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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중국 대륙을 밟았을 당시만 해도, 10년 후의 모습은 상상이 되지 않는 까마득한 먼 미래의 일이었다. 어떤 사역을 하게 될 지, 중국은 어떤 변화를 맞이할이지, 10년 후에는 이 땅에도 종교의 자유가 허락되지 않을까? 하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한지가 엊그제 같았는데 어느덧 시간이 흘러 15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그동안 중국은 모든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과 발전을 이루었지만, 종교만큼은 여전한 상황이다. 선교사들은 보안문제로 늘 긴장된 상태에서 사역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러한 환경 가운데에서도 주님의 은혜가 있었기에 주어진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었다.
필자는 1977년에 예수님을 영접하였는데, 중국을 다니면서 목숨을 걸고 선교를 하시던 선교사님들의 선교보고를 듣게 되었다. 공산화 이후 실시 된 종교 말살 정책으로 인해 기독교인들이 지하에서 목숨을 걸고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선교보고를 들으며 큰 감동을 받았다. 한국에서는 종교의 자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교인들이 많은데, 중국 성도들이 어려운 가운데 믿음을 지켜가는 모습을 전해듣고 반성과 함께 많은 깨달음이 있었다. 선교보고를 들으며 주님께 “저를 중국에 보내주셔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소서”라는 기도를 드렸다. 주님은 이 기도를 기억하시고 1995년 2월에 중국으로 보내주셨다.
선교지에서 15년간 생활하면서 사역하는 동안 언제나 동행하여주신 그분의 은혜를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첫 번째 사역지인 A지역에서는 가정교회를 시작하게 하셨다. 정착을 한 후 처음에는 신분의 노출을 염려하여 집 주인과 가깝게 지내지 않았다. 그런데 집에 관한 문제로 자주 만나게 되고, 자연스럽게 정이 들면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고, 집 주인은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다. 처음엔 우리 집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선교사 가정에서 예배를 계속 드리다보면 안전상 위험이 있을 것을 염려해 자신의 집을 예배처소로 사용하도록 배려해주었다. 하루는 주인이 자신의 친구 세 명에게 복음을 전해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언어조차 서투른 내게 이런 부탁을 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였고 감사한 일이었다. 이렇게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두 명이 영접하여 함께 예배 공동체를 이루었다.
교회가 시작되면서 그들과 함께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교회가 부흥하게 되었다. 성도들의 믿음도 점점 성숙하게 자리를 잡아갔다. 성도들의 신앙이 어린아이와 같았을 때에는 영,육 간의 음식을 손수해서 먹이느라 바빴는데, 믿음이 성숙하여지면서는 영적인 양식을 먹이는데 전심을 다하게 했다. 그야말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나라와 민족을 초월한 서로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한 가족이 되었다. 교회가 부흥하여 5~60명에 이르고 신분이 자주 노출되면서 A지역에서는 더 이상 사역을 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집회 장소를 두 곳으로 분리하고 현지인 지도자들을 세우고 5년동안 정들었던 그곳을 떠났다. 비록 나는 그곳을 떠나지만 성령님은 항상 그들과 함께 하셔서 끊임없이 성장케 하실 것을 믿었다.
