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를 세계 3대 종교로 손꼽는다. 그중 이슬람교는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중국 내에서의 이슬람교는 대식법(大食法), 대식법도(大食敎度), 천방교(千方敎), 청진교(淸眞敎), 회회교(回回敎), 회교(回敎) 등이 있다. 이슬람(al-islam)은 아랍어로 '순종'과 '평화'를 뜻한다. 우주 유일의 신이며 최고 주재자인 알라와 그 뜻을 순종하고 신봉하며, 이로써 두 세계간의 화평과 안녕을 구한다.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을 무슬림(Muslim)이라고 한다. 이슬람교는 7세기 무렵 아랍반도에서 시작되었고, 8세기 중엽에는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3대주로 빠르게 퍼져나가 세계적인 종교가 되었다.
중국은 이슬람교가 비교적 일찍 전파된 국가와 지역 중의 하나이다. 이슬람교가 중국에 처음 들어온 것은 당(唐)나라 때였다. 이 시기에 중국에서 생활하던 무슬림은 아라비아, 페르시아 및 중앙아시아에서 온 일부 외국상인들과, 병사들, 사절들이었다. 그들은 중국에 들어와 여러 지역에 거주하며 자신들의 종교 신앙과 독특한 생활방식을 고수하였다. 그들이 중국에 온 목적은 교역이었지 포교가 아니었기 때문에, 당시 통치세력의 견제를 받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중국인과의 통혼과 중국정착이 허용되었다. 그리하여 많은 무슬림들이 중국인 아내를 맞이하였고, 타향살이 신세에서 점차 '토생번객(土生蕃客)'으로 변했다. 그 자손들은 중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무슬림이 되었다. 이 시기 무슬림의 수는 많지 않았고, 일반적으로 일부 교통의 요지인 대도시나 통상 항구에 거주했다.
회교가 대규모로 중국에 유입된 것은 원대부터 명초이다. 그중 원대는 회교가 대규모로 중국에 들어온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중국 무슬림 수가 급증한 것 외에 거주 지역도 점점 광범위해져 '회교 천하(回回遍天下)'의 국면을 이루었다. 명조 중기이후 사회 환경의 변화에 따라 회교는 민족화 성격을 띠기 시작했다. 특히 중국이슬람교의 경당(經堂)교육, '중문 번역(汉文译著)' 활동의 시작과 발전으로 중국회교 민족화 과정을 대대적으로 촉진하였고, 최종적으로 다른 국가와 지역과는 구별되는 민족색이 농후한 중국적 회교를 형성하게 되었다. 중국회교는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신장(新疆) 일대의 회교와 깐쑤(甘肅), 산시(陝西) 및 내륙의 회교이다. 신장지역의 회교도는 중앙아시아 각지 민족의 풍속과 습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동화되지 않았다. 중국 내륙의 회교도는 아라비아와 페르시아 각지에서 온 사람들로 내륙의 여러 성에서 오랜 기간 거주하면서, 모든 생활습관이 중국화 된 회교도들과 회교를 믿는 한족이다.
회교의 유입(唐朝) 회교 유입의 정확한 시간에 관한 정설은 없다. 따라서 새로운 증거들을 수집하여 진일보한 연구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 이슬람교의 중국유입은 무력정복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점진적 과정 속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초기연대를 확정지을 수 없다. 무력으로 정복당한 국가들처럼 이슬람군대의 진입으로 그 초기 유입 연대로 정할 수 없는 것이다. 당 태종 정관 2년(628년), 즉 마호메트가 죽기 4년 전, 마호메트가 파견한 아랍인 무리가 메디나에서 광둥(廣東)으로, 다시 내륙으로 진입하였다고 전하는데 이 또한 전설일 뿐이다. 당 고종 영휘(永徽) 2년, 즉 서기 651년 8월에, 아랍제국의 제3대 칼리파 아오스가 창안(長安)으로 사절단을 보내 당 고종에게 이슬람교에 전했다. 이 해를 이슬람교 최초 유입시기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당(唐)대의 회교도들은 대부분이 상인으로 정치나 포교의 목적을 가지지는 않았다. 서쪽에서 전래된 이슬람교는 해상, 육로로 중국에 유입되었다. 육로는 페르시아, 중앙아시아, 천산(天山) 남쪽 산기슭을 경유하여 창안에 도달했다. 해로는 대부분 페르시아만에서 인도양을 경유했다. 대부분의 회교도들은 중국문화에 동화되었고, 중국인들 또한 회교조직의 예절과 의식(禮儀)에 영향을 받으면서 서로 자연스럽게 융합되었다. 가장 오래된 칭쩐쓰(淸眞寺)는 당나라 때 건축되었는데, 그중 창안(長安)칭쩐쓰, 광저우(廣州) 화이셩쓰(懷聖寺)를 손꼽을 수 있다.
