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아이들이 방학을 맞은 어느 날 저녁, 평소와 다름없이 각자 자기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남편이 거실로 나오며 세 아이들을 불렀다.
“아빠가 지금 너무 힘들거든 아빠를 위해서 기도해줄래, 아빠가, 아빠가 너무 너무 힘들다. 여길 떠나고 싶어…."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편이 참았던 눈물을 펑펑 쏟아내며,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영문도 모르는 아이들은 처음 보는 아빠의 갑작스런 행동에 당황하며, 연이어 울음을 터트렸다.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침묵하며 아픔을 꼭꼭 삼키던 나도, 같이 앉아서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남편은 17년 동안이나 이 땅에 오기를 사모하고 기다렸다. 그리고 10년 전에 드디어 이 땅을 밟았다. 그동안 남편은 이리저리 부딪히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주어진 상황에 감사하며 섬겼다. 이곳에 있는 선교사님들을 기쁨으로 섬겨서 별명이 ‘동네 이장님'이었다. 그런 남편이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나도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누가 나 좀 신고 안 해주나, 그러면 여길 떠날 텐데….' 사실은 이런 심정으로 하루를 보냈다. 기도도 할 수 없었고, 떠나고 싶다는 간절한 생각 밖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한참동안 이어진 통곡은 내가 기도함으로 대충 마무리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를 포옹하고 사랑한다고 말해주었다.
이 사건은 큰 산이 되어 지금까지 든든하게 버텨주던 남편도, 연약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그리고 남편도 우리의 관심이 필요한 사람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J자매와의 만남
그동안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사역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로 리더들이 세워지고 모임이 늘어갔다. 그런데 5년 전 이혼직전에 있던 30대 초반의 J자매를 알게 되었다. J자매는 예수님을 알고부터 조금씩 달라져 갔고, 그것을 본 초등학교 교사인 남편 C형제도, 이혼을 포기하고 같이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관계도 조금씩 회복되어 갔다. 그러던 중에 결혼을 한 사람들이 하나 둘 전도 되어, 새로운 모임이 시작 되었다. 구성원들이 시골에서 올라 온 부녀, 청년 등 방 한 칸 얻어서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었고, 새롭게 허락된 사역 방에 J자매 부부가 살게 되었다.
나는 비교적 많은 시간을 상처가 많은 J자매에게 할애했고, 그녀의 표정도 점점 밝아져갔다. 이 모임은 점차 도시에 거하는 결혼한 사람들도 나오게 되고, 부족하지만 그런대로 안정이 되어갔다. 그리고 2년 전부터는 J자매가 자연스럽게 그 모임의 인도자가 되었다. 그래서 C형제가 초등학교 교사지만 혼자 벌어서는 생활이 어려운 상황이므로, 우리는 J자매 생활비를 고정적으로 헌금해 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J자매가 이 모임의 리더로 세워졌다.
가끔씩 부부가 다투기는 했지만, J자매는 열심으로 전도하며 모임을 이끌어 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C형제와 싸우는 일이 잦아졌다. 싸우기만 하면 J자매는 우리에게 쫓아와서, “이혼하고 하나님 일만 하겠다"고 우겼고, C형제는 집을 나가 형제의 큰 아버지 집으로 가버렸다. 그 때 30여 년을 원수처럼 살아온, J자매의 친정 부모님이 이혼을 했다. 이것은 60세 가까운 나이에 아버지의 폭력으로, 엄마가 병원을 자주 드나드는걸 보다 못한 J자매 남동생의 권유로 이루어졌다. 부모님의 이혼 이후로 어머니 하고 J자매가 더욱 밀착하게 되면서, C형제와의 관계는 더욱더 어려워졌고, J자매로 인해 나도 서서히 지쳐갔다.
언제부터인가 J자매는 우리의 충고도 점점 듣기 싫어했고, 남편인 C형제의 말도 듣지 않았다.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하고는, 소수민족 사역을 한다며 며칠씩 산에 올라갔다왔다. 그리고 8층 모임(교회)의 일까지 마음대로 결정했다. 끊임없이 일을 만들며, 자신의 의를 드러내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C형제와의 부부관계가 본이 되지 못하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교회를 이끌어 가니, 형제자매들이 한 사람씩 떨어져 나갔다. 그 중에 J자매의 고등학교 동창인 S형제가 있었다. 그는 그 모임의 유일한 지식인으로, 남편이나 내가 인도할 때 까지만 해도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었다. 그런데 J자매가 모임을 시작한 언제부터인가 그 형제도 모임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 때 우리는 대학교수인 자매와 그녀의 약혼자에게 주중에 성경공부를 시키고 있었다. 그래서 S형제를 불러, 주일날 우리 집에서 지식인 모임을 새로 시작했다. S형제는 회계사인 부인까지 모임에 데리고 와서, 부부가 같이 열심을 내었다. 이 일로 ‘우리 8층 모임이 부흥해야하는데, 얘기 안하고 사람 빼갔다.'며 한바탕 회오리바람이 휩쓸고 지나갔다. 그리고 나한테 '8층 모임의 형제자매 만나는 것도 자기를 통해서만 만나라'고 했다.
