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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3  통권 230호  필자 : 느헤미야  |  조회 : 1838   프린트   이메일 
[단신]
《십자가를 짊어지고: 중국가정교회역사 1807-2018》를 번역하며


중국 청두(成都)시 이른비성약교회(秋雨圣约教会)의 담임목사인 왕이(王怡)는 1973년 쓰촨(四川)에서 태어났다. 쓰촨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였고, 청두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헌정학자였고 인권운동에도 참여했던 사람이다. 사회적 영향력이 커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그를 ‘주목할 만한 중국인 25인’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그는 2005년 신앙을 갖게 되었고, 2009년에 가르치는 장로(Teaching Elder)로 세워졌으며, 2011년 목사안수를 받았다.

왕이(이하 ‘저자’)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간략히 정리하면 그는 전국 20위권의 중점대학을 졸업한 젊은 엘리트 법학자로, 회심 이후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신흥도시 가정교회 목회자가 된 사람이다. 그랬던 그가 사법부에게 ‘국가정권전복선동죄’와 ‘불법 경영죄’로 징역 9년과 정치 기본권 박탈 3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그가 선고 공판 결과 구속되어 격리된 세상으로 들어간 날, 이 책은 중국 전역과 PDF 파일로 전 세계로 뻗어 나갔다. 그가 이 책의 저작권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중국 정권에 대한 비판으로도 유명했던 그의 설교와 강의는 여전히 온라인 미디어 플랫폼에서 볼 수 있다. 이 책은 원래 그가 그의 교회의 성인주일학교에서 했던 강의를 녹취하여 정리한 책인데, 심지어 이 강의와 동영상도 여전히 온라인에 게재되어 있다.

필자는 중국에 있는 친구가 소셜미디어에서 이 책의 종이책을 어렵게 구했다는 이야기를 보았다. 그리고 이 책을 한국에 소개하고 싶은 한 목사님의 부탁으로 번역에 착수하게 되었다. 사실 번역을 하면서 조심스럽기도 했다. 과거 한 가정교회 사역자의 책이 이름 있는 기독출판사를 통해 한국에 소개된 적이 있었는데, 이후 중국 가정교회의 어르신들이 그를 ‘거짓 선지자’로 공개적으로 선포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가정교회 안에 속하였거나 가정교회를 잘 아는 분들에게 수소문하여 저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안심하고 번역을 계속할 수 있었다.

이 책이 출간된 지 5개월이 지났다. 번역은 한 달도 걸리지 않았는데, 추천사를 받는데 2∼3개월이 걸렸다. 추천사를 받지 않고 이 책이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하고 싶기도 했지만, ‘중국선교’라는 주제 자체가 이미 지나간 트렌드로 인식되는 한국교회의 현실에서, 왕이라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지게 하기 위해서는 신뢰할 수 있는 분들의 추천이 필요했다. 감사하게도 한국, 중국, 대만, 홍콩, 미국, 캐나다 등 여러 지역의 목회자와 학자들이 이 책을 실제로 읽고 추천사를 써 주셨다. 그리고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소개해주신 분들도 계셔서 감사하게도 이 책은 알라딘에서 종교/역학 분야의 1위를 차지하기도 하였고, 교회와 학회에서 이 책으로 스터디를 하는 곳도 생겨났다.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이 책을 읽게 하였을까? 이 책의 목소리는 과연 잘 전달이 되었을까?

저자는 가정교회를 1949년 이후 생겨난 핍박의 산물로만 보지 않는다. 사실상 1807년 로버트 모리슨이 중국에 발을 내디딘 것으로 인해 생겨난 중국교회가 가정교회의 특성을 지녔기 때문에, 가정교회 역사는 1807년을 시작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모리슨이 시작한 교회는 개방되지 않은 나라가 겪는 보편적인 현실로 볼 수 있지만, 가정교회 목사인 저자의 가정교회에 대한 관점을 볼 수 있다. 특히 1장에서 언급된 제1~3차 그리스도교의 전래와 제4차 전래의 차이점, 전제군주국에 대한 설명, 중국 문화의 종교혼합주의적 특성 그리고 교안으로 인한 1900년대 중국교회 선교사 자원의 대전환 등의 통찰과 역사적 기술은 매우 유용하며, 중국과 중국교회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를 제공한다.

