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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4.25  통권 107호  필자 : 지서우밍  |  조회 : 3687   프린트   이메일 
[특집] - 특집/ 티베트에도 봄은 오는가!
티베트 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민간작가 왕리시웅(王力雄)은 라싸(拉萨)사태는 베이징(北京)당국이 20여 년 간 고압적인 정치와 경제적 이득을 주었던 티베트 정책노선이 비효과적이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으로, 베이징은 극좌와 극우 간에 티베트 문제에 있어 새로운 해결점을 찾아내야하며, 더욱 적극적으로 달라이라마를 대면해야 한다고 하였다. _ 필자 주

 

티베트 문제 연구전문가 왕리시웅을 만나다
중국 민간작가 왕리시웅은 티베트 문제 연구전문가이다. 3월 14일, 티베트 라사에서 동란이 일어나 폭행과 파괴, 약탈과 방화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는 마침 중국정부가 여권을 주지 않아 출국할 수 없었던 티베트족(藏族) 작가인 아내 웨이써(唯色)을 대신해서 노르웨이작가연맹이 발행한 ‘자유표달상’을 받으러 유럽에 있었다. 왕리시웅은 1989년 이후 20년이 흐른 지금 티베트에 또 다시 대규모 폭력과 유혈사태가 발생한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느꼈다. 그는 일찍이 20여 차례 티베트와 그 외 티베트족 거주 지역을 방문하며 다녔는데 그 지역에 머문 시간만도 3년이 넘는다. 그동안 그는 『天葬: 티베트의 운명』이라는 책을 쓰고 또 4차례나 달라이라마를 만나 교류했다. 이번 인터뷰에서 그는 “티베트의 모순은 수 년 동안 계속되어왔고 지금은 더욱 심해졌다. 표면상으로 당국의 티베트에 대한 제제가 타당한 것 같고 당국 스스로도 몇 년 간의 티베트 정책이 성공한 것으로 여기고 있지만 이는 결코 정확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중앙정부는 근 몇 년간 대규모 자본을 투자해서 도로와 다리를 건설하고, 수도와 전기를 연결시키며 칭짱철도(靑藏铁路)를 개통시키는 등 티베트의 경제를 발전시켜 티베트 지역의 민족 문제를 약화시키려고 노력하였다. 왕리시웅은 이러한 경제주의 노선의 성공에 대해 중국정부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해외 많은 티베트인들도 비슷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즉 중국 내의 티베트인들 대부분이 돈을 모으고 마작을 하며 술을 마시고 유흥을 즐기는데 빠져 마치 더 이상 티베트 문제에는 관심이 없으며, 티베트 문화 전승에도 관심 갖지 않고 형이상학적인 추구를 포기하고 자신의 생활만 편안하면 그것으로 된다고 여긴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의 이 격렬한 항쟁은 대다수 사람의 예상이 빗나간 것이라고 하였다. 왕리시웅은 중국의 티베트 정책은 ‘당근과 채찍’ 정책으로, 정치면에서는 강력하게 제압하고, 경제상으로는 이익을 주었지만 이번 사건은 중국정부의 정책이 결코 성공하지 못했으며, 반드시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으로 티베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새로운 시각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아래는 그와의 인터뷰 내용이다. 

