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떠난 지 오래다. 단기 팀을 이루어 중국을 방문하는 것은 더더욱 오래된 과거다. 올 6월 중국 현장 아웃리치를 계획했다. 현지에서 지인들과 만나 함께하는 묵상의 여정이다.
한국에서는 두 사람이 출발했다. 대륙의 고속기차 차창 밖 멀리 보이는 광활한 만주벌판을 달리면서 보이는 옥수수 군락이 이루는 장관은 일품이었다. 어느새 내 마음은 끝없이 펼쳐진 푸른 초원을 말의 박차를 가하며 힘껏 달리고 있었다. 가도 가도 끝없는 곳, 짧은 시간이라도 내어 좀 더 돌아보는 것을 뒤로하고 새로운 목적지로 이동했다.
새로운 목적지가 된 오래전에 사역했던 곳에서 맞이하는 이른 아침은 남달랐다. 자욱하게 끼어 있는 여름 안개를 참으로 오랜만에 보니 많은 생각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그사이에 해가 떠올라 사라지는 안개를 보고 있자니 긴 시간 단절된 채 그 자리를 우직하게 지키고 있는 그 다리가 보인다. 해는 이쪽저쪽을 다 비추며 이 땅을 사랑하는 내 마음을 알기나 하듯이 반긴다. 내 마음은 어느새 다리 너머에 가 있다. 사랑은 움직이는 것이기에 언제나 그곳에 닿을 수 있다. 지금처럼!
늘 그랬지만, 이번에는 중간에 합류한 사람들과 함께 그 땅을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하심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나아가는 특별한 시간을 가졌다. 그러나 우리에게 긴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다. 짧은 만남을 통해 믿음을 확인하고, 하나님의 뜻을 마음에 다시 새기고 다음 발걸음을 약속할 때는 차마 서로가 얼굴을 마주하지 못했다. 기약 없는 긴 이별 앞에서 마치 사도행전 속 성령의 충만과 성령의 감동을 경험하는 것 같았다.
서로를 위해 믿음으로 기도할 때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조용히 떠나야만 하는 아침은 서서히 다가와 우리는 마음을 담담하게 다잡고 서로를 안타깝게 바라보며 한 사람 한 사람 축복하며 안아 주었다.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니라 헤어지는 것이 섭섭해서 우는 것이라고 하며 서로의 등을 토닥이며 위로하며 용기를 북돋아 주고 봉고차에 몸을 실었다.
비자발적 출국 명령을 받고 중국을 떠나야 하는 우리 마음은 꽤 무거웠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을 더 무겁게 한 것은 현지 사람들이 이 일로 더 힘들어하는 일이 생길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기독교(종교) 중국화로 인해 점점 더 숨죽이며 신앙을 지켜 나가야 하기에 더욱 그렇다.
지난밤 사건은 생각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 나라의 법을 알면서도 잠시 방심했던 것이 큰 실수였다. 너무너무 반가운 나머지 가정교회 식구들과 만나 한 시간여 식탁 교제를 하며 내일의 일정들을 점검하고 확인했다. 과일과 음료수를 후식으로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기울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거실 소파에 앉아서 그동안의 지나온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낯선 십여 명의 남자와 여자 한 명이 들어왔다. 순간, 아니 이것은 말로만 듣던 공안이 아니던가? 두 명은 정복 차림이었고 나머지는 사복 차림이었다. 이들은 무턱대고 쳐들어와서는 대뜸 너희들은 어디서 왔냐고 묻는다. 우리는 여행을 왔다고 했다. 다시 또 묻는다. 어디서 왔냐고, 우리는 내몽고에서 왔다고 했다. 중국 사람들한테는 그럼, 신분증을 보여 달라고 한다. 나한테도 신분증을 보여 달라고 한다. 나는 속으로 ‘기어이 올 것이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대한 침착하게, “아, 예, 저는 한국 사람입니다”라고 하니 여권을 가져오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 대해 경험도 없고, 잘 몰랐던 중국 사람들이 공안들과 중간에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일행 중 우리 두 사람은 여권을 가져다주었고, 중국 사람들도 모두 신분증을 다 제출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외국인인 우리 두 사람에게는 짐을 다 챙겨서 파출소로 가자고 했다. 나는 못 들은 척하고 그냥 빈손으로 따라나섰다.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 두 사람은 다른 차량을 이용해서 파출소로 간다고 했다. 파출소로 가는 중에 약간의 시간이 허락되어 저들이 우리의 이런 상황에 대해 물으면, 제주도로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거기서 만나 친구가 되었다고 이야기하기로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이 일로 어려운 일이 생기지 않게 해 달라고 운전하는 사역자 남편이 간절히 기도했다.
