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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4.28  통권 101호  필자 : 이 훈  |  조회 : 1563   프린트   이메일 
[선교일언]
순례자의 영성을 회복하라

하나님께 뿌리 내리기
순례자는 여행하는 사람이다. 한 곳에 정착해서 사는 정착민과는 다르다. 정착한 사람이나 정착하려는 사람은 이미 순례자의 영성을 잃어버린다. 왜냐하면 순례자는 거룩한 것을 향하여 계속해서 여행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크리스천들과 교회가 주님께로부터 받은 소명은 정착하는 것인가, 순례하는 것인가? 진지하게 성경을 연구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면 하나님의 백성은 나그네요, 순례자다. 우리는 정착하도록 부름 받은 것이 아니라 순례의 여행을 하도록 부름 받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크리스천이나 교회는 정착하는 데 관심이 많다. 마치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보다 약속의 땅 자체에 마음을 뺏겨 정작 정착한 다음에는 소명을 잃어버린 이스라엘처럼 크리스천들이나 교회나 정착에 마음을 쏟고 있는 것 같다.

“뿌리를 내려야 한다. 기반을 잡아야 한다. 파워를 가져야 한다. 우리가 주인 의식을 갖고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 먼저 안정되어야 한다." 이런 주장을 말하는 이들이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말들은 주님께로부터 배운 말이 아니다. 

순례의 길을 가기보다 정착해서 뿌리내리고 기반을 잡고 파워를 가진 정착민을 부러워해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크리스천과 교회는 소명을 잃어버리고 세상에 타협한 모습을 갖기 시작한다.

선교지로 떠난 사람들은 분명 정착하기보다 순례의 여행을 시작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선교지에서 정착하고 뿌리내리려는 모습이 나타날 수 있다. 거기서 기반을 잡고 안정감을 누릴 때, 사역의 주도권을 갖고 파워를 행사할 때, 대화와 나눔보다는 배타적 주인의식으로 계획과 의사 결정을 독점하게 될 때, 그곳을 떠나기 어려워할 때, 그는 선교지에서 이미 순례자의 영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정착하려는 마음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누구나 정착하고 싶어 한다. 낯선 곳으로 이사를 가더라도 정착을 꿈꾼다. 설사 그 꿈을 생전에 이루지 못해도 다음 세대는 꼭 정착하기를 기대한다. 정착하려는 것은 모든 인간의 자연스런 바람이다.

하지만 성경은 정착 이야기가 아니라 여행 이야기, 순례 이야기이다.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여행한 이야기들이다. 그 믿음의 여행인 순례를 통해 땅에 정착하여 뿌리를 내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뿌리 내리는 것을 배운다. 한편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한곳에 정착해서 편안하게 살아가는 인생이 아니라 순례의 여행을 통해 끊임없이 나를 비우고 나를 넓혀서 하나님의 눈으로 숲 전체를 보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며 사는 것이다.

정착하면 부패한다
그렇기에 정착하면 안 된다. 정착하려는 마음은 우리를 그리스도로부터 분리시킨다. 정착하려는 마음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기반을 잡고 파워를 갖는 것을 축복으로 생각하고 즐기는 모습으로, 어떻게 해서든 좀 더 편한 삶을 추구하는 모습으로, 자녀들의 사회적 성공을 꿈꾸는 모습으로, 나보다 앞선 사람을 부러워하고 뒤쳐진 사람을 열등하게 생각하는 비교와 경쟁의 모습으로, 변화를 싫어하고 나이가 들수록 옛날 방식대로 살아가려는 모습으로, 사람들의 인기를 얻으려는 모습으로, 더 소유하려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오늘날 교회들도 정착하려고 한다. 성전 건축과 증축에 마음을 쏟는 것으로, 다른 교회들과 경쟁하며 숫자와 세력을 늘리려는 것으로, 항존직을 중요시하는 것으로, 수직적이고 계급적인 관계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 등이다.

정착하면 부패한다. 구약에서도 성전 제도권 안에 정착한 사람들은 거의 예외 없이 부패한다. 평생직인 레위인과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잘 받지 못한다.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도전했던 선지자들은 오히려 제도권 밖에 있던 사람들이었다. 예수님 당시에도 성전이나 회당 지도자들은 텃세만 부리지 하나님의 뜻을 바로 헤아리지 못했다. 정착하면 눈이 어두워지고, 배타적이 되고, 세속적인 파워를 갖고 부패하게 된다.

순례자가 되려면 건축과 같은 몸 부풀리기에 마음을 쏟아서는 안 된다. 막상 멋진 건물이 세워지면 그 건물 중심이 되고 정착하게 된다. 항존직이란 말도 없어야 한다. 어떤 직책이든 평생직이 되면 텃세와 파워를 가진 정착인의 약점을 갖게 된다. 

예수님을 따르고 순례의 길을 가는 것이 평생의 소명이지, 직분을 갖고 사역하는 것이 평생의 소명이 아니다. 모든 수직적인 관계를 고쳐야 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누구도 선생(랍비)이 되거나 아비가 되거나 지도자가 되지 말라고 하셨다. 모두가 형제요 자매이다. 은사와 역할이 다를 뿐이지 위와 아래가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처럼 몸을 가볍게
정착하여 뿌리를 내리려는 인생들 사이에서, 경쟁력을 키워 파워를 가지려는 세상에서, 우리는 다른 선택을 하도록 부름 받았다. 정착한 사람들 틈에 있지만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갈망하며 여행하는 나그네와 순례자로 살아가는 크리스천이 되도록 부름 받았다. 정착하려는 몸부림으로 경쟁하고 다투는 세상 속에 있지만 나눔과 협력과 섬김을 통해 조화를 이루는 대안 공동체가 되도록 부름 받았다. 

정착하려는 크리스천들을 보면 슬프고 낙심이 된다. 예루살렘 성을 보고 우셨던 예수님의 어두운 얼굴이 떠오른다. 순례의 길을 가려는 크리스천들을 보면 기쁘고 희망이 솟는다. 따라오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며 기뻐하셨을 예수님의 밝은 얼굴이 떠오른다. 예수님과 함께 늘 몸을 가볍게 하고 순례의 여행을 떠나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 좋다. 



이 훈| TIM 선교사
출처| 꿈하나(두란노해외선교회:TIM) 2007년 3월호 vol.30 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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