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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6.28  통권 102호  필자 : 이영철  |  조회 : 1284   프린트   이메일 
[선교일언]
어느 선교사의 고민- “잠재된 영웅주의”

필자가 선교사로 파송되기 전에 태국에 단기선교 여행을 간적이 있었다. 그 곳에서 만난 J 선교사님, 그분은 가정환경, 능력과 배경 모두 부족함이 없는 분이었다. 그러나 그의 선택은 선교사였다. 가족들의 반대 역시 대단했지만 선교사로 나와 행복해 보이기만 한 그에게 고민이 있다고 했다. 무슨 고민이 있을지 대단히 궁금했다. 그런데 그의 고민은 우리의 상상을 완전히 벗어난 “잠재된 영웅주의에 대한 경계"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선교여행을 하는 동안, 그리고 여행을 마친 후에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선교사에게 영웅주의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곳에서의 영웅이란 곧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 아닐까? 여하튼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고만 생각하고 긴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본인이 선교사가 되어 선교지에서 10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고 올해 갑자기 귀국 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J선교사가 고민했다는“영웅주의"였다. 그리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 너무도 또렷이 그러면서도 두려운 마음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선교사의 권리포기
우리가 선교지에 나갈 때의 각오와 결심은 전쟁에 참가하는 군인들 못지않다. 더욱이 가야할 선교지가 창의적 접근지역일 경우 그 각오는 더욱 특별해지게 된다. 그래서 어려운 일에 직면하면 어떻게 할 것인지 갖가지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 닥치든지 어떤 상황이 되든지 나름대로 감당할 각오를 앞세우고 선교지로 향하거나 선교지에서 사역을 하고 있다. 

불확실 이라는 말과 가장 가까운 말은 두려움일 것이다. 아는 사람도 없고, 어디에서 부터 어떻게 시작해야할 지도 모르는 가운데 5년 뒤엔 어떻게 될 것인가? 10년 뒤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 과연 내가 가는 길이 맞는 것인가?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잘하는 것인가? 이렇게 나가서 사역하고 실패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또,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는데 아이들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 곳의 교육환경이 열악한데 과연 그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이 우리 아이들을 책임져 주실 것인가? 등등….  

선교지에 나간다는 것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선택이다. 한국에서의 꿈과 비전은 이미 그의 미래에는 고려된 것이 없다. 한국에서 훈련 받고 나름대로 쌓아 왔던 것들을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름대로 공부한 것, 훈련 받은 것들도 중지해야만 한다. 신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책에 대한 욕심은 누구나 많은데 선교지의 상황에 의해 책도 맘대로 가져가지 못한다. 책 상당부분을 포기해야하는 상황에 접했을 때 그 책들을 보고 또 보고 집었다 놓았다를 몇 번 씩 반복했는지 모른다.    
이러한 분명한 사명감, 대단한 각오가 불확실한 가운데 마치 물 위를 걷듯, 물위에 자신의 몸을 내던지듯 선교에 헌신하게 한다. 우리에게 언제나 이 부분을 확인하고 재확인하면서 선교에 더욱 헌신하도록 우리 자신을 채찍질하곤 한다.  

복음만을 영화롭게 하라
그런데 그러한 사명감과, 대단한 각오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선교에 올인 했다는 생각이 선교 사역에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을까? 이것은 우리에게 부담을 넘어 문제까지도 될 수 있다.   
영웅주의의 한 면은 이미 하나님 앞에 헌신했고, 많은 것을 희생 했다는 의식일 것이다. 이러한 의식은 자신이 선교지에 있다는 것으로 의미를 갖는다. 이미 희생과 헌신의 결과라고 생각 한다. 그러나 실지로 선교지에 도착했다는 것이 희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갔다는 것 역시 헌신을 의미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 순간부터 선교사로서 예수님의 성육신의 사역을 시작해야 할 순간이고, 헌신의 출발점이다. 결국 이 생각은 더 깊은 헌신과 희생의 장애가 될 수 있다.
영웅주의의 또 다른 면은 뭔가 이루어야 한다는 집착으로 이어지기 쉽다. 한국에서의 모든 것을 포기했기에 이제 오직 선교지에만 희망이 있다. 더욱이 선교지에서 뼈를 묻겠다는 각오까지 되어 있다고 생각하니 그 사역에 집념은 더욱 강해진다. 여기에는 몇 가지 넘어야할 관문들이 기다리고 있다. 

첫째는 올바른 판단이 어려워진다. 의욕이 앞서고, 뭔가 이루어야 한다는 집착은 때로 현지인들의 관점에서 내부자적 사고를 요구 한다. 그런데 워낙 의욕이 앞서다 보니 그들의 마음과 입장이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주님의 뜻과 자신의 비전이 일치한다고 생각하고, 현지인들 역시 그 뜻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결국 그들을 돕는 자의 모습은 상실하게 되는 누를 끼치게 된다.   

둘째는 기초와 과정을 가볍게 생각하기 쉽다. 뭔가 이루어야 한다는 지나친 부담은 지나친 목적의식과 결과에 집중한 나머지 일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꼭 거쳐야 하는 기초와 과정을 건너뛰기 쉽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어떤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처럼 보일 때, 그것을 떨쳐버리고 기초로 돌아가고, 그 모든 과정을 겪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셋째, 영웅주의의 결과 주님은 안 보이고, 영웅만 남게 된다. 제자들이 주님과 3년이나 함께하면서 따랐는데 결과적으로 그들은 변화 받지 못했었다. 그들의 영웅주의가 너무 확실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각이 확실한 동안은 주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영향을 끼치지도 못했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셔도, 부활하셨어도, 심지어 승천하기 직전에도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언제 이스라엘을 회복하실 지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것이 그들에게 그렇게도 중요한 것은 그들의 출세와 관계가 깊었기 때문이다.

사명감이 필요하다. 분명한 의지와 결단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 뒤에 숨겨진 영웅주의는 잠재워야 할 것이다. 이 부분을 발견하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리고, 또한 그 부분을 발견했을 때 어쩌면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발견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성경 속에 바울의 업적이 화려하지만 그 뒤에는 보이지 않는 에바브로 디도와 같은 수많은 숨겨진 일꾼들이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영웅주의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 이었다.


이영철 | 중국선교사, KWMA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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