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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6.28  통권 102호  필자 : 요한  |  조회 : 3262   프린트   이메일 
[특집] - 특집/ 선교사명과 문화사명
교회는 문화의 선봉이어야 하는가?


오늘날과 같은 다원적 비기독교 문화 속에서 교회는 어떻게 하여야 신앙의 통일성을 유지하면서 동화되지 않을 수 있을까? 교회는 문화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소극적인 대항? 아니면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맡아야 할까? 비기독교 문화 환경 속에 처해 있는 홍콩교회에게는 어떤 사명이 있을까? 이와 같은 것들이 본문에서 토론하고자 하는 문제들이다.


문화의 특징
로잔위원회의 정의로부터 문화의 몇 가지 특징을 귀결해 보았다.

1. 문화는 인류 생존의 필수 환경 중 하나이다. 문화는 인간에게 신분적 동일시를 준다. 동일시의 대상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현 사회와 아울러 조상의 사회를 포함한다. 문화는 하나의 계통으로써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도 포함하고, 이러한 연속성은 미래까지 연결되기 때문이다.
2. 문화는 여러 가지 구조 예를 들어 언어, 문자, 각종 예술 및 생활방식 속에서 표현된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은 늘 집단가치관을 반영한다.
3. 문화는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 속에 있다. 문화의 변화는 격렬하지 않다. 격렬한 변화는 고유문화를 붕괴하기 때문이다. 문화의 변화는 늘 길고 긴 과정을 거치며 이루어진다.
4. 문화는 인간 통제에 있어 그 어떤 외재적인 법률이나 관리보다도 효과적이다. 문화적 가치관은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법률이다. 인간의 생활과 행동이 모두 이 내면화된 법률에 근거한다.

성경적 각도로 문화 이해하기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자기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만드시고, 그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온 땅에 가득하여 이 땅을 다스리도록 분부하셨다(창1:26~28). 하나님은 사람에게 이런 명령과 함께 그 명령을 집행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셨다. 인류의 문화는 바로 여기에서 기원되었다. 문화의 가장 기본적인 의의는 인간이 환경을 통제하고 개조하면서 다양한 사회제도를 발전시켜 이로써 인간관계를 제약하는 것이다. 인류가 만약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본성을 잘 운용하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였다면, 원래 이 땅위에 아름다운 문화를 건립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인류는 타락하여 교만과 이기심으로 하나님의 명령(절대적 진선미의 기준)을 저버리고, 자신의 선악 가치 기준을 세우려고 하였다. 이러한 왜곡된 표준이 만들어낸 문화는 불완전할 뿐 아니라 죄악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어서 인간이 하나님을 아는 데 장애가 되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도구가 되었다. 이 땅에 존재하는 인류 문화의 가치는 상대적인 것이다. 

어쨌든 인간은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을 입고 있으며(창9:6, 약3:9).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지상에서 관리의 임무를 집행하고 있다. 창세기 3장은 인류타락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고, 4장은 가인이 그 형제 아벨을 죽인 것, 같은 장에 가인의 후예가 문화의 창시자가 되어 건축, 목축, 음악, 각종 금속도구 제작 등 소위 문화활동을 시작했음(창4:16~22)을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이 인간 창조의 목적, 즉 그들로 하여금 자신이 하나님의 청지기임을 알게 하고, 그 명령 따라 세상을 관리하여 하나님께 속하며 그 말씀에 부합하는 문화를 건립하도록 타락한 인류 가운데 그에게 속한 자녀들을 부르셨다. 이것은 문화를 변화시키는 것이 복음전파 방법 중 하나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복음을 인하여 구속을 경험한 사람이 마땅히 느껴야할 각성과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성도는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이 세대가 더욱 패역해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이것은 일종의 사랑의 표현이요, 하나님의 백성이 된 증거이다. 또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문화를 건립하고 그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를 더욱 많이 제공해야 한다.


문화에 대해 교회가 가져야 할 태도

1. 기독교와 문화 간의 다섯 가지 유형 리처드 니버(N. Richard Niebuhr)는「그리스도와 문화」중에서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5가지 유형으로 나누었다. 아울러 그는 교회 역사 중에서 나타난 상황을 구체적인 예로 들었다. 

