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지난호 
북쇼핑
2007.8.30  통권 103호  필자 : 김선  |  조회 : 3858   프린트   이메일 
[중국 영화]
전쟁과 사랑의 교차로에 서 있는 구원군
-장즈량(張之亮) 감독의 <묵공(墨功)>-


영화 <묵공>은 일본 작가 사케미 켄이치(酒見賢一)와 만화가 모리 히데키(森秀樹)의 동명 만화를 기초로 하여 제작되었다. 묵공은 홍콩 감독인 장즈량과 일본 프로듀서인 이세키 사토루 그리고 영화 음악을 맡은 가와이 겐지가 함께 제작하였고, 홍콩의 리우더화(劉德華)와 중국의 왕즈원(王志文)·판빙빙(范氷氷), 대만의 우치룽(吳奇隆), 한국의 안성기·최시원 등의 유명 배우들이 출연하여 세인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전국시대 조(趙)나라는 연(燕)나라를 침공하기 위해 10만의 대군을 파병하는데, 그 길목에 4천 명이 거주하는 양성(梁城)이 있어, 조군의 장군인 항엄중(巷淹中)은 양왕(梁王)에게 항복을 권유한다. 묵가의 구원군인 혁리(革離)는 양성의 군민들을 인솔하여 조군의 적장인 항엄중과 지략적인 전투를 펼쳐 조군의 침공을 방어하였다. 그러나 양왕은 모반을 꾀한다는 구실로 혁리를 제거하려 했다. 위험에 처한 혁리는 가까스로 피신했지만 조군의 재침공으로 양왕이 투항하자, 다시 양성으로 돌아와 항엄중과 재 격전을 벌여 조군을 물리쳤다. 양왕은 몇 년 후 모반에 의해 오마분시(五馬分屍)되고, 양성은 결국 조군에게 넘어가고, 후에 진시황에 의해 천하가 통일되었다. 

소박하고 헌신적인 묵가  
춘추전국시대에는 부국강병을 실현화 할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하는 동시에 경쟁적으로 재능 있는 인재를 발굴하고 우대하였다. 귀족들이 독점하고 있던 학문과 지식이 일반 서민들에게까지 확대되었고, 정치적 혼란은 오히려 사상적인 자유를 보장하게 되어 제자백가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전국시대 B.C. 3세기경 묵가는 유가와 양대 산맥으로 성장하였다.  

묵적(墨翟)은 묵가의 시조로 하층 노동기술자 출신으로 추정되고, 기본적인 사상은 제자들이 완성한《묵자》란 책에 전해졌다. 묵자는 당시 지배적 이념이었던 유가와 달리 피지배층을 대변하는 집단으로 출발하여, 빈번한 전쟁으로 전쟁 무기에 대한 개발이 절실하던 시기에, 방어용 수비무기를 약소국의 제후들에게 공급해주면서 세력을 확장했다. 묵가는 집단생활을 중시하여 조직과 규율이 엄격하고 거자(鉅子:묵가 집단의 총 우두머리)가 통솔하였으며 권위에 대한 복종과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맹을 볼 수 있다. 묵가는 신의를 중시하여 어떤 상황에서도 맡겨진 일을 끝까지 완수하는 책임감이 강한 집단이었다. <묵공>의 주인공 혁리의 남루한 행색을 통해서 묵가의 소박한 생활과 약자를 돕기 위해 자신을 헌신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혁리는 자신을 사모하는 일열(逸悅)이 주는 신발조차 거절하였고, 어쩔 수 없이 받게 된 외투를 떠날 때 반드시 돌려주겠다고 말한다. 혁리는 일열에게서 선물을 받게 되면 남을 도와주는 순수한 행위의 동기가 오해를 받게 된다고 말했다. 혁리는 보수나 대가를 바라지 않고 곤경에 빠진 양성의 백성을 구원하는 것을 당연한 책임으로 여겼다.