당시 나는 사춘기를 심하게 앓는 큰 아이를 품고 가는 것도 버거운 일이었다. 사실 나는 나를 힘들게만 하는 그녀를 나의 영적인 자녀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 자매가 아무리 속 썩여도 너의 자식이 아니냐?'고 하시니, 어쩔 수없이 끝까지 이 자매를 끌어안고 가기로 했다.
J자매에게 생긴 변화
그렇게 힘겨운 시간이 흐르는 가운데, 어느 날 J자매는 “현재 모임방 앞에 있는 아파트에 찻집을 차리면 어떠냐?"고 했다. 거기서 소수민족 전도도 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에이 농담하지마라 아파트 단지가 큰 것도 아니고, 1층도 아닌 8층에 누가 오냐? 그건 말도 안 돼." 나는 웃으면서 장난스럽게 얘기하며 넘겼는데 며칠 후, 다른 사람을 통해 알아보니, 그 옆 아파트에 찻집을 내려고 주인과 이미 계약을 한 상태였다.
남편과 나는 주님께 이 일을 어찌해야 할지를 놓고 기도 했다. 성령께서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는 말씀을 생각나게 하셨다. 그리고 탕자가 집을 나가겠다고 고집 부리자, 탕자를 사랑하는 아버지는 결국 집을 나가도록 했던 사건이 생각났다.
자매 부부를 불렀다. 먼저 C형제의 의견을 들었다. 그런데 아내의 고집을 절대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일찍이 터득한 형제의 대답이 걸작 이었다. “동의하지는 않지만 지지 하겠다. 싸우는 않는 게 곧 최선이다." 엉터리 같은 말 같지만 이들에게 깊이 배어있는 처세술이요, 문화란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찻집에서 예상되는 비용과 인권비 등의 문제에 대해 얘기했다. 또 간섭한다고 느낀 J는 "몇 천위엔 문제없다" 라고 짜증스럽게 말했다.
그래서 나는 그 기회를 잡아서 아주 조심스럽게 말했다. “네가 이미 결정하고 통보하는 것이니 더 이상 말리지 않겠다. 그런데 이 일은 이제 너의 직업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동안 너에게 생활비로 헌금했던 것을, 점차 줄이고 앞으로 주지 않겠다. 이 장소에서 예배를 드린다니 방값의 일부분만을 우리가 부담하겠다." 라고 했다. J는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을 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그들 가운데 있기를 기도해주고 돌아왔다. 그렇게 의견차이가 많던 부부가 한마음이 되어 있었다. 바라던 일이요, 잘 된 일이지만 한편으로 영 마음이 좋지 않았다.
고통의 시간
본격적인 전쟁에 돌입했다. 앞으로 자매가 어떻게 나올지, 언제까지 고집을 부릴지, 얼마나 많은 형제자매들이 상처 받아야할지 모를 일이었다. 끝까지 고집 부린다면 어떤 결과가 올지, 그것도 하나님 앞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그 자매가 자기고집을 포기하고 회개하고 돌아온다면, 내가 그 자매가 딛고 돌아올 발판이 되어야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번번이 거절당하고 상처 받으면서도, 더욱 적극적으로 관심을 표현하려고 애썼다.
J자매는 여기저기 돈을 빌려 혼자서 실내장식을 했다. 웬일인지 C형제도 그 일을 돕지 않았다. 그래서 남편이 형제들에게 전화해서 J자매를 도와주라고 했다. 그런데 이곳에서 좀 떨어진 중소도시 가정교회에서 열심히 사역하는 H자매가 있었다. 다른 선교사님들이 그 자매와 우리의 관계를 부러워할 정도로 서로 신뢰하는 관계였다. 그동안 이 H자매는 교회문제 집안문제 시시 콜콜 전화로 우리에게 문의하고, 우리가 하는 말이라면 거의 백 퍼센트 순종하며 지금까지 7년을 지내왔다.