티베트 상황에 대한 당국의 평가를 어떻게 보는가?
당국은 중국 내의 티베트인과 달라이라마를 대표로 하는 해외 티베트인을 분할시키려 한다.. 중국 내에 있는 사람들이 개인치부와 개인이익 추구에만 몰두하도록 하여 더 이상 티베트의 정치상황에 관심 갖지 않도록 하였고, 달라이라마에 대해서는 기껏해야 형식상의 신앙만을 유지할 뿐 실질적인 추종은 없도록 유도하였다. 얼마간 이러한 정책이 성공한 듯 보였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티베트 민중이 정치에 대해 냉담함을 나타내고 듣지도, 묻지도 않는 것은 호소할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어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권의 위협 앞에 감히 표현하거나 행동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계속될 수 없다. 일단 기회를 얻으면 맹렬하게 폭발할 것이다. 비조직적 군중의 폭발은 억눌린 감정을 해방시키는데, 이러한 방식은 대부분 극단적으로 나타난다. 이번 라싸의 동란(動亂)은 이러한 점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달라이라마에 대한 실제적인 영향력이 과소평가되고 있는가?
그렇다. 몇 년 전 달라이라마가 인도에서 중국 내 티베트인들이 야생동물 가죽을 입는 불량한 풍토에 대해 비판하자 중국 내 여러 지역의 티베트인들이 한 벌에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가죽옷을 태워버렸다. 이 사건이 당국에게 준 충격은 매우 엄청났다. 당국은 지금껏 티베트인들에게 세속생활과 치부의 길을 추구하도록 종용해 왔는데 멀리 인도에서 달라이라마의 한마디에 티베트인들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게 귀중한 옷을 태워버리게 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이에 당국의 관련부서는 옷을 태운 사람들을 체포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전의 중국정부도 야생동물 보호를 요구했었다. 당시 티베트인 아무도 그 말을 따르지 않았다. 그러나 달라이라마의 말은 즉각적으로 따른 것이다. 그들의 행동은 본래 정부의 주장과 일치하는 것이나 당국은 오히려 ‘무릇 적들이 보호하는 것은 우리는 반대한다’는 마오쩌둥(毛泽东)노선을 사용하여 티베트인들에게 공개 장소에서는 가죽옷을 입도록 강요하고 동시에 달라이라마를 강도 높이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탄압은 티베트인들에게 반감과 원망을 살 뿐이며, 그 결과는 반발뿐이다. 

이번 동란에서 티베트인 폭도가 구타하는 사람은 모두 한족(漢族)이다, 왜 한족들에게 분풀이 하는가?
정치적 모순 이외에, 최근 몇 년 동안 티베트자치구로의 한족 이민이 계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만약 민족이동이 없었다면 민족 간의 논쟁은 대부분 형이상학적이었을 것이고 주로 정부 측과 지식인들만이 주시할 뿐 일반 서민들은 그다지 관심 갖지 않았을 것이다. 
신장(新疆)의 위구르족(维吾尔族)은 민족의식이 강한 것을 느꼈을 것이다. 원인은 한족 이민이 이미 저층서민의 생활영역에까지 침입하여 위구르인들과 자원을 다투고 경쟁하며 풍속과 습관이 달라 일상생활에서까지 마찰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티베트자치구에는 과거 한족들의 이민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다. 그러나 현재 라싸와 같은 지역은 시장경제 대부분을 내륙 한족이나 후이족(回族)이 장악하고 있다. 티베트인들의 문화는 즐거움을 추구하는 문화로, 날마다 시장경쟁을 하거나 일찍 일어나고 부지런히 돈을 버는 그런 문화가 아니다. 그러나 한족은 이익을 매우 중시한다. 따라서 더욱 근면 절약한다. 이러한 두 민족을 동일한 시장경쟁 위치에 놓으니 티베트족의 경쟁력은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매번 패배하고 좌절하고, 현실생활에서 부딪히는 어려움이 많을 때, 이러한 불만의 해소는 곧 민족적인 감정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번 동란이 20여 년 전 그때와 무엇이 다르다고 생각하는가?
표면적으로 이번 동란과 1987년에서 1989년의 라싸사태가 비슷한 면이 있으나 실제는 다르다. 80년대 말의 티베트 동란은 개방된 환경에서 일어난 것이다. 원래 티베트인에 대한 엄청난 억압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수반했다. 80년대 후의 개방과 후야오방(胡耀邦)이 제시한 티베트 정책은 티베트족의 불만을 토로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할 가능성이 생기자, 그들은 당연히 표현했다. 표현된 불만이 점차 수용되고 사회도 안정되었으며 평화로워졌다. 그러나 당시 강경파는 티베트의 형세를 악화시키기 위해 민족문제 부분의 반정(反正)을 부정하였고 그로인해 취해진 각종 조치는 모순을 격화시켰다. 여러 가지 원인이 함께 작용한 결과 80년대 후기 정치동란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좌우 티베트 정책 모두 실패
이번 동란은 10여 년에 달하는 정치적 구속과 경제발전 그리고 사회적 동화 중에 발생한 사건으로 중국당내와 고위간부의 티베트족 정치노선에 대한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 다만 80년대와는 다른 또 다른 측면에서의 대 티베트족 노선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역시 실패였다. 현재의 정치체제 아래 중국정부의 대 티베트 정책에서 실효가능성이 있는 정책계획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더 이상 극좌일 수 없었던 문화대혁명처럼 티베트의 사원 전부를 파괴한다 하더라도 사원은 다시 회복될 것이고, 극우로 온화한 노선을 가더라도 후야오방시대의 티베트 정책을 넘어서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후야오방 시대는 한족을 모두 철수시키고 티베트가 중앙정부의 말을 듣지 않아도 됐었다. 그러나 당국이 문혁과 후야오방이라는 일좌 일우 간에 할 수 있는 시도는 이미 모두 해 보았으나 모두 성공하지 못했음이 사실로 증명되었다. 90년대 제 3차 티베트 업무회의 후 티베트 치리 노선은 경제적 이익을 주는 것으로 결정되었고 정치적으로는 고압적인 ‘당근과 채찍’ 정책을 취했다. 이러한 노선은 일찍이 큰 성공을 거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그 역시 효과가 없었음을 증명한다. 

