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후이는 션쩐(深圳) 인포세일 전자 주식회사 공동설립자이자 사장이다. 인포세일은 웹사이트 관리, 전자상거래, 인터넷 관련 소프트웨어개발 같은 지원 서비스를 제공한다. 소규모이긴 하지만 이 회사는 최근 일류 회사 여덟 곳을 제치고 중국정부의 가장 중요한 공식 뉴스 웹사이트 가운데 하나인 드래곤 뉴스를 만들어 관리하는 주요 계약을 따냈다. 에스더가 사업가로 성공을 거두자 일간지와 잡지사에서 그를 인터뷰했으며, 그를 소개하는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제작도 계획했다. 그러나 에스더가 살아온 삶은 비즈니스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보여준다. 저장(浙江)성 닝뽀(?波)시에서 자란 에스더는 1980년대 중반부터 션쩐교회에서 찬양대원으로 봉사해 왔다.
소명
에스더는 상하이(上海)의 불신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부유한 사업가였던 할아버지는 공산주의자가 정권을 잡자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정부 고위 간부였던 아버지와 어머니는 에스더가 십 대 때 이혼하였다. 어머니는 자신의 고향이자 1949년까지 친정 가족이 사업을 운영하던 닝뽀시로 에스더를 데려갔다. 1980년대 초반, 에스더는 상하이로 돌아와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때까지 주민등록이 그곳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하이에는 친척도 친구도 없었다. 학교 친구들은 시골 출신인 에스더를 따돌렸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 앞을 지나던 에스더는 아름다운 찬송 소리를 듣게 되었고, 그 후 얼마 안 되어 예배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그 시기에 에스더의 어머니는 아무런 말도 없이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가버렸다. 에스더는 교회에서 만난 중년의 추부부와 친해졌다. 그들의 우정은 금세 돈독해졌고, 아이가 없는 부부는 에스더를 양녀로 들였다. 양아버지는 일찌감치 에스더가 비즈니스에 특별한 재능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양부모는 날마다 말씀과 기도로 엄격하게 에스더를 양육했다.
양아버지는 아주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다. 그의 장인은 1920년대와 1930년대에 잘 나가던 석유재벌이었다. 어느 날 이 부부는 기적적인 치유를 경험하고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양아버지는 가족의 부를 이용하여 성공적인 은행업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청일전쟁과 잇따른 내전으로 거의 모든 재산을 잃어버렸다. 1940년대 말 무렵, 양아버지는 사업을 접고 신학을 공부하기로 결정했다. 그 뒤 공산주의가 정권을 장악하면서 이 부부는 그동안 유지해 온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양아버지는 공장에 딸린 한 학교에서 교사로 일해야 했다. 그렇게 지내다가 1970년대 말에 은퇴하였다. 개혁 시기가 되자 정부는 수년 전 그들에게서 몰수한 재산을 보상해 주었다. 양아버지는 에스더에게 말했다. “만약 특정한 분야에 재능이 있다면, 그 일에 최선을 다하렴.” 에스더는 양아버지 말대로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1980년대 초, 에스더는 정부가 운영하는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했다. 당시는 정부가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전환하는 첫 시험단계를 밟고 있을 때였다. 500명이 받은 회사 교육 프로그램에서 에스더가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회사는 그를 파견하여 정부기록을 배우게 했지만, 곧 회계부서로 자리를 옮겨 더 책임 있는 직책을 얻게 되었다. 한 달쯤 지났을 때, 에스더는 매출을 4배로 늘릴 수 있는 방안을 건의했다. 실제로 그가 속한 부서의 주간 매출이 4만 위안(元)에서 16만 위안으로 증가하였다. 그리고 곧 그 부서 직원들의 급여는 추가수당을 포함하여 40위안에서 200위안으로 올랐다. 당시 직장인의 평균 급여가 60위안임을 고려할 때, 놀랄 만한 금액이 아닐 수 없었다. 에스더는 금세 유명해졌고, 부러움과 시기의 대상이 되었다.
1985년, 에스더는 홍콩에서 가까운데다 새 경제특구로 지정된 션쩐에 사업을 시작하도록 상관을 설득했다. 한두 번 정도 계약이 성공적으로 채결되자, 회사는 에스더를 영업 책임자로 진급시켰다. 일 년 내에 그는 자신이 속한 부서에 100만 위안이라는 순수익을 안겨주었다. 회사는 곧 그를 홍콩으로 보내 더 많은 국제교역을 유치하게 했다. 떠나기 전, 양아버지는 평안과 격려의 말씀으로 시편 1편과 23편을 적어주었다. 그 구절들은 진실로 그에게 평안을 주고 격려가 되는 말씀이었다.
