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무력시위 이면의 핵 문제 최근 북한은 미사일 발사를 비롯하여 재래식 전력까지 사용한 도발이 이어지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결국 주요 관건은 핵 문제로 보고 있다. 재래식 전력은 남한에 비해 열세인 상황이고, 미사일은 핵탄두를 장착, 적진에 투발하는 도구로서 역할이 강조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북한이 지난해 9월 8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7차 회의에서 공표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무력정책에 대하여(이하 신법)’라는 이름의 법령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법은 2013년 제정되었던 기존의 ‘핵보유국법(이하 구법)’을 대체하는 것이다.
신법의 주요 내용은 먼저 핵무력의 목적을 국가주권과 직결시켰을 뿐만 아니라 ‘령토완정’, 즉 남북 통일의 목적으로 사용할 가능성도 추가하였다. 핵무력의 지휘통제와 관련하여 구법에서는 최고 사령관인 김정은의 최종 명령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으로 규정하였으나, 신법에서는 사전 결정된 작전 방안에 의해서도 이루어진다는 점을 추가하였다. 핵무기 사용 조건과 입장에 대해서도 구법이 비핵국가들에 대한 핵무기 불사용을 강조하였다면 신법에서는 ‘북한에 대한 핵무기 공격 등이 임박한 경우’ 사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 추가되었다. 한편 핵확산 방지에 대해서는 ‘핵무기의 국외배비(配備), 공유, 이전’ 등 핵과 관련한 국제법적인 규제 항목을 나열하며 이를 ‘금지’하는 내용을 포함시킴으로써 핵확산 방지 노력을 구체적으로 규정하였다.1)
이번 신법 제정의 목적에 대한 해석이 다양하지만 가장 핵심적인 쟁점은 북한의 핵무기 선제 사용의 가능성 언급이다. 신법에서는 방어 수단뿐만 아니라 북한에 대한 공격이 ‘임박’했을 경우에도 핵을 사용하겠다고 규정하여 북한의 자의적 판단으로 선제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두었다. 또한 최고 지도자의 명령이 아니더라도 특정 상황에서 자동적으로 핵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점은 지도자의 신변을 위협할 경우 그에 상응하는 핵 보복을 감행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풀이할 수 있다. 덧붙여 핵확산 방지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자신들이 이미 핵보유국가이며 이제 앞으로의 협상을 비핵화가 아닌 군축 협상으로 끌고 가겠다는 복안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의 핵무력 관련 신구 법률의 비교
항목 |
신법 |
구법 |
목적 |
■ 국가주권, 영토완정, 인민의 생명안전을 수호하는 국가방위+전쟁억제+적대세력의 침략과 공격을 격퇴(제1조) |
■핵위협에 대처하는 억제격퇴 방위수단(제1조, 제2조) |
지휘통제 |
■국무위원장(김정은) or 사전결정된 작전방안(제3조) |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의 최종 명령(제4조) |
사용조건 |
■북한에 대한 핵무기 공격 등이 임박한 경우(제6조) |
■비핵국가들에 대한 핵무기 불사용(제5조) |
핵확산 방지 |
■핵무기의 국외배비(配備), 공유, 이전 등 '금지'(제10조) |
■핵확산 방지의 국제적 노력에 '협조'(제8조) |
핵무력 구성 |
■각종 핵탄, 운반수단, 지휘 및 조종체계 등(제2조) |
■ 관련규정 없음 |
사용결정 집행 |
■ 핵무기사용명령 즉시 집행(제4조) |
■ 관련규정 없음 |
동원태세 |
■임의의 조건·환경에서도 집행할 동원태세유지(제7조) |
■ 관련규정 없음 |
종합평가 |
■선제사용가능성 포함 |
■ 방어적 사용 천명 |
북한의 이러한 적극적인 핵무기 사용 가능성 확대는 협상 상대인 미국의 반발을 가져오고 있다. 미국 핵태세 검토 보고서(NPR)는 북한에 대해 북한이 핵, 화학무기, 미사일 능력을 증강해 왔고, 김정은이 이 능력들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위협으로 평가했다. 특히 북한이 정권 안보를 최우선하는 점을 반영하여 미국이나 동맹국에 핵공격을 가할 경우 ‘정권 종말(the end of regime)’로 귀결될 것임을 명시하였다. 더불어 북한은 단거리 핵무기를 이용하여 동아시아에 전략공격을 감행할 수도 있음을 경고하면서 미국의 핵무기가 전략공격 억제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임을 강조했다.2)