어느 날 나는 H자매를 만난 자리에서 “J자매가 돈이 필요한데 꾸어 달라고 할지 모른다. 지금까지 보건데, J자매가 돈관계가 분명하지 않으니까 돈을 빌려주지 않는 게 좋겠다." 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내 예상대로 J자매가 울먹이며, “자기가 지금 하는 찻집이 소수민족 전도하려고 하는 일"이라며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그런데 "김 사모가 돈 빌려주지 말라고 했으며, 그 찻집은 너의 일이다"라고 했다는 말까지 전하면서 돈을 빌려줬다.
그 일로 J자매가 교회 전체리더 형제를 찾아가서 “내가 복음을 위해 이렇게 수고하는 것인데, 그들이 그럴 수 있냐"며 한바탕 소동이 났었다. J자매와의 관계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자매는 리더회의에도 잘 참석하지 않았다. 그렇게 거실과 방 두개에 간단한 장식을 마치고 찻집을 열었다. 방 한 칸은 창고처럼 어수선하게 해놓고 부부가 사는 방으로 썼다. 그런데 찻집에 오는 사람은 그 자매가 연락해서 온 자기친구들 뿐이었고, 가끔씩 그녀가 소수민족에 관심 있는 서양 사역자들을 그리로 부르는 것 같았다. 8층 형제자매들은 우리를 찾아와서 모임에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모임에 참석여부에 대해 뭐라 할 수가 없었다. 그저 그 자매를 위해서 기도하자는 말밖에…….
기다림
끝이 언제인지도 모르고 이렇게 무작정 하나님의 때를 기다림은, 인내가 부족한 내게는 정말로 고통스런 훈련이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라도, 모임을 내려놓게 하고 싶은 유혹은 늘 우리를 괴롭혔다. 답답한 마음에 남편은, 그 모임을 그냥 그 J자매에게 떼어 주자고 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우리를 믿고 지금까지 견뎌 온 형제자매를 생각하면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교회 전체리더는, J자매를 따라갈 사람 가고, 우리 쪽에 올 사람 오라고해서 모임을 두 개로 나누자고 제안 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드디어 하나님의 때가 되었다. 8층 자매들이 스스로 J자매를 찾아가 모임을 내려놓을 것을 권유했고, 결국 전체 리더 회의에서 J자매가 참석한 가운데 모임을 내려놓도록 다시금 권유하였다. 새로운 리더로 우리 집 모임에서 그 동안 신앙생활을 잘하던 S형제를 세우기로 했다. 그리고 모임 장소도, 8층 모임과 같은 단지 내에 있는 우리 사무실로 옮기기로 했다. 이런 일에 우리가 직접 나서지 않을 수 있는 것에 너무도 감사했고,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돌아감에 안도의 숨을 길게 내 쉬었다.
그 주간에 J자매는 여름방학을 맞은 C형제를 끌고, 소수민족에게 복음 전한다며 산에 가서 이번 주일이 지나서야 돌아온다고 했다. 새롭게 세워진 리더가, 형제자매들에게 연락을 해서 모임의 변경된 사실을 알렸다. 그런데 J자매가 산에서 형제자매들에게 전화를 걸어 여전히 ‘8층에서 모임을 한다.'고 했다. 그런데 누군가가 상황을 잘 모르고, '김 선생님이 사무실로 가라고 했다.'고 한 모양이었다. J자매가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서,'김 선생님'이 아닌 '김씨' 라고 남편을 부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너희가 한국 사람인데 우리를 어떻게 알아, 한국식으로 하지 마." 그리고 남편에게 변명할 기회도 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남편의 얼굴이 굳어졌다.
J자매 부부가 산에서 돌아와서 우리를 만나자고 했다. 그동안 쌓였던, 우리에게 서운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풀어 나갔다. 그 과정에서 이들이 우리에 대해, 그리고 교회에 대해 얼마나 많은 오해들이 있었는지 속 시원하게 나누기 시작했다. 한참을 조용히 있던 자매가, 지금까지 자기가 교회에서 남편을 돕고 수고한 것에 대해 이런 저런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붙이더니, 돈으로 계산하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우리가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몇 달 간 생활비를 헌금해 주지 못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까지 다 계산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도 충격을 받아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아무생각이 나지 않았다. 나는 이 자매를 끌어안고, 하나님의 일꾼을 만들겠다며 몸부림쳤던 시간들을 생각하니 기가 막히고, 도무지 진정이 안 되었다. 나는 이제야 하나님께서 우리와 J자매 부부를 갈라놓으심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나는 마음을 진정하고 차분하게 저들의 양심에 호소했다. “우리가 너희들에게 가장 크게 잘못한 것은 너희들에게 방 값을 주었다는 것이다. 네가 가진 것을 작더라도 하나님께 드려서 그 장소에서 예배 드렸다면 너희들이 큰 축복을 받았을 텐데, 우리가 축복을 막아서 정말 미안하다. 그리고, 우리가 너에게 하나님 일 하라고 한적 있느냐? 너희들에게 돈 준다고 한적 있느냐? 나는 여기에 올 때 하나님이 주시면 먹고, 안주시면 금식하려는 마음으로 왔다. 어쨌든 우리가 너희를 잘못 가르쳐서 정말 미안하다. 다 우리 잘못이다." 그들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J자매는 팔짱을 끼고 아래를 내려다보고 앉아 있었다.