15분 정도를 달렸을까. 허허벌판에 창고 같은 건물 하나가 덩그렇게 서 있었다. 우리 일행은 그 건물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건물 안은 온통 다 암흑이었다. 따라 들어가다 보니 흙벽돌 건물이었다. 누군가 불을 켜기 시작하고 여기저기 연락을 받은 공안 직원들의 차량이 한 대 두 대 들어왔다. 얼추 10여 대가 넘어 보였다. 사복 공안들은 건물 마당 주차장에 급히 차를 세우고 무슨 큰일이라도 난 듯이 다급스레 뛰어왔다. 우리에게 1층에 앉아서 기다리라고 지시했다. 몇 사람이 분주하게 움직이더니 조금 후에 기차표를 누가 샀느냐며 표를 보여달라고 한다. 숙소에 있다고 하니, 가서 기차표를 가지고 오라고 한다. 그래서 다시 숙소로 가서 기차표를 챙기면서 핸드폰이 든 작은 가방도 챙겨서 공안국으로 돌아왔다.
저녁 8시부터 조사가 시작됐다. 한 9시가 되었을까. 이때부터는 한 명씩 조사한다고 해서 서로 먼저 조사를 받겠다고 하다가 우리 두 사람 중 동생이 먼저 하겠다고 해서 2층 조사방으로 갔다. 나는 그동안 아래층에서 기다리면서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을 위해 기도했다. 1시간여를 기다려도 소식이 없으니 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다시 현지 중국인 자매가 불려 가 조사를 받았다. 그리고 다시 한 시간 정도가 지난 10시 50분, 나를 들어오라고 한다. 1층에서 기다릴 때 따로 나의 여권을 조회했었다. 초조한 마음은 곧 평안해졌다. 묻는 대로 짤막짤막하게 대답했다.
조사를 끝낸 뒤 공안은 내일 이 지역에서 떠나서 비행기 출발 시간에 맞춰 여행하다가 떠나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오케이, 감사’를 외쳤다. 밤 11시가 넘은 시간에 2층에서 다시 나를 불렀다. 올라가 보니 동생이 조사받고 ‘보증서’를 쓰고 있었다. 내일 당장, 이 나라를, 떠나는 것으로…. ‘아, 올 것이 왔구나!’ ‘그래! 그럼, 떠나지, 뭐! 할 일은 다 한 거니까.’ 속으로 생각을 삼켰다.
남아 있는 현지 사람들의 안전이 관건이니까…, 마음으로 결단하고 나니 두려움이 생기지 않는다. 나에게도 동생이 쓰는 것처럼 똑같이 쓰라고 한다. 지시하는 대로 급하게 쓰고 서명하고 각자가 쓴 보증서를 들고 사진도 찍었다. 그러고 나서 숙소로 돌아오니 11시 30분이었다. 오히려 많이 놀란 것은 남아서 기다리던 동역자들이었다. 우리는 그런 이들 앞에서 눈물을 보일 수가 없어서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담대하게 남은 일정을 잘 감당해 주기를 거듭 당부하고, 잠시 눈을 감은 채 아침을 기다렸다. 이곳을 떠나야 한다. 언제 또 만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잠시 떨어져야 한다. 간밤에 한국행 비행기표를 다시 샀다. 그리고 이 지역을 벗어날 수 있는 기차표도 예매했기 때문에 일찍 이곳을 떠나야 했다.
아침 식사도 하는 둥 마는 둥 마치고 서로 부둥켜안고 작별의 인사를 나눈 뒤 흐르는 눈물을 뒤로하고 안개도시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멀리 안개는 피어오르는데 뒤로 보이는 안개에 쌓인 도시는 신비롭게 느껴졌다. 피어오르는 안개 사이로 끊어진 철교가 어렴풋이 보인다. 사랑을 담은 내 마음은 끊어진 다리 너머를 향하고 있었다.
“쿼바디스 도미네” 베드로가 피신하는 도중 십자가를 지고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만나 물은 질문을 지금, 이곳에서 나에게 던진다.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언제나 주님은 고통 중에 있는 영혼들과 함께하심을 보는 듯했다.
짧은 일정 중에 생긴 고통의 시간이었지만 그곳을 떠나오면서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지 못했다. 아직은 이 땅을 벗어난 것이 아니기에 시간이 날 때마다 핸드폰 속 사진들을 삭제했다. 저녁이 되어서야 한국에 도착했다. 마음은 놓였지만 남은 사랑하는 동역자들이 걱정되어 그들의 안전을 지켜 달라고 기도했다. 수시로 연락할 수도 없었다. 그 후 이들도 모든 일정을 은혜롭게 마치고 각자 부르심의 자리로 무사히 돌아갔다. 한층 더 성숙한 모습으로 다시 북한 영혼을 사모하며 나가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돕기 위하여 은혜를 베푸신다. 그리고 성령님을 통하여 이루신다. ■하나님이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것은 결국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하시기 위함이다. ■우리가 언제, 어떤 자리에 부르심을 받든지 최선을 다하면 된다.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 되게 하신다.
♣사진 출처 | 픽사베이 ♣이성은 선교사 | 중국어문선교회 총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