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의 은혜와 한국교회의 헌신으로 중국선교가 여기까지 왔다. 한국교회의 중국선교는 한중수교 이후 장족의 발전을 가져왔다. 물론 이러저러한 비판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오늘의 중국선교가 있기 까지 하나님이 한국교회의 헌신을 사용하셨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의 중국선교는 한계점을 맞고 있다. 지금까지 수행해온 한국교회의 중국선교가 한계에 달한 현상들이 여기저기서 목도되고 있다. 여기에 글로벌 금융위기는 중국선교사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렇다고 한국교회의 중국선교가 저물어간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분명한 것은 외재적인 요인과 내재적인 요인에 의해 한국교회의 중국선교는 필연적으로 한계점을 맞게 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한계점에서 적절한 대응을 하면 새로운 길이 열린다. 그러나 급변하는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거나 안주한다면 중국선교의 현장에서 도태되거나 아주 난감한 처지에 빠지고 말 것이다. 지금까지 수행해온 한국교회의 중국선교에 대해 되돌아보고 당면한 중국선교의 한계와 그 성격을 살펴보며 앞으로 어떻게 중국선교를 해야 하나님의 뜻에 합하며 선교중국으로 전진할 수 있을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한 시점에 와 있다.
1. 장족의 발전을 한 한국교회의 중국선교
한중수교 이후 10여 년 동안 한중관계가 놀랍게 발전한 것처럼 한국교회의 중국선교도 장족의 발전을 하였다. 신학교육 사역, 소수민족선교나 학원선교, 의료선교 등 다양한 사역을 나름대로 잘 감당하여 왔다.
1) 중국교회에 유익을 준 신학교육 사역
신학교육 사역은 한국교회가 진력해 온 중국선교의 집중사역으로서 중국교회의 필요를 일정부분 채워주었고, 중국교회가 건실한 교회로 세워지는데 기여하였다. 한국교회가 집중적으로 수행한 신학교육 사역은 평가할만한 경우들이 나타나고 있다. 신학교육은 이미 많은 열매를 맺고 있고, 의미 있는 결과를 얻기도 하였다.
어느 신학교는 졸업생들이 모교의 지원과 지도아래 ‘아들 신학교’를 자기 고향이나 필요한 지역에 설립하여 사역자들을 양성해 내기도 하고 있다. 이것은 그 신학교육이 성공적으로 수행되었음을 입증하는 바람직한 현상이다.
또한 어느 신학교는 소규모이지만 신학교육을 철저히 시행하여 그 신학교 출신들은 누구나 신구약 성경을 원어를 사용하여 분해하고 설교를 작성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 신학교 출신들은 어느 지역에 가든지 교회를 개척하고 교인들 가운데 선발하여 신학교육을 실시한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되어 지지 않는 교육을 중국에서 행한 것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어느 신학교육을 하는 사역자는 중국 전역에 15개 이상의 신학교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었다. 신학교육의 질은 문제의 여지가 있지만 전국규모로 그런 교육을 실시할 수 있는 시스템과 시설을 갖추고 운영한다는 것은 좋게 평가할만하였다.
이동신학교를 구축하여 놓고 융통성있게 중국교회 사역자들을 신학교육을 시켜주는 사역자들도 있고, 연장신학교육(TEE)을 사용하여 많은 사역자들을 복음과 신학적 소양으로 무장시켜주는 사역을 성공적으로 하는 사역자들도 있었다. 중국교회의 요청으로 삼자신학교에 가서 강의를 하거나 삼자신학교 출신들을 모아서 재교육을 함으로 진리 가운데 굳건히 서고 목회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무장시켜주는 신학교사역도 전국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하고 있다. 또한 한국교회의 신학교육의 결과 M.Div, Th.M, Ph.D 과정을 이수중이거나 학위를 취득한 중국교회 지도자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에 의해 학적으로 수준이 있는 신학교육이 실시되고 있기도 하다.
2) 중국교회가 선교중국을 실행할 수 있도록 선교훈련을 실시하는 선교학교도 있다. 비록 규모는 작지만 선교사 파송을 전제로 선교훈련을 실시한다는 것은 앞서가는 혜안(慧眼)을 갖고 헌신하는 선교사임에 틀림없다. 엘리야의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손바닥만한 구름처럼 중국선교가 선교중국으로 전환되는 과정으로서 평가할 만하다.
3) 소수민족사역도 나름대로 전진하고 있고 열매를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수민족에 대한 조사가 상당히 진전하였지만 미전도 종족 입양운동은 괄목할만한 열매를 맺지는 못한 것 같다. 그러나 소수민족교회 개척은 물론 이제는 소수민족 사역자 훈련과 신학교육이 이루어지고 있고, 학원선교와 소수민족사역자 양성을 연계한 사역이 열매를 맺고 있는 것 같다.