1) 기독교 신앙과 문화는 대립한다 : 기독교 신앙과 문화 이 두 가지가 전혀 다르다는 입장이다. 신앙은 세속 문화와 영원히 상호 대립적이다. 따라서 기독교도는 세속과 완전히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각종 수도주의운동이 좋은 예이다.

2) 기독교 신앙과 문화는 일치한다 : 기독교신앙과 문화는 서로 일치한다. 현대 문화 중의 최상의 요소는 모두 기독교 신앙에 속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기독교 신앙과 문화를 완전히 동일시한다. 니버는 초대교회의 그노시스파(Gnosticism)와 19세기의 자유파 기독교를 이 부류로 보았다.

3) 기독교 신앙은 문화를 초월한다 : 문화가 아무리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더라도, 기독교 신앙은 이 세속의 가치보다 훨씬 높다. 따라서 양자의 조율은 필연적인 것이다. 중세 아퀴나스(Thomas Aquinas)에게서 그 예를 찾았는데, 그는󰡐자연󰡑과󰡐은혜󰡑가 동시에 중요하고, 󰡐은혜󰡑는 영원히󰡐자연󰡑위에 존재한다고 보았다.

4) 기독교 신앙과 문화는 역설적 관계이다 : 기독교신앙과 세속적 관념은 전혀 다르다. 그러나 세상은 이미 타락했고, 그리스도인은 선택의 여지없이 그 속에 살아야 한다. 하나님은 이미 그들을 그 처한 문화 속에서 일으키사, 속죄함을 입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게 하셨지만, 그래도 여전히 죄악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일하며 살아야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폭력을 사용할 수 있는가󰡑로 예를 들었는데, 기독교의 윤리정신에 따르자면 세상에서 말하는  폭력은 용납되기 어렵다. 그러나 타인의 권익을 보호하기 경우, 폭력사용은 합리화되기도 한다. 마틴 루터의 󰡐두개의 나라󰡑 논리관이 바로 좋은 예이다.

5) 기독교 신앙은 문화를 변화시킨다 : 이것은 아우구스틴(Augustine)과 칼빈(Calvin) 또한 영국의 기독교사회주의 지도자 모리스(J. F. D. Maurice)가 제창한 사상으로, 모든 문화는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들은 인류의 사회적 타락을 인정하면서, 하나님의 주권아래에서 통제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문화가 그리스도의 구속하심으로 말미암아 새로워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오신 것은 인류 문화 중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의 지(智)․정(情)․의(義)를 창조시기로 되돌리는 문화갱신을 위해서 오신 것이다. 

2. 성경에서 나타나는 문화 성경적 관점에서 문화는 여러 가지 요인에 따라 그 해석도 다르다. 문화에 대한 성경의 태도는 다음과 같다. 

1) 저항성 : 일부 풍속 습관은 기독교 신앙과 영원한 대립관계에 있다. 예를 들면 구약 속의 중동 특히 가나안 땅에는 많은 나체 여신상이 있었다. '번성'을 상징하는 이 여신들을 섬기기 위해 신도들은 제사 때 '산당의 창기(娼妓)'와 행음하는 의식을 치렀다. 가나안 사람들이 숭배하던 여신은 아세라, 아스다롯, 아낫 등이다. 그 제사의식 모두가 '산당의 창기'와 교합하는 요소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남창'과 '여창'을 막론하고 '산당의 창기'는 구약에서 절대 금지하는 것이었다(왕상14:24, 15:12, 22:46, 왕하23:7, 겔23:37~41, 암2:7~8).

2) 귀속성 : 성경은 그 형식에 있어서 현대인들이 사용하는 언어와 문학체계를 사용했을 뿐 아니라, 내용에 있어서도 비 이스라엘인 혹은 비 기독교인의 작품에서 소재를 취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많은 구약학자들이 잠언 22장 17절에서 23장 14절은 이집트의 문학작품 '아메네모페 잠언'에 기초한 것이라고 인식한다. 예수께서도 당시 유행하던 잠언 예를 들어 막3:24, 6:4, 마6:21, 34 등을 인용하셨다. 바울도 이방 철학자의 말(행17:18)을 인용해 변론하였다. 예를 들어 바울은 로마서 1장과 11장 중에서 당시 그리스 철학자가 사용하던 평론식 변론방법을 많이 사용하였다. 당시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던 관념과 방법을 그리스도와 바울 역시 기꺼이 사용한 것이다.