티베트문제의 출구는 어디에 있을까?
사실 티베트를 안정화시키는데 제일 효과적인 것은 달라이라마다. 만약 달라이라마가 티베트로 돌아올 수 있다면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 것이다. 이 문제의 근원은 달라이라마에 대한 공격 및 비난과 관련이 깊다. 티베트 승려에게 있어 달라이라마는 그들의 정신적인 지도자이자 지고한 인물이기에 당국이 그들을 핍박해서 달라이라마를 공격하라고 한다는 것은 그들의 부모를 욕하게 하는 것보다 더 모욕적인 일이 된다. 따라서 티베트의 각종 항의 활동이 늘상 승려로부터 일어나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또한 승려들은 티베트 민중에게 덕망이 매우 높은 사람들이다. 승려들이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항의할 때 당국이 그들을 잡아 폭행하고 사원을 폐쇄하는 일 등은 민중들을 화나게 하는 일이다. 민중들이 시위에 참여할 때 조직적인 통제와 제약은 없다 무장지졸의 폭동은 폭력으로 변하기 쉽고 폭행, 파괴 등의 행위로 이어지게 된다.

전화위복의 가능성은 있는가?
이번 사태 이후 당국이 계속해서 책임자를 색출하고 범인을 조사하는 방법을 사용하여 국외관계를 일소시키고, 승려를 해고하고, 사원을 정리하는데 무력이 가해질 가 걱정된다. 만약 당국이 여전히 이런 방법을 쓴다면 일시적으로 사태를 장악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건의 추이는 여전히 변하지 않고 더욱 큰 모순을 만들어 또 다른 국면을 맞게 될 것이며, 다음번 폭발은 더욱 맹렬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중국정부가 노선을 바꾸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민족문제는 근본적으로 인문학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인문학적 관심과 인문학적 교양이 필요하다. 그러나 중국집권 집단에게는 오히려 이 점이 부족하다. 이번 사건을 통해 중국 당국의 성찰을 진심으로 바라는 바이다. 티베트 치리 수십 년 동안 왜 여전히 이러한 일이 발생하는가? 이것은 대 티베트 정책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으며 새로운 사고가 요구된다는 것을 설명한다. 티베트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형성되지 않으면 앞으로 문제는 더욱 커지게 되는데, 티베트뿐 아니라 신장에서도 맹렬한 폭발이 일어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출처 | 「亚洲周刊, 二十二卷十二期」, ‘西藏喋血背後溫和路線被邊緣化’
번역 | 박애양․본지 번역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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