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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4.20  통권 95호  필자 : 편집부  |  조회 : 4612   프린트   이메일 
[중국의 지역과 종족]
시짱자치구(西藏自治区)
관문도시-라싸(拉萨),대상종족- 짱(藏)족

성도: 라싸(拉萨)
인구: 267만(2003)
면적: 122만㎢

 

행정구역
라싸시와 창더우(昌都), 나취(那曲), 산난(山南), 시가체(日喀則), 아리(阿里), 닝트리(林芝), 라싸(拉萨) 등 7개 지구와 77개 현이 있다.

 

위치
중국 서남변경에 위치하며 티베트 고원은 북쪽으로는 쿤룬(崑崙) 산맥을 경계로 신장위구르(新疆維吾爾)자치구에 접해 있고, 동쪽은 진사강(金沙江)을 경계로 쓰촨성(四川省), 남쪽으로는 인도, 부탄, 시킴, 네팔, 서쪽으로는 파미르, 카라코람을 경계로 인도, 파키스탄에 접해 있다.

 

지형적 특색
서남 변경에 위치하며 동서로 길게 뻗은 형태로 쿤룬산맥, 탕굴라(唐古拉)산맥, 히말라야 산맥 등의 높은 산맥과 티베트고원이라고 불리는 칭짱(靑藏)고원이 거의 전 지역에 펼쳐져 있다.

티베트고원은 4,700만 년 전에 바다였던 곳이라, 지금도 노천에서 소금광산이나 염호를 유난히 많이 볼 수 있고, 북서부에서는 온천도 흔히 볼 수 있다. 자치구는 대부분 해발 4,000m이상에 위치하는데, 라싸시는 3,600m, 칭짱고원은 5,000m, 아리고원은 4,500m 정도이다. 그래서 이 지역을 방문하는 여행자들에겐 고산병으로 인한 무력증, 폐렴, 관절염이 흔하게 발생한다. 산소가 희박하여 잠이 계속 오고, 심한 두통, 뒤통수가 무거워지는 고산병 증상이 악화되면, 구토와 함께 코피를 쏟으며 균형감각을 상실한다. 

인더스강과 야루짱뿌강(雅魯藏布, 중국인들을 창포강이라고 함-역자 주)이 이곳에서 발원하는데, 이 야루짱뿌강 유역은 토지가 비옥한 편이라 메밀과 보리, 약초재배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기후
티베트는 위도가 낮지만 고산지대이므로 한랭건조한 기후를 보인다. 한여름에도 기온이 20℃를 넘지 않고, 한겨울에도 낮에는 20℃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그러나 일교차가 워낙 커서 아침은 봄, 낮은 여름, 저녁은 가을, 밤은 겨울이라고 한다.

 

역사
7세기 초 티베트인들은 토번(吐番)왕국을 이루었고, 649년엔 송첸감포(松贊干布)왕이 남은 부족을 통일하여 강력한 통일국가를 이루었다. 이 왕이 불교도였던 문성공주와 네팔여인을 부인으로 맞음으로 불교가 티베트에 들어오게 되었다. 1253년 원나라 헌종이 티베트를 장악하자 라마교의 한 종파인 사카(薩迦)파가 정권을 잡고 사카왕조(1270-1345)를 세워 정교합일적 지배체제를 확립하였다. 그러다가 14세기 엄격한 계율주의와 독신주의를 주장하는 게룩파(黃敎)를 쫑카바(宗喀巴)가 창시하여 이때부터 달라이라마가 정교(政敎)의 지도자로 등장하게 되었다. 1720년 중국은 영국과 러시아의 비호 아래 티베트를 자신들의 보호령으로 선포하고 통치하였고, 1904년 13대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의 독립을 선언하였다. 33년 13대 달라이 라마의 서거 후 1940년 1월 15세의 톈진가쵸(丹增嘉措)가 14대 달라이 라마로 정식 등극하였다. 