4) 의료선교 등 중국인들을 순수하게 섬기는 사역도 나름대로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평가된다.
2. 한계선상에 직면한 한국교회의 중국선교
한국교회가 중국선교에서 직면한 한계점은 심각하고 난감한 일이다. 중국선교가 당면하고 있는 한계는 무엇인가?
1) 중국정부의 통제로 인한 곤경
한국교회가 중국선교에서 주로 수행한 사역은 신학교육사역이고 캠퍼스사역, 소수민족사역, 문서사역, 의료선교, 사회복지내지 구제사역, 조선족선교 등도 병행되어 왔다. 중국선교가 장족의 발전을 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또한 한계에 도달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한계선상에 있는 중국선교를 살펴보면
첫째, 많은 수의 선교사들이 추방을 당하고 있다. 올림픽을 전후하여 많은 선교사들이 중국을 떠나야 하였고 재입국이 허용되지 않고 있다. 선교사들이 떠남으로 그들에 의해서 수행되어온 사역이 타격을 입거나 어려움에 봉착하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다. 추방이 급속히 이루어지기 때문에 동료선교사들에게 사역을 넘겨주기도 어려울 것이고, 다른 선교사를 파송하여 그 사역을 계속하기도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둘째, 시니어급 선교사들 중에는 공안의 집요한 감시와 추격으로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분들도 있다. 비록 추방당하지는 않았지만 공안의 집중적인 감시 속에서 어떻게 사역을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선교사의 가정생활은 어떻게 영위해 나갈 것인가? 하루 이틀에 끝날 일도 아닌데 이대로 갈 수는 없는 일이다. 대안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 아닌가?
셋째, 어느 선교단체는 현지에서 신학교사역을 모범적으로 잘하고 있다. 그런데 공안이 한국에 와서 이 선교단체를 후원하는 교회를 조사하고 갔다고 하여 삼가 조심하고 있다. 어느 선교단체는 동북지방에서 반공개적으로 학교를 설립하여 신학생들을 교육하고 있었는데 그동안 묵인해주던 공안이 빈번히 출입하여 더 이상 사역을 하기 힘들어 철수를 논의하고 있다. 세월이 흘러 이제 자리를 잡고 건실하게 사역하고 있는 사역의 장소들이 다 공안에 노출되고 공안이 통제하려고 하기 때문에 대략 난감한 처지가 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도 더 많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중국의 정치가 사회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를 긴장시키는 일들이 더욱 많이 발생할 것이다.
2) 중국교회가 한국교회 중국선교에 대한 반응
중국교회는 이전에 한중수교 당시의 교회가 아니다. 중국교회는 양적으로 질적으로 많이 성장하고 성숙하였다. 일부이기는 하지만 재정적으로 자립할 뿐 아니라 선교사를 파송하려고 준비하는 교회가 있을 정도로 풍성한 교회들도 등장하고 있고, 교회의 지도력도 이제는 몰라보게 성숙하였다. 한국교회의 협력이 없어도 중국교회가 크게 아쉬울 것이 없는 처지가 되었다. 중국교회는 그동안 한국교회의 선교적 협력과 도움을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다. 중국교회는 한국교회에 대하여 섭섭함과 불만이 팽배해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교회와 완전히 담을 쌓자는 것은 아니다. 주종관계가 아니라 동등한 동역자의 관계로 함께 가기를 원하고 있다. 이 또한 한국교회 일방적인 선교를 돌이켜야 할 도전이요 한계인 것이다.
3) 한국교회의 선교원동력과 선교자원의 고갈
한국교회의 중국선교는 한국교회의 헌신과 후원으로 되어왔다. 그런데 한국교회가 정체 내지 쇠퇴하면서 선교의 원동력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 중국선교에 대한 관심과 열정도 찾아보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후원도 점점 어려워져간다. 책정된 예산을 달성하는 교회도 소수이고, 교회가 재정적으로 어려워지니까 선교후원도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선교 현장에서는 고환율 때문에 더 많은 생활비와 사역비가 필요하고, 사역이 진행되다 보면 점점 사역비가 더 필요한데 한국에서 보내는 선교비는 증액되기는 커녕 현상유지하기도 바쁜 것이 현실이다. 한국의 경제가 당장 회복되기 어렵듯이 중국선교사들과 그 사역에 필요한 선교비를 후원하는 것도 어려운 난제임에 틀림없다. 이미 벌려놓은 사역은 어떻게 하며 현지의 인플레와 고환율로 인한 선교사들의 생활비는 어떻게 할 것인가? 선교비가 없거나 적어도 선교지에서 자녀교육하며 살아가고 사역을 여전히 할 수 있을 것인가?
3. 중국선교의 한계를 넘어 선교중국으로 나아가기 위해 드리는 제언
한계는 넘으라고 존재하는 것이다. 중국선교가 한계상황을 맞이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는 능히 한계상황을 넘어 중국선교의 진전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가 할 일들이 있다.
