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예하고자 함이라(고전9:19~23)'
이 성경말씀 속에서 사도 바울은 복음전도의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다. 바로 어떤 사람을 대하건 그 사람과 같아지라는 것이다. 그 목적은 그 사람을 얻기 위함이다. 이것은 결코 대하는 사람에 따라 거짓으로 가장하라는 것이 아니다. 성령의 인도하심과 복음의 크신 능력에 의지하여 다른 문화 속으로 들어가 이방인들을 얻으라는 것이다. 복음은 씨앗과 같고 문화는 다른 배경과 신분을 가진 사람과 같다. 복음은 변하지 않지만 문화는 다양하며 지역에 따라 차이가 난다. 복음전도자는 어떻게 해야 그 대상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여 백배의 과실을 얻을 수 있을까?
오늘날 중국교회는 크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더욱 부흥하고 있고, 선교가 나날이 중시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보다 적극적이고 계획적이며 전술적으로 선교활동을 펴나갈 수 있을까? 이러한 이유로 신학대학이나 교회가 선교와 관련된 체계적인 지도활동을 진행하여 매우 가치있는 첫걸음을 내딛기도 했다. 우리가 기독교선교학을 탐구하려한다면 반드시 선교의 역사를 연구해야 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선교활동 중에 선교가 차지하는 지위 또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임을 발견하였다.
그리스도와 문화 선교와 문화의 관계를 언급하기에 앞서 문화의 특징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있어야 실질적인 토론을 진행할 수 있다. 이에 몇 가지 방면으로 연구 분석하고자 한다.
1. 문화의 정의
문화란 무엇인가? 이것은 사람에 따라 견해를 달리하는 문제다. 일반사람들은 유명한 작가의 책을 읽고 고상한 음악을 감상할 줄 알고, 뛰어난 예술품을 감상할 줄 아는 사람을 문화적 소양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관념 속의 문화는 사회 엘리트층의 행동패턴이다. 그러나 사실 그렇지 않다. 하나님이 인류를 창조하셨고 문화는 인류에 의해 생성된 것이다. 대영백과사전(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영어권에서 가장 오래되고 방대한 일반 백과사전)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인류사회가 야만사회에서 문명사회에 이르는 과정에서의 노력의 성과가 각 분야 즉 과학, 예술, 종교, 도덕, 법률, 학술, 사상, 풍속, 습관, 기구, 제도 등에 종합적으로 나타난 것을 문화라고 한다.로잔 세계복음대회의 Willow bank보고에는 문화에 대한 종합적인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렸다.문화는 총체적인 신념(신 또는 종말에 대한 의미), 가치(진리, 좋고 나쁨, 아름다움과 추함), 습관과 풍속(언어, 행위, 복식, 일 등) 그리고 조직(정부, 법정, 학교, 교회 등)이다. 이러한 요인들은 사회적 결합을 가능하게 하는 동시에 사회에 존엄성과 안정감, 지위와 연속성을 부여한다.문화는 종합적인 체제로 신념, 가치, 풍속과 이러한 관념, 가치 풍속이 표현된 제도를 포함한다. 또한 공동체 의식, 존엄성, 안정감, 계속성으로 전체 사회를 긴밀하게 연결한다.
2. 문화의 범주
문화의 범주 안에 있는 것은 선교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예를 들어 물질문화(의식주와 교통), 사회문화(정치, 가정, 사회제도), 정신문화(언어, 문자, 종교, 풍속습관, 예술, 음악) 등 따라서 문화의 범주 안에서 수용이 가능한 풍속과 습관의 분별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1) 수용할 수 없는 풍속․습관 : 복음에 완전히 위배되는 풍속과 습관, 우상숭배, 사술(邪術) 인간사냥, 제사(祭祠) 창기(娼妓) 등 현상.
2) 일시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풍속․습관 : 조직의 습속으로서 잠시 용인할 수 있으나 점차 소멸되어야 할 것, 계급세습 제도, 일부다처제 등 혼인전통.
