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도 : 스자좡(石家庄)
인구 : 6,744만 명(2004년)
면적 : 187,693㎢
행정구역 : 허베이성에는 스자좡, 탕산(唐山), 친황따오(秦皇岛), 한딴(邯郸), 씽타이(邢臺), 바오딩(保定), 장자커우(张家口), 청더(承德), 창저우(沧州), 랑팡(廊坊), 헝수이(衡水) 11개의 시(市)와 23개의 현급시(县级市), 115개의 현(县:6개의 소수민족자치현 포함), 1,101개의 향(鄕)으로 구성되어있다.
위치 : 허베이성은 화베이(華北)평원의 북부와 네이멍구(内蒙古)고원의 동남부에 자리 잡고 있다. 베이징(北京)과 톈진(天津)을 둘러안고 북으로는 랴오닝(辽宁)성, 네이멍구자치구와 인접하고 서쪽은 산시(山西)성과 인접하였으며 남으로는 허난(河南)성, 산둥(山东)성과 인접하고 있다. 허베이성의 지세는 서북에서 동남으로 경사져 있으며 서북부는 산지, 구릉과 고원이고 중부와 동남부는 광활한 평원이며 동부 해안선의 총 길이는 487㎞이다.
기후 : 허베이성은 온대 대륙성 계절풍 기후에 속하여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하다. 연간 일조시간은 2,400~3,100시간이고 무상기간은 120~200일이며 연강수량은 300~800㎜이며 연평균기온은 0~13℃이다.
민족 : 허베이성은 만주(滿洲)족, 후이(回)족, 멍구(蒙古)족, 장(壯)족, 차오시엔(朝鮮)족, 먀오(苗)족, 투자(土家)족 등 53개의 소수민족이 있으며, 총 인구의 4%를 차지한다. 현재 6개의 소수민족자치현(少數民族自治縣)이 있다.
역사 : 약칭으로는 서경(書經)의 “우공편(禹貢篇)”에 나오는 기주(冀州)에 해당되어 기성(冀省)이라고 불리었던 허베이성은 5천 년 전 중국의 3대 시조(始祖)인 황제(黄帝), 염제(炎帝)와 치우(蚩尤)가 중국의 역사문명을 전개한 곳으로 유구한 역사를 지닌 중화민족의 발상지의 하나이며 또한 역대로 북방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이었다.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에 하북지역은 연(燕)나라와 조(趙)나라에 속했으며, ‘연(燕)조(趙)’라 불리었다. 수(隋)나라 시기에는 찌저우(冀州), 당(唐)나라 시기에는 허베이따오(河北道) 및 허둥따오(河東道)라 불리었으며, 원(元)나라 시기에는 중수성(中書省), 명(明)나라 시기에는 징스(京師), 청(淸)나라 시기는 즈리성(直隷省)의 관할지였다. 1928년 신해혁명(辛亥革命) 후, 허베이성(河北省)이라고 고쳐 불렀다.
산업 자원 : 허베이성은 중국의 주요 곡식, 목화, 식용유의 생산지 중의 하나이다. 공업은 석탄, 방직, 야금, 건자재, 화공, 기계, 전자, 석유, 경공업, 의약 등 10대산업을 주체로 하는 체계를 이루고 있다. 방직공업 중 면사와 직물의 생산량은 전국 4, 5위를 차지하고 의류 생산량은 전국 6위를 차지하며 건자재 공업 중 위생용 도자기와 유리생산량은 전국에서 5위와 3위를, 화학, 의약공업도 전국에서 우세를 차지하고 있다. 에너지 공업 중 석탄, 원유, 발전량 모두 중국의 주요 산지이며 야금공업 중 철과 생철의 생산량은 전국에서 제5위와 제3위를 차지하고 있다.
농산물 : 대부분이 식량 작물이다. 상품작물로서 목화생산이 전국적으로 가장 많다. 그 밖에도 땅콩과 참깨, 잎담배, 산록지대에서는 복숭아, 사과, 포도, 대추 등의 과수재배를 많이 한다. 또한 허베이성은 밀과 면화의 주산지이다. 밀, 수수, 조, 옥수수 외에 저습지에서 벼를 가꾼다. 상품작물은 목화 생산이 전국 제1위이다.
