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철학자 버틀란드 러셀은 「중국의 국민」이라는 책에서 “중국 국민은 인내심이 가장 강한 국민이다. 다른 국민이 10년 앞을 생각할 때 중국 국민은 100년 앞을 생각한다. 중국 국민은 본질적으로 불멸의 국민이며 성급하게 서두르지 않는 국민이다.”라고 말했다. 독일의 문호 헤르만 헤세 역시 「헤세의 편지」에서 “때가 되면 중국 정신이 일본 정신을 이길 것으로 깊게 믿고 있다.”라고 했다. 이러한 명사들의 언급은 중국인들이 참고 기다리는 인내심이 강하며, 때가 되면 결국 자신들의 목표를 달성하고야 마는 불굴의 정신이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중국에 가면 곳곳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중국인들을 볼 수 있다. 열차 표를 살 때도 기다리고, 식당에서도 차례를 기다리고, 교통이 막힐 때도 묵묵히 기다린다. 워낙 인구가 많아 줄을 서서 기다리지 않으면 통제불능의 상태에 빠지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기다리는 그들의 모습에서 조급하거나 괴로운 표정을 찾아보기 힘들다. 안절부절 하거나 다급해 하는 표정이 아니라, “때가 되면 되겠지”라는 기다림에 익숙하면서도 무표정한 얼굴들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중국에도 새벽 인력시장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새벽 4시 무렵이면 인력시장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 일감을 구하는데, 동이 틀 때까지 일감을 얻지 못한 근로자들은 그날은 공치는 날이라고 여기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각각 제 갈 길로 돌아선다. 중국에서도 인력시장이나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한 길가에 일용직 근로자들이 새벽부터 진을 치고 일감을 기다리는데, 특이한 점은 ‘수리공’, ‘전기공’ 등 자신의 주특기를 쓴 푯말을 목에 걸거나 땅바닥에 펼쳐놓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전 내내 일감을 기다린다. 끈질기게 기다리는 그들의 모습은 우리와는 다른 점이다. 

하루는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해 놓고 기다리는데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도 주문한 음식이 나오지 않았다.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식당이라 종업원들의 행동도 서툴고 느린 점을 이해한다고 해도, 나는 무척 허기진 상태였고 약속도 있었기 때문에 계속 기다리는 것이 힘들어 몇 번이나 채근을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시간은 계속 흘러갔고 결국 주문한 지 한 시간이 지나서야 음식이 나왔다. 배고픔과 시간의 쫓김 속에서 한 시간을 기다린다는 것은 정말이지 지루하고 답답하고 화가 나는 일이었다. 그런데 옆 테이블에서 똑같이 한 시간을 기다렸던 중국손님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천천히 음식을 먹고 있었다. 중국인들은 정말로 기다림의 달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적으로도 중국인들은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19세기초 영국은 중국에서의 무역 독점권을 획득하기 위해 아편을 중국으로 대량 수출했다. 그 결과 중국인들의 몸과 마음은 피폐해지고 중국의 은(銀)은 해외로 계속 유출되었다. 그리고 양국 간에 마찰이 증폭되면서 세계 전쟁사에서 가장 부도덕한 전쟁으로 기록되는 아편전쟁이 발생한다. 1842년 중국은 결국 치욕스런 패배 후 가장 불평등한 조약인 난징조약을 체결함으로써, 홍콩 섬은 영국에 할양되어 100여 년 동안 영국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재기를 노리면서 100년 간의 기다림 끝에 마침내 1997년 홍콩주권을 돌려받았고, 1999년 12월에는 포르투갈에 넘겨주었던 마카오의 주권도 회복하게 되었다. 1994년 반환 1천일 전부터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광장에 설치된 전광판의 불빛을 보면서, 홍콩 반환을 기다리는 중국인들의 심정을 읽을 수 있었다. 

중국의 근대사는 특히 침략의 소용돌이로 얼룩져 왔다. 1930년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대륙 침략의 구실로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킴으로써 그 굴절의 역사는 정점을 이루게 된다. 상하이(上海)를 기점을 난징(南京)에 입성한 일본군은 본보기로 중국 주민 30만 명을 죽이는, 우리에게는 ‘남경대학살(南京大虐殺)’로 알려진 ‘난징따투샤(南京大屠 殺)’를 자행한다. 지금도 난징에 가면 당시 살해된 30만 중국인들의 유골이 발견된 곳에 세워진 ‘우화대(雨化臺)’라는 기념관이 있다. 여기에는 당시의 기록 사진과 비디오, 시신들의 유골 등이 전시되어 일반인에게 공개되고 있다. 

중국인들은 극단적인 방법으로 대항하지 않았으며, 지금도 외면상으로는 적개심을 찾아보기 어렵고 마치 지나간 역사를 순순히 받아들이는 자세를 갖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들과 같이 있는 대화를 하다 보면 그들이 극단의 분노를 자제하고 와신상담하며 때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인들은 과격함보다는 ‘두고 보자’라는 의미의 ‘덩저치아오바(等着瞧吧)’라는 말을 새기면서, 치욕의 역사를 초강국이라는 나라로 환원하는 30년, 40년 후의 그 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일본을 방문한 장쩌민(江澤民) 국가 주석이 과거 역사에 대한 일본의 사과를 강도 높게 주창한 것도 미래에 대한 나름대로의 자신감을 보여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3년에 1번 꼴로 전쟁을 치른 민족이기 때문에 웬만한 고통은 인내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도한 침략했던 타민족이 결국은 한족에 동화되어 왔다는 역사를 주시하며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세대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후손들이 이어받아 달성하면 된다는 느긋함 속에서 시간에 대한 초연한 그들의 철학을 느낄 수가 있다. ‘원원유장(源遠流長)’ 즉 ‘수원(水源)이 멀면 흐름이 길다’는 말처럼 차분히 준비하고 유유하게 기다리면서 때를 만들어가는 중국인들의 기지는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이인택/ 울산대학교 중국어중국학과 교수  

※ 이 글은 「차이나 신드롬 속의 진짜 중국- 해냄출판사」에 실린 내용을 출판사의 허락을 받고 발췌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