송대(宋代)의 회교 이 시기는 중국과 아랍 간의 해상교통이 매우 발달하여, 남해 연안의 상업이 발달되었다. 그중 회교도의 향료가 큰 비중을 차지하였는데, 이 때문에 회교도 중에 부호들이 많이 출현하게 되었다. 송대 회교도 역시 한족과 통혼하였고, 췐저우(泉州)에 칭쩐쓰를 건립했다.
이슬람교를 믿는 중국 10개 민족은 대체로 명대에 형성되었다. 통계에 따르면 이시기 중국 거주 무슬림은 대략 십여 만 명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동남쪽의 상업중심지에 분포하면서 주로 해외 무역업에 종사했다. 송대의 무슬림은 번학(蕃學)을 건립하고, 과거시험, 인척관계, 기부, 노비 축적 등 여러 방식과 경로를 통해 순조롭게 사회의 각 계층에 스며들며, 이슬람교의 사회적 입지를 확대해 갔으며, 훗날 회교민족 공동체를 형성하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원대(元代)회교의 번성 1219년부터 징기스칸과 그 자손은 세 차례의 서역정벌로 중앙아시아를 합병시킨 후, 중국으로 군대를 이동시켜, 이슬람 지역을 포함한 유럽과 아시아 두 대륙을 가로지르는 방대한 제국을 건립했다. 정벌 전쟁 중 몽고민족은 부지불식간에 타민족 문화에 융합되어 갔다. 원대는 군사상으로는 아시아와 유럽 두 대륙을 정복했지만, 문화상으로는 아시아와 유럽 두 대륙에 정복당했던 것이다. 몽고인은 중원을 차지한 이후, 풍속․습관․언어․문자 대부분이 중국에 동화되었다. 쿠빌라이가 남송을 정복하고 중국을 통일하는 과정 속에서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많은 아랍인, 페르시아인, 중앙아시아인 등이 '서역 근위병'으로 조직되어 중국 정벌전쟁에 참가했다.
전쟁 후, 이들은 전국각지로 흩어져 거주하게 되었고, 그중 중국서북부 정착민이 가장 많았다. 그밖에 서남과 중원에 흩어진 일부 사람들은 후에 장난(江南)으로 이주되었다. 군을 따라 동쪽으로 이동한 무슬림들은 대부분 홀홀단신이었기 때문에, 정착 후 현지인과 통혼하여 자손이 번성하였다. 또 몽고인들은 무슬림 기술자들을 중국 각지로 이주시켰는데 그중 대대수가 현지에 정착하게 되었다. 원대 서역에서 온 무슬림 및 그 자손들은 ‘후이후이(回回)’라 불리웠고, 색목인에 속했다. 후이후이 무슬림은 원 왕조 건국의 공을 인정받아 몽고인 다음의 사회적 지위를 차지했다. 그 지위가 한족이나 남인(南人)보다 높았던 것이다. 무슬림 상층부는 원조 통치자에게 중용되었고, 그중 일부는 통치자의 항렬까지 오르기도 했다. 무슬림 인구는 급속히 증가하였고 사회지위도 높았다. 이를 힘입어 회교의 전파와 발전은 신속하게 이루어졌고, 점점 '대분산, 소집중' 국면을 형성하였다. '원대이후 후이후이가 천하를 주름잡았다.'라는 말은 여기에 근거한다.