홍콩에서 성공한 뒤, 에스더는 션쩐으로 가서 수중에 있던 단돈 2천 위안으로 자기 사업을 시작했다. 에스더는 생필품 교역에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홍콩과 션쩐의 가격 차이와, 션쩐과 중국 다른 지역의 가격 차이를 이용한 것이다. 곧 100만 위안을 벌어들인 에스더는 재계에도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에스더는 무역, 부동산, 주식뿐 아니라, 부실하기로 이름난 공공은행들을 대신해 시장의 필요를 채워주는 불법 민간은행의 외환 암시장과 송금에도 관여했다.
에스더는 은행 이자만으로도 편안히 살 수 있을 만큼 돈을 벌었다. 성공적인 삶을 살면서 에스더는 ‘전임 사역’을 통해 하나님이 주신 복에 감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당시 목사 안수를 받고 고향인 장쑤(江?)성에서 이제 막 교회를 개척한 양아버지가 이렇게 말했다. “네 재능은 단순히 설교자가 되는 것 이상이란다. 네가 목사가 되는 것은 그다지 현실적이지 않은 것 같구나. 너무 성급하게 결정하지 마렴. 넌 비즈니스에 재능이 있어. 그리고 넌 이 비즈니스를 세계에서 선한 그리스도인 사업가로서 그리스도를 전하도록 부름 받았단다.” 12명 정도 되는 교인으로 시작한 이 교회는 몇 년 만에 수백 명이 모이는 교회로 성장했다. 그리고 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예배당을 새로 건축하기도 했다.
사업착수
에스더는 대학을 다닌 적도 없고, 경제학이나 영업 경영을 공부한 적도 없다. 비록 션쩐이 상업화된 도시이기는 하나, 1990년대 중반에는 그리스도인 사업가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는 사실상 교회에서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했다. 교회에서 그를 사업가로 알고 있는 사람은 소수였다.
에스더는 미래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면서 자신의 비즈니스 철학을 체계적으로 세워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많은 생각 끝에 세 가지 결론에 이르렀다. 첫째, 사람들은 단지 돈을 버는 것을 넘어 더 높은 목적을 품고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둘째, 기업가는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과 함께 일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 일해야 한다. 경영주는 피고용인에게 도덕적인 책임이 있다. 셋째, 비즈니스는 일자리를 창출하며, 많은 사람에게 생계를 제공한다.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사항을 검토하던 에스더는 1997년에 인터넷과 정보기술 과정을 선택하였다. 그렇게 해서 그는 컴퓨터 공학자이자 훌륭한 IT강사인 마 선생을 만나게 되었다. 인터넷과 관련된 비즈니스의 앞날을 내다본 에스더는 마 선생과 함께 인포세일이란 회사를 창업하였다. 첫해에는 비슷한 업종을 운영하는 기업 수천 개와 경쟁하면서 시장에 대한 감을 잡는 데 거의 모든 시간을 보냈다. 자본회전에 문제가 생겨 도산 진전까지 간 적도 있었다. 그러나 어려울 때마다 에스더는 기도했고, 기대하지도 못한 일이 일어나 벼랑 끝에 선 인포세일을 마지막 순간에 구해내는 일을 경험하기도 했다. 에스더는 이런 경험들을 계속 비즈니스를 진행하라는 하나님의 표적으로 보았다.
사업계획
인포세일은 중국의 뉴스 웹사이트를 만들고 운영하는 일을 전문적으로 다룬다. 그들이 내세우는 특별한 경쟁력은 회사 인력과 지역 대학을 연계했다는 것이다. 인포세일은 여름방학 동안 인턴으로 일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졸업한 뒤 2년 동안 평균보다 보수는 적지만 높은 성과급을 받으며 일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런 식으로 인포세일은 필요한 인적 자원을 지속적으로 저렴하게 공급받는다. 이 사원들은 아이디어가 풍부하며, 최신 인터넷 기술을 섭렵하고 있다.
인포세일은 큰 프로젝트 몇 개를 유치했다. 그중 가장 크게 성공한 프로젝트는 2001년 3월에 주요한 정부 뉴스 사이트인 21dnn.com을 만들고 운용하는 사업을 따낸 것이다. 이 사이트는 중국공산당 대외선전 부서가 지원하며 정부의 공식 뉴스 사이트가 될 것이다(21dnn이란 이름 붙인 것도 21세기에 CNN과 경쟁하기 위해서다). 인포세일은 야후를 포함하여 여덟 곳이 넘는 큰 기업체를 제치고 입찰을 따냈다. 특히 인포세일은 뇌물이나 유흥비로는 단 한 푼도 쓰지 않았다. 마 선생은 새로 개업한 북경 사무실을 관리하고, 에스더는 션쩐에 있는 본사에 남았다. 인포세일은 지방 정부가 새로운 웹사이트를 신설하는데 필요한 소프트웨어 패키지를 이미 만들어 놓았다. 몇몇 지방 정부는 벌써부터 인포세일의 제품과 서비스를 사용하려고 기다리고 있다.