1950년 중국이 무력으로 침공하여 라싸에 민간주재기관과 군사사령부를 설치하였다. 1959년 3월에 티베트인들은 달라이 라마를 보호하기 위해 대규모의 시위를 일으키자, 중국 정부는 이를 반란으로 규정하였다. 정부의 무력진압으로 인해 많은 승려들과 백성이 학살되었고 수많은 라마불교 사원이 파괴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달라이 라마는 인도로 망명하였고, 티베트의 모든 정치적 권한은 백지화가 되었다. 65년 이후부터 중국 정부는 티베트의 본토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고 판단하여 자치권을 허락하였지만, 여전히 중앙정부의 강력한 통제와 지배 아래 있다. 1987년에도 최대 규모의 시위가 발생하여 유혈사태가 발생하였다. 이후 93년까지 외국인의 티베트의 방문이 엄격히 금지되었었다.    

 

산업과 경제
티베트족의 주식인 참파(쌀보리나 완두콩 등을 볶아서 가루를 낸 다음 수유차(酥油茶;버터차, 야크젖이나 양젖으로 만든 기름과 차를 섞은 것)의 원료가 되는 쌀보리의 재배가 주종을 이루어 파종면적이 전 경작지의 50%를 웃돈다. 채소와 완두콩을 비롯하여 밀도 재배되고 있다. 저지에서는 차·사탕수수·바나나 등도 재배하며 1,000m 이하의 지역에서는 1년에 3모작이 가능하다. 

천연의 목장이 총면적의 66%에 달하며, 고산한랭지역의 목축 3대종인 양·염소·야크가 가장 많이 사육되고 있다.

천연 자원으로는 석탄, 철, 천연소다 등을 산출한다. 공업은 티베트족에 의한 민족수공업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고 이 밖에 라싸강에는 나첸수력발전소가 있어, 그 전력을 이용하는 농기구·착유(搾油)·제분 공장 등이 있다. 닌치는 1970년대에 중국군의 원조로 건설된 시짱의 새로운 공업기지로 수력발전소와 모직물·목재가공 공장 등이 있다. 시가체에서는 의류와 양탄자 등을 생산하는 수공업 외에 농기구제조공장도 있다. 

종교
티베트 불교는 그들 독자 종교의 무속적인 특색과 당나라 이래로 전래된 중국식 불교 그리고 원나라 때 이루어진 몽고식 불교를 통합해 발전되었다. 티베트 불교의 주요 종파인 황모파(黃帽派)는 달라이 라마와 핀첸 라마에 의해 영도되었는데, 17세기부터 1959년 중화인민공화국의 침략으로 달라이 라마의 신성 정권이 붕괴되기까지 티베트에서 정치적 지배권을 형성해 왔다. 지금은 비록 중국의 폭력적인 지배에 신음하고 있지만 티베트 민중을 구원하기 위한 달라이라마, 카르마파, 판첸라마 3명의 환생 붓다들은 오늘날 티베트 민중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성자들이다.

기독교 상황 
기독교는 1877년 중국 내지 선교회소속의 제임스 카메론 이 티베트에 도착했으나 대부분이 불교도인 현지인들로부터 대적을 받았으며 고립적인 상황과 불리한 지형 조건으로 인해 고초를 겪었다. 많은 씨앗이 뿌려졌으나 신비주의와 광신주의가 가득한 이 땅에서의 결실은 거의 거두지 못했다. 1948년 성경이 티베트어로 번역되었으나 거의 모든 성경책이 중국 당국에 의해 훼손되었으므로 저들이 성경을 구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불투명하다.

 

관문도시-라싸(拉萨)
면적-29,052㎢
인구-약 15만
지역-
야루짱뿌강(雅魯藏布江)의 지류인 라싸강 북쪽에 자리하며 해발고도는 3,600m이다.