차별 없는 사랑
묵자는『겸애편(兼愛篇)』에서 천하가 혼란스러운 것은 각자 자기의 이익만을 따져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서로 똑같이 사랑하고 상대방을 이롭게 하는 것만이 당시 만연했던 찬탈과 원한을 물리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주장했다. 묵자는“남의 나라 보기를 자기 나라 보듯 하고, 남의 집안 보기를 자기 집안 보듯 하고, 남의 몸 보기를 자기 몸을 보듯 하면 된다."고 강조하고, 강한 자가 약자를 배려하고 다수가 소수를 존중하며,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업신여기지 않고, 신분이 높은 사람이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을 무시하지 않는 평등한 세상이 도래하길 소망했다. 겸애는 이타적이고 차별하지 않으며, 신분과 계급을 뛰어넘고, 개인과 가정 그리고 국가를 초월하는 보편적인 인류애와 평등을 추구하는 사랑으로 볼 수 있다. 

혁리는“조나라가 구원을 요청하면 그들을 도울 생각인가?"라는 질문에 긍정적으로 대답했다. 이는 비록 자신이 지금은 약자인 양성을 위해 방어를 돕고 있지만, 만약 적군인 조나라가 구원을 요청하면 달려가겠다는 뜻으로, 적군과 아군 모두 자신의 이웃으로 생각하고 도와주겠다는 충격적인 선언이다. 이는 천하 만민을 너나 구분 없이 모두 "서로 사랑하고 서로 이롭게 한다."는 평등사상에 기초하고 있다. 

전쟁은 승리했지만 사랑하는 이를 잃어버린 혁리
혁리는 10만의 조군과 싸워 두 번이나 양성을 방어하는데 성공했지만 간신배의 모함을 받아 양성에서 쫓겨났다. 양성이 다시 조군의 습격으로 함락되자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적진에 뛰어들어 수공(水攻)으로 양성의 백성들을 구출했다. 혁리는 자신을 사모했던 일열(逸悅)을 구하기 위해 사방을 돌아다녔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일열은 양왕의 고문으로 혀가 잘린 상태로 지하 감옥에 갇혀있었는데, 지하에 물이 점점 차올라 지상에서 애타게 그녀를 찾는 혁리에게 살려달라는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고 익사했다. 탁월한 지략으로 수많은 난관을 돌파하여 양성을 구했던 혁리는 자신을 연모했던 한 여인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자책하게 된다. 

묵자가 표방한‘겸애'는 천하 만민을 자신과 가족처럼 여기고 사랑해야하며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이는 것을 경계하여, 자신 곁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희생시킬 여지가 있다. 전쟁에는 승리했지만 소중한 여인을 잃은 혁리는 묵가의 겸애사상이 지니는 한계를 몸소 체험하게 된다. 세상의 모든 사람을 자신과 동일시하여 사랑하는 묵가의 겸애사상은 혈연중심의 인본사상을 고수하는 유가의 장벽을 뛰어넘을 수 없었다. 그러나 하늘을 경외하여 사람을 사랑하는 묵가의 종교적인 차원의 사랑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구원의 은혜 그리고 자신을 미워하고 핍박하는 원수조차 사랑하는 기독교의 박애정신과 실천면에서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뛰어난 지략과 다양한 방어술
겸애를 기본 사상으로 내세웠던 묵자는 전쟁을 가장 큰 죄악으로 보고, 당시 전쟁에 시달리는 백성들의 고통과 참상을 폭로하고, 침략적인 전쟁에 반대하는 반전사상을 주장하였다. 초나라가 송나라를 침공하려고 할 때, 묵자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열흘 밤낮 수 천리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서 양국의 전쟁을 막아내기도 하였다. 묵자는 천하가 평화공존하기를 소망하였지만, 부득이하게 전쟁에 참여하게 되면 강대국에 맞서 약소국을 구하기 위해 방어전을 도왔다. 영화의 서막에서 혁리가 전쟁무기를 다루는데 능숙한 기술자 출신인 점을 보여 준다. 수만의 조나라 대군이 양성을 포위한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에서, 혁리는 화살촉에 줄을 감고 중량을 싣게 하고, 활을 쏠 때 사정거리를 극대화시켜 조군을 즉시 퇴각하게 만들었다. 조군의 장수 항엄중은 양성을 침공하기 전에 혁리와 마주앉아 도상전투(圖上戰鬪)를 벌여 혁리에게 패배를 인정하였다. 

