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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3.3  통권 271호  필자 : 셰자청(謝家誠)  |  조회 : 2216   프린트   이메일 
[오늘의 중국교회]
기독교와 홍콩 문화 그리고 사회관계 역사에 대한 토론
바이더페이 교수 _일찍이 성공적으로 당국과 소통한 (홍콩)교회

【시대논단 통신】 최근 한 역사 강좌에서 홍콩중문대학교 숭기대학신학원(崇基學院神學院) 교수인 바이더페이(白德培) 목사는 자신의 경험과 관찰을 바탕으로 기독교와 홍콩 문화의 상호 작용에 대해 소개했다. 그는 또한 1980년대 기독교는 사회봉사에 적극 참여함으로, 기독교 조직들은 (홍콩) 정부와 성공적으로 소통했다고 언급했다.

홍콩 지역 문화와 결합한 기독교
바이더페이 교수는 1996년 홍콩에 온 이후 지금까지 거의 30년이 다 되어 가지만 사실 자신은 외부인인 동시에 내부인이라고 밝혔다. 외부인의 시각에서 바라본 홍콩의 독특한 모습, 예컨대 기독교 건축의 구체적인 형태(material reality)를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중국식 건축을 융합한 성공회의 성마리아교회(St Mary’s Church)나, 강주(港九) 오순절 주룽(九龍)교회 건물 지하에 연결된 은행 그리고 상업 빌딩의 외관을 융합한 중화기독교회 회중파(會衆派)교회(China Congregational Church)를 예로 들면서 이런 것들은 외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렵다고 했다. 

기독교와 홍콩 지역 문화의 융합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바이더페이 교수는, 홍콩 문화의 뿌리는 도가 사상과 유가 사상이기 때문에 이런 문화적 배경도 사람들이 기독교를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데에 영향을 미친다고 여겼다. “복음주의 신학은 기독교화한 유가 사상이며, 오순절 신학(Pentecostal Theology)은 기독교화한 도가 사상”이라며, 그는 이것이 왜 복음주의가 홍콩교회의 주류인지를 잘 설명해 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유가의 가족관계 중시와 남존여비 사상과 관련이 있고, 또 복음주의 신학이 가부장적 경향을 띠는 이유라고 피력했다. 또한 그는 오순절파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홍콩 사람이 광신적인 종교에 대해 회의적이고 의구심을 품고 있으며, 문화대혁명의 트라우마도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바이더페이 교수는 광둥어를 막 배우기 시작했을 때 ‘교회(church)’의 중국어 번역이 ‘가르치는 모임(teaching club)’이라고 직역 그대로 된 사실에 깜짝 놀랐다고 했다. 이는 또한 ‘교회’라는 글자가 번역 과정에서 번역자가 사랑이나 교제보다는 ‘가르치는 측면’에 역점을 두었음을 반영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것이 (홍콩) 지역교회의 생태와도 꼭 들어맞으며, 홍콩교회의 설교 시간은 일반적으로 매우 길고 최소 30분을 유지하는데 이는 유가의 가르침 방식과 매우 비슷하다고 했다.

     ▲(왼쪽) 성공회 성마리아교회 (오른쪽) 중화기독교회 회중파교회(촬영/ Seacow Wheat)


사회봉사에 적극 참여하는 기독교
바이더페이 교수는 또한 1980년대 홍콩 정부는 사회봉사에 적극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교회나 기독교 단체가 관련 업무를 수행하도록 보조금을 지원했다고 언급했다. 그에게 깊은 인상을 준 것은 당시 많은 단체가 정부의 지원을 받는 것은 정부에 발목을 잡히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일부 기독교 조직은 여전히 당국과 성공적으로 소통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홍콩기독교산업위원회(Hong Kong Christian Industrial Committee, HKCIC)였다. 

그는 기독교가 실제로 정치 참여에 매우 깊이 관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정치가 중국의 선교와 기독교적 가치관 그리고 성경 속 선지자와 예수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는 성경이 실제로 ‘반대 의견(dissent)’으로 가득 차 있다며, 구약의 선지자들은 제국을 향해 용감하게 목소리를 내고, 예수는 로마 제국을 향해 천국 복음을 전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누가복음 3장 1~2절의 의미를 처음에는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중에야 이것이 오늘날의 홍콩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본문 역시 당시 사람들이 직면한 종교와 정치적 상황을 설명하기 위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질의응답 시간에 주룽유닝(九龍佑寧)교회의 왕메이펑(王美鳳) 목사는 1997년에 강제 해산된 ‘취안완(荃湾) 에큐메니칼 사회복지관(Tsuen Wan Ecumenical Social Service Centre)’을 거론했다. 사회복지사였던 왕메이펑 목사는 사회 참여를 중시하는 성도들이 교회와는 거리를 두지만, 공공 영역에서 옹호 활동에 뛰어드는 특별한 현상을 보았다고 말했다. 

바이더페이 교수는 이런 현상은 외국의 세속적 에큐메니즘(secular ecumenism)과 관계가 있으며, 이런 현상의 배경에는 성도들이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교회에 갈 필요가 없이 다양한 사회공의운동(社會公義運動)에 참여함으로써 하나님의 일에 참여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홍콩의 기독교인: 폭풍 속에 닻을 내리다(Christians in Hong Kong: Anchored amidst the Storms)’라는 주제의 이번 강좌는, 지난 1월 19일 오후에 주룽유닝교회가 주최하고, 영어로 진행되었다. ▤






▤ 사진 설명 및 출처 | (위) 바이더페이(白德培) 목사
(아래) https://zh.wikipedia.org/wiki/File:聖公會聖瑪利亞堂.JPG 
▤ 출처 | <시대논단(時代論壇)> (2025/2/4)
▤ 번역 | 공유호·중국어문선교회 협력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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