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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2.27  통권 118호  필자 : 김병태  |  조회 : 2539   프린트   이메일 
[선교나침반]
당·원대(唐·元代)의 중국 기독교 유적

당(唐) 태종(太宗) 시기에 중국은 동북쪽의 고구려와 남쪽의 베트남, 서쪽의 파미르 고원 서부지역까지 영향력이 확대되어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이로써 당의 수도인 장안(長安)은 거대한 국제도시로 성장하여 유라시아 세계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당 태종은 정권을 안정시키는 한편, 세계문화에 대한 포용정책을 실시하면서 외래종교를 받아들였는데, 이로써 불교, 도교 외에 여러 가지 외래 종교도 황금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주후 431년 에베소(Ephesus) 종교회의에서 정죄, 추방되었던 네스토리우스파(Nestorian)의 발걸음이 실크로드를 타고 중국 안으로 향할 수 있게 되었다.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의 중국 이름인 경교(景敎)가 당시 당나라의 수도인 장안(오늘의 서안(西安))에 도착한 것은 당 태종 즉, 정관(貞觀) 9년(635년)이었다. 중국에 들어 온 경교는 도교의 용어를 대폭 수용하여 중국화를 꾀하였다. 경교의 ‘景’은 ‘光明’을 의미하였으며, 사제직은 ‘경사(景師)’, 성전은 ‘경사(景寺)’, 성도는 ‘경도(景徒)’로 부름으로써 현지문화의 거부감을 피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당나라 말 무종(武宗) 때인 845년(會昌 5년)에 경교는 불교와 함께 탄압을 받아 거의 멸절되었거나 지하로 들어갔다. 이슬람 세력의 성장과 오대십국(五代十國)의 혼란, 요(遼)나라의 등장이 가져온 국제적 교역체제의 변화도 경교의 침체에 영향을 미쳤다. 서북지역에 일부 남아있던 경교가 다시 지상으로 나온 것은 한반도에서 아라비아까지 아시아 대륙을 석권하면서 1251년 금(金)의 수도 중도(中都)를 점령한 몽고족의 덕분이었다. 물론 중앙아시아 여러 부족들(케레이트족, 나이만족, 옹구트족, 위그르족 등)의 유적 가운데서 경교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지만, 색목인(色目人)의 문화에 포용적이었던 몽고 지도부의 도움으로 다시 힘을 얻었고, 중국의 각 지역에서도 십자사(十字寺) 형태로 크게 부흥하였다. 다만 원대(元代)에는 경교가 야리가온(也里可溫)이라고 음역(音譯)되는 몽고어 이름을 얻어, 천주교와 함께 통칭되었다. 그러나 원대의 야리가온(也里可溫) 역시 원 정부의 멸망과 함께 눈앞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서안(西安)의 대진경교유행중국비 (大秦景敎流行中國碑)
당대 최고의 기독교 역사유적은 실크로드의 출발지인 섬서성(陝西省) 서안(西安)의《碑林》에 소장되어 있는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敎流行中國碑)』라고 할 수 있다. “로마에서 온 광명정대한 종교”가 중국에서 유행한 것을 기념하여 당 덕종(德宗) 2년(781년)에 세워진 비인데, 1625년 천주교 신부 세미도(Alvare Semedo)가 처음 발견한 것으로 전해진다. 세미도를 필두로 하여 많은 서구 학자들이 이미 17세기부터 서안의 경교비(景敎碑) 연구에 몰두하였고, 중국 측에서도 명말청초(明末淸初) 시기 이지조(李之藻), 서광계(徐光啓) 등이 고증에 참여하였다. 경교비의 원문은 전체 1870자의 한자와 시리아어 40단어로 되어 있는데, 비문의 기초는 경교승(景敎僧) 아담(Adam, 景淨)이 맡았다. 경교비에는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삼위일체 관련 내용, 당 태종 9년(635년)에 장안에 도착한 알로펜(Alopen, 阿羅本) 선교사 일행이 황실의 보호를 받으면서 대진사(大秦寺)를 세워 경교를 부흥시킨 내용, 비문이 세워지게 된 내력 등이 담겨 있다.   
           
大都(북경)의 十字寺
북경 동남쪽의 도시, 연산(燕山)에 있는 삼분산(三盆山)을 올라가면, 십자사(十字寺)가 있다.  십자사는 원래 불교 사원이었던 곳으로서, 일종의 기도원이었다. 과거 이 사찰의 문패는 “古刹十字碑林”으로 되어 있었고, 비문상의 십자가는 최고 존대의 의미에서 연꽃 위에 앉아 있다. 어떤 학자는, 야리가온(也里可溫)의 석비(石碑)를 설명하면서, 명대(明代) 가정년간(嘉靖年間)에 중건하면서 박해를 피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불교의 형식을 이용한 것이라고 말한다.     

재미있는 것은, 쿠빌라이(元 世祖)가 재위 중인 1275년경에 십자사의 수도사였던 사오마(列班 掃馬)와 마가(馬忽思)에 관한 이야기다. 이들이 성지순례를 떠났다가 오늘날의 이라크 바그다드에 간 적이 있는데, 당시 경교의 총주교인 아브라함 3세를 알현한 후 전쟁으로 인해 귀국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침 그 때 아브라함 3세의 급사(急死)로 인해 새로운 총주교 선출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여기에서 마가가 총주교로 피선되었다. 이후 1287년 사오마는 영국, 프랑스, 교황청을 방문하여 기독교 국가인 元을 소개하였고, 1289년 교황 니콜라이 4세는 프랜시스칸 수도사인, 이탈리아 사람 요한 몬테코르비노(Jean du Monte-Corvino)를 교황청 사절로 임명하여 중국에 보냈다. 1294년 몬테코르비노는 북경(大都)에 도착하여 元정부의 접대를 받았으며, 성종(成宗)은 직접 그를 접견하고 중국에서 자유롭게 선교활동을 하도록 허락하였으며, 천주교당을 열게 해 주었다고 한다. 이것은 중국이 최초로 천주교를 접한 사건에 해당한다. 





김병태 | 배재대학교 복지신학과 교수·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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