 한 영화평론가는 심지어 ‘차라리 논어를 읽는게 낫겠다’는 강한 비판을 서슴치 않았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영화는 그 자체로 평가받을 수 있지만, 아울러 영화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사회와 연관성 속에서도 그 가치를 조명할 수 있다. 즉, 왜 이 시기에 <공자>란 영화가 나왔는가를 살피는데 영화적 가치를 따질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 때문에 <공자>는 영화 자체보다 영화 외적인 중국의 현실을 파헤치는 것이 훨씬 더 영화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매우 의미심장한 영화라 할 수 있다.
공자와 예수
개혁개방 정책 이후 중국의 사회과학원에서는 유교와 기독교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를 진행해왔다. 표면적인 이유는 중국과 세계를 움직인 사상에 대한 철학적 관심을 내세웠지만 속내는 다른데 있었다. 구소련이 붕괴되고 동구권의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은 중국공산당에게는 충격 그 자체였다. 과연 사회주의 사상이 중국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을까에 대한 회의가 밀려든 것이다. 적어도 당장은 사회주의 사상을 포기하지 않더라도 변화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누구나 직감할 수 있었다. 사회과학원의 학자들이 중국의 미래를 위해 관심을 가진 사상은 유교와 기독교였다.
중국학자들에게 기독교는 단순히 서구문화를 이해하는 도구로 그치는 않고, 오늘날 자본주의 문화를 꽃피운 원동력으로서 낙후된 중국을 발전시키는데 필요한 사상으로 이해되는 측면이 강하다. 마르크스가 말한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라는 경구를 문자 그대로 믿는 학자들은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대신 중국인들이 예전부터 기독교에 대해서 취했던 실용주의적 가치관 안에서 사회발전을 이룰 수 있는 사상적 토대를 얻고자 하는 노력이 두드러진다. 즉 신앙으로서의 기독교 보다는 사회문화사상으로 접근하는 측면이 강한 것이다. 그러나 보수적인 기독교인을 자처하는 부시대통령의 집권과 이라크전쟁의 발발, 전세계를 평정하려는 미국주도적 세계정세는 중국의 엘리트학자들과 관료들을 기독교로부터 거리를 두게 만든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기독교 사상으로의 사회적 변화를 꾀할 경우 미국에게 먹힐지도 모른다는 위협감을 한편으로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중국이 중화사상을 여전히 간직한 채 미래를 위해 가장 손쉽게 택할 수 있는 것은 유교와 가까워지는 것일 수밖에 없다. 중국의 고유한 문화라서 사상적 변화를 꾀할 때 중국인의 동의를 쉽게 구할 수도 있다. 특히 서구의 자유주의적이고 발전적인 경제관은 통제가 가능한 합리적인 선에서 적절히 수용하되, 개인주의나 퇴폐적인 서구자본주의 문화의 폐해를 줄이고 사회공동체를 구현하는데 유교만큼 좋은 것이 없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지금 중국정부는 ‘공자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중국과 세계 곳곳에 500군데가 넘는 ‘공자 학원’을 세웠는가 하면 공자사당을 복원했고 심지어 ‘공자 복권’까지도 만들었다. 지난 1월 22일 중국 전역에서 영화 <공자>가 개봉되어 박스 오피스 1위에 등극하던 날 아무런 이유 없이 당시 흥행순위 1위를 달리던 <아바타>의 상영을 중단하라는 조치가 내려지기도 했다. 영화 <공자>의 영향력을 증대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임은 불을 보 듯 뻔하다.
비록 장이모우(張藝謨)와 같은 5세대 감독이라 하지만, 단 두편 밖에는 영화를 만들어 본적이 없는 쉰 살이 훌쩍 넘은 여성 감독 후메이에게 350억원의 제작비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그리고 저우룬파(周潤發)와 같은 세계적 스타를 맡긴 이유가 납득이 가는 대목이기도 하다. 중국정부는 지금 미국과 맞설 만한 인물과 사상을 내세우기에 시간에 쫒기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만일 중국이 공자를 택한다면 교회는 과거 유교사회 속으로 들어갔던 선교사들의 전략을 배울 필요가 있다. 유교와의 공통점 혹은 유사점을 부각시키는 가운데 발전적인 사회 모델을 제시했던 방법을 상기해야 한다. 이미 서구문화에 익숙할 만큼 개방화된 중국사회에서 정책적인 이념으로서 유교사상은 기독교에 대한 적대감을 줄이고 유물론을 받아들였던 중국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상이 가져올 수 있는 충격으로부터 완충작용을 할 수 있는 중간자적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영화 <공자>에 나타난 주인공의 이미지가 예수와 닮았다는 전문가들의 논평은 한편으로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강진구│고신대 컴퓨터영상선교학과 교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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