3) 수용이 가능한 풍속․습관 : 품위 유지에 필요한 것, 이러한 습속은 도덕과 무관하다. 따라서 어떠한 수정없이 보존 가능하다. 음식과 목욕에 관한 습관, 이성간의 예절, 두발과 복장 등, 수용이 가능한 풍속과 습관은 버릴 것이 아니라 불결한 요소만 제거하고 기독교적인 의미를 더하면 되는 것이다. 로잔언약(The Lausanne Covenant)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복음은 어느 한 문화가 다른 문화보다 우월하다고 가정하지 않는다. 복음 그 자체로서 진리와 공의의 기준삼아 모든 문화를 가늠하며 또한 각 문화가 지닌 도덕적 절대성을 유지한다." 요컨대 수용할 수 있는 문화적 조건 하에서 선교를 할 때는 엄밀한 비판을 거친 후 대화를 통해 상대방의 입장과 문제를 이해하고, 심도 있는 토론을 거쳐야 비로소 적절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고, 선교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이다.
3. 문화의 변천
문화역사학자 도슨(Dawson)은 모든 문화는 서로 다르지만 확장하고 변화할 수 있고 순응하고 융합할 수 있다고 보았다. 도슨은 한발 더 나아가 문화전통은 세대를 거쳐 전수되고 문화수준이 높을수록 축적된 문화전통도 많아진다고 지적했다. 많은 사람들이전통을 보수적인 것 장애가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도슨은 오히려 전통은 변화를 일으키는 주요 통로라고 해석한다. 전통 그 자체가 자동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두 종류 이상의 문화가 서로 접촉했을 때 그 가운데 변화의 절차와 기제가 마련되고 새로운 문화가 생성된다는 것이다. 동시에 도슨은 근대인류학자들이 문화발전에 대한 토론을 할 때 '내재적인 진화'가 아닌 '외부적 요소에서 비롯된 확산'에 더욱 편중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우리가 '문화 확산'이라고 말할 때 실제적으로 가리키는 것은 일종의 문화전통으로서 다른 문화전통 안에서의 확장 또는 교류이다.
현재까지 문화인류학에서 밝혀낸 문화현상은 6천 종을 넘는다. 어떠한 문화든지 모두 두 가지의 경향을 보이는데 변화에 대한 거부와 변화의 추구가 그것이다. 문화변화에는 그 수준과 속도, 방식에 따라 수많은 부류가 있다. 한편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요소를 받아들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과거의 것을 잃어버린다. 이러한 변화에 규칙을 전혀 찾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즉 전체 문화의 발전은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사회가 선택하게 되는 어떤 사상이나 태도 및 행동은 전체 문화의 정신과 분리되어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문화의 변천은 기본적으로 지식과 태도의 변화로서 사회행동에 관한 새로운 사상의 생성과 해석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변화에 유리한 요인에는 사회 보편적으로 변화를 추구하는 심리 행동과 탐색의 자유, 신약전통의 우열 대비, 천재와 인재 등이 있다. 문화의 확대라는 측면에서 주의할만한 요인에는 문화접촉이 이루어지는 대상 집단의 사회적 지위, 문화 접촉의 밀도, 문화 확산 유도 그리고 문화를 전달받는 집단의 관념이확산가능성이 있는가 하는 것들이다.
'전 세계를 향해 복음을 전파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그 어느 책도 이 문제에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한다. 나라마다 문화마다 다르고 시간과 장소에 따라 환경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21세기는 그 이전의 역사 세대와 다르기에 창조적인 복음전파방법을 부단히 발굴해야 한다. 그러나 모든 그리스도인이 주의해야 할 점이 있는데 '복음의 본색화(本色化)'에는 이교도화의 위험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경의 진리는 영원히 변치 않음을 온전히 믿어야 한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행1:16)'
4. 그리스도와 문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 14)' 잘 알려진 이 말씀은 우리에게 위대한 진리를 알려준다. 즉 예수님은 문화보다 높이 계시고 문화를 포함하기도 하고 문화를 초월하기도 한 존재이실 뿐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죄인들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문화 속으로 들어오신 분이라는 것이다.