한국 내에서도 북한의 핵무장과 제7차 핵실험 움직임에 대해 남한이 핵을 보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현재 북한은 핵 없이는 경제적/군사적 열세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핵을 포기하기 어렵고, 남한 입장에서도 핵무기가 없이는 북한과 힘의 균형을 이룰 수 없는 만큼 남북 간 대등한 대화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그리고 이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 옵션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3) 남한이 핵무장을 추진할 경우 북한이 한국을 무시할 수 없고 남북 군비통제와 대화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남북이 핵군비 경쟁에 나설 경우 북한은 현재 50개 정도 핵무기를 가지고 있고 2030년경에는 100여 개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지만, 한국은 이미 핵무기 4,000여 개를 만들 수 있는 핵물질을 가지고 있으므로 오히려 협상의 우위를 가질 수 있다고 보았다. 이는 실제로 핵무기를 기하급수적으로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 핵무장을 새로운 협상 카드로 꺼내 듦으로써 북한의 셈법을 바꾸고 일본과 대만의 핵확산을 우려하는 중국이 북한으로 하여금 다시 비핵화 협상으로 나오도록 압박하는 데 유용한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도 북한이 미국이 아닌 한국과 핵 협상을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미국 본토에 대한 타격 위협이 의미를 잃게 되고 미국은 더욱 안전해질 수 있다는 측면에서 충분히 용인 가능할 것으로 보았다.
물론 남한의 핵무장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다. 해리티지재단의 브루스 클링너(Bruce Klingner) 선임연구위원은 남한에 핵을 배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적절하지 않다고 강조한다.4) 핵을 원격으로 투발하거나 해양에서 발사가 가능한 상황에서 꼭 특정지역에 핵을 배치한다는 개념은 이미 사장된 것이며, 오히려 한국의 핵무장은 미국 내에서 주한 미군 철수의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보았다. 핵무장을 통해 한국이 스스로를 지킬 역량을 확충한 상황에서 주한 미군이 계속 주둔하는 것은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과도하게 고조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불거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핵무장을 위한 NPT(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 핵확산금지조약) 탈퇴로 인한 국제사회의 제재를 남한도 피할 수 없으며 중국의 반발이나 일본의 핵무장 자극 등 여러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북한의 조바심과 딜레마 북한의 군사 행보와 핵사용 가능성 확대는 한미의 반발과 국제사회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그럼에도 북한이 지금 이 시점에서 집중적으로 군사행보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면에 작용하는 동기와 판단을 짐작해보면 북한 정권의 행보에서 일종의 조바심이 느껴진다. 먼저 경제적으로는 대북 제재 이슈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북한은 현재 국제사회의 제재로 인해 수출과 수입 모두 상당한 제약을 받고 있다. 외화의 고갈과 산업 생산에 필요한 필수 자원 수입의 제한은 북한 경제를 근본부터 위협하고 있다. 북한은 이에 대응하듯 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한 국경 봉쇄로 교역량 자체를 급감시켰다. 그리고 다시금 ‘자력갱생’을 내세우면서 물자 부족으로 약해진 민수 경제 대신 국가 주도의 군수 경제에 자원을 집중하면서 버티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전반적인 경제 사정과 인민들의 생계의 악화를 피할 수는 없었다. 잠시 동안은 코로나19 방역을 내세우며 악화된 상황을 감수하는 방향으로 통제하긴 했지만, 어려움이 계속해서 누적된다면 국가 경제 운영의 어려움은 물론이고 인민들의 불만도 위험한 수준으로 축적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북한 당국이 강력한 군사 행보를 선전하는 이유에는 인민들에게 그간 집중된 군수 경제의 성과를 보여주어야 하는 현실적인 필요도 있었을 것이다.
