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이번호 
북쇼핑
2007.6.28  통권 102호  필자 : 문런(文人)  |  조회 : 2082   프린트   이메일 
[오늘의 중국교회]
사역의 중요한 관건 의사소통


중국교회에서 사역할 때 현지신도와의 의사소통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우리는 도대체 어떤 것에 주의해야할까? 우리는 어떻게 더 효율적으로 그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으며, 모두가 효과적으로 서로서로 맞춰가며 사역의 발전을 이룰 수 있을까?

방언(方言)과 표준어인 보통화(普通话)
2004년 말 중국 교육부와 국가언어위원회가 진행한 중국 언어문자사용 상황에 대한 조사에 따르면 전국에서 표준어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인구는 약 53%이고, 태어나면서부터 표준어를 사용하는 인구는 8%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바꿔 말하면, 중국에는 아직도 절반에 가까운 인구가 자기 지방의 방언으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고 10%가 넘는 아동이 방언을 제1언어로 학교에서 배우고 있다. 보통화는 보통 입학한 후에나 배우게 된다. 중국의 지방 방언은 매우 많다. 광둥성(??省)만 하더라도 많은 종류의 다른 방언이 있다. 홍콩 사람들이 말하는 광둥어도 방언의 일종이다. 그러나 만약 효과적으로 전국 다른 지역의 신도들, 홍콩 및 해외에서 방언을 사용하는 신도들과 효과적으로 의사소통을 하려면 전국적으로 통일된 언어인 보통화를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보통화를 사용하여 의사소통을 진행하는 것에 익숙치 않은 신도들에 대해서는 다른 지역 중국인이 말하는 방언과 보통화가 다르다는 것 외에 발음과 용어도 많이 다르다는 것에 유의해야 한다. 현지 신도들과 효과적으로 의사소통을 하려면 이러한 기본적인 상황에 주의해야만 한다.

한자독음의 차이
만약 우리가 일찍이 중국인들과 의사소통을 하려면 이러한 상황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설령 우리가 유창한 중국어를 구사하고 보통화의 병음에 익숙하더라도 다른 지역에서 온 사역자들이 구사하는 보통화는 현지 사투리의 발음이 묻어있어 어떤 발음은 알아들을 수가 없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중부지방의 사역자는 숫자 ‘100’을 말할 때 ‘백’자가 굉장히 불분명해 홍콩 사역자들은 앞 뒤 흐름을 통해 그가 하는 말이 ‘백’자라고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북방의 사역자 모임에서는 비교적 많은 권설음이 있어 남방의 사역자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관계로 원활한 의사소통에 영향을 끼친다.

용어의 다름
한자독음 외에도 용어의 다름이 문제가 된다. 예를 들어 어떤 둥베이(?北)지방의 사역자가 홍콩의 사역자와 사역의 상황을 나누었다. 말하길 일찍이 어느 지역 소수민족의 집에서 머물렀는데, 현지인들이 ‘쿠차(??:바지 안에 입는 속바지)’를 입는 관습이 없더라고 했다. 이 홍콩 사역자가 다 듣고서도 종잡을 수 없었다. 쿠차의 뜻을 몰랐으나 즉시 물어볼 기회가 없었다. 이 둥베이 사역자는 쉬지 않고 계속 나누었다. 나중에야 앞 뒤 흐름을 통해 쿠차의 뜻이 네이쿠(??)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원래 쿠차는 사투리였던 것이다. 또 예를 들어 중국인은 ‘??二百五205’라는 말로 바보라는 욕을 한다. 지방마다 독특한 지방색이 뚜렷한 욕이 있다. ‘숟가락’도 남방과 북방에서 쓰는 말이 다르다.

홍콩인들에게는 중국어와 영어를 섞어 쓰는 습관이 있다. 중국 도시인의 영어 수준이 끊임없이 높아지고 있고 심지어는 홍콩인들처럼 대화 중에 영어단어를 섞어 쓰기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중국 신도들과 만날 때, 최선을 다해 영어를 섞지 않고 말하려고 한다. 하나는 상대가 잘 이해하여 원활한 의사소통이 끊어지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고, 둘째는 말의 뜻을 몰라서 마음속에 거리감이 생기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서로 존중하는 것이 관계를 촉진시키는 전제조건
이 외에도 또 다른 상황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단기선교팀을 조직하여 중국교회를 방문한다고 하자. 우리 팀원들끼리는 광둥어를 쓰고, 현지신도들끼리 말할 때는 현지 방언을 쓰고, 단기팀과 현지신도가 의사소통할 때만 비로소 보통화를 쓰곤 한다. 이런 상황은 쉽사리 이해할 수 있지만, 어떤 때는 서로에게 담이 생기기도 한다. 특히 서로가 보통화로 얘기하다가 어느 한 쪽에서 갑자기 자기 사투리로 상의한 후 공개하지 않거나 모어 외의 말로 의사소통하기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상대방을 거북하게 할 수도 있고 두 팀의 관계에도 거리감이 생기곤 한다. 더구나 보통화가 유창하지 않은 신도들은 이런 상황을 피할 수 없 다. 이렇게 우리는 언어를 바꿔서 사용해야 하기에 우리의 언어구사가 미숙함을 알려 모두의 관계가 소원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어떤 때는 우리의 보통화 회화수준이 높다고 해도 상대방의 보통화에는 많은 사투리가 섞여있어 우리가 그들의 말을 못 알아듣곤 한다. 이런 상황은 보편적인 것으로 특히 상대가 농촌지역에서 온 경우(통상 농촌 지역 신도의 사투리는 비교적 심함)는 더욱 그러하다. 이렇게 우리는 더 많은 포용과 인내가 필요하다. 또 상대가 좀 천천히 말해주도록 요청하고 만약 못 알아듣는 부분이 있으면 즉시 물어야한다. 예를 들어 “지금 말하신 것이 ○○란 뜻인가요?” “전 지금 말씀하신 ○○의 뜻을 모르겠네요.”처럼 말이다. 이러한 의사소통방법은 더 효과적일 것이다. 상대에게 당신이 그의 말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알린다면 상대의 신임과 일치감을 더 깊이 느끼게 될 것이다. 상대가 말하는 것을 몰라 계속해서 묻게 되는 것을 미안하게 생각해 가만히 있지 않아야 한다. 왜냐면 상대가 계속 얘기하다가 자신이 앞에 한 얘기들을 당신이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상대는 당신에 대한 신임을 잃어 의사소통의 효과가 없어져버린다.

문화를 초월한 의사소통 학습
우리는 중국사역자들과 의사소통할 때 다른 문화를 초월해 그들을 알게 된다. 그래서 ‘관찰’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특히 현지인들이 어떤 물건을 어떻게 말하는지 하나의 상황에 어떻게 묘사하는지 우리와 어떤 다른 점이 있는지에 유의해야 한다.(예를 들어 앞에서 말한 속바지에 대한 명칭처럼) 중요한 것은 관찰과 이해를 통해 상대의 용어를 배워야 의미있는 의사소통이 촉진되고 서로의 관계가 더 친밀해진다. 동시에 우리는 이해하고 의사소통하기를 원하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상대에게 나를 알리려 노력하길 원하고 또 상대를 알려고 노력할 때, 상대는 당신의 성의(진심)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문화를 초월한 의사소통 성공의 첫걸음이다.





출처 | www.ccchina.org
번역 | 전은정 · 자원봉사자 

    인쇄하기   메일로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