3) 초월성 :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의 언어 전통은 아주 고상한 도덕적 이념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마태복음 5장에서 7장 중 예수님의 산상수훈에 표현된 언어는 훨씬 고상하고 완벽했다. 또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의 율법 보다 승하며 그 어떤 율법보다 고상하다고 말하고 있다.

4) 기만성: 구약의 혼인제도 중,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은 일부일처제였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회에는 다처제를 실행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왜 구약 성경은 이들의 행실을 직접적으로 책망하지 않았을까? 또 만약 이혼이 하나님이 정하신 정상적인 혼인의 모습이 아니라면 왜 신명기 24장 1절에서 4절은 이혼과 재혼의 예를 열거하고 있는 것일까? 이혼을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닌가? 당시에 다처제를 허용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요인들은 다음과 같다. 
 (1) 여초현상: 중동 사회의 가정에 있어 자녀는 매우 중요하다. 만약 자녀가 없으면 가정의 분위기는 삭막해지고, 가업을 잇는 일도 어려웠다. 또 그 당시 여성인구가 남성인구보다 많았다. 잦은 전쟁으로 인해 많은 남자들이 전사하였고, 여성들은 전리품이 되었다. 여초현상이 더욱 격화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성인 여성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없었다. 따라서 여성들은 다처제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2) 신분과 지위의 상징: 모든 사람들이 첩을 둘 능력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혼사에서 남자는 여자 측 가족에게 상당한 예물을 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처제는 일부 부자들의 특권이 되었고 첩을 둔다는 것은 신분과 지위의 상징이 되었다. 구약의 다처제에 대한 묘사는 거의 부정적이다. 다처제는 가정불화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 구약은 특히 군왕들이 후궁을 들이는 일에 신중하기를 경고하고 있다. 
① 하나님은 원래 일부일처제를 정하셨으나 인간의 강퍅함으로 인해 다처제가 나왔다. 
② 모세의 율법은 다처제의 사악함을 경고한다. 
③ 하나님은 사람으로 하여금 이 제도가 만들어낸 사악함을 직접 체험케 하셨다. 
④ 인간이 범죄하고 타락한 후, 하나님은 인간을 불완전한 환경 속으로 옮기셨고, 이후 인간은 불완전한 세계 속에 살게 되었다. 그러나 불완전함이 부패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후, 비로소 하나님은 인류의 혼인 법도를 다시 세우셨다. 사실 성경에는 다처제나 이혼에 대한 어떤 허락의 말씀도 없다. 그러나 당시 사회에서는 이러한 행위가 용납되었던 것이다. 

신약 역시 신앙과 문화의 상호 모순적인 예를 기록하고 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려고 외국에 가서 시급히 해결해야할 문화적 난관에 부딪치게 되었다. 바로 주를 영접한 이방인들이 유대인의 율법에 따라야 할 것인가였다. 특히 할례풍속이 그러했다. 복음적 본질에 입각해서라면, 바울은 사람이 구원을 받는데 할례를 행할 의무는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의 사회문화가 어떤 법칙에 대해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였기 때문에, 바울은 디모데가 할례를 받는 것을 허락하였다. 또 자신도 예루살렘 성전에 나아갈 때 나실인의 청결의식을 따랐다. 설사 이러한 전통적 의례가 무엇인가를 더하게 할 수는 없었지만, 그는 그것을 존중하였고, 어느 정도 타협하였다. 그가 말한󰡐대상에 따라 그의 법도를 따르라󰡑는 원칙을 적용하였던 것이다.