명대(明代)의 회교 회교도가 중국에 유입된 당대 이후부터 원말까지는 이미 7백여 년이 되었다. 당 영휘 시기 부터 여러 차례 사절단의 왕래가 있었고, 중국에서 무역에 종사하는 무슬림상인들도 많아졌다. 회교도들은 광저우(廣州), 쟈오저우(交州), 췐저우(泉州), 항저우(杭州), 양저우(揚州), 창안(長安) 등의 상업 대도시에서 활동했다. 회교도들은 한 곳에 모여 거주하며 번방(蕃坊)을 형성하였고, 매년 아랍을 왕래했다. 그들의 생활습관은 여전히 본국의 전통을 따랐다. 언어 역시 중국에 거주한지 오래된 소수의 상인들만이 중국어를 말할 줄 알았다. 당시 회교도는 상업과 정치상의 필요로 중국인과 접촉하는 것 이외에, 거주, 습관, 혼인 등에 있어서 중국인과 관계를 형성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송대에 이르러 외국상인들은 중국에 오랜 기간 거주하면서 중국인과 뒤섞여 살 기회가 많아졌다. 회교도 중에는 언어를 익혀 한족과 왕래하는 사람도 적지 않게 생겨났다. 당시의 회교도는 대부분 부유한 상인들로 주로 상류층 사람들과 왕래를 하였고, 동화될 기회 또한 비교적 많았다.
원대 이래, 회교는 중국에서 큰 변화를 맞게 되었다. 많은 회교도가 해상과 육로로 중국으로 왔다. 회족의 자손들은 나날이 번성하였고, 중국 도처에 회교도의 흔적이 남겨졌다. 다수의 회교도들이 정치가, 천문가, 기술가, 문학가로서 활동하였다. 그들의 언어나 습관 모두 중국에 동화되었다. 심지어 성씨마저 대부분 한족 성씨로 고쳐 사용하였다. 따라서 당시 회교도는 신앙이 다르다는 것 외에 나머지는 중국인과 구별이 없었다.
명 왕조는 이민족을 대단히 경계했기 때문에, 회교도는 이민족이라는 흔적을 은밀히 지워버렸다. 자손들이 날로 증가하였지만, 이슬람신앙 이외에는 중국인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또한 명조 역대 제왕들은 회교를 숭상하였고, 황제의 측근 중에도 회교도가 많았다. 명대의 회교도는 모든 생활면에서 모두 완벽한 중국인이 되어 갔다.
청대(淸代)의 회교 경당교육을 중심으로 중국무슬림 종교교육이 끊임없이 발전하였다. 경당교육의 취지는 주로 각 교방 칭쩐쓰가 경사(經師), 교사(敎師)를 배양하여 무슬림에게 종교교육을 진행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와 동시에 중문 번역 활동도 광범위하게 일어났다. 이것은 회교도가 강대한 중국문화의 영향 아래 사회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중국전통문화와 협조한 것이다. 그 밖에 중국화한 회교의 형성은 오히려 회교 민족과 한족 간의 이질감을 야기하여 융합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청조 시기에 발생한 회족과 한족의 충돌은 모두 여기에 기인한다.
민국(民國)시기의 회교 민국시기 회교는 많은 발전이 있었다. 전국 성격의 조직으로 중국회교구진회(中國回敎俱進會)와 중화회교공회(中華回敎公會), 중국회교협회(中國回敎協會)가 연이어 조직되었다. 학술단체로는 중국회교학회와 이슬람문화학회가 있었다. 학교는 해진(偕進)중학, 청따(成達)사범학교, 시베이(西北)공학 등 10여 개 중학교가 있었다. 간행물은 《중국회교학회월간(中國回敎學會月刊》,《월화(月華)》,《이광(伊光)》,《청진역보(淸眞驛報)》,《돌굴(突崛)》,《회교논단(回敎論壇)》등 60~70여 종이 있었다.