현 대북 제재는 북한의 연속된 핵실험으로 인해 부과된 만큼 북한의 핵개발과 직접적 연관이 있다. 그렇지만 북한은 제재의 원인이 되는 핵을 포기하는 대신 국제사회에서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기를 원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핵을 보유한 가운데 경제 제재를 해제하고 협상 자체를 비핵화가 아닌 군축 협상으로 이끌고자 하는 것이다. 최근 미중/미러 갈등으로 인한 소위 ‘신냉전’적인 상황은 북한의 과감한 행동을 더욱 부채질하는 측면이 있다. 먼저는 러우전쟁 등으로 관심이 쏠린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시선을 다시금 북한으로 돌리고자 하는 의도가 있을 것이고, 더 나아가 이렇게 도발을 하더라도 중국과 러시아가 제재에 동참하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도 깔려 있을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22일 있었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의 ICBM 발사에 따른 제재 강화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양국의 북한 관련 거부권 행사는 2022년에만 10번째이다.5) 이러한 환경이 자신들이 원하는 핵군축과 제재 해제로 협상을 이끌기를 원하는 북한은 바로 지금이 그 계기를 만들기 위한 도발적인 행동을 실행하기에 가장 좋은 때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근래의 유례없는 잦은 무력시위는 어찌 보면 북한이 그만큼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어떻게든 성과를 내서 핵을 보유한 가운데 경제 문제를 함께 해결하겠다는 조급함을 반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결론 그렇다면 북한의 전략적인 행보는 그에 상응하는 성과를 내고 있을까? 아직 판단하기 어렵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북한의 바람과 노력이 오히려 역효과를 낳고 있는 듯이 보인다. 먼저 북한의 도발에 대한 한미의 군사적 대응 수위가 자연스럽게 높아지고 있다. 앞서 언급한 한미 해상/공중연합훈련의 경우 전에 비해 대규모로 실시되었다. 해상연합훈련의 경우 미국 핵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함이 참가하였고, 공중연합훈련의 경우 미국의 전략자산으로 꼽히는 ‘B-1B’ 전략폭격기가 참여하는 등 전에 비해 훈련 수위도 높아졌다. 양국의 북한에 대한 경고 발언의 수위도 높아졌다. 지난해 11월 3일 열린 한미안보협의회의(SCM)에서는 북한이 전술핵 등을 사용할 경우 ‘김정은 정권의 종말을 초래할 것’이라며 강력한 대북 경고장을 날렸다. SCM공동성명에서 정권 교체나 종말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의 핵무장에 대해서 아직은 회의적인 시각이 많지만 관련 논의가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체제 유지를 위해 북한이 내세우는 핵무장과 군비 증강이 오히려 현 북한 정권에 대한 군사적 위협을 증대시키는 역효과를 내고 있는 형국이다.
북핵 문제는 핵군축이든 비핵화든 그 진정성과 검증 가능성 여부가 관건이다. 이는 국제사회에서 신뢰 회복과 이를 위한 투명성(Transparency) 확보의 문제로 귀결된다. 예를 들어 향후 북핵 협상이 비핵화 대신 핵 군축으로 옮겨질 경우를 생각해보자. 핵군축도 제대로만 이루어진다면 한반도 평화 증진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만약 북한의 보유 핵무기량이 현재 추정되는 50여 개에서 10여 개 수준으로 감소한다면 그만큼 북한이 핵사용 가능성은 자연스럽게 줄어들게 되고 방어나 대응도 용이해지게 된다. 하지만 실제 북한이 핵을 정직하게 자신들의 핵무기 수량을 공개하고 폐기할 것인지, 추가적인 핵무기 생산을 중단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크다. 만약 북한이 핵무기 생산 능력을 유지한 가운데 생색내기 수준의 핵군축만 이루어지고 북한이 원하는 핵보유국 인정과 제재 해제를 얻어낸다면 북한의 핵 활동에 대한 외부의 제어력이 상당 부분 상실되는 가운데 핵 위협이 이어지는 최악의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 비핵화 역시 같은 의문점과 마주하게 된다. 즉 현재의 비핵화나 핵군축에 대한 논의와 협상이 의미를 가지려면 결국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신뢰할 만한 대화 상대로서 인정받기 위한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특히 자신들의 이미지를 크게 훼손하고 있는 인권 탄압과 열악한 인권 상황에 대한 개선을 이루는 것이 필요하다.
