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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  통권 111호  필자 : 강진구  |  조회 : 3398   프린트   이메일 
[중국 영화]
로저 스포티스우드 감독의 ‘황시(黃石的孩子)’
- 숨어있는 소장정(小长征)의 역사를 말하다

영화를 보며 대장정을 생각하다

 

‘한니발의 알프스 원정 따위는 대장정에 비하면 휴일의 소풍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인보다 중국을 더 사랑했고 마오쩌뚱의 친구로도 잘 알려진 미국의 저널리스트 에드가 스노우(Edgar Parks Snow)는 그의 역작 <중국의 붉은 별>에서 장정(長征)의 규모와 역사적 의미를 이렇게 평가했다. 

장정은 오늘날의 중국 공산당을 있게 만든 가장 중요한 현대사의 사건 가운데 하나로 오늘날에는 험난하고 긴 여정을 뜻할 때 사용하는 일반용어가 되었다. 흔히 대장정(大長征,The Long March)이라 부르는 사건의 시작은 1934년 10월 16일에 시작되었다. 8만명에 이르는 중국의 홍군(공산당)은 당시 90만이 넘는 막강한 전력을 지닌 국민당군의 포위망을 뚫고 중국 남부 장시성(江西省)을 출발하여 서북부 산시성(山西省)에 이르는 9천6백킬로미터의 멀고 험한 길을 1년여 동안, 정확히 말하자면 368일에 걸쳐 이동했다. 홍군은 18개의 산맥을 넘었고 24개의 강을 건넜으며 12개의 성을 통과하는 가운데 거의 매일 전투를 치러야했다. 산시성에 도착했을 때 남은 인원은 7천여 명에 불과했지만, 그것은 패배와 후퇴의 역사가 아니라 중국을 바꾸어 놓은 공산당 승리의 역사로 기록되고 있다. 장정이 중국공산당 역사에 있어서 큰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이 장정을 통해서 농민이 중심에 서는 혁명이념의 실천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홍군은 이동하면서 농민들의 것을 빼앗기 보다는 점령했던 62개 도시와 마을마다 공산혁명의 이념을 심어놓았다. 국민당은 물론 토착세력과의 계속된 전투도 힘에 겨운 일이었지만 굶주림 속에 혹독한 자연환경과 싸워야 하는 상황에서 농민들을 배려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홍군이 어느 마을을 통과하든지 농민들을 괴롭히거나 폐를 끼치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대장정은 중국 공산당이 농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계기가 되기도 했다. 

에드가 스노우는 이 역사적인 대장정에 3개월간 직접 참여하며 <중국의 붉은 별>을 통해 당시의 생생한 체험을 들려주었었다.

우리에게 <007 네버다이>와 <6번째 날>과 같은 액션 활극으로 알려진 로저 스포티스우드 감독의 영화 <황시>는 대장정이 끝난 지 불과 2년이 되기 전에 일어난 60명의 전쟁고아들의 작은 장정을 그린 휴먼 드라마다. 전쟁과 기아로부터 비롯되는 고난과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이동은 대장정과 비슷하게 전개되지만 이념적 문제를 정면에 내세우기 보다는 인간애를 묘사하는데 보다 많은 힘을 쏟고 있다. 

영화는 1937년 중일전쟁을 취재하러 온 영국의 종군기자 조지 호그(조나단 리스 마이어스)로부터 시작한다. 이것은 에드가 스노우가 서양의 저널리스트로 중국에 건너왔음을 상기하게 해 준다. 그러나 에드가 스노우와 조지 호그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에드가 스노우가 서구세계에 중국공산혁명의 사실과 의미를 전하는데 힘을 썼다면, 조지 호그는 저널리스트로서의 직업관을 실천에 옮기기 보다는 실제적 대안을 몸소 실행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충격적인 전쟁의 실상과 폐허 속에서 버려진 아이들의 모습을 취재하기 보다는 그들과 함께하는 삶을 통해 직접적인 생명구원의 길을 택한 것이다.  
 
 '소장정(小長征)' 의 감동과 의미
일본군이 점령하고 있던 난징의 상황을 취재하기 위해 적십자 요원으로 위장한 호그는 마침내 시내잠입에 성공하고 난징 시내에서 벌어진 일본군의 잔인한 집단 학살 장면을 목격한다. 사진촬영을 성공했지만 그만 기자의 신분이 탄로나는 바람에 일본군으로부터 참수형의 위기를 맞게 된다. 그러나 공산당으로 일본군과 싸우고 있던 진한생(陳漢生)이라 불리는 잭(주윤발)이 그를 주해준다. 미국 웨스트포인트 출신으로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할 줄 아는 잭은 정신적 충격을 받고 있던 조지 호그를 황석(黃石)으로 대피시킨다. 호그는 그곳에서 60여명의 전쟁고아들과 이들을 찾아와 돌보는 호주출신의 간호사 리 피어슨(라다 미첼)을 만나게 된다.  