중국회교의 현황 중국 회교의 역사는 정식으로 유입된 서기 651년부터 지금까지 1,300여 년이 되었다. 신도는 전국에 두루 분포되어 있으나, 교의는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고, 문화는 하락하였다. 당송 시기 중국회교의 흥성은 해상 무역에 근거하였고, 회교도들은 집성촌을 이루었다. 원명 양대의 군사와 정치 세력은 대부분 회교도의 손에 장악되었고, 여러 가지 사회 정치적 요인으로 회교도는 전무후무하게 급증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종교 자체의 힘은 아니었다. 청조 이래 회교도의 정치적 세력이 쇠퇴하였고, 교역상의 패권도 소실되었다. 종교 자체는 무조직, 무선전, 무교육으로 일관하여 일순간에 밑바닥까지 추락하였다. 민국이후 그들은 예전의 과오들을 깨닫고 힘을 모아 중국회교의 부흥을 도모하였다. 그러나 이 부흥은 당송시기의 경제적 권위나, 원명시기의 정치적 권위에 근거했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사상의 전개, 문화의 선전을 통해 종교자체가 무한한 역량을 갖추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으며, 회족의 모든 사업을 여기에 초점을 맞추어 추진하고 있다.
중국회교의 문화교육 1955년 베이징에 성립된 중국이슬람교경학원(經學院)은 1982년에 학생 모집을 재개했다. 또한 1983년부터 션양, 란저우, 인촨, 정저우, 베이징, 시닝, 우루무치, 쿤밍 등의 도시에 이슬람교 경학원 8개소를 마련하였다. 1957년 창간된 간행물《중국무슬림》도 1981년 복간되었다. 1979년에 순례활동이 재개되어, 매년 수만 명의 무슬림이 메카로 성지 순례를 가고 있다. 근래 중국의 회교는 아시아, 아프리카의 이슬람국가와 우호적인 왕래를 강화하고 있으며, 40여 개 국가와 지역의 국제 이슬람 조직, 무슬림 대표단, 여행단을 초청 접대하고 있다. 아울러 조직적으로 세계 30여 개 국가와 지역을 방문하거나 학술교류를 진행하고 있다. 1998년까지, 중국회교는 7차례의 전국대표대회를 개최하였다. 전국 각지의 회교단체는 현재 정부시책에 부응하여 자양(自養)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 열기를 대대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아울러 사회주의 정신문명 건설의 물결 속으로 합류하였다.
중국회교의 미래 중국은 무슬림 인구가 소수를 차지하는 국가이다. 통계에 따르면 현재 중국에는 회교를 신봉하는 소수민족은 10개 이며, 총 무슬림 수는 2,000만 정도이다. 14억 인구 중 무슬림이 차지하는 비율은 아주 미미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숫자는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카타르, 브루나이, 오만, 아랍에미리트연방 등 이슬람국가의 총 인구수와 같다. 따라서 세계의 이슬람국가들은 중국 이슬람교의 발전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그렇다면, 21세기, 중국회교의 발전 추세는 어떠한가? 미래는 어떠할까? 대체로 아래의 추세로 발전될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첫째, 무슬림 수가 크게 늘어나거나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중국회교는 대외선교를 하지 않는 전통으로 인해 10개 회교민족은 자체 내에서 번창하고, 전파하고, 이어왔다. 따라서 회교도의 수는 기본적으로 10개 민족 인구의 자연적 증감에 따라 상대적 안정 상태를 유지할 것이다.
둘째, '세속화' 경향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회교는 현세와 내세의 축복을 추구하는 종교이다. 현세의 행복을 배제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것을 추구하도록 격려한다. 사회 물질적 환경이 풍요로워지고, 사람들의 생활수준이 끊임없이 향상되는 상황 하에서, 회교도는 갈수록 '세속화' 될 것이다. 특히 중국 서부대개발 정책과 대외개방에 힘이 실릴수록 이런 '세속화'는 가속화될 것이다.
셋째, '도시화'와 '도덕화'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다. 도시의 발전에 따라 더 많은 농촌인구 특히 젊은이들이 각 도시로 유입되고 있다. 특히 도시에 거주하는 젊은 무슬림 세대들은 이미 종교에 대해 점점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종교행위의 준수 여부는 더 이상 경건성을 측량하는 유일한 기준이 되지 못한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정신적 의지의 중요한 측면 중 하나로 간주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정의 수호', '선한 행실' 등의 준수나, 회교사업 및 사회공익 등 종교윤리도덕에 속하는 내용이 신앙의 경건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측면이 될 것이다. '세계화', '국제화'의 급속한 발전에 따라 회교도의 '도시화'와 '도덕화' 경향은 더욱 발전될 것이다.