양성은 조군이 연나라를 정벌하기위한 요충지라서 혁리는 장기전일 경우 성을 지키는데 승산이 있다고 보았다. 군사력의 중과부족인 상황에서 사방의 적을 수비하기는 어려워서 가장 취약한 성문으로 적군을 유인하여 전력을 집결시켜 승리하였다. <묵공>속에 소개된 다양한 전술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옹성은 쉽사리 무너지지 않고 적과 대치하는 최전면에 있는 방어선으로 7일 만에 옹성을 세워 적을 방어했고 심리전술의 효과도 거두었다. 둘째, 수성하는 군사에게 목판을 세워서 적이 쏜 화살을 수거해서 재사용하고 백성들을 모아서 민간 주택의 지붕에 소변을 보게 해서 적군의 불화살공격으로 인한 화재를 막아내는데 성공하였다. 셋째, 조군이 성을 공격할 때 혁리는 군민들에게 유황을 바른 볏짐을 적군에게 던지게 하여 조나라 군사의 눈과 코를 자극하여 사방을 분간하지 못하게 하는 연막탄과 최루탄의 효과를 노렸다. 넷째, 높은 산에 있는 물을 조군이 파놓은 지하갱도를 따라 흐르게 하여, 엄청난 물이 성안의 적군들을 덮쳐 조군은 결국 패전을 인정하고 황급히 퇴각하고 말았다. <묵공>은 웅장한 스케일로 전쟁을 묘사하였지만, 화려한 전투신보다는 양성을 지키는데 중점을 두었고, 고난도의 화려한 액션연기나 선혈이 낭자하는 장면보다는 뛰어난 전략으로 적군의 침입을 막아냈다. 

방어전은 과연 정당한가?
묵가는 반전을 주장하고 평화를 추구하기 위해 침략전쟁을 반대했지만 적의 침략에 대항하고 폭도들을 제거하기 위한 방어전에 대해서는 인정하는 태도를 보였다. 묵가는 백성의 안전을 위해 침략전과 방어전을 구분하고, 징벌적인 차원에서의 살인은 용인하고 있는데 영화 <묵공>은 이것이 과연 용납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을 던지고 있다. 아무리 방어를 위한 정당한 전쟁이라도 백성들은 가능한 전쟁을 피하고 싶어 한다. 양성의 한 백성은“누가 영웅이든 상관도 안 해요. 소인은 그저 평범한 백성일 뿐 다른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그냥 마누라 자식과 논밭 생각밖에 없습니다."라고 말했고, 한 부녀자는 "우리가 왜 수비를 해야 하나요? 조군에게 넘겨주세요. 농토를 누구에게 주든 마찬가지니까" 라고 말했다. 혁리는 양성의 백성들에게 항복하게 되면 살육당하고 비참한 노예로 전락하게 된다는 현실을 일깨워주고, 적군의 침략을 막아 가정을 지켜야 한다고 설득하지만 평범한 백성들은 전쟁은 권력 투쟁의 수단에 불과하고 자신의 가족과 식량이 더 소중하다고 여겨 방어를 위한 전쟁이 과연 필요한지 의문을 던진다. 

