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쇼핑
2020.2.2  통권 210호  필자 : 오픈도어선교회 북한선교연구소  |  조회 : 2364   프린트   이메일 
[선교일언]
국내 정착 탈북민과 한국교회


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를 기점으로 탈북민들이 본격적으로 이주한 지 20여년의 시간이 흘렀고 국내 입국 탈북민이 3만 3천 명을 넘어섰다. 정부 차원의 지원은 계속 보완, 발전되어 왔으며 사회적으로도 이들에 대한 관심과 인식의 변화가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듯이 보였다. 무엇보다 탈북민들을 통해 그동안 미지의 세계였던 북한 내부의 사회상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 되었다. 교회도 탈북민을 ‘하나님이 먼저 우리에게 보내주신 통일’이라 부르며 이들을 통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자 애쓰며 통일의 비전에 대한 건강한 자극을 받아왔다. 

탈북의 시작은 누구나 다 알다시피 북한에 닥쳤던 기근과 기아로부터 생존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후 탈북의 양상이 시간에 따라 바뀌기는 했지만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더 나은 삶, 인간다운 삶을 찾아 나선 것임에는 변함이 없었다. 북한 당국이 탈북자들을 단순 불법 월경자가 아닌 당과 수령을 배신한 범죄자로 처벌을 지속적으로 강화함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꿈과 소망을 찾아 나선 이들의 탈북행렬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2019년 7월 탈북민 모자 사망사건은 큰 충격이었다. 이들의 추정 사망원인이 어떤 사고가 아닌 굶주림, 즉 아사가 유력하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모친인 한성옥(42세) 씨는 중국 교포와 결혼한 상태로 한국에 들어왔다가 중국으로 이사했고, 지난해 말 아들과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남편과는 이혼한 상태였다. 장애 아들을 홀로 키우며 일을 할 수 없었던 한 씨는 기초생활보장 수급 신청을 위해 주민센터를 찾았지만 담당자는 이혼 확인서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초수급 대상자가 되기 위해서는 아파서 근로 능력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진단서나 한 부모 가정임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혼한 남편이 중국에 있기에 제출할 수 없는 서류였고, 장애가 있었던 아들도 별다른 지원을 받지 못했다. 6세 이하 아이에게 지원되는 양육수당 10만 원이 전부였고 그마저도 아이가 자라면서 끊겼다. 아무 지원도 없는 가운데 아이를 돌보기 위해 일을 하지 못하다 보니 극단적인 상황에까지 이르렀던 것으로 보인다. 극도의 빈곤을 맞닥뜨릴 때 그리고 그러한 상황에까지 몰리는 중에도 어떻게 해야 할지 해쳐 나갈 방법이 없을 때의 절망감은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 험난한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넜고, 국경수비대와 공안의 추격은 이겨냈지만, 모든 것이 풍족하다는 남한에서 쫓아오는 사람도 총칼의 위협도 없는 이곳에서는 생존을 이어갈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 고(故) 한성옥 씨 모자의 추모 분향소


북한과는 달리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고 사방에 먹을 것이 풍족하고 풍요가 넘치는 이 나라에서 아직 젊은 모자가 아사로 운명을 달리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 비극적인 일은 조사가 진행되면 될수록 안타까움과 분노를 자아낸다. 책상머리에서 서류를 바탕으로 한 행정 편의적인 복지 행태 속에 탈북민들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복지가 이루어지지 못한 점을 지적하는 목소리와 함께 정부의 무관심과 비효율적인 탈북민 지원 체계 등 사건과 연관하여 탈북민 지원 시스템 개선의 필요성이 재기되고 있다.

이번 사건을 두고 정부나 관계자들의 잘못된 복지행정 실태 비판하고 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할 방안을 모색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다만 절망적인 상황에서 고통받았을 이들 모자를 생각해보면 정부든 민간단체든 어딘가 자신의 상황을 나누고 기댈 수 있는 그리고 작은 도움이라도 받을 수 있는 곳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크다. 그리고 특별히 우리 교회들이 그런 도움의 창구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교회가 선교적 관점에서 탈북민들을 어떻게 접촉하고 정착을 도울 수 있을지에 대해 여러 논의가 있어 왔다. 통일을 앞당기고 다가올 통일시대의 주역이 될 ‘통일의 마중물’로서 탈북민에 대한 비전과 기대도 나누어지고 있다. 그러나 한 씨의 사례를 보며 아직까지 탈북민들에게 교회가 자신들을 반겨주는 도움과 환대의 공간이 아닌 어렵고 곤란한 곳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생긴다.