1) 우리가 주고 싶은 것이 아니라 중국교회가 필요로 하는 것을 그들에게 물어서 주어야 한다. 이제까지 중국선교는 중국교회의 필요를 살피고 그에 부응하기 보다는 우리가 주고 싶은 것을 주는 선교였다. 어느 국제회의에서 중국교회의 한 지도자가 우리 방을 방문하여 간절히 호소하는 말이 “중국교회는 생수가 필요한데 한국교회는 커피를 주면서 마시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선교는 우리가 주고 싶은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현지교회가 필요로 하는 것을 묻거나 살펴서 섬기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겸손히 중국교회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물은 후에 그에 합당한 것으로 섬기는 성숙한 선교가 되어야 한다. 사역지의 새롭게 등장하는 필요들을 잘 살펴서 섬겨줄 때 중국교회와 동역관계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2) 맞춤형 사역을 모색해야 한다. 문어발식 사업이 비효율적이듯이 이 사역 저 사역 다 하는 두리 뭉실한 사역보다 자신에게 맞는 사역, 자기에게 적합한 맞춤형 사역을 해야 한다. 즉 중국교회의 필요에 부합하고 자신의 선교역량으로 감당할 수 있고, 효율적인 사역을 맞추어 해야 한다. 그럴 때 자신의 은사와 달란트, 선교자원을 효과적이고도 효율적으로 활용하며 사역의 열매를 풍성히 맺게 될 것이다. 자신만이 잘 할 수 있는 사역을 정립하고 발전시킬 때 다른 동역자들과도 필요한 협력을 하여 시너지 효과를 내게 될 것이다.
3) 내실있는 사역을 도모해야 한다. 외화내빈(外華內貧)의 사역이 사람들의 눈에는 좋게 보여도 열매가 없거나 약하다.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식해야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듯한 사역인데 실제로는 내용이 충실하지 못할 때 그 사역에 들어간 선교비와 인적 자원이 허비되는 것이다. 사역을 크게 벌이려하기 보다 적은 규모로 사역을 하더라도 내실이 있고 실속이 있어야 선교적으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내실있는 사역을 도모하면 적은 선교자원을 갖고도 소정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되고 현지인들에게도 인정을 받게 될 것이다. 내실있는 사역을 하면 현지 교회 조직들과도 연계가 되고 더욱 큰 사역도 감당하게 될 것이다.
4) 선교자원을 현지에서 조달하도록 시도해야 한다. 아무리 많은 선교비를 후원받는 선교사라도 항상 선교비가 부족하지 넉넉하다고 여기는 거의 없을 것이다. 파송 받을 때 정해진 후원비가 인상되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부족한 선교비는 어떻게 충당할 것인가? 절약과 내핍도 한계가 있다. 사역도 사역비가 더 들어간다고 중단하거나 축소할 것인가? 그 대안을 찾아야 한다. 부족한 선교비를 본국에서 후원받을 수 없다면 선교 현지에서 현지 조달하도록 시도해야 한다. 중국에서 선교비의 현지조달이 가능한 일인가?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중국에서 선교비의 조달이 가능한 경우들도 있다. 현지 교회가 선교사가 운영하는 신학교의 운영경비의 상당부분을 헌금해 준 경우도 있고, 다른 지역의 교회를 위해 헌금한 경우도 있다. 뿐만 아니라 삼자교회 신자가 선교사와 교제하며 양육을 받는 관계인데, 후원을 요청받자 1만 위안(元)을 주면서 계속 선교비를 드리겠다고하는 것을 목격한 적도 있다. 후원이 끊어지거나 줄어든 선교사들의 선교비를 현지교회가 후원한 경우도 있고, 아예 현지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선교사도 있다. 우리가 현지에서 선교비를 조달하는 방법이 없거나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만 가지 길과 방법을 갖고 계신다. 요는 관계다. 하나님과의 관계, 현지교회와 진솔한 관계가 형성되고 유지된다면 그곳에 선교비 조달의 길도 열리게 될 것이다. 관계가 있는 곳에 길이 있다. 다만 우리는 관계가 아닌 것을 관계라고 착각하며 살아온 것일 뿐이다.