영화가 조지 호그를 중국인의 영웅으로 부각시키는 까닭은 버려진 중국 고아들과의 연합과 공생의 삶을 실천하였기 때문이다. 일본군으로부터 목숨을 피하기 위해 정신없이 황시로 피신하게 된 호그를 대하는 고아원 아이들의 태도는 한마디로 낯선 서양의 남자를 길들이는 것. 그러나 그곳의 고아들은 부모의 참담한 살해현장을 목격한 충격을 안고 살아가는 까닭에 호그가 입었던 정신적 상처와 사뭇 유사한 경험을 갖고 있었다. 어린 아이들이지만 일본군으로부터 징집이 되어 전쟁터에 끌려갈지 모르는 상황과 일본군의 눈을 피해 대피중인 호그의 처지는 한마디로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모습이다. 

우리는 <황시>가 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의 이미지를 전쟁영웅의 모습이 아닌 약자를 돌보는 희생적 영웅으로 등장시키고 있다는 점에 생각을 모을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수많은 인원을 동원하고 전투기의 폭격을 실행시키고, 대규모의 폭발 장면을 담는 등 전쟁영화다운 면모를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시각적 효과에 대한 찬사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까닭이다. 만일 스펙터클한 전쟁장면에 힘을 쏟았다면 조지 호그와 60여 명의 고아들의 실체는 주변부로 밀려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것이 이 영화가 방향을 잡는데 처했던 고민이었다. 전쟁의 실상을 낱낱이 보여주면서도 죽음의 위기의 몰린 아이들의 구원의 문제를 다루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두 마리 토끼는 아무나 잡을 수 있는 법이 아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주저없이 스티븐 스필버그를 오락영화의 귀재, 혹은 할리우드의 천재라고 평가하는 것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특수효과를 사용하여 총알이 날아 다니고 팔다리가 절단되는 모습을 실제로 눈 앞에서 보는 것처럼 전쟁의 현실감을 보여주었는데, 이와 동시에 네 아들을 전장에 보낸 어머니를 위해 한 명의 아들을 구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깊은 인간애를 자아내게했다. 이렇게 두 가지 목적을 완벽하게 달성하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이다. 로저 스포티스우드 감독은 스필버그가 되길 원했지만 그것은 현명한 생각이 아니다. 그는 007시리즈처럼 대량의 물량공세가 이루어진 오락영화를 만든 경험을 바탕으로 상당한 규모의 전쟁장면이 관객들에게 만족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고 기억하는 것은 전쟁이 아닌 그 속에 살아남은 인간이란 사실이다. 감독은 전쟁보다는 인간에 집중하는 것이 더 좋았을 뻔 했다.
   
한 알의 밀알이 된 조지 호그
<황시>의 주제를 대신 할 수 있는 성경구절이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그것을 통해서 얻게 되는 많은 구원에 대한 비유가 아닐 수 없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요12:24) 

우리는 조지 호그가 과연 고아들을 돌보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자기 본연의 업무인 기자의 신분으로 돌아가 사악한 전쟁의 참상을 세계에 알리는 것이 마땅한지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 이것은 이 영화가 역사적 사실이며, 이 영화가 우리의 영성에 관여할 수 있다고 믿는 까닭에 던질 수 있는 질문이다.  

호그의 삶으로부터 나온 첫 번째 대답은 생명을 구하는 일이 다른 어느 것보다 우선한다는 사실이다. 호그는 무력 앞에서 무기력하게 쓰러져 간 타인의 죽음을 지켜보았고, 자신 또한 코끝에 다가왔던 죽음을 맛본 적이 있다. 생명 앞에 내일은 존재하지 않으며, 생명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남들은 목숨 걸고 싸우는데 전 타자기나 치고 있죠’ 

이것은 기자의 신분이 의미 없다거나 전쟁터에서는 누구나 총을 들고 싸워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영화 속에서 조지 호그는 지금 저널리스트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생명을 구하는 일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묻고 있다. 우리가 이 대사로부터 얻어야 할 지혜란 이런 것이다.  '지금 나는 목숨을 걸 만한 일을 하고 있는가', 혹은 '이 일은 생명을 구하는 일에 가까운가'를 묻고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또 한 가지는,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다. 호그의 경우 기사를 써서 송고를 할 여건을 갖추지 못했고, 그 일은 그만이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자신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 눈앞에 있다는 것은 어쩌면 그 일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소명일 수 있음을 생각해 볼 일이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호그는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죽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열매가 맺혔음을 영화는 엔딩 크레디트이 올라갈 때 확인시켜주고 있다. 호그가 돌보았던 아이들 가운데 지금까지 생존한 이들이 나와 호그에 대한 회상을 한다. 이 또한 <쉰들러 리스트>의 마지막 장면을 연상케한다.생명을 구하는 일이 천하를 구하는 일이며, 이 보다 가치있는 일이 없음을 이만큼 확실하게 보여줄 수는 없을 것이다. 이것은 현실이니까.

호그가 파상풍으로 죽었을 때 하늘 높이 띄운 연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생각나게 할 만큼 인상적이다. 소외되고 작은 자를 업신여기지 않고,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의 마음이 파란 하늘 높이 날리는 그 연에 담겨있는 듯하다.  

 

'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 (마10:42)

 





강진구| 영화평론가 · 한동대언론정보문화학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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