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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중국은 세계복음화의 화두가 되고 있다. 중국선교와 선교중국은 비슷한 단어이지만 다른 말이다. 중국선교는 중국의 복음화와 현지 교회들을 섬기는 것이고, 선교중국은 선교적 섬김의 대상이던 중국교회가 해외선교의 주역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선교의 성공은 선교지 교회인 중국교회가 선교하는 교회로 성장하여 우뚝 서는 것이다. 중국선교는 이제 선교중국으로 나아가고 있다. 선교중국이 실현됨으로 세계복음화는 속도를 내게 될 것이라고 예상된다. 선교중국은 중국교회 단독으로 수행할 수 있는 사역이 아니라 해외 교회들, 특히 한국교회의 헌신과 섬김을 통한 동역으로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선교중국은 하나님의 인류 구원완성의 경륜 가운데 계획하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중국교회가 선교중국에 나서도록 그 환경을 친히 조성하여주셨고, 앞으로도 이끌어 가실 것이다. 하나님이 최근 중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선교중국이 실현될 수 있도록 전환시키고 계신다. 이미 치뤄진 베이징올림픽을 기점으로 중국선교는 선교중국으로 전환점을 갖게 될 것이다. 비록 지금은 현실적으로 암울한 환경이 우리를 짓누르고 있지만 선교중국으로 인류 구원의 완성을 도모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수레바퀴는 쉬지 않고 돌아 갈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교중국 - 한국교회와의 동역을 통한 선교중국
선교는 성령님이 주도하신다. 그럼에도 사람이 할 영역과 역할이 있다. 하나님은 교회를 들어 선교를 수행하신다. 하나님은 중국교회와 한국교회의 동역으로 선교중국을 이루기 원하신다. 중국교회가 단독으로 선교중국을 수행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이 있고, 한국교회 단독으로 세계선교를 감당하는 것은 힘에 버겁다. 그래서 중국교회와 한국교회의 연합과 동역은 선교중국에서 선택이 아니라 핵심이다. 하나님은 선교중국을 수행하실 준비를 다 하고 계신데 사람들 편에서 문제가 있다. 선교중국의 주역인 중국교회는 논외로 하더라도 또 다른 파트너인 한국교회가 문제인 것이다. 한국교회가 중국교회와 연합하고 동역하여 선교중국을 수행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와 같이 요원한 현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선교중국에 쓰임받고자 하는 갈망과 기대를 갖고 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극복하고 우리가 선교중국에 쓰임받으려면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길은 없는가? 아니다. 하나님이 알려주신 길이 있다. 그 길은 바로 선교중국에 헌신하는 각 지체들 간의 연합과 동역이다.
선교중국에 쓰임 받으려면 우리가 주 안에서 쓰임받기에 합당한 지체들로 변화되어야 한다. 선교중국에서 연합과 동역의 가치를 알고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변화되지 않아서이다. 변화는 진리를 체험할 때 이루어진다. 체험된 진리만이 우리를 변화시킨다. 진리를 체험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에 순종할 때 이루어진다. 선교중국에 쓰임받으려고 하는 우리에게 순종하라고 주신 말씀에 순종할 때 선교중국에 쓰임받기에 합당한 지체가 될 것이다. 우리가 순종해야 될 말씀이 무엇인가? 시편 133편 말씀이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이 말씀을 반대로 써보면 “형제가 분열하여 별거함이 어찌 그리 악하고 추한고”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형제로서 선교중국에서 연합하여 동역하기를 학수고대하신다. 그동안 중국선교 현장에서 들려온 불협화음과 언짢은 소식들은 이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것들이다. 그러면 선교중국에 헌신하려는 우리에게 주어진 말씀을 어떻게 순종할 것인가?
