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형 영화의 탄생 배경 영화사에 있어서 수많은 인력과 장비 그리고 자본이 투입된 대형영화가 나오기 시작한 결정적 원인은 TV의 출현 때문이었다. 소위말해서 ‘안방극장’이라고 불리우던 TV의 탄생은 195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가정오락의 중심에 있었던 영화산업에 큰 위기감을 심어주었다. 미국인들은 집에서 편히 앉아 새로운 영상을 즐길 수 있는데 굳이 자동차를 타고 멀리 있는 영화관에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TV가 나오기 전 까지만 하더라도 주말에 가족과 친구들이 모여 영화관에 함께 가는 일은 주일에 교회에 가는 일 만큼이나 의례적인 행사였다.
위기를 느낀 미국 영화제작자들은 집안에서 TV를 보는 사람들을 영화관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TV가 제공해주지 못하는 영화만의 것이어야 한다는데 생각을 모았다. 그 결과 두 가지의 변화가 일어났다. 하나는 TV의 작은 브라운관으로는 맛볼 수 없는 초대형스크린으로 승부를 거는 일이었고, 다른 하나는 가족이 함께 보는 TV와 달리 성인들만이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 관객을 모으는 차별화 전략이었다. 할리우드 영화들이 성적표현이 노골화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때부터였다. 우리나라에서도 TV로 방송된 된 적이 있었던 1960대 인기 드라마 <왈가닥 루시>를 보면 부부라 할지라도 남녀가 같은 침대를 사용하지 않을 만큼 남녀유별은 매우 중요한 사항이었다. 그러나 성인들은 영화에서 만큼은 남의 침실을 몰래 엿보는 것과 같은 관음증을 만족시켜주는 성적표현물을 기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 중국의 영화는 미국의 50, 60년대와 닮았다. 전자산업의 대호황 속에서 집집마다 TV와 비디오 그리고 DVD를 갖춰가고 있는 만큼 극장영화는 이들과 경쟁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다. 특히 세계 최고의 복제왕국이란 오명에 걸맞게 개봉되자마자 쏟아져 나오는 불법 복제물과 끊임없는 승부를 벌여야 하는 점에서 극장영화의 차별화 전략은 생사를 건 싸움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할리우드가 전략으로 내세웠던 성적 표현물은 오히려 집안에서 은밀히 보는 것을 보다 선호하는 까닭에 중국영화가 내세울 만한 승부처는 되지 못한다. 결국 남은 것은 커다란 극장용 스크린에 어울리는 스펙터클한 대형 영화를 만들어서 승부를 띄우는 수밖에 없다.
장이머우 감독의 블록버스터 영화 <황후화>의 탄생은 영화 이외의 다양한 오락매체와의 경쟁구도 속에서 탄생한 것이라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국력에 걸 맞는 영화만들기 장이머우 감독의 <황후화>는 중국 당나라 말기를 배경으로 한 황실가족의 권력쟁탈과 음모 그리고 근친상간의 비극을 품은 대작영화다. 황제는 중양절(重陽節)을 앞두고 온 가족을 궁으로 불러 모은다. 그러나 그것은 단란한 가족의 모임이 아니라 비극의 절정에 이르기 위한 예정된 수순일 뿐이다. 권력에 눈이 멀어 조강지처를 버린 황제(주윤발)는 정략결혼을 한 황후(공리)를 서서히 독살시키고 있고, 황후는 배다른 자식이긴 하지만 심성이 유약하고 여색을 밝히는 태자와 이미 근친상간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황후는 둘째 아들 원걸과 함께 황제를 몰아내려는 쿠데타를 모의하는가 하면, 막내아들은 숨어서 권력에 대한 야망을 불태우고 있다. 도대체 이것이 대국의 황제집안이며 한 가정의 일이라고 할 수 있는가? 아무도 생각할 수 없는 최악의 일이 <황후화>에서는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장이머우 감독이 이 영화에서 보여준 재능이란 최악의 인간사를 최고의 화려함과 대비를 이루어 최상의 극적 효과를 만들어 낸다는데 있다. 영화는 중양절을 앞두고 황금빛의 국화로 가득 찬 황궁의 곳곳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황궁의 여인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화장을 하고, 수많은 군사들의 기세 넘치는 위풍당당함은 웅장함과 고혹적인 말로도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이런 스펙터클한 영상들은 대중들로 하여금 입장료가 아깝지 않다는 인상을 심어주기도 하지만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가장 파렴치한 행동의 바탕이 되어 더욱 추악한 인간사를 드러내는데 바탕효과로 작용한다. 즉 검은색 글씨는 흰색 바탕에서 더욱 더 분명해지듯 화려한 황궁의 이미지는 가장 추악한 인간의 욕망을 드러내는데 매우 효과적인 것이다. 특히 영화의 시간이 조상과 어른을 공경하는 중양절에 맞춰져 있고, 황제와 황후가 다정하게 써내려간 ‘충(忠,) 효(孝), 예(禮), 지(智)’라는 덕목은 황실의 위선을 오히려 상징한다는 점에서 극과 극의 대칭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화려한 이미지 속에서 드러난 인간의 추악한 실상이란 대비적 구도는 인간 삶을 연구하고 교훈을 주기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장치일까? 장이머우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서 말하고 싶은 것이 위선적 인간의 본질과 부패한 권력주의의 실상이라면 그의 사회적 탐구는 매우 의미 있고 성경적으로도 가치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3:10)’라고 하지 않던가! 그뿐만 아니라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3:12)’는 것이 성경이 밝히는 죄인 된 인간의 면모다. 겉으로는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존재라 하더라도 어느 누구도 죄인 된 인간의 속성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법이다. 특히 예수님은 당시 사회지도층으로서 위선적인 언행을 일삼았던 사람들에게 이 부분에 대해서 일침을 놓기까지 하셨다. 이들을 향하신 예수님의 다음과 같은 말씀은 영화와 더불어 곱씹어 볼만하다.