니버(Niebuhr)의 「그리스도와 문화」는 '그리스도와 문화의 관계'를 다섯 가지 유형으로 제시한다. 그 유형들은 대체적으로 역사를 주도하는 차례와 배열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 다섯 가지 태도는 모든 시대마다 동시에 출현하였고 또한 각각 이론적 근거를 갖추고 있다.
1) 문화에 대립하는 그리스도 : 거절의 태도
이런 입장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만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문화를 배척한다. 문화는 타락하고 곧 멸망할 세상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신비주의 경향과 영성운동의 추세를 가지고 있다.
2) 문화 안의 그리스도 : 친밀한 태도
이러한 입장은 상술한 것과 정반대의 입장이다. 이러한 관점을 지닌 사람들은 문화와 교회의 완전한 융합이 가능하며, 그 어떤 긴장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긴다.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하고자 하는 가치는 이미 최고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이런 입장의 최대 약점은 기독교문화와 다른 문화를 비교 판단할 때, 문화의 '기능'이 아닌 '형식'으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기능'과 '동기'로 문화를 비교해야 기독교 정신과 부합하는지를 정확히 따져볼 수 있을 것이다.
3) 문화 위에 있는 그리스도 : 종합적인 태도
이러한 입장의 사람들은 종합적인 태도를 취한다. 이들은 문화와 하나님의 권위성을 모두 존중하며 상대적인 것을 절대화하는 경향이 있다. 또 '그리스도'를 제도화하여하나님이 ○○문화를 제창하셨다.라는 잘못된 입장에 빠지곤 한다. 예를 들어 은혜와 문화를 일치시킬 때 문제를 야기하는데, 즉 그리스도와 문화를 하나로 연결하려고 시도하고, 영생과 순간을 단일 계통으로 놓는 등으로 항상 상대적인 것을 절대화시켜 버린다.
하나님을 향한 목적과 인류에게 필수적인 자연의 질서가 어떤 문화의 유한한 이성적 해석에 의한 질서와 동등하게 취급될 수 있다. 인간의 유한한 이성과 행위를 하나님의 필요 및 목적과 대등한 위치로 끌어올린다. 상대적인 문화가 절대화 되는 위험을 안게 되는 것이다.
그밖에 또 다른 확대 가능성으로,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문화 위에 존재할 뿐 아니라 심지어 문화 밖에도 존재한다고 여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높은 곳에 계셔서 세상 일과는 동떨어진 신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스스로 복을 구하는 수밖에 없다. 이러한 신관은 세상의 인문주의자들의 인생관과 비슷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의 생각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4) 역설적 관계인 그리스도와 문화 : 이론적인 태도
그리스도와 문화의 종합주의에 심하게 반대하는 사람들은 종종 선악의 이원론적 관점을 강조한다. 그들은 신은 절대적으로 선하며 인류와 문화는 악하다고 여긴다. 이런 입장의 사람들은 인류가 완전히 타락한 존재이며 구제할 길이 없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것을 통찰하시는 절대 선한 존재이시며 그리스도인들은 두 세계 가운데 생활하고 있다. 일종의 '패러독스' 혹은 '이율배반적'인 긴장감 하에 처해 있는 것이다.
