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우리는 중국과 해외교포 간의 사생활에 대한 이해의 차이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번에는 계속해서 서로 다른 생활문화에 대해 알아보고, 이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극복할 수 있을지 함께 나눠보고자 한다.
선물문화
전통적으로 중국 사람들은 “선물을 보내는 것”으로서 상대방에 대한 존경을 나타내며, 또 그것이 관계를 만드는 경로라고 생각한다. 선물의 좋은 점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선물을 주었다면 그에게서 돌아올 보답을 기대한다. 이러한 문화는 뿌리가 매우 깊은데, 예를 들어 어떤 성도는 주님을 믿은 후에도 신앙의 진리에 대한 확실한 인식 없이 예수그리스도를 단지 하나의 “우상”으로만 여겨 숭배한다. 심지어 예수님의 상(狀)을 모시고 엎드려 절하는 것으로 예수님이 주시는 복을 받기를 기대한다. 이것이 중국 사회에 만연한 선물문화의 한 구체적인 표현이다.
‘선물’ 문화는 교회에서도 매우 보편적인데, 따라서 선물을 주는 동기를 판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선물을 주거나 음식을 대접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소위 ‘약소하지만 마음을 담은 선물’ 이라고 말하는데 물건의 가치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것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다. 선물을 주고받는 사람들 간에 어떤 이익관계가 얽혀있다면 그것은 쌍방 모두에게 시험이 된다. 예를 들어 누군가 교회의 모 지체가 정부기관에서 일하는 것을 알고 자신의 아이가 좋은 학교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기를 바라면서 선물을 준다면 이러한 선물은 이익관계가 존재하는 것으로 순수하지 않는 동기가 섞이게 되는 것이다.
내륙교회의 경우 교회 일을 처리 할때 가끔 정부 관리와 인사를 나누어야 할 때가 있다. 선물은 인사를 나누는 하나의 방식으로 그들에게 담배와 술 같은 것을 선물해서 우선 관계를 맺게 되면 교회의 발전에 도움을 가져오고 또 불필요한 방해를 제거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하는 사역자가 있다고 한다. 이것이 조그마한 원칙을 깨서 큰일을 도모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또 어떤 동역자들은 이러한 행위에 절대 반대한다. 이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기대는 것으로 교회와 주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상 많은 교회의 동역자가 이 두 가지 어려움 가운데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내륙사회의 독특한 신앙환경이 교회의 동역자들에게 자주 이러한 시험을 가져다준다.
시간관념
홍콩 형제자매의 생활은 분초를 다툴 만큼 늘 바쁘다. 그러나 내륙 동역자들, 특별히 농촌 동역자들의 생활환경은 시간적으로 비교적 여유롭기 때문에 그들에게 있어 시간을 확인 하는 것이 우리처럼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다. 한번은 우리의 사역자가 한 산촌 전도사와 만날 약속을 하였는데 약속한 시간이 한참을 지나서야 나타났다. 때문에 우리사역자는 자신의 계획을 조정해야 했다. 또 다른 사역자는 내륙교회의 모임에 갔었는데 원래 집회 시작 시간이 7시 반 이었지만 집회는 8시가 되어서야 비로소 시작되었다. 그래서 집회가 늦어진 원인을 묻자 그 교회 사역자는 해명하기 어려워했다. 아마도 교회의 잡무를 처리하느라 시간을 사용했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각도로 이러한 일을 본다면 아마도 그들의 생활문화와 습관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고 더 나아가 그들이 시간관념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시간을 낭비했다고 여길 것이다. 홍콩이나 해외교회에서 ‘임무를 완성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내륙교회는 ‘신뢰’와 ‘수용’이 더욱 중요하다! 우리가 만약 다른 문화의 각도로 본다면, 이것이 문화의 차이, 생활습관의 차이라는 것을 차차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과 이해, 그리고 수용의 자세를 가지며 부정적인 비판과 소극적인 도피는 피해야 한다.
‘불량’한 생활 습관
우리는 길에 마음대로 침을 뱉거나 쓰레기를 버리고 질서를 지키지 않는 것은 공중도덕이 없는 태도라고 말한다. 그러나 주님을 사랑하는 내륙성도들 가운데도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회적으로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마다 그렇게 하였고 그렇게 오래 하다 보니 생활습관이 되어 버렸다. 우리는 이러한 현상을 볼 때 쉽게 우리의 잣대로 그들을 비판한다. 그 외에도 일부 내륙 성도는 담배를 피우는 습관이 있어 집회 후 교회에서 공공연히 담배를 피워 교회에 담배연기가 가득차기도 한다. 지난 번 우리는 서북지역의 한 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많은 청년들이 담배를 피우는 것을 보았다. 이상의 예는 ‘도덕기준’과 ‘생활습관’의 관계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생활습관은 우리의 도덕기준이 어느 수준까지 와 있는지를 반영한다. 비록 사회가 이런 행동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이러한 행위가 정상적이거나 주님을 영광스럽게 한다는 것은 아니다. 내륙성도들에게 이것이 비합리적인 행동이라는 것을 알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행동이 건강을 해친다거나 타인에게 피해를 입힌다거나 사회질서를 파괴한다는 행위 자체에 대한 문제 인식 뿐 만 아니라 그들의 행동 이면의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하고 그리스도인의 증거에 해를 끼친다는 것을 알게 해야 한다. 우리가 그들의 처지로부터, 진리의 각도로부터 그들과 함께 우리의 생각을 나눌 때 그들은 곧 이러한 습관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현재 내륙성도는 생활방면으로의 성경적인 지도가 매우 부족하다. 비록 성경이 모든 불량한 행위를 다 나열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은 매우 중요한 큰 원칙들을 남겨주시고 우리들이 모든 것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드러나도록 하게 하셨으며 타인을 세우는 일을 하도록 하셨다. 내륙성도에게는 우리의 사랑과 격려가 필요하다.
복장과 장식
허드슨 테일러는 중국에서 전도할 때 문화적 장애를 제거할 필요를 심히 느끼고 중국복장과 변발을 하고 섬길 대상과의 거리를 가까이하였다. 오늘 우리가 내륙에 가서 섬길 때 이러한 부분을 배울 필요가 있다. 내륙으로 섬기러 간 일부 동역자들은 머리를 염색하지 않았다. 이것은 결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적합한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의 문제이다. 왜냐하면 내륙동역자들이 머리염색을 그다지 좋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머리를 염색하는 것이 우리가 동역자의 관계를 세우는 일에 방해가 될 수 있다. 또 복장에 있어서, 우리는 섬김의 대상에 따라 적당한 복장을 해야 한다. 농촌에서 양복을 입으면 거리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연해지역의 교회는 양복을 입는 것이 존중의 표시이다. 내륙교회의 다양함에 대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진리에서 ‘문화적 거리감’을 제거하는 것이 섬김의 성공원칙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내륙의 다양한 문화를 잘 섬기는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지혜를 주시기를 간구하자.
출처 | www.ccchina.org
번역 |박애양 · 본지 번역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