-선교중국 헌신자들 사이의 형제의식 함양
선교중국은 중국교회가 주역이 되고 한국교회는 중국교회가 선교중국에 헌신하도록 섬기는 동역자가 됨으로 수행된다. 그래서 중국교회의 지도자들과 목회자들, 선교헌신자, 파송하고 후원하는 교회의 지체들, 화교교회, 현대 중국에서 해외로 출국한 후 신앙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지체들이 형제로서 연합하고 동역해야 한다. 또한 한국교회의 목회자들과 선교헌신자(중국선교사, 중국에 재입국이 거절된 선교사, 해외에서 선교적 입지를 구축한 선교사)들, 파송교회와 후원자들이 형제로서 연합하고 동역해야 한다. 중국교회 지체들과도 형제의식이 있어야 하고 선교중국에 헌신하는 우리 한국교회 지체들과도 형제의식이 함양되어야 한다. 형제임이 전제되어야 연합도 동역도 가능한 일이다. 우리가 형제가 아니라면 선교중국을 논할 필요도 없다. 선교중국에 동참하는 우리 모두는 형제들이다. 우리가 형제라는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주 안에서 살기 때문이다. 여기에 해당된다면 우리는 서로 다른 것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형제이다. 그런데 형제라고 해서 저절로 형제의식이 생기거나 우애가 돈독해지는 것은 아니다. 형제라도 남만 못한 경우도 있다. 그래서 형제간에도 서로 우애를 위하여 배려하고 힘써야 하는 것이다. 선교중국에 헌신하는 우리가 형제임에는 틀림없지만 형제의식이 생기고 함양되려면 그에 합당한 노력을 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우리가 형제의식을 함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지체의식을 함양하는 교회관을 가져야 한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무리들의 모임이요 교제하는 공동체이다. 기회가 주어지는대로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전12:27)는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 나와 조금 다르더라도 기본적인 신앙고백이 같으면 형제로 받아들이고 교제를 힘써야 한다. 교제하기에 어려움도 있겠지만 교제를 힘쓸 때 우리가 형제라는 생각이 우리 마음 깊숙이 자리잡게 될 것이다.
둘째, 공동체를 지향하는 인간관계를 추구해야 한다. 우리는 단독자로 하나님 앞에서 구원받았고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 앞에 갈 때에도 단독자로 간다. 그러나 예수님을 영접한 이후 신앙생활은 ‘나’가 아니라 ‘우리’로 영위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천국에 들어가서도 ‘나’가 아니라 ‘우리’로서 영원토록 살아간다. 신앙생활은 공동체가 기반이다. 공동체를 지향하는 인간관계를 추구할 때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은총을 얻고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며 살도록 하신다. 공동체 안에서만 우리는 ‘나’가 아니라 ‘우리’로서 살게 된다. 우리로 살게 될 때 형제의식은 비로소 생겨난다.
셋째, 과업지향에서 인격지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선교에서 과업을 이루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너무 과업지향으로 살면 형제에 대한 배려를 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과업보다 인격지향으로 나아갈 때 형제를 소중하게 여기게 되고 형제의식이 함양하게 된다. 형제가 될 때 연합과 동역의 길도 열린다. 형제관계가 있는 곳에 사역의 길은 시온의 대로처럼 열린다. 그래서 우리가 먼저 힘쓸 일은 바로 형제의식을 함양하는 이 일인 것이다.
-갈등을 넘어 연합을 추구
가인과 아벨 이래로 형제간에 연합하여 동거하기도 하고, 대립하여 별거하기도 하였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관계가 형제이면서 가장 소원해질 수 있는 관계도 형제간이다. 현실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동(同)자가 들어가는 단어들이다. 동기간, 동기동창, 동문, 동역자, 동료 사이가 참 좋아야 하는데 여러 가지 갈등과 경쟁심으로 인해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형제간에 갈등하고 경쟁심에 사로잡히는 것은 몇 가지 오해 때문이다. 오해할만한 이유가 있지만 오해는 풀어야 한다. 오해를 풀 때 갈등과 경쟁심을 넘어 연합을 할 수 있게 된다.
첫째, 이권(利權)에 대한 오해를 풀어야 한다. 형제간에 사이가 나빠지는 것은 각자의 이권을 침해당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이권이 있다. 이권이 꼭 금전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물질과 관련되게 마련이다. 선교중국에서 이권은 선교비에 관한 것이다. 여러 가지로 말들 하지만 갈등과 과도한 경쟁심의 근저에는 선교비가 있다. 선교비를 자신이 노력하여 얻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동역자들과 무한 경쟁을 하고 갈등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나 선교비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4:19). 내 노력의 대가로 선교비가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것도 시스템이 있다. 그것을 공급의 시스템이라고 부른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헌신하라고 요구하시는 말씀에 순종하는 가운데 우리 마음에 공급의 시스템이 구축된다.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구축된 공급의 시스템에 따라 필요한 것들을 때를 따라 정확하게 채워주신다.
둘째, 자존심을 잘 처리해야 한다. 자존심을 지키려하기 때문에 갈등과 감정이 생긴다. 자존심은 감정의 문제이다. 사람이 무엇을 결정할 때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감정이다. 그래서 형제의 자존심을 존중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본인은 감정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5:24)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자존심을 잘 관리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불필요한 갈등과 시험을 피할 수 있다.