니버의 이러한 이원론적 관점은 그리스도인의 경험과 관계가 깊다. 상술한 세 가지 유형과 비교해 볼 때 하나님과 인간, 은혜와 죄의 패턴과 특성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그리고 경험과 행동패턴에 대한 강조는 일종의 도덕적 형태를 초래하는데, 그것은 특별한 미덕 항목에 의해 제정되는 도덕적 형태가 아니라, 바로 생활에서 비교적 주의를 기울이는 행동형태인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면서 전 인류의 한 구성원이다. 이 때문에 그들은 문화에 속할 뿐 아니라 세상일에 전혀 관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스도인도 세상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타락한 이 세계가 정해 놓은 제도에 참여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 제도 혹은 조직이 완전하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인류의 모든 제도 혹은 조직에 대해 비관적 견해를 가지고 있다. 다만 죄로 인해 모면할 길이 없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을 가진 사람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평형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나중에 그들은신에 속한 것과인간에 속한 것이 두 가지 영역을 평행선상에 두고 각기 독립된 영역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그 외에도 이러한 입장의 사람들은 문화에 대해 소극적이고 비관적인 태도를 취하기 때문에 개혁정신이 없는 문화의보수파로 간주되기 쉽다. 문화와 제도는 일시적이고 세속적인 것이며 영원히 완전할 수 없는 것인데 무엇하러 급진적인 태도를 취하겠는가? 비록 그들의 영향으로 사회는 분명 개선되었지만 그것은 그들이 의도한 계획이나 활동에 의한 것은 아니다.
5) 문화를 변화시키는 그리스도
마지막은 니버가 '촨화파이(轉化派)'라고 부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상술한 이원론적 관점을 지닌 동시에 문화가 '전화'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그들의 관점은 주로 3가지 신학적 신념에 의거한다.
① 창조론적 관점 :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은 본래 아름다운 것이었으나 죄의 침식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인류의 문화 가운데서 계속 창조의 역사를 행하고 계신다.
② 인간 타락의 관점 : 문화는 죄로 인하여 오염된 것이지 본질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그것을 구속하시려고 하시지 대체하거나 소멸하려고 하지 않는다.
③ 역사 발전적 관점 : 인류의 역사는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행위이며 인간이 하나님께 호응한 결과이다. 따라서 역사적 발전을 통해 하나님의 구속의 의미와 인간에 대한 기대를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이런 관점을 지닌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는 문화와 사회 속에 살고 있는 인류의 창조자이다. 이 창조는 문화와 사회를 떠나서 이루어진 적이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문화 위에 계시며 문화를 재창조할 수 있는 관점에 찬성하지만, 그리스도가 문화로부터 독립하여 나오셨다는 점에는 찬성하지 않는다.
복음을 다른 문화 속에 뿌리내리게 하려면 교회는 수용해야 할 문화와 거절해야 할 문화를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그 지역의 문화 습성이 성경의 계시에 합당할 경우에만 수용해야 하는 것이다. 성경 속에는 많은 이문화가 기록되어 있다. 린안궈(林安國) 목사는 이사야서 13장에서 23장에 근거하여 10개국의 문화를 나열하였다. …1.바벨론 문화 : 인문 문화, 2. 앗수르 문화 : 압박 문화, 3. 블레셋 문화 : 악독 문화, 4. 모압 문화 : 교만 문화, 5.시리아 문화 : 우상 문화, 6. 고실 문화 : 전쟁 문화, 7. 애굽 문화 :사악한 영에 사로잡힌 문화, 8. 에돔 문화 : 방종 문화, 9. 아랍 문화 : 물질 문화, 10. 두로 문화 : 금전문화… 하나님은 개인의 구원에 관심을 가지실 뿐 아니라 문화와 사회도 역시 구속(救贖)받기를 기대하신다. '태초에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1:31)'
선교와 문화 사랑의 하나님은 전 인류와 화목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태초와 같이 인류와 화목하게 지내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를 첫 번째 선교사로 세상에 파송하셨다. 세상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요 자기의 죄를 인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게 하셨다.