 

기후
연평균기온 8.3℃, 최한월(1월) 평균기온 -1.7℃, 최난월(6월) 평균기온 16.7℃를 보여, 혹한과 혹서가 없다. 연강수량은 400mm에 불과하나 강수가 거의 여름에 집중해 티베트에서는 비교적 농업에 적합한 곳이 되어 있다.

 

역사
라싸는 티베트어로 ‘신의 땅’이라는 뜻을 지니며, 기원은 당대(唐代)의 7세기 초에 토번(吐蕃)의 왕이 이곳에 거주하면서 국가통일을 이룩한 데서 비롯된다. 라마교의 종교 및 정치 중심지가 되었으며, 특히 명(明)나라 말 이후에는 라마교 황모파 최고위자인 달라이라마의 본거지가 되어 그 밑에 티베트 지방정부가 두어졌다. 그와 같은 정교일치의 체제는 1959년 3월 제14대 달라이라마가 중국군에 쫓겨 인도로 망명하기까지 지속되었다. 

라싸 시내는 포탈라궁을 중심으로 동쪽의 구시가와 서쪽의 신시가로 나뉘는데, 종래 귀족 ·대상인의 저택 ·점포 지구였던 구시가는 오늘날 시민의 주택지구가 되고, 1964∼1965년에 건설된 신시가에는 병원 ·백화점 ·문화시설 등이 있다.  

 

교육
시짱자치구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은 과거 매우 낙후되었으며, 지금도 역시 널리 보급되지는 않았다. 그들은 공식적인 학교 교육이 아니라 각 지역에 분포된 라마교 사원에서 교육을 받는데,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교육 과정은 모두 불경의 전파와 보급 등을 주 내용으로 삼고 있다. 현재 사원 교육을 받는 이들의 숫자는 과거에 비해 매우 적다. 1951년 중공 정부는 티베트의 교육 발전을 위해 대대적인 투자를 하였다. 1990년 전국 인구 통계 자료에 의하면 1989년 현재 서장에 총 68개의 중학교와 2,983개의 소학교, 그리고 4개의 대학교가 세워져 있다. 문맹률 역시 43%로 감소되었다.

 

교통
쓰촨(四川), 칭하이(靑海), 신장(新彊)의 각 성(省) 및 자치구 내 각처로 자동차도로가 통하고, 정기항공로도 개설되어 있다. 2006년 7월부터 베이징에서 라싸까지(칭짱철도), 광둥(广东)성 광저우(广州)에서 라싸까지의 철도가 개설된다.

 

산업과 경제
아연, 구리, 철, 금 등 광물자원이 풍부하고, 교외에는 공장들이 건설되어 자동차수리, 시멘트, 철강 및 발전 등 공업이 발달하고 있다. 야생 야크와 야생 나귀, 몽고 가젤, 히말라야 영양, 노루, 살쾡이, 붉은 사슴 등이 살고 있다. 

 

종교
샤머니즘 및 토테미즘이 혼합된 대승불교가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티베트불교는 “본”이라는 원시신앙이 강하게 혼합되어 있다.
 
기독교 상황
기독교는 1726년 프란체스코회의 케푸친(Capuchin)신부들이 이 지역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여 1742년엔 27명에게 세례를 주었고, 60여 명의 신도들이 있었지만, 불행히도 지속적으로 복음이 전파되진 못했다. 이후 선교사들은 네팔로 추방당했고, 티베트의 예배당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대상종족- 짱(藏)족
일처다부제 25%, 일부다처제 5%로 씨족사회의 모계풍습이 남아있다. 이는 척박한 땅에서 유목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가족의 단결과 생존을 위해 이루어진 풍습이다.

티베트인에게는 혈연에 바탕을 둔 성(姓)은 없고 이름만 있다. 역사적으로 많은 시련을 겪어온 이들은 새로운 사상이나 변화를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들의 문화에 상당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기에 외부의 영향과 변화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들을 이해할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은, 이들이 한족을 매우 증오하고 그들에 대해 한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양가의 문벌, 경제력, 사회적 지위 등을 매우 중요시해 왔지만 점차 현대화의 영향을 받아 지금은 많이 변화되었다. 근친간의 통혼에 있어서는 각 지역마다 다른 관례들이 존재한다. 어느 지역에서는 모계 친척간의 결혼만을 허락하는 반면, 어떤 지역에서는 비교적 먼 관계의 부계 혈족간의 결혼만을 허용한다. 

