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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방 있습니까
2016년 11월 오랫동안 벼르고 별렀던 원저우(温州)로 가기 위해 항저우(杭州)공항에 도착하여 공항버스를 타고 항저우동역으로 갔다. 항저우동역(杭州火车东站, 고속철도역)에 도착하여 주변에서 묵을 만한 숙소를 찾았는데 숙소가 없어서 시내버스를 탔다. 항저우역에 내려서 주변에 숙소가 있는지 찾아보았으나 여관에도 호텔에도 빈 방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시내 중심가로 이동하였는데 그곳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여관급의 숙소 몇 군데를 둘러봤는데 빈 방이 있었는데도 한국 사람은 묵을 수 없다고 했다. 호텔에는 아예 방이 없었다. 다시 시내버스를 타고 시외버스터미널로 갔다. 그곳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오후 5시부터 시작된 방 수색 작업은 밤 11시까지 계속되었지만 방을 찾지 못하고 항저우역으로 다시 가서 새벽 2시 20분 원저우행 기차표를 샀다. 한참을 기다려 기차에 몸을 싣고 잠깐 새우잠을 잤다. 아침에 일어나서 앞자리에 앉은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딱히 아는 사람 하나 없고, 가야 할 곳도 없었지만 핍박의 현장을 돌아보고 힘들어 하는 성도들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또 중국에 처음 복음이 들어온 지역의 삶을 둘러보고 싶어서 나선 길인데, 막상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니 조금은 불안한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언제나 함께하신 주님이 계시기에 용기를 내어 다시 여기저기 살펴보기로 했다.
국수 끓이는 골목가게 풍경
천천히 걸어서 지나오면서 보아두었던 여관을 찾아갔다. 첫 번째 여관은 한국 사람을 받지 않았다. 두 번째 여관에서 다행히 방을 얻을 수 있었다. 드디어 끌고 다니던 가방들을 내려놓고 시내버스를 타고 들어오면서 눈여겨 보아두었던 신발재료 도매시장(천연가죽과 인조가족 등 피혁제품 중심)에 갔다. 시장 골목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골목 안으로 들어가며 가로로 나있는 골목을 보았는데 그곳도 마찬가지로 끝이 보이지 않았다. 한 골목을 돌고 다음 골목 또 다음 골목을 돌아보고 배가 고파서 식당을 찾았다. 그런데 식당이 없었다. 가로로 나있는 골목으로 가로질러 나갔다. 한참을 가다가 차가 다니는 중간 길에 도착하였다.
그 길에는 신발재료가 아닌 전자 제품과 액세서리, 생활용품가게와 신발가게가 있었고 한참을 걸어가니 식당이 보였다. 국수집이었다. 주변에 식당이 두 개 더 있었는데 꼬치구이를 파는 리어카 하나와 과일을 파는 리어카 하나가 있었다. 일단 식당에 들어가서 국수 한 그릇으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그리고 왜 이 넓은 시장에 식당이 몇 개 밖에 안 되는지 이상하다고 생각이 들어서 가게 안을 기웃기웃 거리며 자세히 살펴보며 돌아다녔다. 그런데 놀랍게도 많은 가게에서 주인들이 직접 국수를 끓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중국에서 손꼽히는 부자 동네 사람들이 돈 한 푼을 아끼기 위하여 직접 점심을 끓여 먹거나 도시락을 싸가지고 와서 먹는 것이었다. 그렇게 골목의 삼분지 일 정도를 돌아다니며 보아두었던 교회를 향하여 걸어갔다.
교회를 찾아 나선 길
언덕 위에 커다란 궁전과 같은 교회가 우뚝 서 있었다. 교회 옆에는 사찰과 공자사당도 있었는데 모두 비슷한 시기에 세워진 것 같았다. 교회를 한 바퀴 다 돌아보았는데 관광객들 외에 교회 관계자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교회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었다. 하지만 교회의 모든 문들은 굳게 잠겨 있었다. 다시 한 번 교회를 한 바퀴 돌아보고 내려오면서 사찰도 한 번 둘러보았다. 그곳에는 여행객 한두 명이 향불을 피우고 절하고 있는 것 외에는 교회와 별 다른 것이 없어 보였다. 사찰을 나와서 사찰 뒤에 있는 공자사당에도 한 번 가 보았다 그런데 공자사당은 대문부터 굳게 잠겨 있었다. 공자사당에서 내려와 여관으로 돌아와서 씻고 늦은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식당 뒤쪽으로 야시장이 열려 있는 것이 보였다. 국수 한 그릇을 먹고 야시장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한국에서 보던 야시장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한 2Km 정도 되는 거리에 옷과 신발, 액세서리들로 가득한 시장이 펼쳐져 있었고 기존의 가게들도 더 많은 물건들을 바깥 길에 전시해 놓았다. 중간 중간에 과일을 파는 차들이 있었고 제일 끝에 있는 건물 안에는 어물과 반찬가게들이 문을 닫지 않고 영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나는 그곳 상인들에게 몇 시에 문을 열고 몇 시에 문을 닫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상인들은 보통 아침 10시쯤 문을 열어서 새벽 한두 시 경에 문을 닫는다고 하였다. 그리고 돌아 나오는 길에 차도에 물건을 펼쳐 놓은 몇몇 상인들에게 똑같이 물어보았더니, 어떤 사람은 오후 5시나 6시에 나와서 새벽 한두 시 경까지 영업을 하고 아침 8시에 출근했다가 퇴근하고 다시 장사하러 나온다고 하였다. 또 다른 사람은 낮에 공장에서 물건을 만들어서 저녁에 여기 야시장에 가지고 나와서 물건을 판다고 하였다. 이 사람들은 도대체 언제 잠을 잘까?