성장하는 비즈니스
인포세일의 직원 35명은 대부분 션쩐에서 일한다. 밀려드는 주문을 감당 하려면 직원을 5명 더 고용하고 사무실로 새로 열어야 한다. 그리고 주어진 프로젝트를 잘 해내기 위해 부서와 팀을 세분화하는 구조조정을 계획하고 있다. 인포세일은 가끔 자본회전의 문제가 있긴 하나, 치명적인 것은 아니다.
회사에는 에스더 말고도 그리스도인이 한 명 더 있다. 마 선생은 기독교에 관심을 보이기는 하지만 아직 개종하지 않았다. 끝내 에스더는 사역에 대한 열정을 표출할 다른 방법을 찾아냈다. 유일하게 중국 정부에서 허가한 Chinachurch.com이라는 개인 기독교 웹사이트를 만든 것이다(공식적으로 허가받은 삼자교회와는 관련이 없다). 처음에는 회의적이었지만 시간이 흐르자 션쩐시와 광둥(廣東)성 지방 정부 모두 이 사이트를 환영했다. 에스더는 현재 중국 국외에 있는 기독교 조직과 연계하여 이 사이트를 향상 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Chinachurch.com은 웹상으로 묵상, 전도, 목회에 필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에스더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일은 중국에 첫 사이버 교회를 세우고 온라인 신학교를 설립하는 것이다.
에스더는 개인적인 경영관으로 ‘정의와 긍휼’이라는 기독교 원칙을 지킨다. 몇몇 직원이 그의 기독교적 관대함을 악용하는 것을 허락하면서 까지 에스더는 종종 행동을 통해 본을 보인다. 계약이 성사되면 에스더는 작은 선물을 보낸다. 선물을 주는 것은 관계를 돈독히 하려는 에스더만의 방법으로 뇌물과는 다르다. 선물을 주지만 그에 대한 보상을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에스더는 합법적이지 않은 사업을 하기도 한다. 어떤 중국 법은 상당히 부적절하고, 모순적이며, 비합리적이다. 예를 들어, 어떤 법은 공적으로 예배를 드리거나 다른 사람을 전도하는 자유를 금한다. 또 어떤 법은 정부가 정한 환율을 적용하도록 강요하는데, 그것은 실제로 거래되는 환율과 비교할 때 터무니없이 낮다. 이 법규를 준수하다 보면 필수적인 장비 구입 같은 일은 거의할 수 없다. 다른 법규에 따르면 작은 공장을 하나 세우기 위해 27개나 되는 관공서에서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일일이 규정과 법규를 따라 공장을 세우려면 족히 몇 년은 걸릴 것이다.
한편 에스더는 이윤도 남고 합법적일지라도 비윤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사업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 예를 들어, 동남아시아 독재정권에 무기를 수출하는 일은 엄청난 이윤이 남는 장사지만 에스더는 마다했다. 에스더에게는 나라의 법보다 기독교 원칙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평가
기독교적 관점에서 볼 때, 에스더의 비즈니스는 윤리적이다. 그는 관계와 선물이라는 회색바다를 능숙하게 항해하고 있다. 에스더는 시장에 있는 다른 회사들과 경쟁하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활용한다. 직원들을 보살피고, 좋은 본을 보인다. 정직하고 믿을 만한 사업가로서 그가 보이는 성실함은 션쩐의 사업가들 사이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인포세일은 전자상거래 관련 분야에서 많은 가능성을 보이며 떠오르는 별로 자리 잡았다. 이 회사는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 아픔을 경험하고 있다. 비용을 줄여 효과적으로 운영하는 기업체인 인포세일은 시장에서 경쟁하기에 충분할 만큼 융통성이 있다.
Chinachurch.com은 진정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도록 도와주는 사이트로서, 정보가 부족한 수천만의 중국 그리스도인에게 희망을 주는 효과적인 도구가 될 것이다. 6개월마다 인터넷 사용자가 두 배로 늘어나는 중국 상황과 더불어, 이 사이트는 그리스도인뿐 아니라 웹서퍼들에게도 복음을 증거 하는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에스더에게는 중국이라는 특정한 환경에서 신앙과 비즈니스를 통합하는 적절한 모델이 부족하다. 에스더는 영적인 방향성도 제공하지 못하면서 때대로 비즈니스 활동을 세상적인 일이라고 공개적으로 정죄하는 중국 교회가 안타가울 뿐이다. 그러나 만약 적절하게 지원만 해준다면, 에스더는 중국에서 일어나는 비즈니스 공동체에 기독교 신앙을 효과적으로 증거 할 수 있을 것이다. 비즈니스가 이윤을 남기면서 윤리적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에스더는 잘 알고 있다. 이런 비즈니스야말로 중국에 임하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일이다.
출처│「킹덤 비즈니스(On Kingdom Business)」데쓰나오 야마모리, 케네스 엘드레드 공편, 최형근 옮김, 죠이선교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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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죠이출판사의 킹덤비즈니스(최형근 옮김) 제1장의 내용을 출판사의 허락을 받고 게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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