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시를 떠난 지도 벌써 10개월이 다 되어간다. 사막, 자욱한 먼지, 길거리를 오고 가는 당나귀, 목동이 몰고 가는 양떼, 먼지 묻은 맨발에 화려한 스카프를 두른 여인들. 지금도 떠올리면 그리움으로 아련해지는 C시는 B족에게 그러하듯 우리 가정에게도 ‘마음의 고향’이다.

J와의 만남
우리는 이슬람을 믿는 B족을 섬기기 위해 2001년부터 중국 서북부의 E시에 살고 있었다. 이미 2년 넘게 E시에서 한어를 배운 남편은, B어를 배운지 1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지만 실력이 빨리 늘지 않았다. E시에 거주하는 B족의 비율은 10%도 되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생활에서 한어를 더 많이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B어를 더 잘 익히기 위해 E시에서 1,500Km 떨어진 C시로의 이주를 결심했다. 환경적으로는 불편한 곳이지만, B족이 많이 거주하기에 이들의 언어를 배우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을 갖춘 지역이기 때문이었다.

C시에 정착한 우리 부부는 함께 학교에 등록하여 B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과 일대일로 B어만 사용하며 공부했기 때문에 E시에서보다 언어의 진보가 훨씬 빨랐다. 선생님으로부터 B어 개인 과외를 해 줄 여학생 한 명을 소개받았는데, 그가 바로 J였다. 한 번도 과외 수업을 빠지거나 지각한 적이 없는 그녀는 어느새 우리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성실하지만 웃음기 없는 얼굴에 드리워진 그늘이 안쓰러워, 우리는 언젠가 그녀에게 꼭 복음 전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J의 회심이야말로 가장 큰 기도제목이 되고 있었다. 얼마 후부터 성경을 교재로 택해 읽어가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서서히 J의 마음을 여셨고 진리의 빛에 반응하게 하셨다. 우리의 바람대로 J는 만난 지 1년 여 만에 예수님을 영접했다. 할렐루야!! 그리고 계속적으로 함께 성경을 읽는 가운데 얼굴이 밝아지고 변화되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그녀가 예수님을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나의 건강 문제로 갑자기 한국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두 달 후, C시로 돌아와 만난 그녀에게서는 반가움 보다는 염려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외국인과 만나는 학생들을 통제하는 학교에 대한 두려움, 그리스도인이 된 사실이 가족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걱정한 나머지, 싹튼 믿음이 자라지 못하고 있었다. 그 후 J는 우리집에 오지 않았고, 학교에서 우연히 만나는 것도 애써 외면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외국인에 대한 학생비자 연장 거부로 우리는 C시를 떠나 다시 E시로 이사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대로 J를 남겨두고 가는 것이 안타까워 MP3에 성경자료를 넣어서 주려고 했지만 그녀는 받기를 거절했다. 우리가 떠난 이후 돌봐줄 사역자도 연결해주었지만, 이후 J는 그 사역자와의 만남을 피했다.

J의 심정으로
이제 우리는 E시에 살고 있고, 새로운 사역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늘 아쉬운 마음으로 J를 생각하며 기도하게 된다. 나는 아래의 글을 통해 J와 우리 가정의 만남을 그녀의 입장에서 묘사해 보았다. 그 이유는 첫째, 무슬림이었던 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된 이후에 겪게 되는 어려움이 어떠한지를 독자들이 이해하기를 바라는 마음이고, 둘째로는 나의 친구이자 그리스도안에서 자매인 J의 믿음의 회복을 위해 함께 중보해주기를 간절히 소망하기 때문이다. 

가정 가운데 연이은 고난
저는 부모님, 두 오빠, 언니 하나를 둔 막내로 자랐습니다. 큰 여유는 없었지만, 든든한 국영회사의 근로자로 일하시던 아버지로 인해 어려움 없이 생활하던 우리 가정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면서부터였습니다. 지금도 제 마음 깊숙한 곳에 남은 가장 큰 슬픔은 아내와 4남매를 두고 세상을 떠나며 안타까워하던 아버지의 임종 직전 모습입니다. 갑작스레 찾아온 아버지의 병과 죽음으로 인해 그나마 있던 재산을 모두 잃고 우리 가족은 막막한 신세가 되었지요. 그래도 우리 가정의 어려움을 헤아려준 아버지 회사 덕에 허름한 사택 한 채를 빌려 살 수 있게 된 건 천만다행이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공장에서 일하던 큰 오빠가 공장 내 기계가 무너져 내리는 사고로 머리와 눈을 다치는 불행이 닥쳤습니다. 오빠는 수술을 받고 1년 넘게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다행히 큰 장애가 남지는 않았지만, 한쪽 눈의 시력이 약해지고 뇌수술의 후유증이 남은 오빠는 예전처럼 직장에 다닐 수 없었습니다.