이 책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하나의 전제는 그가 가정교회와 삼자교회를 근본주의 대 자유주의, 복음주의 대 자유주의로 보는데, 필자는 그것이 유일한 구분법인지에 대한 딴지를 걸고 싶었다. 왜냐하면 이는 ‘하나의 틀’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가 말하는 ‘자유주의’는 근본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스스로와 다른, 그래서 ‘틀린’ 신학 범주를 통틀어서 얻은 결과일 뿐이며, 저자가 생각하는 자유주의는 1910년의 《근본적인 것들: 진리에 대한 증언》(Fundamentals: A Testimony to the Truth)을 문자적으로 따르지 않는 모든 신학적 주장이라고 정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이런 단순한 구별을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자신의 삶의 자리와 신학적 입장에서 소리를 내는 것은 존중받아야 될 필요가 있다. 아울러 그의 주장은 중국 가정교회의 대체적인 입장으로 봐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는 중국의 신학교육과도 연계될 수 있을 텐데, 이런 배경 또한 책의 서술을 통해서 감을 잡을 수 있다. 중국교회의 신학은 공산화와 문화대혁명을 통해서 존재의 제로점에 가까운 데에서 다시 시작한 것이고, 성경을 문자적으로 믿고, 또 그렇게만 믿을 수밖에 없었던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성경이 한 마을에 한 권이 있기도 하였고, 성경 일부만 가지고 있는 사람도 많았으며, 극동방송에서 성경을 읽어 주었는데 그것을 듣고 받아쓰기를 해서 만들어진 성경을 가지고 있는 일도 적지 않았다.

이 책의 여러 추천사에서 볼 수 있듯이 그동안 중국 가정교회가 환난과 핍박을 견디면서 생존하고 분투한 역사가 실려 있다. 여러 사건과 인물들의 이야기에서 전해오는 삶의 간증은 우리 심령에 큰 감동을 준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일은 단지 과거의 간증에 멈춰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톈안먼(天安门) 사태 때 미국으로 건너가서 목회자가 된 장보리(张伯笠) 목사에 따르면, 저자가 목회했던 이른비성약교회는 여전히 정권의 개입이 있다고 한다. 그는 지난 8월 마지막 주에도 한 셀 모임의 현장에 영장도 없이, 신분도 밝히지 않은 사람들이 찾아와 모임을 강제 해산했다고 전했다. 중국 가정교회의 경험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사건이다. 중국 가정교회의 역사에 대한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지 과거의 이야기와 간증을 듣는 데서 머물러서는 안 되며,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현재 상황을 보며, 앞으로의 역사를 어떻게 써 내려갈지에 대해 관심을 갖고 기도하며, 협력으로 이어져야 한다.

물론 필자가 ‘옮긴이 머리글’에서 언급했듯이, 저자가 역사학자가 아니기에 이 책을 순수한 역사서로 보기 어렵지만, ‘간증적 역사회고’로서 구술역사의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볼 수 있다. 수업에서 진행한 내용이라 서술에 비약이 있기도 하고, 삼천포로 빠진 경우도 있으나 최대한 저자의 본뜻을 살리려고 번역에 애를 썼다. 이름과 연도의 오류를 일부 수정하여 반영하기도 했다. 아울러 출판사인 서로북스에서도 교정에 힘을 썼고, 적절한 표현들을 제안해주었으며, 중국과 중국교회에 대한 선이해가 없는 독자들도 이해하기 쉽게 역자주로 처리할 부분을 알려 주었다. 이렇게 여러 번 오가면서 비로소 책이 출간하기에 이르렀지만, 여전히 고쳐야 할 몇몇 부분들이 남아 있기에 전자책 또는 2쇄를 기획할 수 있을 때가 되면 교정하여 반영할 예정이다.

‘책 한 권 읽은 사람이 무섭다’는 말이 있다. 어떤 책이든지 모든 것을 담을 수 없고 그저 자신의 입장에서 주장을 할 뿐이다. 왕이는 그의 자리에서 그의 목소리를 냈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소중하다. 그러나 그가 가진 한계는 여전히 있기에, 이 책은 중국 가정교회를 이해하는 ‘하나의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이 책을 읽는다면 더 유익할 것으로 생각한다.






느헤미야 |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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