5) 조선족교회가 선교중국에 나서도록 섬겨야 한다. 이러저러 말들이 많지만 조선족교회가 중국교회의 일원이요 한국교회 중국선교의 중요한 파트너임에 틀림없다. 동북삼성에 있는 조선족교회들은 도시화 현상 등으로 쇠퇴해가는 것이 대체적인 흐름이다. 그러므로 동북조선족교회들은 영성과 활력, 생명력이 회복되도록 섬기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들이 북한선교에 헌신하고 한국교회의 북한선교에 동역한다면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리고 동북삼성 이외에 산재한 신생 조선족교회들은 웬만하면 자립하고 선교도 할 수 있는 형편이다. 일부 교회들은 이미 해외 선교도 실행하고 있거나 하려고 준비 중인 교회들도 있다. 그렇지 못한 대부분의 자립이 되는 조선족교회들도 중국선교와 선교중국에 헌신하고 동참하도록 도전하고 선교훈련 등 실제적인 협력과 동역으로 나서도록 섬겨야 할 것이다. 조선족교회가 선교중국에 우리와 같이 동역한다면 그 시너지 효과는 우리의 기대를 넘을 것이다.
6) 현지 교회가 선교중국에 헌신하도록 선교훈련과 선교사를 파송하고 사역을 하는 실제에서 동역으로 함께 나아가야 한다. ‘백 투 예루살렘 운동’은 복음적이고 영적인 중국교회 지도자라면 노래처럼 부르는 중국교회 공통의 비전이다. 심지어 삼자교회에서 나온 목사도 ‘중국교회의 비전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백 투 예루살렘 운동’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선교중국에 대한 구체적인 준비나 행동은 약하거나 없다. 중국교회가 선교중국에 헌신할 잠재역량이 충분히 있다. 잠재역량을 갖추고 있는 중국교회로 하여금 선교중국에 실제로 헌신할 수 있도록 선교사 훈련을 실시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여 주고 선교훈련을 도와주며 그들과 함께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해외로 나가 선교하는 일에 동역하여야 한다. 그럴 때 선교중국의 길은 형통하게 열릴 것이며 주님의 지상명령의 성취도 속히 이루어질 것이다.
7) 재입국이 거부된 선교사들의 진로를 열어주어야 한다. 특히 그들이 해외에서 선교중국에 참여하도록 동원, 격려, 재배치하여야 한다. 추방당한 선교사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고 있다. 개인차가 있긴 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중국에서 상당 기간 언어연수도 하고 사역 경험도 풍부한 중국선교의 자원들이다. 그들의 습득한 언어와 사역의 경험, 노하우를 사장시키지 말고 국내에서 방한 중국인 사역이나 해외에서 중국인사역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해외에서 그들이 그 지역에 필요한 사역을 잘 감당하고 있는 것을 관찰한 경험도 있다. 보다 적극적으로 선교중국에 한국교회가 동참하는 데는 중국에서 추방당한 노련한 선교사들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중국교회가 파송한 선교사들이 해외에서 선교사역을 하려 할 때 그곳에는 이미 한국인 선교사들이 선교사역을 하고 있다. 중국선교사들이 선교지에서 효과적으로 정착을 하고 사역을 시작하려면 현지에 정착한 한국인 선교사들의 협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래서 추방당한 선교사들이 그들 사이에 코디네이터 역할을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 역할은 그들만이 할 수 있는 블루오션일 것이다. 위축되어 있는 그들을 격려하고 후원하여 선교중국에 헌신하도록 할 때 선교중국은 시너지 효과를 누리게 될 것이다.
8) 중국교회가 북한선교에도 관심을 갖고 실행하도록 도전하고 격려하고 섬겨야 한다. 이제까지 북한선교는 한국교회의 전유물로, 조선족교회가 할 수 있는 사역으로 간주하여 왔다. 우리가 간과한 북한선교 자원이 바로 중국교회이다. 중국교회는 북한과 친분이 있고, 누구보다도 쉽게 북한을 내왕할 수 있다. 중국교회에 북한선교에 대한 부담감이 있다는 것이 가정교회의 선언에 나타나기도 하였다. 실제로 어떤 비거주 선교사의 증언에 의하면 그들은 한족교회의 사역자들을 선교훈련을 시켜 북한으로 파송하려고 한다고 하였다. 한족은 북한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다닐 수 있고 조선족에 비해 의심도 덜 받는다고 하였다. 탈북자 사역은 물론 북한에 직접 선교를 하기 위해서도 한족교회의 헌신은 요긴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북한이 개방되기 전이나 개방되어가는 과정에서 중국교회가 북한선교에 헌신하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동역의 길을 모색하여야할 것이다.
한국교회의 중국선교가 한계선상에 서 있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우리는 현실을 직시해야하지만 현실에 잡혀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는 이 한계선상을 타개해나갈 지혜와 역량이 부족하지만 하나님께만 만 가지 길을 갖고 계신다. 중구선교는 하나님이 주도하셨다. 앞으로 중국선교는 물론 선교중국도 하나님이 친히 인도하실 것이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며 길을 구할 때 하나님이 중국선교의 한계상황을 타개할 길을 보여주실 것이고 그 길을 열어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대 이상으로 중국선교를 인도하실 것이다.
인병국| 본지 편집자문위 · 중국선교연구원 · 한동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