언니는 학교 문턱에도 들어가 보지 못했습니다. 대신 이맘(이슬람 종교 지도자)이던 외할아버지 밑에서 어릴 때부터 아랍어와 꾸란을 배웠습니다. 원래부터 종교심이 강한 우리 가정이지만, 그 중에서도 언니의 신앙은 더욱 남달랐습니다. 열아홉에 중매로 결혼한 언니는 딸만 둘을 낳았는데, 얼마 안 있어 형부가 바깥에 다른 살림을 차렸고 이혼을 요구했습니다. 돈 한 푼 없이 쫓겨난 언니는 우리와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한어(漢語)를 전혀 못하는 언니가 돈을 벌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식당에서 밥하고 설거지 하는 일 뿐이었습니다. 친할머니 밑에서 설움 당하며 사는 두 딸을 데려와 함께 살 돈을 벌기 위해 언니는 악착같이 일합니다. 

전 어려서부터 선생님이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형제 중에 제가 제일 공부를 잘했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에 대학에 가겠다고 말할 염치가 없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주유소에 취직했습니다. 하루에 8시간 이상 서서 기름 넣는 일은 고되었지만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된다는 생각에 한낮의 따가운 햇볕도, 살을 에는 겨울의 추위도 견딜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진학에 대한 갈망은 더 커졌습니다. 배우지 못해 남편과 시댁 식구에게 무시당하고, 결국 이혼 당했지만 여전히 경제적 무능력으로 고생하는 언니를 보며 저의 공부에 대한 열망은 더 간절해졌습니다. 

반대하는 식구들을 설득하여 드디어 저는 스물 둘 늦은 나이에 전문대에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 어렵게 들어간 학교이기에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도 사치였습니다. 오로지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고, 교사 시험에 합격하여 그동안 식구들에게 진 빚을 갚는 것만이 저의 유일한 목표였지요. 기숙사, 교실, 집 이게 제 생활의 전부였습니다. 그러던 중 평소에 저희 집 형편을 잘 알고 계시던 선생님으로부터 B어를 배우는 외국인 유학생에게 과외수업 아르바이트를 해 볼 생각이 없느냐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학비에 보탬이 될 좋은 기회였습니다. 이렇게 저와 N언니의 만남이 시작되었습니다. 1주일에 두 번 만나서 아주 간단한 우리말을 가르쳤습니다.

얼마 후부터는 수업이 끝난 후 N언니의 남편이 저에게 영어를 가르쳐주기 시작했습니다. 영어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다른 친구들처럼 학원에 갈 돈이 없었는데, 하루에 한 시간씩 영어를 가르쳐주니 정말 고맙더군요. 어떤 때는 제 잘못된 한어 발음을 교정해주기도 했구요. 이곳에서 나고 태어난 저보다, 중국에 와서 2년 배운 한국인의 한어 발음이 더 정확하다니 사실 부끄러웠지요.

N언니가 몇 번 집에서 같이 밥을 먹자고 했지만, 무슬림이 아닌 사람과는 절대 같이 식사하면 안 된다는 엄격한 규율에 따라, 나는 한 번도 그 집에서 밥을 먹어 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민족의 큰 명절 때는 N언니 가족을 저희 집으로 초청했습니다. 저에게 여러모로 도움을 주고 친절히 대해주는 이분들을 가족들은 최선을 다해 융숭히 대접했지요. N언니 부부는 저희 집에 오더니 앉자마자 기도를 하더군요. 자기들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몇 번 이야기한 적은 있지만, 이렇게 저희 가정을 축복하며 기도해주니 무척 기뻤습니다. 엄마와 오빠, 언니도 N언니 가족들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저희 가족의 마음에 못을 박는 또 하나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몇 년 전 돈을 벌겠다며 집을 나간 둘째 오빠가 먼 지방에서 병에 걸려 죽었다는 연락이 온 것입니다. 아버지의 죽음, 큰 오빠의 사고에 이어 둘째 오빠의 객사 소식에 엄마는 기절할 지경이었고 몇 달 동안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나는 우리 관습에 따라 40일 동안 검은 머리 수건을 쓰고 학교에 다녔습니다. 왜 검은 수건을 썼냐고 묻는 N언니에게 오빠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고,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렀습니다. 나는 언니에게 물었습니다. “오빠는 어렸을 때부터 말썽을 많이 피워 부모님을 힘들게 했고, 아버지 장례식에 조차 오지 않았어요. 이런 오빠가 과연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오빠가 지옥에 갔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제겐 가장 컸습니다. 

N언니가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은 우리 노력으로 되는 문제가 아니라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 무슬림들은 하루에 다섯 번 기도하고, 꾸란을 읽고 선행을 해야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믿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 주변에 천국에 확실히 갈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는 생각이 잠시 스쳤습니다.

얼마 후 언니는 자기가 B언어로 된 ‘인질(신약성경)’을 읽고 있는데, 잘 이해가 안 되니 함께 읽으며 도와달라고 제의했습니다. 그때부터 N언니와 저의 성경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어차피 돈을 받고 하는 아르바이트니 상관없다고 생각했지요. 간혹 학교 선생님들이 외국인 중엔 기독교를 전하는 선교사들이 많으니 조심하라는 말을 하시곤 할 때마다 조금 긴장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관계를 포기할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언니랑 성경을 읽은 지 7개월쯤 되었을 때, 언니가 갑자기 한국에 잠시 들어가야 할지도 모른다며 가기 전에 너랑 같이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고 했습니다. “예수”라는 영화였습니다. 이미 언니와 저는 요한복음과 마태복음, 누가복음을 다 읽은 상태였는데, 이 영화의 배경이 누가복음이니 한 번 보자고 했습니다.