혁리가 양성을 방어하는데 성공하자 성 안에“혁리가 있으면 양성이 존재하고, 혁리가 떠나면 양성은 망한다…." 는 동요가 유행하기 시작한다. 이에 양왕은 혁리가 수성(守城)을 핑계로 권력을 찬탈하려 한다는 간신배의 말을 듣고 혁리와 그 추종세력을 반역죄로 몰아 처단하려고 하였다. 모함을 받은 혁리는 간신히 피신하였지만 조군의 습격으로 양성이 다시 함락되자 백성을 구하려고 혼자 용감하게 돌아온다. 혁리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양성을 지켜냈지만, 양왕은 화염속에 있는 적장 항엄중을 활로 사살시키라는 명령을 내리고 혁리의 승리를 찬탈하고 만다. 영화 곳곳에서 혁리의 방어전에 대해 회의를 던지고 있지만, 다양하고 치밀한 수성 전술을 동원하며 평화를 갈망했던 혁리의 열정은 감쇄되지 않는다. 특히 조군에 함락된 양성의 민중을 구하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아끼지 않고 희생하는 혁리의 모습은 매우 감동적이며, 마지막 장면에서 혁리가 적군의 전쟁고아들도 가슴에 품고 함께 살아간다는 내용은 묵가의 평화와 겸애사상을 보여준다. 

묵가의 종교적 색채와 기독교
선진 제자백가 중에서 묵가는 하늘과 귀신을 경외하여 종교성이 매우 농후한 편이다. 《묵자》의 『천지(天志)』와 『명귀(明鬼)』편은 종교적인 사상을 담고 있는데 『천지』편에서는 천의(天意)를 최고의 가치규범으로 삼아 인간은 하늘의 뜻에 따라야 하고 거역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였다. 하늘이 인간을 차별 없이 사랑하는 것처럼 땅을 통치하는 세상의 왕도 백성들을 차별 없이 사랑해야 된다고 주장하고 왕이 하늘의 뜻을 따르면 상과 복을 받게 되고 그렇지 않으면 재앙을 받는다고 여겼다. 

묵자가 믿는 천신(天神)은 인격을 지니고 있고 폭도를 징벌하기 때문에 고관대작에서 일반서민에 이르기까지 모두 하늘의 뜻을 따라서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는데, 이 점이 기독교 신앙과 유사하다고 보는 학자들이 있다. 묵가는 인간이 무지몽매하여 인격적인 하늘의 존재를 의심하고, 하늘이 선한 사람에게 상을 주고, 포악한 이에게 벌을 준다는 진리를 제대로 몰라서 천하가 혼란해졌다고 강조하였다. 그들은 하늘의 존재를 확고하게 믿었으며, 하늘이 주는 상벌의 엄격함이 사회에 안정을 지킨다고 생각하였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무협영화에서 묵가의 희미한 그림자를 바라보다가 만화와 전쟁영화라는 장르에서 종교적 열정과 구도자적인 면모를 갖춘 묵가를 새롭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한국은 1950년 6·25전쟁을 겪으며 유엔군의 국제원조를 경험했고 60·70년대에는 월남파병으로 다른 국가의 민족상잔에 동참하였다. 최근 몇 년 동안 이라크·레바논·아프가니스탄 등 분쟁지역에 한국군을 파병하여 전쟁 억지력 역할이 아닌 구호 건설차원의 도움을 주었고, 한국은 이러한 지역에서 세계 어느 나라보다 활발하게 개인과 단체차원에서의 자원봉사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파병과 봉사활동은 국내외적으로 파병반대운동과 인질사태같은 문제를 야기하였다.
묵공의 주인공 혁리는 자신이 도와주었던 양왕에게 배신을 당하고 심지어 사랑하는 여인의 생명마저 잃게 되는 냉혹한 현실세계에서 자신의 선한 행위는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전쟁터와 같은 현실세계에서 신앙인으로서 타인과 다른 나라를 도와줄 때 불굴의 용기를 갖고, 더욱 겸허하게 주님의 지혜를 간구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인성에 어긋난다는 세인의 비판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가족보다는 타인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삶을 보낸 서민 집단 묵가는, 우리로 하여금 목수집안 출신의 예수님을 연상하게 한다. 이번 기회에 영화 <묵공>을 감상하면서 《묵자》를 펼쳐 보는 것은 어떨까? 묵가의 사상과 실천적인 삶을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과 비교하여, 개인적으로 믿음이 성장하는 계기가 되고 묵가의 종교적인 면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김선 | 숙명여자대학교 인문학부 강사 
 

    인쇄하기   메일로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