교회를 찾아서
다음날 아침 가방을 메고 나와서 시내버스 노선을 알아보고 그곳에서 가장 먼 노선의 시내버스에 몸을 실었다. 40분 정도 시간이 지나자 버스는 한적한 시골을 달리기 시작하였다. 한 시간 반 정도 지나서 또 다른 작은 시골로 차가 들어섰다. 좌우를 살펴보며 교회를 찾았는데 교회는 보이지 않았다. 한 광장에 내려서 사람들에게 교회가 어디 있는지 물어보았다. 사람들은 모른다고 했다. 나는 다른 길로 들어서 가다가 만난 사람에게 혹시 교회가 있는지 물어보았는데, 한 삼 사십분만 걸어가면 된다며 친절하게 길을 가르쳐 주었다. 조용한 골목길을 걸으며 머리에는 온통 십자가가 달린 교회뿐이었지만 걸어가면서 보이는 골목길과 집 풍경들은 영화나 TV에서나 볼 수 있는 중국 전통 남방지역의 풍경 그대로였다. 창문마다 달려 있는 철창살의 베란다에 빨랫줄을 이어 널어 놓은 빨래들, 그리고 그 밑에 고이 놓여 있는 화분들….
그렇게 풍경을 즐기며 한참을 걸어가니 언덕 위에 교회가 보였다. 교회 밑에는 학교운동장이 있었고 운동장 안쪽에 학교가 있었다. 운동장은 한국의 공설운동장 보다 더 컸다. 운동장 주위에 'U'자형의 15층 정도 되는 계단이 있었다. 학교 정문을 지나 드디어 교회 앞에 도착하였다. 열린 대문 틈으로 교회 안을 들여다보니 할머니 한 분이 교회 마당에서 무를 썰어서 널고 계셨다. 조금 후에 다른 할머니 한 분이 건물 밖으로 나오시는 것이 보였다. 망설일 것 없이 반가움에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였는데 두 분은 깜짝 놀라서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가시는 것이 아닌가.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교회를 돌아 산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산으로 올라가는 길 옆 작은 공터에 배추, 상추, 파 등 채소들이 심겨져 있었다. 조그마한 땅인데도 그냥 버려두는 법이 없었다.
산에서 내려다보니 길 건너편에 사찰과 공자사당이 보였다. 산에서 내려와 건너편 산으로 올라가면서 먼저 사찰의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보았는데 사찰 안으로 들어가는 문은 역시 잠겨 있었다. 돌아 나와서 다시 조금 더 올라가 공자사당 앞에 도착했다. 공자사당은 대문마저 잠겨 있었다. 그곳 산으로 올라가는 길가 공터에도 역시나 채소들이 심겨져 있었다. 산꼭대기에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동북쪽으로는 산이 뻗어 있었고, 강은 동쪽에서 서남쪽으로 흐르고 있었으며, 남쪽과 서쪽엔 마을이 쭉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서쪽에 또 다른 교회와 사찰 같기도 하고 왕궁 같기도 한 많은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가다가 보니 외국어학교가 눈에 들어왔다. 마침 점심시간이었든지 교문 밖으로 나와 있는 학생들을 볼 수 있었다. 학교 경비 아저씨한테 이 학교에서는 어떤 나라 언어를 가르치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경비 아저씨는 처음에는 내 말을 못 알아듣다가 다시 한 번 말을 하자 자신은 그런 것은 잘 모른다고 하였다. 마침 선생 같은 분을 만나 다시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영어 하나만 가르치고 있다고 하였다. 학교 옆 공원에는 많은 학생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서너 명이 함께 있는 학생들한테 몇 학년인지도 물어보고 영어도 잘하는지 물어보았다. 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었는데 영어는 잘못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또 궁금한 것이 있어서 서슴없이 물어보았다. “점심시간에 이렇게 마음대로 돌아다녀도 돼?” 수업시간에 맞춰 들어가기만 하면 상관없단다. 내친김에 집으로 돌아갈 때는 부모님이 데리러 오는 지도 물었는데, 녀석들은 걸어서 간다고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리고 부모님이 데리러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했다.