그렇게 요구한 금액이 상당한 것이었는데, 돈 문제가 해결 안 되면 자리를 떠날 태도가 아니었다. 나는 이들이 어떤 트집을 잡아 어떻게 교회를 어지럽힐지, 우리를 어떻게 어렵게 할지 두려웠다. 그래서 도저히 용납이 안 되었지만, 요구한 액수의 반을 주겠다고 그들과 합의했다. 기가 막히기도 하거니와 한편 저들이 불쌍한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돈으로 해결 하는 것이 어찌 보면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그들은 우리 교회를 떠나서 찻집에서 둘이서 예배드리고, 거기서 소수민족 사역을 하겠노라고 했다. 우리는 마지막까지 그들이 바로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를 해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 자매를 꼭 안아 주었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니 그래도 감사하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길 빈다. 그리고 수고 많이 했다." 라고 말하고는 사무실에서 나가는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끝까지 나는 그들의 영적 어미여야만 했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음에 감사했고, 그 자매가 모임에서 손을 뗀 것에 감사했고, 끝까지 사랑했음에 감사했다. 그리고 이 전쟁이 이렇게 끝나는 것으로 감사했다. 이 날은 분명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행하셨다.
결국 그 다음 날 밤, 하루 종일 넋 나간 사람처럼 있던 남편의 통곡으로 상처가 터져버렸다. 나도 하루 종일 배신감, 분함, 억울함, 등등 뭐라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는 감정들로, 머리는 돌아 버릴 것 같았고, 가슴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사람을 대하는 것에 두려움이 앞섰고, 하루 종일 안정이 되질 않아서 쓸데없이 서성거렸다. 기도도 할 수 없었다. 말씀도 눈에 들어오자 않았다.
값없이 주시는 주님의 사랑
하나님이 위로를 주셨다. 새로 모임을 맡은 S형제 부부가 부족하지만 기쁨으로 그 모임을 잘 인도했다. 그리고 그동안 나오지 않던 자매들이 다시 하나 둘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S형제가 우리 집에 전화를 하더니 갑자기 찾아 왔다. 우리 집 큰 아이가 대학을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자기 한 달 월급 보다 큰 액수인 3,000위안(400달러 정도)을 우리에게 헌금하고 갔다. 우리는 너무도 감동하여 눈물로 주님께 감사했다.
‘그래도 양심이 있지' 믿고 싶지 않아서 설마설마 했는데, J자매가 돈을 빨리 달라고 재촉하는 전화를 했다. 그래서 그 형제가 가지고 온 돈으로, 주기로 약속한 금액의 일부를 주었다. 너무 속상해서 나는 그 자리에 가지도 않았고 남편이 만나고 왔다. 분별력이 부족했던 우리의 잘못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는 것으로 여기기로 했다.
우리 집 모임의 대학교수 자매가 나를 만나러 오겠다고 했다. 신앙생활을 한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이 자매는 우울증이 심했다. 그래서 믿음이 자라다가 자주 넘어졌고, 힘들면 주중에 나를 자주 찾았다. 그런데 넘어지고 일어날 때마다 그의 믿음이 쑥쑥 자랐고, 그의 변화로 인해 의사인 그의 약혼자와 70세 된 아버지, 어머니까지 예수를 믿게 되어 가족이 모두 모임에 나오게 되었다.
나는 약속시간을 맞추려고, 퇴근하자마자 부지런히 택시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내 마음이 짓눌리고 숨쉬기조차도 어려워서, 그 자매를 만나는 것이 영 부담이 되었다.
‘주님, 저도 힘들어요. 저도 찾아가서 위로 받을 사람이 있으면 좋겠어요.'
그 날 교수자매는 힘들어서 온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집에 주신 은혜가 너무도 크고 놀라워서 온 것이었다. 신장염으로 고생하던 아버지의 변화, 의부증으로 정신병원을 드나들던 어머니의 변화, 약혼자의 변화 등등 을 이야기하며 하나님께 감사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나는 요즘 이곳을 떠나고 싶은 마음 밖에 없었는데, 당신을 통해서 주님이 나를 위로하시네요." 갑자기 자매가 나를 끌어안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안돼요. 당신들은 떠나면 안돼요.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에요." 우리는 서로 끌어안고 울었다. 그리고 그 자매가 나를 위로 하려고 애쓰며 나를 위해 기도했다. 하나님께서 또 그렇게 위로해 주셨다.