교통 : 허베이성은 베이징을 연결시키는 중요한 교통중추로 다년 간의 건설과 발전을 거쳐 이미 육, 해, 공을 망라한 종합교통운수망을 형성하였다. 15개의 주요철도간선이 허베이성 경내를 통과하고 철도화물 운송량은 중국에서 제1위를 차지한다. 17개의 국가급 도로간선을 보유하고 있으며 도로화물 회전량은 전국의 제2위를 차지하고 고속도로는 총길이 607㎞로 전국의 제3위를 차지한다. 화물 통과량이 거의 억 톤에 달하는 친황따오항은 전국에서 제2위를 차지하는 항구이며 경당항은 이미 670만 톤의 화물통과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스자좡공항은 중국정부가 허가한 국제공항으로 27개의 항선을 개척하였으며 전국의 27개 대,중형도시와 운항하고 있다. 또한 홍콩, 러시아 등 국가와의 항로도 개설되어 있다. 친황따오공항은 15개의 항로가 개설되어 있으며 전국의 17개 도시와 연결되어 있다.
통신 : 허베이성의 우편전신사업의 발전은 매우 신속하여 전 성의 전화교환기 총량은 1,000만 선에 달하고 있다.
스자좡(石家庄)
스자좡시는 베이징에서 서남쪽으로 약 28㎞ 떨어진 허베이성의 성도(省都)이다. 허베이성 남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요철도가 교차하는 교통의 요충지로서 최근에 급격한 발전을 이루고 있는 신흥 공업도시 중의 하나이다. 스자좡은 중국의 여러 성도와는 다른 역사를 지니고 있는 지역이다. 중국에서 가장 최근에 설립된 성도로서, 해외에는 그렇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이름 그대로 중국에서 하나의 마을을 의미하는 좡(庄)이 발전하여 성의 중심지가 된 도시이다. 근래 들어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허베이성 정치, 경제, 문화, 교육, 교통 중심지이다.
행정구역과 인구 : 씬지(辛集) 등 4개의 시(市)와 후워루(獲鹿)등 13개 현(縣)으로 나뉘어진다. 시 전체 인구는 889만 명(2001년 말), 시내 인구만 대략 210여만 명이다.
기후 : 화북지방의 전형적인 대륙성 기후를 나타낸다. 강우량이 적고 건조하며, 여름과 겨울이 뚜렷하지만 봄과 가을은 비교적 짧은 편이다. 겨울에는 기온이 영하 20℃를 넘지 않고, 여름에는 장강(長江) 유역에 버금갈 정도로 40℃를 넘는 무더운 기후를 보이고 있다.
역사와 경제 : 한(漢)대 이전(BC 206)에는 조(趙)나라에 속하였으며, 한대부터 수(隨)대(AD 581~618)까지는 현으로 남아 있었다. 당(唐) 왕조(618~907) 초기에 지방정부가 재조직 되면서 현이 폐지되었다. 1905년에 부경-무한(武漢) 간 철도가 이 지역에 개설되어 상업 활동을 촉진하고, 농부들이 수익 작물을 경작하게 하면서부터 스자좡이 중국의 주요도시 중의 하나로 성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2년 후에 스자좡에서 산시성 중부의 타이위안(太原)까지 이르는 노선이 개통되었다. 철도의 연결은 이 도시를 지방의 집합시장에서 베이징, 톈진으로 이어지는 국가의 주요 교통 중심지로 만들었다.
2차 세계대전 이전에 스자좡은 철로의 요충지인 대도시가 되었으며, 산시성과 화북평야에서 생산되는 농작물의 집합지이며 상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에 도시의 특성이 다시 한 번 바뀌게 되어 산업도시로 발전되면서 성냥제조, 담배가공, 유리제조 산업이 흥왕하였다. 또한 스자좡은 1948년 5월부터 1949년 3월까지 중국공산당 중앙정부 소재지였다. 1949년 이후부터는 도시의 계획적 산업화가 진행되었다. 1948년에서 1958년 기간에 인구가 3배로 증가하였으며, 대형화된 방적, 직물, 인쇄, 염색, 공업 등 섬유산업이 발전하게 되었다. 1960년에는 화학공업이 시작되었다. 또한 트랙터 부속품 공장을 갖추면서 기계공업의 기반을 갖추게 되었다. 서쪽의 후워루 등 2개 지역에 주요 탄광이 있어 지역전력을 공급하는 화력발전소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한편 국내 정기노선이 취항하는 공항이 건설되면서 스자좡의 교통요지로서의 기능은 더욱 강화되었다.
스자좡시는 소수민족의 집산지이다. 43개의 소수민족이 있고, 그 수는 약 6만4,843명으로 추정되며, 시 전체인구의 0.8%를 차지하고 있다. 소수민족 중에는 후이족이 가장 많고, 소수민족 인구의 76.8‰를 차지한다. 주로 스자좡시내의 5구(区)와 우지현(无极縣), 까오청시(藁城市), 신러시(新樂市), 신지시(辛集市), 정띵현(正定縣) 등의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교통 : 스자좡은 교통의 요지로 베이징에서 남쪽으로 향하는 모든 철도와 고속도로의 첫 중간기착지이다. 또한 산시성의 성도인 타이위안을 잇는 스타이(石太) 고속도로와 철도, 산둥성과 연결되는 도로와 철도 등을 비롯한 사통팔달의 육로로 인하여 중국의 주요 육상교통의 요충지가 되었다. 항공 역시 주요도시들과 연결되어 있다.