선교와 문화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그러나 선교의 가장 큰 장애는 기독교가 외래의 것으로 취급된다는 데 있다. 이로 인하여 선교를 문화로 포장하곤 하였다. 선교사의 주요 사역은 복음의 진리로 현지인들의 세계관과 인생관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들의 세계관을 변화시켜 우상에서 떠나 하나님께 돌아오게 만드는 것이다. 그들의 가치관을 변화시켜 하나님 안에 그들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를 알게 하는 것이다. 그들의 인생관을 변화시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남에게 유익을 끼치게 만드는 것이다. 인류의 세계관과 가치관 인생관에 관한 모든 행위는 그 배후 사상에서 나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음식, 집, 물질적 이익 등 따라 선교사는 사람들의 행위를 변화시키기 위해 먼저 그들의 사상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1. 선교사명
선교는 인간의 관점에서의 전략이 아니라 반드시 성경에 기초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불변의 진리로 무장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 인도되고 사용되어야 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3:16, 17)" 우리가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또한 일생의 주인으로 시인한 이상, 우리는 이 오묘한 구원의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전할 소망을 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감동하시고 부르시고 환상을 주시는 것은 구속의 은혜요 사랑을 모르는 사람들을 향해 복음의 소식을 나누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롬5:5)"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소망은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복음의 통로가 되어, 이 말씀처럼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호칭받도록 하는 것이다.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후5:18~19)"이 성경구절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사자가 될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 얼마나 거룩한 부르심인가!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당부하신 복음의 사명은 반드시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다음의 말씀은(마28:18~20, 행1:8, 요13:34, 15:12, 마6:33, 막12:30~31, 요20:21) 모두 주께서 주시는 사명과 응답이다.
2. 문화사명
선교의 진짜 문제는 부적절한 성경 응용에 있다. 예를 들면 신약, 시편 등 성경의 특정부분만 중시하는 것이다. 사실 성경은 신약의 복음사명만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문화상의 부르심까지 포괄하고 있다. 구약에서 신약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이 인간에게 부여하신 문화적 책임과 의무가 쓰여 있다. 하나님이 인류를 창조하신 후 그들을 축복하시며 곧바로 문화적 사명을 부여하셨다. 다음의 성경구절을 살펴보라.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1:27~28)"
천후이원(陳惠文) 박사는 창세기 1장에서 4장 중에서 하나님께서 인류가 문화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세우신 몇 가지 제도를 정리하였다.
1) 혼인제도 : 하나님은 먼저 아담을 창조하시고 혼자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므로 그를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고, 다시 하와를 창조하사 아담에게로 이끌어오셨다(창2:23~24) 이에 아담과 하와는 인류 제1호 부부가 되었다.
2) 종족제도 :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말씀하셨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온 땅에 가득하라' 하나님은 인류가 자손을 낳아 양육하고 후대를 번성하길 기대하셨다. 아담이 지어준 하와라는 이름은 바로 모든 생명의 어미라는 뜻이다. 또 다른 면으로, 가인이 아우 아벨을 살해한 원인은 하나님을 위한 제사에 있었다.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종교제도를 매우 중시했음을 알 수 있다.
3) 노동제도 : 하나님은 아담에게 자녀를 낳고 양육하는 사명을 주셨을 뿐 아니라 '땅을 다스리는' 관리의 책임도 맡기셨다.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1:28)'라고 분부하셨다. 하나님을 대신하여 에덴동산을 관리하고 지키라(창2:15) 또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 아담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희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창3:17, 19)' 이때부터 인류는 에덴동산을 떠나 노동력으로 살아가야하는 노동제도가 시작되었다.