셋째, 보상에 대한 이해를 바르게 해야 한다. 사역자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는 것은 인정을 받고 싶은 심리가 발동하기 때문이다. 남자는 자기를 인정해주는 사람을 위해서 목숨도 초개같이 여길 수 있는 심리가 있다. 그래서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한다는 말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사람의 인정에 연연하지 말고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것은 천국에서 상급을 받는 것과 연관된다. 하나님이 상을 주시는 기준은 이 세상에서 이루어놓은 업적이 아니라 주님의 장성한 분량에 도달하고 있는 정도이다. 또한 업적을 평가하실 때에도 각 개인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고려하시며 사역을 할 때에 그 동기와 과정이 말씀에 얼마나 부합되는가에 근거하여 정확하게 평가하신다. 하나님의 평가는 절대평가이지 상대평가가 아니다. 그러니 동역자와 과도한 경쟁을 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중국선교 헌신자들의 주 안에서 동역을 추구
선교중국은 중국선교보다 고난도의 사역이다. 그래서 기존의 협력보다 한 단계 높은 동역이 요구된다. 동역을 하려면 항상 우리가 주 안에 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말씀처럼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내 안에 사시는 삶을 살아갈 때 동역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선교중국은 연합과 동역을 통해 열매로 이어져야 한다. 연합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선교중국의 비전을 공유하여야 한다. 선교중국에 참여하는 지체들이 공유하는 목표는 선교중국의 실현과 완성이 되어야한다. '백 투 예루살렘운동'도 선교중국에 포함되는 개념과 비전이어야 한다. 하나님은 중국교회에 먼저 백 투 예루살렘에 대한 비전을 주셨고 동시에 우리 모두에게 선교중국의 비전을 주셨다. 하나님은 그 종들에게 비전을 주시고 그 비전을 붙잡고 살며 사역하게 하신다. 비전을 주신 하나님은 비전에 공감하는 사람들을 동역자로 붙여주시고 비전을 이룰 수 있는 여건과 자원을 공급해 주신다. 뿐만 아니라 비전을 이루도록 친히 인도하시고 역사하신다. 그래서 비전이 이루어진 후에 돌아보면 내가 비전을 이룬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다고 고백하게 하신다. 하나님은 비전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하신다. 동시에 비전에 동참한 우리들도 영적으로 성장시켜 주신다.
둘째, 선교중국에서 블루오션을 추구해야 한다. 래드오션은 과도한 경쟁을 유발하여 스트레스로 괴롭히지만 블루오션은 자신의 달란트와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최선을 다하면 되기 때문에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없다. 틈새 시장이 있는 것처럼 선교중국에도 자신만이 할 수 있는 틈새 사역의 영역이 있다. 자신만이 할 수 있는 틈새사역을 발견하고 그 사역에 집중할 때 다른 동역자들과 과도한 경쟁을 하지 않으면서도 같은 비전을 이루며 협력하고 동역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셋째, 선교중국에서 자신의 달란트와 은사에 따른 역할분담을 해야 한다. 누구나 똑같은 사역을 할 필요는 없다. 중복될 수도 있지만 가능하면 자신의 달란트와 은사를 정확히 파악하여 사역을 하면 하나님이 연결시켜주시는 어떤 동역자와도 큰 갈등없이 동역을 할 수 있다. 선교중국에 참여하는 사역자들에게 하나님이 그 일에 합당한 달란트와 은사를 주셨다고 믿어야 한다. 그러면 발견할 수 있고 사용할 수 있다.
넷째, 선교중국의 총사령관이신 성령님의 인도를 철저히 받아야 한다. 성령님은 이에 필요한 모든 필요와 여건을 아시고,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도 정확하게 아신다. 선교중국에 참여하는 모든 지체들을 정확하고 세밀하게 아신다. 성령님은 선교중국에서 우리 각 지체들을 모든 면에서 빈틈없이 정확하게 인도하신다. 늦지도 빠르지도 않으시다. 성령님의 인도를 받을 때 ‘나와 그것’이 아닌 ‘나와 너’의 관계로 선교중국에 참여하는 모든 지체들과 동역을 이루며 나아가게 될 것이다.
이 시대 하나님은 선교중국을 주도하심으로 세계선교의 완성을 이루시고, 그와 더불어 주님이 다시 오시는 우리 모두의 소망을 이루어 주실 것이다. 우리 모두 가슴 설레이는 이 비전에 동참하고 쓰임받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인병국 | 본지 편집자문위원· 중국선교연구원·한동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