‘화 있을 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마23:27)’
여기서 ‘회칠한 무덤’은 영화 속 황궁에 비유할 수 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죽은 사람의 시체를 부정하다고 여긴 유대문화전통에 따라서 무덤 가까이 가지 않으려했고, 혹시라도 지리에 익숙하지 않은 여행객들이 무덤에 다가가지 않도록 하얀색의 회를 무덤으로 사용하던 동굴입구에 칠해 놓곤 했었다. 하얀색으로 칠한 만큼 멀리서도 잘 보이고 겉으로는 깨끗해 보일지 모르지만 무덤으로 사용하는 동굴 속은 시체의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부정과 부패로 가득 찬 공간일 수밖에 없었다. 예수님은 이러한 당시의 무덤형태를 빌어서 겉으로는 거룩하고 고상한척 하지만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일삼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야단치셨던 것이다.
<황후화>에 등장하는 황궁은 이 ‘회칠한 무덤’과 같은 형국이다. 번쩍이는 황금색으로 치장된 겉모습과 달리 그 속에 사는 주인공들은 하나 같이 이율배반적이다. 황제는 자신의 아내가 배다른 자식과 불륜의 관계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모른 척 하며 보약을 가장한 독약으로 서서히 황후를 죽이고 있고, 황후는 남편의 독살 음모를 알고도 모른 척하며 자신의 친자식을 동원해 쿠데타를 모의하고 있다. 자신과 남을 속이며 권력을 차지하려는 추악한 행태는 그칠 줄 모른다.
장이머우의 변화와 중국인의 시선 우리는 <황후화>가 비록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 않지만 어느 사회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인간의 탐욕과 죄의 실상을 드러내어 우리의 숨은 죄를 깨우치는 율법과 같은 역할을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감독의 의도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장이머우 감독에게 이런 기대는 그의 영화 초창기에나 가능했었던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의 초기작들은 중국사회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현실적 인간 삶을 다룬 반면 최근작들은 할리우드 모양으로 크고 화려함은 있지만 인간과 사회의 깊은 곳을 들추고 그곳에서 진정 우리가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전달하는 데에는 실패하고 있는 까닭이다. 다시 말하면 자신만의 영화철학이 그의 대형영화 안에서는 쉽게 발견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그를 세계적인 감독의 반열에 올려놓은 1989년 작 <붉은수수밭(紅高梁)>이나 <홍등> 그리고 <인생>등의 영화에서는 가난하고 기구한 운명의 여인들의 꿈틀대며 살아있는 삶을 조명함으로써 대륙만큼이나 넓고 깊은 인생사의 깊은 맛이 우러나는 영화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와서 장이머우는 급속히 변하기 시작했다. 할리우드 냄새가 풀풀 나는 <영웅>(2003)을 만들어 중국적 초대형 고전 전쟁물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진시황제의 암살을 모의한 자객들이 모두 그 목표를 스스로 상실해버림으로써 체제순응적인 이데올로기를 드러냈다는 비난을 모면할 수 없었다. 자신의 소박하지만 질긴 민생중심의 철학은 더 이상 그의 영화 속에서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초대형 뮤지컬 <투란도트>의 연출을 맡은 일이 그러하고 <황후화> 역시 그의 초창기 영화와는 아무런 연계성을 지니지 않은 전혀 새로운 그의 변화를 따르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그의 변화의 중심에는 할리우드와 세계화를 지향하는 상업적 거대자본주의의 대세를 따르려는 그의 의지와 중국의 중화정신에 입각한 예술지향의 심미주의가 결합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황후화>의 제작비 무려 4,500만 달러로 중국영화 역사상 최대 규모의 작품이다. 흥행면에 있어서도 장이머우 감독은 2002년 자신이 세웠던 중국 최고의 흥행기록인 <영웅>의 3,500만 달러를 불과 개봉 20일 만에 갈아치웠다. 이소령이나 이연걸 식의 개인이 보여주는 아기자기한 무술이 아니라 수천 명이 동원되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집단의 미학은 이제 장이머우 감독의 새로운 예술세계인 동시에 중국 대중들이 갈망하는 그들만의 새로운 장르로 자리 잡을 대세다. 이것에 대한 가치평가는 우리의 몫은 아니다. 오락적 관점에서 영화를 대하는 중국관객들이 거대규모의 미학을 통해 즐거움 얻겠다는데 이를 누구도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갈수록 양극화되어 가는 중국 사회에서 현실적인 중국 민중들의 삶을 조명하는 능력이 뛰어난 감독을 잃었다는 점에서는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강진구 | 크리스천문화커뮤니케이션연구소장, 한동대언론정보문화학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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