4) 사회제도 : 하나님은 인간에게 하늘과 땅과 바다 속의 생물들을 관리하는 책임을 맡기셨을 뿐 아니라 각종 생명체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권한도 주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창2:19~20)' 심지어 아담은 아내의 이름도 지었다(창3:20). 인류 사회에 제도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인류 가운데 종교가 만연해진 후 사회제도는 더욱 복잡해졌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모든 것들은 아름다웠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의 형상대로 인류를 만드시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관리하는 문화사명을 주사 세상의 아름다움을 계속 유지하기를 희망하셨다. 안타깝게도 인류의 시조는 뱀의 유혹에 넘어갔고 '하나님과 같이 선악을 알고자'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다. 결국 뱀도 땅도 저주를 받았고 인간 역시 일생동안 수고해야만 하게 된 것이다. 시조의 범죄로 인해 문화 사명은 더욱 복잡해졌다. 하나님이 십계명을 반포하사 사회제도와 도덕 윤리를 규정하신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만민 중에 그의 자녀 삼으셨기' 때문이다(출19:5) 다시 말해 문화사명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을 대신하여 세상을 관리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이다.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시24:1)요셉이 애굽 땅에서 총리가 되어 바로를 위해 애굽 전역을 다스렸던 것 역시 문화사명의 책임을 이행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기독교적 문화관점은 무엇인가? 기독교 문화관은 기본적으로 기독교적 인간관 위에 세워진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으며 사람의 문화사명은 다음의 4가지 단계로 나뉜다.
1) 창조시기: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문화사명으로 이 세상을 관리하는 것이다.
2) 사람이 범죄한 후: 그의 창조능력은 더 이상 하나님의 영화를 위해서가 아니다. 자기의 문화를 창조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사람의 창조는 죄의 소산물임을 부인할 수 없다.
3) 문화의 갱신 단계이다: 사람은 반드시 우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의 갱신을 얻은 후에 비로소 살아있는 영이 사상과 생활 속의 성화를 경험할 수 있다. 이러한 정책은 개인뿐 아니라 사회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따라서 복음문화는 문화갱신을 가져오는 중요한 경로이다.
4) 네 번째는 기독교인은 문화의 발전에 있어 지도적인 지위에 있어야 한다.
선교와 중국문화 선교와 문화사명에 대한 토론을 거치면서 우리는 이 두 사명이 완전히 성경적 기초와 가르침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 수 천 년의 문화역사를 가지고 있는 중국이 선교 중국이 되기 위해 극복해야 할 어려움과 도전은 무엇일까? 이것은 모든 중국기독인이 사고해야 할 문제이자 현재 중국교회가 대면해야 할 도전 중의 하나이다. 다음에서 우리는 쟈오톈언(趙天恩) 목사의 견해를 인용해 이 방면의 몇 가지 문제 및 도전들에 대해 토론하고자 한다.
1. 중국문화의 특색
신학적 관점에서 볼 때, 중국문화는 비록 역사가 유구하고 장점이 많지만 그래도 역시 아담이 죄를 범한 후의 문화이다. 문화의 창조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담의 문화적 성취에 대해서는 인정해야 한다. 중국인의 문화는 중국인의 성격에 이르기까지 모두 안정적이며 체념적이고, 또 한편 소박하고, 집단적 경향을 가지고 있다. 중국인의 사유방식은 구체적이지 추상적이지 않다. 실질적인 성취를 중시하고 지나치게 이성적이다. 인간관계, 인륜, 도덕을 중시한다.
2. 중국문화와 복음의 접목
역사적인 교훈에 의해 우리는 정권이 복음전도자에 우호적일 때 복음사역이 비교적 순조롭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복음전도자는 자신이 처한 환경 중에서 다른 사람들 특히 정치권에 좋은 인상을 주도록 주의해야 한다. 중국은 각 시대마다 정통사상이 다르다. 따라서 복음을 전할 때 현 중국 사회의 정통사상, 정치상황, 민간종교 및 민간사상 등을 잘 이해해야 한다. 중국의 역사 발전 과정 중에서 발견한 복음과 문화의 4가지 접목 방식은 다음과 같다.
1) 적응 : 표면상은 허용되기 위해서지만 실제로는 양보이다.
2) 타협 : 사상적, 신학적 타협을 말한다.
3) 대립 : 사상과 실제 모두 양보하지 않는다.