기독교 상황 : 허베이성의 기독교 전파 역사는 1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톈진과 베이징으로 들어온 외국 선교사들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개방개혁 이후 기독교 인구는 급속한 증가를 나타내고 있다. 스자좡에는 신화루(新華路)에 있는 스자좡 삼자교회를 비롯하여 정띵(正定)교회 등 비교적 큰 규모의 교회와 정부에서 인정하는 처소교회 등이 여러 곳에 산재되어 있고, 정확한 수는 알 수 없으나 비등록 가정교회 또한 많은 편이다.
이곳은 과거 베이징에서 기독교와 천주교의 탄압이 있을 때마다 불똥이 튀어 많은 시련을 겪은 지역이며, 지금도 지하 천주교 활동에 대해서 정부의 감시가 가장 심한 지역이다. 근래에 이르러서는 상대적으로 천주교에 비해 삼자교회의 활동이 비교적 자유스럽고 삼자교회를 통한 복음 전파력이 큰 지역이다. 가정교회도 비교적 활발하나 구원파 등 이단들도 활동 중이다.
현재 허베이성 내에는 정식인가를 받은 신학교 두 곳이 있고, 총학생 수는 100여 명에 이른다. 2년 과정이며 비교적 복음적인 내용을 교육한다. 스자좡은 북방 도시 중에서 드물게 근래에 발전한 도시이므로 외지인이 많고 학생들도 많아서 비교적 복음의 수용력이 큰 도시이다. 농촌지역에서는 허난(河南)성처럼 빠르게 복음이 전해지고 있다.
대학 : 스자좡시에는 허베이사범대학, 하베이경제무역대학, 허베이과학기술대학 등 모두 20여개 이상에 일반대학과 전문대학이 위치하여 있다. 또한 허베이사범대학부속으로 운영하는 민족학원이 있는데 대부분이 장족 학생들이다.
대상종족 - 후이족(回族)
인구 : 860만
위치 : 중국 전지역, 특히 중국 북서부 닝샤후이족자치구, 허베이성, 허난성에 주로 거주한다.
역사와 정체성 : 후이족은 중국에 있는 9개의 모슬렘 소수민족 중에서 가장 큰 모슬렘 종족이다. 중국의 이슬람은 주후 635년에 시작되었고, 공식적으로 중국의 한 종교로 받아들여졌다. 아랍, 페르시아, 터키 민족의 후손들인 이 후이족은 그 유명한 실크로드와 남해의 무역항로를 통해서 중국에 들어왔다. 그러면서 여러 세기를 걸친 사회적인 압박 속에서 한족의 많은 습관을 받아들여 여러 면에서 한족(漢族)화가 되었다. 그러나 그 사회적인 압박 속에서 민족적인 특성을 포기하는 것이 최선의 이익이었을 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희거나 검은 두건을 쓰고 다니는 이슬람적인 관습은 이들 문화의 핵을 이루고 있다. 또한 대부분 마을에 살고 있지만 중국 북부 도시에 많이 이주해 있다. 베이징에도 회족이 거주하는 일정한 곳이 있어 67개의 모슬렘 사원이 있다.
언어 : 만다린(표준어), 아랍어(중국어와 방언들을 거부하고 이슬람의 술어를 아랍어, 페르시아어, 터어키어 그리고 다른 중앙아시아의 언어를 포함한 몇 개의 언어와 결합해서 만들었다.)
관습 : 이들은 항상 머리에 흰색이나 검은색의 모자를 쓰고 다니며 여성들은 검은천 등을 머리에 두르고 생활한다. 주로 양이나 소고기를 위주로 먹으며 돼지고기를 절대먹지 않는다. 특히 이들은 한 곳에 모여서 부락이나 집단 공동체 이루고 살아간다.
종교 : 이슬람은 기독교처럼 서방적, 외국적인 종교로 인식되지 않고, 공식적으로 중국의 한 종교로 인정되고 있다.
기독교 상황
후이족을 전도하려는 과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알려진 교회가 없다. 1930-1940년대 중국 내륙선교회가 복음을 전하려고 노력하였다. 복음에 귀를 열었지만 영접하는 이들은 극소수였다. 후이족의 경우 26%만이 복음을 들었다고 추정되며, 6백만 이상의 후이족은 단 한 번도 복음을 듣고 반응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참고자료제공 | 중국대학선교회(CU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