필자가 주로 순례 선교사역을 하고 있는 동북지역의 초등학교 풍경과는 너무 달랐다. 동북지역은 학생들의 등하교 시간이면 학교 주변이 차로 꽉 찬다. 오전에는 부모들이 아이들의 손을 꼭 잡고 학교까지 데려다주고, 학생들은 하교시간이 되기까지는 교문 밖으로 나올 수가 없다. 점심시간, 학생들이 학교 철담장에 매달려 있으면 그 철담장 옆으로 음식을 파는 많은 리어카 상인들이 몰려든다. 이 지역의 카오냉면(烤冷面)은 학생들한테 인기가 많다. 같은 중국인데도 다른 풍경이지만 느낌이 어색하지는 않다.
학생들한테 손가락으로 오래된 옛 건물을 가리키며 무엇인지 물어보았지만 학생들이 모른다고 하기에, 작은 다리를 건너 교회를 먼저 찾아 갔다. 이 교회도 역시 굳게 잠겨있기는 마찬가지였다. 문이란 문은 죄다 두드려도 응답이 없었다. 할 수 없이 교회 옆을 돌아 산으로 올라갔다. 길 주변의 공터에는 역시 많은 종류의 채소들이 심겨 있었고 몇 곳은 고구마를 심었었나 보다. 고구마를 캔 흔적이 보였다. 그리고 조금 더 올라가자 공동묘지가 있었다. 공동묘지들은 경쟁하듯이 돌과 시멘트로 정갈하게 잘 꾸며져 있었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아무도 찾지 않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산에서 내려다보니 저쪽 편에 또 하나의 교회가 눈에 들어왔다. 반가움에 빠른 걸음으로 한걸음에 달려가서 보니 그 교회는 천주교회였는데, 역시나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실망은 잠시, 다시 옛 건물들이 즐비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첫 번째 건물은 수리 중이었다. 일하는 사람들에게 이 건물이 어떤 건물이냐고 물었더니 이 건물은 왕(王)씨 문중 사당이라고 하였고 수리 중이었다. 그곳을 돌아보고 나와서 옆 건물의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더니 여(呂)씨 문중 사당이었고 사당 마당에서 대리석을 가공하고 있었다. 그 옆의 또 다른 건물은 또 다른 문중의 사당이었고 문이 잠겨 있었다. 세 성씨의 사당이 한곳에 함께 지어진 것이었다.
중국에 처음 복음이 들어왔던 도시, 원저우여
중국에 처음 복음이 들어왔던 도시, 원저우! 원저우의 일정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 어떤 성도도 만나지 못하고 그 어떤 교회 안에도 들어가지 못한 채 끝이 났다. 그리고 무거운 마음으로 다음 도시인 리쉐이(丽水, 저장성(浙江省)에 속한 시)로 떠났다. 하지만 원저우지역의 교회들을 돌아보면서 중국 정부가 교회의 십자가를 철거할 때 저항한 원저우지역 교회의 성도들, 십자가가 헐리고 나면 다시 세우고, 또 헐리고 하는 과정에서 겪었을 심적 고통과 핍박으로 인해 위축된 믿음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지역보다 더 일찍 기독교가 들어오고 그로 인하여 지역 사회의 전반에 걸쳐 검소하고 소박한 삶과 근면하고 부지런한 생활모습이 가게 안에서 일하고 있는 주인들의 삶 속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었다.
이삼십 년 전 중국 전역에서 일어났던 교회건축 열풍이 교회와 사찰, 공자사당, 문중 사당에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종교 사이에 경쟁하듯이 크고 화려한 건물을 세웠을 것이다. 교회가 언덕 위에 우뚝 세워졌을 땐 자부심으로 어깨를 으쓱 추어올렸겠지. 또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들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핍박이 몰려오자 처음엔 저항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외형에 치우쳤던 믿음으로 인해 깊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였던 믿음이 한계상항에 부딪쳤겠지. 어려움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은 교회를 떠났을 것이고, 남은 사람들은 성령을 받기 전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숨어서 주의 도우심을 구하는 골방성도로 전락하였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은 보이는 교회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서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교회가 아무리 크고 화려하고 웅장하게 지어졌을 지라도 그곳에 생명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화려함과 웅장함이 하나님이 아닌 보이는 물질과 외형에 초점을 맞추게 하여 우리의 믿음을 나약하게 만들고 있다. 원저우지역에 들어왔던 복음은 원저우지역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어 근면하고 성실한 삶을 형성하여 부를 축적하고 엄청난 경제의 능력을 키워 왔었지만 대형교회들이 들어서면서 믿음의 변질을 가져 오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믿음에 일꾼들이 그 지역 사회 속에서 자기 역할을 하며 복음의 일꾼으로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을 것이다. 또 하나님은 이 핍박을 통해 교회를 정결케 하고 주의 백성들로 하여금 오직 복음 안에 생명과 소망이 있음을 깨닫고 말씀 안으로 깊이 들어 갈 수 있도록 인도하실 것을 확신한다.
시과 | 순회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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