중국어 성경통독의 도전과 은혜
표면적으로는 신분 노출이 있어 지역을 옮기게 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내게 중국어를 통독 할 수 있도록 도전을 주셨다. 지역을 옮기고 거의 매일 중국어성경을 통독하기 시작했다. 1독을 할 때는 글자 하나하나의 성조와 발음을 꼼꼼히 보면서 읽어 내려가다 보니 1장을 넘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렇지만 중국영혼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선교사가 중국어성경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안 되겠다는 마음에 이를 악물고 한 장 한 장 읽어 내려갔다. 그러기를 몇 개월, 어느새 3독을 하게 되었고 3독을 하고나니 가속도가 붙어 1년에 6독을 하게 되었다. 성경을 꼼꼼히 여러 번 통독한 결과 성경에 있는 한자는 하나도 빠지지 않고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한자의 특성인 다음자(多音字)도 모두 알게 되었다. 6번의 성경통독을 마치고 나니 하나님께서는 내게 농촌교회 지도자 사모님들을 보내 주셔서 함께 성경통독을 하게 하시고 Q.T 등 나눔의 시간들을 통해서 또한 많은 은혜를 주셨다. 그들과 함께 온종일 성경읽기와 기도를 통해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문제들은 하나하나 해결을 받았고, 필자 역시 그들과 함께 지내면서 주님이 하시는 일들을 보면서 성령이 충만한 경험을 했다. 이렇게 은혜를 받고 돌아간 사모들이 생명의 변화를 받고 남편을 잘 내조 할 뿐 아니라 성경 읽기를 생활화 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니 기쁨이 더욱 충만하였다.
새로운 성전의 건축
사역지를 옮긴 후, 이곳에서는 교회를 개척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께서는 또 교회를 개척하게 하셨다. 그러나 전에 있던 도시와는 복음 전하는데 있어 많은 차이가 있었다. 중국 최고의 도시에 살고 있다는 자부심과 함께 여러 가지로 부족함이 없이 지내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 친구를 사귀기에도 힘들 뿐 아니라 복음을 잘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외지에서 온 사람들을 전도하여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는데 이들은 정착하는 것이 어려웠다. 이런 저런 일로 인해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고 직업에 따라 다른 지역으로 가버리고 해서 4-5년이 지나도 10명 이상을 넘기가 얼마나 어려웠다. 인원이 문제는 아니겠지만 양적인 부흥이 없다보니 맥이 빠지고 힘이 없어 낙심해 있을 때 에스겔서를 읽게 하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새 성전을 건축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하셨다. 말씀에 위로를 얻어 새로운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소망으로 다시 일어섰다. 포기하지 아니하고 계속해서 새 성전을 위해 고군분투 하며 건축하는 동안 주님은 내게 결혼이라는 큰 선물도 허락하여 주셨다.
초신자에게는 풍성한 생명과 은광(恩光)과 각권 성경공부를 통해 지도자를 양성하고 지도자들에게는 소목자를 통한 신학 교육과 함께 누가복음을 통한 강해 설교를 가르쳐 6명의 지도자를 양성하게 되었다. 6명의 지도자 중 한 명을 00지역으로 파송하여 교회를 개척하게 했다. 그곳에서 개척예배를 드리고 있는 중에 갑자기 누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서 우리는 바짝 긴장을 하고 문을 열어주었다. 3명의 형제, 자매가 찬양하는 소리를 듣고 예배를 드리기 위해 찾아왔던 것이다. 예배할 사람을 친히 보내주신 주님이 얼마나 감사하던지!
그 날 개척예배를 드리러 기차를 타고 가는 중에도 우리 자매 중 하나가 옆에 앉았던 아주머니에게 복음을 전하여 기차 안에서 영접기도까지 하고 성경찬송을 사서 붙여 달라면서 인민폐 30위안(元)을 주기도 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개척예배를 드리는 날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일하심을 보여주셨다. 그동안 6명의 목회자를 배출하여 교회를 그들에게 이양하여 주고 그들로 하여금 지도해 나가도록 했다. 이들이 더욱 겸손한 지도자들로 성장하여 선교중국의 비전을 이루어가는 모습을 보기 원한다.
나는 이제 건강의 문제로 15년 동안의 중국에서의 사역을 마무리 하고 안식년을 맞아 다시 한국에 오게 되었다. 지금까지 인도하여 주신 주님이 앞으로도 내가 한국에서 감당할 수 있는 사역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실 것이라고 확신한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며, 중국 영혼을 사랑하며 섬기는 많은 사역자 여러분의 모든 발걸음에도 친히 인도하실 줄 믿는다.
주애화 | 중국선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