빅터 차 조지타운대학교 교수는 “북한과 신뢰할 수 있고 종합적인 합의를 이루려면 (인권 문제는) 반드시 다뤄야 하는 주제”라고 지적하고 그 이유를 세 가지로 제시한다. 첫째, 국제사회에서 땅에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함이다. 북한이 수용소를 폐지하거나, 굶어 죽는 주민에게 제대로 구호식량을 배급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국제사회는 비로소 북한이 개방을 향한 전략적 선택을 했다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북한 내 인권 상황의 개선 없이는 현실적으로 현장 검증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자국의 인권 실상의 ‘치부’가 외부에 드러나는 것을 극도로 꺼리기 때문에 인권 상황에 대한 개선이 선행되지 않으면 아무리 비핵화 협상을 잘 한다 해도 검증 단계에서 벽에 부딪칠 것이다. 마지막으로 북한에 대한 경제적 보상책 실행에도 인권 개선이 필수적이다. 실제 비핵화에 진전을 이루고 대북 제재가 해제되더라도, 인권 개선 없이는 미국 기업들이 북한에 투자를 꺼릴 것이라는 설명이다.6)
이런 맥락에서 우려스러운 점은 북한 당국이 외부의 적을 만들고 이를 통해 주민 통제를 강화하고 외부 사조에 대해 강력 처벌하는 등 현 상황을 더 큰 억압을 통해 통제하려 한다는 사실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기독교에 대한 박해도 더욱 극심해지고 있다. 현 북한 정권은 주민들에게 군사적 성과를 선전하면서 외부의 적으로 경제난의 책임을 돌리고 있다. 최근 고조되는 군사적 긴장 상황을 주민 통제에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이 계속해서 인권 유린, 통제, 박해로 체제를 유지하고 난관을 돌파하려는 잘못된 선택을 되풀이한다면 결국 북한 당국에 대한 불신과 부정적인 평가를 바꿀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욱 악화될 것이다.
그동안 북한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핵과 미사일을 선택했다. 그러나 그 무기들은 역으로 자신의 목을 조르고 있다. 대북 제재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에 더해 군사적 긴장 고조에 따른 군비 경쟁 측면의 압박도 증대되고 있다. 이제는 북한 당국이 지금까지의 방식을 재고하고 바른 선택을 고민해야 할 시점으로 보인다. 아무쪼록 북한이 더 큰 죄악을 더하는 정책이 아닌 큰 틀에서의 방향 전환을 이룰 수 있길 바라며 이를 위해 우리도 함께 기도하자.
* 이 글은 <북한개발소식> 2022년 12월호(통권 206호)에 실린 내용을 저자의 허락을 받아 수정, 보완하여 게재하였습니다.
미주 1) 이승현(2022), “북한 핵무력 법제화의 함의와 대응 방향”, 국회입법조사처 이슈와 논점 제2007호(22.10.25). 2) 이성훈(2022), “2022 미 핵태세검토보고서(NPR) 주요 내용 분석과 함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이슈브리프 406호(22.11.01), 3. 3) 정성장(2022), “[발제3]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과 남북 핵군축을 위한 4단계 전략”, 2022년 SAND동북아국제포험 동북아 전략환경 변화와 한반도 통일의 길 자료집, 4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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