티베트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사별의 슬픔을 극락왕생의 희망으로 대신한다. 땅과 나무가 부족하고 건조한 환경 탓에 사람이 죽으면 화장(火葬)하는 대신 시신을 독수리에게 먹이는 천장(天葬)의 풍습이 있다. 그리고 죽은 자는 반드시 이 세상 무엇으로든 다시 태어나고 다른 것으로 환생된다고 믿고 있으며, 그것도 내세에서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기를 소원하고 있다.

짱족은 라싸(拉薩)인, 암도(安多)인, 캄바(康巴)인으로 나뉜다. 이들은 각기 다른 방언을 쓰고, 생김새와 성격도 다르다.

 

라싸인
라싸를 중심으로 거주하고 있으며, 이곳은 티베트의 정치, 경제, 종교 중심지로서 중간적인 성격을 띈다.

암도인
외모가 잘 생겼고 언어도 제일 고급 언어를 사용한다. 독립심이 강하며 외부인에 대해 경계하지만 손님 대접을 잘하는 사람들이다. 이 종족 중에는 무방비 상태의 여행자들을 습격하는 산적들 또한 많다. 암도인은 중국이 티베트를 침략하여 차지 할 때 가장 강하게 저항했다. 현재 이들이 살고 있는 지역이 중국 정부를 향해 저항하는 세력들의 온상이 되고 있다.

 

지역- 간쑤(甘肅)성, 칭하이성, 쓰촨성에 분포
많은 계곡과 산으로 이루어진 해발 3,000m 고원지대로 혹독한 추위와 많은 눈으로 바깥세상과 완전히 차단되어 접근하기가 매우 어렵다.

 

인구: 901,200명(2000년)

 

언어: 티베트어와 같은 문자를 쓰고 있지만 라싸와 같은 티베트의 중심에서 쓰는 말과는 음이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티베트인들과 대화 할 때는 글로 쓰면서 의사를 교환한다.

 

가족 구조: 일반적으로 여인들은 독립심이 강하지만 어떤 암도인은 일부다처제를 행한다.

 

종교: 거의 100%가 밀교나 귀신숭배 등과 혼합된 라마불교, 정령숭배 사상을 통한 샤머니즘

 

복음에의 접촉성: 중국내지선교회가 100여 년 전에 이 지역에까지 왔으나 현재 이 지역에 알려진 기독교인은 없다. 암도어로 된 성경도 없으며 이들의 말로 전하는 복음 방송도 없다. 이 지역의 고립성과 정치적 긴장으로 복음을 증거하기가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캄바인
숙련된 전사들로서 지금도 붉은 실을 꼬아 머리에 쓰고 남성들은 허리에 칼을 차고 다닌다. 

1950년에 중국은 캄바인을 침공하여 전략적인 국경지역을 장악하게 되었다. 중국인들은 강제로 캄바족을 중국 문화에 동화시키고자 갖은 노력을 다했다. 개인농장은 집단농장으로 바뀌었고 종교적 예배는 금지되었고 중국어는 공식언어로 공포되었다. 1965년에 공식적으로 독립 지역이 되었다. 캄바족의 정체성을 되살려 준 것은 중국 정부의 양보였다.

 

지역 : 티베트 동쪽에 있는 창더우 중심
      
인구 : 1,706,600명(2000년)

 

언어 : 캄어 

 

종교 : 라마교, 불교, 샤마니즘

 

복음에의 접촉성
복음이나 예수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 캄어로 된 성경도 없다.

 

  
자료출처|  베다니 미전도종족 기도파일, 기독선교회 선교정보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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