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송을 받고 선교지에서 사역 한지 벌써 13년이 가까워지고 있다. 지내고 보니 너무나 빨리 스쳐지나간 시간들이었지만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 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선교사의 삶과 사역이라는 주제 하에 몇 가지 주관적인 견해를 나누고자 한다. 매우 개인적인 경험을 통한 나눔이기 때문에 다른 선교지와 선교사의 사역에 따라 다른 조언이 나올 수 있음을 먼저 말하고 싶다.

선교사의 삶과 사역
선교사의 삶이 그의 사역이다. 그리고 선교사의 사역이 바로 그의 삶이다. 모든 선교사의  공통된 진리가 있다면 삶과 사역을 따로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와 아내는 처음으로 선교지에 도착해서 소위 말하는 선교사 초년생의 사역을 시작했다. 사역을 하기 위해 왔지만 먼저 생존을 위한 가장 기초적인 삶의 투쟁이 시작되었다. 매일 세 끼 밥 먹는 것부터 시작하여 매일 사용하는 말은 이제 결코 더 이상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매일의 생활이 나에게는 낯설음으로 다가왔다. 과거 30년의 생활습관을 따라 살 수 없는 곳이 바로 선교 현장이었다

겉모습이 비슷해서 같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전혀 다른 습관과 관습, 그리고 사고패턴이 아주 당연하게 생각하는 곳에서 생각지 못한 일들이 일어나곤 한다. 선교지에서는 갓 태어난 어린아이와 별다를 게 없었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도 현지인들이 우리를 어린아이로 취급한다. 이것도 참 견디기 힘든 초기 선교지에서의 성육신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문화충격이 얼마나 큰 충격으로 다가오는지는 선교사들의 늘어가는 흰 머리카락에서 볼 수 있다. 얼굴이 고혈압 환자처럼 상기돼 있는 모습에서 문화차이가 얼마나 큰지를 경험한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와 정서불안은 초창기의 선교지 생활을 대표한다. 가장 예측불허의 상황에서 부부간의 긴장 상태는 참으로 감당하기 힘든 압력이라 생각한다. 어떻게 이런 과정을 무사히 지내 왔는지는 오직 주님의 은혜의 보살핌이라고 밖에는 다른 말로 표현할 수 없다.

하지만 많은 선교사들이 이 과정을 잘 이겨내지 못하고 곧바로 사역으로 뛰어 들어가 회피해 버리는 경우도 많이 본다. 비교적 건강하게 이런 과정을 직면하는 것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큰 충격이 아프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이런 아픔들을 서로 나눌 수 있는 모임들이 필요하다. 그리고 주님의 위로와 치유를 계속 구하는 주님과 솔직한 대화들이 있어야 한다.

처음에 교회에서 나이 어린 사람들이 우리식으로 말하면“김형! 김형!”하는 호칭이 귀에 아주 거슬린 기억이 난다. 나를 선교사로 인정하지 않고 나를 존중하지 않는 것 같고 오히려 무시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많이 불편하고 괴로웠다. 이건 분명 문화적인 차이에서 오는 오해라 볼 수 있다. 대략 2년 정도 이런 괴로운 시간이 지난 후부터 이런 호칭들이 자연스럽고 오히려 친밀감 있게 들리기 시작한다. 이제는 오히려 한국 성도들이 너무 “선교사님! 선교사님!” 하고 부르면 좀 어색한 생각까지 든다.

선교사의 사역은 그의 삶을 가장 많이 바꾼다. 내가 사역하는 곳에서는 남자들이 가사 일을 많이 도와주는 분위기였다. 전통적인 한국 남아로서 가사 일을 도와준다는 것은 나에게 익숙하지 않았다.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마음이 거부하고 손발이 그 일을 거절하는 상황에서 나 자신을 이해시키고 순종시키는 일은 그리 쉽지 않은 도전이다. 선교지에서 주님이 나의 삶을 변화시켰다. 이것이 나에게 주신 아주 귀한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 있었다면 아주 오랜 시간을 필요로 했을 변화가 이곳에서는 3년 정도의 시간 에 변화된 것이다. 그래서 선교사의 사역은 곧 선교사의 삶으로 시작된다. 선교지에서의 삶이 성공하면 선교사의 사역도 성공하는 것이다.