사실 탈북민들이 교회를 찾고 신앙을 갖는 것은 절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일반 남한 출신 주민들보다도 신앙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이 많다. 탈북민의 종교 경험에 관한 연구1)에 따르면 상당수의 탈북민들이 기독교에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거리감을 느끼거나 부정적 감정 또는 반감을 가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왜 탈북민들이 특별한 이유 없이도 기독교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까? 그 이유 중 하나로 북한에서 받아온 오랜 적대 교육의 영향을 들 수 있다. 탈북민들은 북한에서 기독교를 부정적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는 교육을 받아왔다. 탈북자들은 비록 북한을 탈출하긴 했지만 종교는 인민을 미혹시키는 아편과 같다는 공산주의사상과 함께 기독교를 적대국의 반혁명적 사상이며, 기독교인을 적대국의 끄나풀이라고 가르쳐 온 북한 정권 아래서 오랜 기간 생활했다. 그러다 보니 지금 남한에서 살고 있다 할지라도 그렇게 교육받았던 영향이 남아 있어 무의식적으로 교회나 기독교에 거부감을 느끼거나 적어도 거리를 두어야 할 존재, 상관해서 좋을 것이 없는 부류라고 생각하기 쉽다.

주체사상과 이를 바탕으로 한 북한 사회 통제 시스템도 남한에 들어와서도 교회를 찾는 데 장애가 되기도 한다.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주체사상은 기독교의 하나님을 수령으로 대체한 듯이 기독교 교리와 매우 흡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유사점은 북한 주민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지만 북한을 탈출한 입장에서 오히려 북한의 사상과 유사하다는 사실이 새로운 교리를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이 되기도 한다.

사상적 체계의 유사성 외에도 주민 교육과 통제 시스템에 있어서도 북한의 그것과 교회의 조직과 운영이 매우 유사하다. 북한 주민이라면 꼭 참여해야 하는 수요강연회, 금요학습, 일요생활총화 등 기독교 예배 시스템과 유사한 통제를 받아왔다. 그러다 보니 교회활동 가운데 이전에 북한에서 자신들이 싫어하고 불편해 했던 또 배신감을 느꼈던 부분들이 회상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특히 자신들을 괴롭혔던 간부들의 권위적인 모습이 교회 목회자와 중직자의 모습과 유사하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탈북민들은 지위, 권력, 권위에 대한 좋지 못한 기억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점도 교회에 다가가기 어려운 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주체사상과 기독교 비교의 또 다른 측면은 유사성이 있음과 동시에 근본적으로는 정반대되는 기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먼저 주체사상은 유물론적, 진화론적인 바탕을 가지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신적 존재에 대한 북한 사회의 이해는 매우 빈약하거나 부정적이다. 수령을 신적 존재로 떠받들도록 교육받고 그렇게 살아가지만 북한 주민들에게 수령은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종교적인 존재가 아닌 살아서 움직이는 사람이고, 내세의 구원자가 아닌 현세에서 인민 대중을 영도하는 위대한 지도자로서 부각되기 때문에 수령의 자리를 하나님으로 단순 대체하여 이해시킬 수 있다는 관점은 반은 맞지만 반은 틀린 생각이다. 기독교의 하나님을 믿는 것은 어떤 측면에서는 북한에서의 믿음과는 전혀 다른 도전이라는 것이다. 또한 주체사상은 개인과 조직, 민족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매우 인본주의적인 사상이기에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의지와 신뢰를 바탕으로 한 기독교적 가르침과는 상충되는 측면이 있다.