4) 개조 : 장기적인 방침을 세운 후 문화를 그리스도화 하는 것이다. 우리는 후자가 비교적 성경의 입장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3. 복음은 현세의 소식이다
오늘날은 컴퓨터시대요 현대화의 시대이다. 사회의 현대화는 인구의 대도시 집중, 상업의 발달을 가져왔고, 민간문화의 세속화를 가져왔다. 현대인은 고독한 환경 속에 살면서 주변인의 생활을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우리는 현대인에게 생활과 시대가 요구하는 소식을 전해야 한다. 그들이 현대의 사회 상황을 해석할 수 있고, 복음에 근거해 생명과 사회와 역사를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4. 중국문화의 갱신
중국인 기독인은 중국문화와 복음의 관계에만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 중국인과 국가와 민족의 장래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중국은 현재 문화적 공허를 겪고 있다. 유교사상은 일찍이 붕괴되었고, 마르크스 레닌 사상에 대한 믿음도 잃었다. 이런 상황 하에서 기독교인들은 중국문화의 미래를 위해 어떤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까? 이것은 우리가 깊이 있게 사고해 보아야 할 일이다. 전 세계 중국인 교회는 '중국복음화, 교회국도(國度)화, 중국문화 기독교화'라는 공동의 방침을 세워야 한다.
5. 복음전도인의 소질과 수양
복음전도자는 '말씀이 육신이 됨'을 경험해야 한다. 그래야 복음전파의 매개체가 될 수 있다. 복음전도자는 그리스도의 생명, 믿음, 소망과 사랑을 생명의 총강으로 삼아야 한다. 성경에 입각한 인격과 지혜와 겸손과 정확한 판단력과 사랑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복음전도자는 서양의 진(眞), 선(善), 미(美)와 동양의 지(智), 인(仁), 용(勇) 6가지 덕목을 지녀야 한다. 복음 전도자는 주의 은혜를 의지하여 영적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한 시대의 복음전도자는 주를 섬기는 경건한 생활을 하며, 넓은 세계관, 역사적 책임감, 민족적 동질감을 가져야 비로소 민족을 빚어가는 복음행렬에 참여할 수 있다.
6. 복음과 문화의 전략
결론적으로, 효과적이고 현실적으로 중국의 복음화와 문화의 그리스도화를 달성하려면, 이러한 비전을 확장하여 하려면 이러한 비전을 모든 교회에 전달해야 한다. 이 시대의 중국인 성도들이 중국의 복음화 즉 중국인 복음화를 교회사역의 핵심으로 삼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동시에 규모 있는 교회들은 선교비전과 선교이상을 품은 그리스도인들을 격려하고 훈련하고 무장시켜 파송해야 하며, 그들에게 물질적인 지원과 아울러 기도로 후원해야 한다.
우리는 복음을 쉽게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 복음의 진상을 왜곡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것은 도리어 복음을 약화시킬 뿐이다. 혼합주의는 기독교와 인간의 종교를 뒤섞어 놓은 것이다. 혼합주의는 사람들이 죄를 깨닫고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완성된 구속의 진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는 데 방해가 된다. 이것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일까?'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종교제도 하에서 선하게 살기만하면 누구든 하나님께 용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은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조롱이다. 만약 구원의 다른 길이 있다면 그리스도는 왜 세상 사람들을 대신하여 죄를 담당하셨겠는가? 예수님은 말씀하고 계신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사도 베드로도 설교 중에 말하였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4:12)"
린안궈 목사는 중국인 선교가 대면해야 할 문화문제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며, 수십 년 선교경험에 비추어 예리한 견해를 제시했다. 린 목사는 중국인의 선교가 대면해야 할 문화문제로 주로 다음과 같은 것을 손꼽았다.
1) 심리문제
2) 국제문제
3) 민족자아중심문제
4) 모험문제
5) 효도문제
6) 자녀문제
7) 신분문제
8) 위험문제
9) 직업문제
10) 물질문제
또 그는 복음이 문화 속에 뿌리내리고 자라려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원칙을 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1. 성경은 문화의 측량계이다.
2. 문화는 늘 변하지만 주님만은 변하지 않으신다.
3. 문화는 대부분 중성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