선교사의 사역과 가정
선교사의 사역에 있어서 가정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선교사들은 사역과 가정 사이에 많은 고민을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선교사의 가정은 또 다른 중요한 사역 중의 하나이다. 과거 한국적인 헌신은 가정의 희생을 요구하는 영성이 있었다. 그리고 선교사의 사역에서 가정은 장애요소로 보아왔다. 이러한 생각은 아주 깊이 선교사의 생각 속에 자리 잡고 있어서 사역과 가정 사이에 균형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건강한 헌신은 가정의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다. 가정도 사역의 아주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여 이 사역에 많은 투자를 한다. 초기에 가정사역에 충실하지 못한 선교사들이 중도에 선교사의 사역을 포기하거나 큰 아픔을 안고 사역을 하는 것을 생각보다 많이 보게 된다.

선교지에서 아내 선교사나 자녀들이 심각한 정신적인 어려움 속에 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아내 선교사들이 집에서 자녀를 돌보는 일에 전념하다보면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자녀들이 선교사역에 따라 무리한 현지 적응을 하다 보면 많은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문화적인 거부 반응을 경험한다. 선교지에서 20년 넘게 사역하고 계신 선교사의 아내가 장기간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자녀들이 무리한 문화적응에서 오는 정서적 불안과 학습욕구 저하 등의 문제는 예사롭게 볼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생활하는 조건하에 선교사 학교를 보내는 것을 권한다. 재정적으로 힘든 일이겠지만 투자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본다. 나의 자녀들이 나보다 더 많은 사역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다음 세대의 더 좋은 선교사를 훈련한다는 생각으로 자녀들에게 투자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바람직한 일이라 생각한다.

가정이 주님과의 관계에서 우선순위가 될 수는 없지만 가정과 사역 사이에서는 어떤 것이 우선순위가 되어야 하는지는 확실하다. 사실 사역과 가정은 그렇게 충돌하지 않는다. 가정에 좋은 결정이 사역에도 좋은 결정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원론적으로 두 가지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자체가 선교지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좀 늦는 것 같더라도 초창기에는 가족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은 결코 시간 낭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국 행복하게 좋은 열매를 맺는 선교사역은 가정사역의 성숙에 그 기반을 둔다. 선교사는 가정에서 재충전과 안식, 그리고 치유를 경험한다. 가정 이상으로 선교사에게 힘을 줄 수 있는 곳은 없다. 가정은 고국의 향수를 조금이라도 공급받는 아주 중요한 공간이다. 선교사는 사역으로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가정의 안식을 매일 먹음으로서 건강한 삶과 사역을 유지할 수 있다.

선교사의 사역과 언어 훈련
선교사의 사역은 바로 언어훈련이다. 선교지의 언어를 배우기 시작할 때 바로 그는 그 민족의 선교사로 사역하는 것이다. 언어습득은 언어구사능력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언어 훈련은 내가 그들을 받아들이겠다는 노력이다. 그리고 현지인들에게 받아들여지는 통로이다. 내가 얼마나 언어습득을 했는가 하는 것은 바로 그들을 얼마나 받아들이고 사랑하는가를 보여준다. 선교사로서 언어습득을 게을리 한다는 것은 선교사로 헌신하고 있지 않다는 것과 동일하다.

선교사역에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선교단체들은 선교사들에게 현지에서 최소한 2년 동안은 전심으로 현지 언어습득훈련에만 초점을 두게 한다. 사실 선교사는 평생 언어와 싸운다. 완전한 현지 언어를 현지인처럼 구사한다는 것은 부단한 노력과 투자가 필요하다. 매일 언어훈련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바로 선교사역의 한 중요한 일부라는 생각이 필요하다.