영화를 보는 가운데 예수에게 제 시선이 고정되기 시작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예수는 알라가 보낸 여러 훌륭한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N언니와 함께 인질(신약성경)을 읽는 중에 예수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이라고 하는 부분은 제 마음을 불편하게 했지요. 어떻게 예수가 ‘하나님(알라)’일 수 있단 말이지요? 그건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신성모독이었습니다. 

그런데 영화에 나오는 예수의 삶을 보며, 특히 채찍에 맞고 십자가에 달려 죽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끊임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그가 한 말이 다 진실이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이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설명이 나오더군요. 옆에서 저를 보고 있던 N언니가 이 말들이 믿겨지냐고 묻더군요.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을 받아들일 수 있겠냐고요. 그리고 이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말을 믿겠냐고요.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왜 이리 눈물이 나오는지…. 언니는 더 이상 저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며칠 후에 다시 한 번 이야기 해보자고 했습니다.

이틀 후 다시 찾은 언니네 집에서 B어로 된 또 한 편의 비디오를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한 내용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인간에게 죄가 들어왔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죄를 지으며 살게 되었는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러한 인간을 위해 예수님을 보내주신 것들을 연대기별로 설명한 내용이었습니다. 이 비디오의 마지막에는 나 스스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기도문이 있었습니다. N언니는 나에게 이 기도문을 따라서 할 마음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곧바로 그 기도를 따라 했습니다. 이 순간만큼은 제 마음에 아무 의심도 없었습니다. 또다시 눈물이 흘렀고,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우리는 이전처럼 1주일에 두 번 만나서 성경을 읽어갔습니다. 사복음서를 다 읽고 로마서, 고린도전서를 계속 읽어나갔지요. 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언니가 말씀 가운데 잘 이해 안 되는 부분에 대해 조금 더 설명을 덧붙였고, 자기가 생활 속에서 경험하고 느낀 부분들을 나눠주기도 했습니다. 나도 어렸을 적 외할아버지에게 꾸란을 배우긴 했지만 그저 읽고 외울 뿐, 꾸란의 구절들이 어떤 의미이며 내 생활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 생각해본 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N언니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 그 말씀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킨다고 말했습니다. 

얼마 안 있어 N언니가 몸이 많이 아파서 잠시 한국에 갈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저를 두고 가는 언니는 많이 안타까워하는 듯 했습니다. ‘인질(신약성경)’을 주면서 학교 기숙사에서는 읽을 수 없으니 주말에 집에 가서라도 꼭 읽으라고 당부를 하더군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그 후 학교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들어오시더니 외국인과 과외를 하고 있는 사람은 이름을 적어내라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이 학교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의 대부분이 기독교를 전하는 사람들이니 이제부터 절대 접촉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제 한 학기면 졸업을 해야 하는 저로서는 너무 무서워 가슴 떨리는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만약 나와 N언니의 관계가 알려지면 졸업에 큰 위기가 닥칠지도 모릅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은 사실도 절대 누구에게도 알려지면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제대로 졸업을 못하면 지금까지 어렵게 지탱해 온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얼마 후 N언니 가족이 돌아왔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 집을 찾아가는 주변에 누가 나를 볼까 무서웠습니다. 언니네도 그 동안의 상황을 이미 알고 있는 듯, 앞으로 집에 올 수 있겠냐고 묻더군요. 저는 이제 남은 한 학기, 순탄하게 졸업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언니는 정기적으로 보진 못해도 기회가 닿는 대로 만나자고 하면서, 저에게 무엇보다 매일 성경을 읽으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후, N언니 가족은 E시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떠나기 전 저에게 MP3를 선물로 주며 그 속에 B어로 된 성경자료들이 있으니 시간 날 때마다 들으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두려움에 사로잡힌 저는 그것을 도저히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집에서 인질을 읽을 때마다 언니, 오빠가 왜 그런 것을 읽느냐고 묻는 통에 괴로운데, 갑자기 MP3까지 듣고 있으면 틀림없이 모든 것이 들통 날 테니까요. 헤어지는 것이 섭섭하고 미안했지만 거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의 믿음은 변함없지만, 가족들이나 학교에서 이러한 저의 믿음을 알게 되면 제 인생은 어떻게 될까요? 원래부터 우리 민족은 무슬림인데, 제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가족과 사회로부터 당할 배척이 무척이나 두렵습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미 대학을 졸업한 저로서는 교사 시험에 합격하여 제 꿈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저는 집안의 기둥이자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내가 N언니를 통해서 만났던 ‘예수님’에 대해서 지금 저는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누리/ 중국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