5) 개조성 : 그리스도의 구속은 전 세계를 향한 것이다. 따라서 전 세계는 그리스도의 구속하심으로 말미암아 이미 신기원으로 들어섰다. 세상은 비록 완전한 구속을 얻지 못하고 있지만(롬8:19~22), 여전히 새 하늘과 새 땅의 강림을 기다리고 있다(벧후3:12~13). 그러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주의 택하신 백성들 사이에는 새로운 관계가 생겨났다(엡2:11~18). 교회 안에 새로운 문화가 출현한 것이다. 오순절 성령 강림직후, 성도들이 모든 물건을 나누며 경건한 생활을 추구했던 것은 그 좋은 예이다(행2:43, 47). 그리스도에 속한 무리가 당시 문화에 끊임없는 충격을 가하여(벧전2:11~12), 그리스도 신앙을 핵심으로 하는 일종의 사회관계를 건립하였던 것이다(엡5:20, 6:9, 골1: 3:1~4, 1장, 벧전2:13~3:7). 
 따라서 '교회는 문화의 선봉이어야 하는가?' 라는 문제는 결코 간단한 답안이 있을 수 없다. 상술한 성경의 예가 보여주는 바와 같이, 여러 문화 요인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말세가 창조 시기의 이상을 회복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아직 타락한 세상 속에 살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말세는 비록 눈앞에 다가왔지만 아직 실현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이 '미연'의 상황 하에서, 특히 기독교 신앙을 생활의 기초를 삼고 있지 않은 사회 속에서, 우리는 시대 문화의 범람과 변화에 대해 다양한 전략으로 대응하면서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문화 참여와 건의
우리가 문화에 어떤 방식으로 참여하고 직접적인 영향을 발휘할지에 대한 필자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1) 우리가 소속된 문화 혹은 차세대 문화의 내력을 정확하게 알 필요가 있다. 아울러 그 문화 속의 여러 요인들의 장단점을 성경의 관점으로 파악하고, 이 요인들이 문화 발전 중에서 담당하고 있는 역할에 대한 여러 대응책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예를 들면 중국인은 효도를 강조하며, 하늘을 공경하고 조상에게 제사하는 것을 효도의 근본으로 여긴다. 성경 역시 효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성경의 가르침을 토대로 하여 실천적인 면에서 중국인들이 수용할 수 있는 효과적인 효도 방식을 제시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2) 사회문화 속의 건전한 신념과 이상들을 지지해야 한다. 그것은 비록 기독교 신앙에 근거하지 않고 성도들이 줄곧 간과해 오던 것이었으나, 기독교 신앙의 관점에서 인정할 수 있는  지지해야 한다. 즉 교회는 기독교 신앙에 저촉되지 않으면서 사회 건설에 도움이 되는 사상과 행동은 적극 지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민주주의와 환경보호운동 등을 적극 지지하는 것을 들 수 있다. 

3) 절대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요인들에 대해서는, 힘을 하나로 모아 사회 인사 및 정부의 관련 기관을 재촉하고, 해결 방법을 제공하고, 필요한 경우 입법금지까지 실현시켜야 한다. 부정적이고 용납할 수 없는 요인들은 복음전파에 장애가 될 뿐 아니라, 그 자체가 사악한 것으로 공의로우신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로서 용납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시적으로 용납할 수 있는 요인들에 대해서는 법률을 통해 그것들의 영향력을 제한하여, 더욱 심화되거나, 인간의 사회 제도 혹은 의식형태를 강제적으로 착취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면, 낙태나 매춘 등의 사회문제는 타협의 여지없이 완전히 금지되어야 할 것이다. 다만 반드시 법률에 의거해야 하며, 정부 역시 시민교육의 책임을 담당해야 한다. 

4) 교회는 하나님의 뜻에 합하는 사회질서와 제도를 추구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행위가 주변사람에게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는 하나의 단체로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다. 우리가 동의할 수 없는 관념과 행동에 대해서 사회를 위해서 또 다른 선택의 여지를 제시하는 일이다. 성경에 입각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지지기반을 제공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신앙 기반의 문화를 건립해야 한다. 즉 사상, 예술, 생활방식 등 모든 문화 범주 위에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의 위대하심을 나타내야 한다. 교회는 문화 개조에 있어 모범이 되어야 한다.

결론

문화는 고정적이지 않고,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 중에 있다. 교회는 창세에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부여하신 문화 창조의 사명을 감당하고, 이 세대 중에서 타락한 문화를 변화시키는 자가 되어야 한다.󰡐말씀이 육신이 되셨다.󰡑는 것은 교회의 문화 참여에 중요한 모델이 된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류의 문화와 역사 속으로 들어오신 후에도 그 독특성을 잃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교회는 이 세상의 밝은 등불이 되어 용감하게 세상 속으로 돌진하고, 진리와 선함과 아름다움을 위해 일어나야 한다.






요한 | 중국 현지 사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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