나는 지금도 매일 현지 언어 성경을 5장 이상 큰 소리로 읽으려고 애쓴다. 초창기에 매일 20장 정도를 큰 소리로 읽었던 경험이 있다. 그래도 언어는 항상 내게 큰 부담이며 부족한 부분 중에 하나다.

언어공부에서 하나의 경험은 앉아서 입을 열어서 말하지 않고 쓰면서 외우는 식의 방식은 피해야 한다. 쓰는 문자에 신경 쓰지 말고 듣고 말하는 것에 온 정신을 모아 훈련한다면 생각보다 빠르게 효과적으로 언어를 습득할 수 있다. 언어습득의 명언은 언어는 연습이지 학습이 아니다. 연습에 집중하고 학습하려하지 말라고 권하고 싶다. 선교지에서 계속 언어를 훈련해 감으로 현지인 언어의 감각을 놓치지 않기 위해 매일시간을 정해 놓고 읽고 듣는 훈련이 필요하다. 나는 이 시간을 이 민족을 위해 기도하고 이들을 사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선교사의 사역과 휴식
선교사의 휴식은 사역을 건강하게 한다. 건강한 사람이 건강한 사역을 할 수 있고, 건강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반대로 말하면 건강하지 못한 사역은 건강하지 못한 사역을 낳고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고 결국 사역을 허무는 결과를 낳는다. 선교사의 건강을 위해 휴식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휴식이 없는 사역은 사역이 아니라 중독의 발작에 불과하다.

선교사에게 있어 휴식은 반드시 훈련해야 하는 경건이다. 휴식을 통해 재충전하고 또 치유 받고 계속 창조적인 사역을 열정적으로 할 수 있다. 선교지에서 깊은 고독함을 느낄 수 있고 거절당하는 아픈 경험 속에 괴로워 할 수 있다. 사역의 결과에 대한 회의와 무력감을 느낄 수 있다. 이런 모든 상황이 선교사에게 휴식을 필요로 한다. 매주 하루는 쉬면서 가족과  함께 사역을 내려놓고 하루정도의 여행을 하는 것도 휴식에서 아주 좋은 방법이다. 그리고 한 달에 한번 정도는 1박 2일 정도의 가족과 함께 여행을 하는 것도 좋은 휴식이다. 휴식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서 실천하는 것은 장기 사역에 꼭 필요한 요소다. 선교지의 사역에 깊이 빠져 있다 보면 큰 그림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으므로 현장을 떠나서 객관적으로 자신의 사역을 평가하고 재정립하는 것은 꼭 필요한 것이다.

선교사의 휴식에는 매일의 운동습관도 포함한다. 합당한 운동을 찾아서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더욱 좋다. 그리고 건강한 취미 생활도 필요하다. 이런 모든 것이 휴식에 포함된 일이다. 주님은 선교지에서 단순한 생활 속에서 아주 다채로운 삶으로 창조적인 삶으로 축복하시길 바라신다. 선교사에게 있어 휴식은 건강한 육체와 영적인 민감함을 유지하며 도덕적인 딜레마에 빠지지 않기 위해 꼭 필요하다.

주님이 나를 이 시대에 선교사로 부르신 것에 항상 감사한다. 선교사의 삶만큼 주님의 역사를 더 이상 실감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본다. 괴로운 일도 많지만 기쁨이 더 많다. 고국에서 희생한 것도 많지만 현지에서 얻은 것은 더욱 많다. 잃어버린 친밀감도 많지만 선교지이기 때문에 누리는 더욱 깊은 친밀감도 더 많다.

나는 선교사로 사역하고 사는 삶이 참으로 행복하다. 더 많은 사람이 이 행복에 도전하기를 권한다. 결코 후회하지 않을 도전....선교사!


한해빈 | 대만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