이러한 장벽들에도 불구하고 많은 탈북민들이 교회를 찾았던 것은 선교현장에서의 귀한 헌신과 노력 덕분이다. 고난의 행군 시기 당시 조•중국경 인근을 중심으로 여러 안전가옥과 보호처소를 운영하며 탈북자들에게 지원과 함께 성경을 가르치며 신앙인으로 길러냈다. 위험에 처한 탈북자들의 생존을 위해 많은 노력과 수고를 들여 탈출을 돕기도 하고, 북한 인권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어왔다. 이러한 수고 덕분에 감사하게도 많은 탈북자들이 기독교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남한에 정착한 뒤 처음 종교로 기독교를 선택하고 하나원 퇴소 이후에도 교회를 찾았다. 이렇듯 한국교회는 적극적인 선교를 통해 탈북민들의 기독교에 대한 몰이해와 반감을 극복하여 왔으며, 남한 입국 탈북민들의 상당수가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고백하거나 관심을 갖게 하는 효과를 거두었다. 2000년 중반에는 과반수가 넘는 탈북민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그렇지만 탈북민들 중 기독교인의 비중은 시간이 갈수록 감소하고 있다. 북한인권정보센터의 2018북한인권백서2)에 따르면 2008년 조사 당시 기독교인은 전체 64.9%에 달했으나 해가 거듭될수록 감소하여 2018년에는 41.4%에 머물렀다. 여전히 가장 비율이 높은 종교이기는 하나 20%가 넘는 감소세는 분명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점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교회와 성도들의 도움으로 성공적으로 남한 사회와 교회에 정착하고 귀한 믿음의 일꾼으로 성장하는 탈북민들도 있지만, 반면 교회에서 소외감과 차별감만 느끼고 실망하여 돌아선 탈북민들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또 오랫동안 종교에 대해 부정적으로 교육받아온 탓인지 거부감 속에 교회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탈북민도 있다.

이러한 감소세의 원인은 무엇일까? 최승주3)는 탈북민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에 대해 크게 2가지로 정리했다. 첫째로 주체사상에 바탕을 둔 가치체계가 붕괴하면서 기독교를 새로운 가치체계로 삼고자 했지만 이 체계 또한 경험해보니 절대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 교회를 떠났다. 특히 목회자나 교인들의 언행불일치와 남한교회의 세속적인 경향을 접할 때 이들은 교회와 신앙에 대한 최소한의 존경심마저 무너지고 자포자기하거나 냉소적인 태도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둘째로는 탈북민들이 종교를 거래의 수단으로 삼는 경향이다. 제3국에서는 남한 입국 기회를 더 빨리 잡거나 경제적 지원을 받기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종교활동에 열심으로 참여하였지만 남한 입국 이후에는 자신의 이득을 따라 행동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을 볼 때 적극적으로 탈북민의 관심을 이끌어냈지만 그 관심을 실제적인 신앙으로 연결하지 못하고 방치한 교회의 무관심 또는 지혜롭지 못한 사역 행태가 아쉽다. 선교현장에서 열과 성을 다해 수고한 선교사들과 사역자들 덕분에 많은 탈북민들이 복음을 듣고 교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만, 이들은 아직 믿음의 걸음마를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에 있다. 보호처소에서 오랫동안 성경을 암기하고 훈련받은 이들이라 할지라도 지식이 자연스럽게 믿음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 여러 사례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들을 지속적으로 신앙 가운데 양육하고 돌볼 일선 교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 남한 내 교회들의 탈북민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낮다. 대부분의 교회가 탈북민을 교회의 사역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고, 통일선교부 등 탈북민을 위한 부서를 만들거나 사역자를 배치하지 않고 있다. 또한 교회로 찾아온 탈북민이 아직 신앙이 성숙하지 못하고 양육을 받아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섣불리 집회와 간증 등을 통해 이벤트성으로 활용하다가 오히려 역효과를 내기도 한다. 그간 북한선교에 쏟은 헌신과 노력을 생각해볼 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교회로 찾아온 탈북민을 돕는 방식도 지혜롭게 해야 한다. 초기 탈북민사역의 시행착오 중 하나는 재정 지원과 교회 출석을 연계한 사역 방식이었다. 매주 출석 체크를 하고 일정 금액을 받아가게 하는 식의 사역은 탈북민들이 아직 제대로 된 신앙을 가지지 못한 상태에서 돈이 교회 출석의 주요 동기로 작용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사역을 통해서 이분들이 교회에 잘 정착한 경우도 있었지만 긍정적인 효과보다는 역효과가 더욱 심각했다. 재정 지원을 받기 위해 교회를 출석하다 보니 신앙을 돈과 결부시켜 생각하게 되었고, 유사시에 돈을 더 많이 지원해주는 이단, 사이비 단체로 쉽게 이동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며, 돈으로 생색내는 교회의 모습에 모멸감을 느끼며 교회에 발길을 끊는 경우도 발생했다.