넷째, 선교를 더욱 확대할 것이다. 선교는 종교 발전의 명맥이다. 역사적으로 중국회교는 선교에 힘쓰지 않아 왔다. 그러나 사회의 끊임없는 발전에 맞추어 상황은 급변하고 있다. 회교도는 교의 전파를 점차적으로 강화해 갈 것이며 나중에는 전력을 기울이게 될 것이다.
어떻게 회교도에게 복음을 전할 것인가? 첫째, 경건한 생활이다. 회교도는 매일 5차례 기도하고, 매년 1차례 1달의 금식기도를 실시한다. 만약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다면, 그들보다 더욱 경건한 모습으로 그들에게 영향을 주어야한다.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절제함이 없고, 경건함이 없다면 그들에게 경시를 당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들은 바울처럼 복음을 위해서 그들 속에서 그들처럼 생활해야 한다.
둘째, 소박한 생활이다. 경건한 회교도는 물질생활, 향락주의, 퇴폐한 서양문명을 반대한다. 그들은 신 중심의 윤리 도덕생활을 추구한다. 이것은 회교도 속에서 복음을 전하려면 사치한 생활방식과 서양의 과학기술 문명을 버려야 함을 시사한다. 생활이 간소하고 소박해야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다.
셋째, 경청하는 자세를 요한다. 회교도와 접촉할 기회가 생기면, 일단 좋은 청중이 되어, 상대에게 발언할 기회를 더 많이 주고, 상대방이 믿는 것과 강조하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분석하여서, 주도권을 잡고 대응해야 한다. 절대로 높은 곳에서 내려 보는 자세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또한 두려움이나 주저함 없이 그들과 쉽게 대화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 반드시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고 온화하게 그들과 의견을 교환하되, 온전한 복음을 상대방에게 소개하고 성경의 진리를 분명하게 드러내야한다. 또한 공통된 화제를 파악해야 한다. 신앙은 비록 다르지만, 인생의 의의, 구원 등 인류가 일반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비슷하다. 이것들은 상대방의 사상을 인도할 수 있는 적극적인 방법들이다. 또 무리한 요구를 삼가야 하며, 친절하고 부드러운 태도로 담화를 지속해야 한다.
넷째, 지혜로 무장하자. 복음을 전할 때는 담대하게 복음의 진리를 설명하고, 우리의 신앙내용을 분명하게 드러내야 한다. 이것저것 염려함으로 소극적인 자세를 취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강하고 담대함과 인애와 굳게 지키심을 허락하셨기 때문에, 이렇게 할 때 그들로부터 존중받게 될 것이다. 소극적 변론은 피하고, 비평해서도 안 된다. 만약 상대가 기세등등하여 부득이 한 경우 지혜와 완곡한 언어와 부드럽고 진실된 태도로 변론해야한다.
다섯째, 준비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어린 아이들 간의 교제를 통해 이웃과 서서히 우정을 쌓아 가며, 서서히 복음을 전할 수 있다. 그들에게 긴급한 일이 생길 경우,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다. 적당한 복음전단지를 준비하거나 욥기, 요한복음 등과 같은 성경의 단행본을 준비해 둔다.
결론 회교는 당송시기에는 경제적으로 흥성하였고, 원명시기에는 정치적으로 흥성하였고, 청대에는 경제적, 정치적으로 모두 쇄락하였다. 민국시기부터 사상과 문화가 발전하기 시작하여, 현재 회교세력은 그 색깔을 더욱 분명히 하기 시작했다. 머지않은 장래에 회교는 선전역량을 극대화하여 그 영향력을 더욱 넓힐 것이다. 이것은 교회와 하나님의 백성의 입장에서 볼 때, 커다란 도전이다. 우리들은 오늘날과 장래를 어떻게 직면해야 할까?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까? 중국회교의 발전 과정에 대한 관찰을 통하여, 우리들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필자는 바로 지금이 행동할 때라고 생각한다. '영혼을 구하고, 주를 위해 사람을 낚으라'는 이 말은 회교의 도전에 직면한 우리에게 가장 적절한 대답이자 유력한 행동 방향이다.
유에얼 | 중국 현지 사역자 번역 | 김현주․본지 번역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