다음날 오후에 기도실로 가서 울면서 하나님 앞에 아픔을 토해냈다. 데굴데굴 바닥을 구르기도 하고, 바닥을 치고, 가슴을 치면서…. 그러다가 점심 먹은 것까지도 몽땅 토해냈다.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밤에 성경을 계속 읽었다. 가롯유다는 주님을 배반하고, 제자들은 다 도망가고, 베드로는 주님을 부인하고, 주님은 사형선고를 받으셨다. 그런데 주님께서 누구를 원망하거나 분노하셨다는 구절은 성경 어디에도 없었다. 인간의 연약함을 아시는 주님은 인간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으셨다. 조건 없이 모든 것을 다 내어 주셨다. 그래서 주님의 사랑은 위대한 것이었다.
나는 이 일을 통해서 주님의 사랑을 처음부터 다시 배웠다. 그리고 ‘성숙'이라는 단어와는 아직도 거리가 먼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또한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이 아니면, 인간의 어떠한 노력도 다 소용없음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기쁨과 감사의 10년...
대학생 모임에 리더들이 세워지고 그 중에서 만장일치로 전체리더를 세운 뒤부터, 남편은 주로 차세대 리더 훈련을 담당했다. 남편은 전체를 이끌어 가는 리더와 회의 전에 그날 회의내용을 조율하는 시간을 갖는 정도로, 교회가 상당부분 현지 리더들에 의해 독립적으로 운영이 되고 있었다.
그런데 리더회의에 우리부부가 꼭 참석해야 한다고 몇 번이나 전화가 왔다. 저녁에 모임방으로 갔다. 한 형제가 기타를 치고 오랜만에 같이 찬양하는 시간을 가졌다. 찬양이 끝나자 과일, 과자, 빵, 음료수 등을 꺼내왔다. 그리고 케이크도 내왔다.
“선생님 여기오신지 이번 달이 10년 인거 다 알아요. 감사합니다." 케이크 위에 10이라는 글자가 있는 초를 꽂고, 촛불이 켜졌다. 우리 부부는 눈물을 글썽이며 촛불을 껐다. 그리고 형제자매들이 다 같이 우리를 위해 축복의 노래를 불러 주었다.
“당신들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아요. 우리도 당신들을 사랑해요." 그들의 진심어린 표정 가운데 묻어나는 메시지를 나는 읽을 수 있었다. 목이 메이고 왈칵 눈물이 쏟아지려고 했지만 꾹 참았다.
케이크를 자르고 한사람씩 각자가 정성스럽게 준비해온 선물을 내놓았다. 어떤 학생은 “선생님 저는 지금 돈이 없거든요. 죄송해요." 하면서 계란 한 줄과 우유 한통을 내놓기도 했고,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은 한 청년은 미제 립스틱을 내놓기도 했고, 손수건, 꿀, 찻잔, 귀걸이 등을 내놓았다.
“우리 여기서 이렇게 다 받으면, 하늘 나라가서 받을게 없어서 어떻게 하냐!" 내가 한마디 했다. 그런 후, 지난 10년을 어떻게 지나왔는지를 회고하는 시간을 가졌다. 남편의 회고가 끝나고 나도 한마디 했다. “10년 동안 우리가 부족한 게 많고, 성숙하지 못해 많은 실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고생 많이 시켰지요. 그런데도 이렇게 잘 따라와 줘서 고맙습니다."
사실 그랬다. 우리는 10년 동안 좌충우돌 하면서 실수도 많이 했고, 남편이 학생들을 강하게 다뤄서 이래저래 고생 많이 시켰다. 시간 안 지킨다고 벌을 세우기도 했고, 어떤 때는 밤 11시에 회의한다고 불러내기도 했었다. 그런데도 ‘우리 선생님은 카리스마, 추장, 독재자’라고 부르면서, 잘 따라와 준 학생들이 고맙기만 하다. 우리는 서로를 안아주었고 축복해 주었다. 10년 세월의 묵은 찌꺼기들을 한꺼번에 몽땅 날려 보낸, 가슴 벅찬 순간이었다.
“10년 세월의 고통, 상처, 기쁨, 감사 모두다 주님께 드립니다. 당신 때문에 지난 10년은 정말 행복 했습니다."
강드보라 | 중국선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