 

 

 복음을 받고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 된 탈북자들도 교회생활이 만만치만은 않다. 그간 목회적 관점에서 탈북민들이 신앙 안에서 치유받고 성장하여 앞으로의 통일시대의 주역으로 성장시켜야 한다는 비전이 통일에 관심 있는 교회와 단체를 중심으로 이야기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비전에 힘을 얻는 탈북민도 있지만 현실과 이상의 괴리 속에 부담감만 느끼는 이들도 있다. 취업난과 소득 양극화의 냉혹한 현실 속에서 남한 출신 사람들도 부대끼는 와중에, 상대적으로 여러 면에서 준비가 부족할 수밖에 없기에 당장 살아남기조차 벅찬 것이 많은 탈북자들이 당면한 현실이다.

물론 일선 교회 입장에서 탈북민은 사역하기 편한 대상은 아닐 것이다. 그간 겪어온 삶의 궤적이 남한 출신의 성도와 상당히 다르고 신앙적 배경이 거의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너무 어렵게만 생각하고 소극적으로 접근하는 것도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다. 다만 사역 대상을 이해하고 섬기기 위한 최소한의 준비는 해야 할 것이다. 기독교에 대한 배경이 없어 성경의 용어나 교회의 문화가 너무도 생소한 이들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장기간에 걸쳐 탈북민들을 돌보고 양육할 수 있는 교회 내 시스템이 준비되어야 한다. 아직도 만연한 교회 내 무의식적인 차별과 소외도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또 탈북자들을 단순히 이벤트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사역 행태는 지양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교회는 탈북민들의 몸과 마음이 회복되고 재충전되는 가운데 새로운 꿈과 희망을 품고 노력할 수 있는 그런 환대의 공동체, 도움의 공간으로 변화되는 것이 필요하다. 교회와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환대의 본을 보여주어야 한다. 세속적인 가치가 아닌 신앙으로 살아가는 것의 중요성을 몸소 실천하는 본을 보이며 사랑과 인내를 가지고 다가가야 한다. 이제 막 믿음의 걸음을 옮기는 이들이 성숙한 신앙인에 이르기까지 적어도 수년의 시간은 필요하다. 끈기와 인내를 가지고 영혼을 향한 사랑의 마음으로 다가설 때 마음밭이 기경되어 풍성한 결실을 맺게 될 것이다.

더 많은 탈북민들이 교회에서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하고 고단한 현실을 이길 수 있는 공동체를 만날 때 자연스럽게 탈북민 사회에서 교회가 다시금 신뢰를 얻고 교회로 발걸음 옮기기를 주저하지 않게 될 것이다. 한성옥 씨 모자와 같은 어려움에 처한 분들도 교회를 하나님의 은혜와 도움이 함께하는 곳으로 여기고 거리낌 없이 교회를 찾아올 수 있게 우리의 노력과 관심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미주    
1) 이순형 외 (2015), 《북한이탈주민의 종교경험》, 서울: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 윤여상 외 (2019), 《2018 북한 종교자유 백서》, 서울: (사)북한인권정보센터 북한종교감시기구. 172-173.
3) 최승주,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종교 단체의 역할과 과제”, 통일문제연구 2017 29(2). 173-176.



* 이 글은 <북한개발소식> (2019년 10월호 통권 168호)에 실린 내용을 저자의 허락을 받아 수정, 보완하여 게재하였습니다.

 

 



 

오픈도어선교회 북한선교연구소
 

    인쇄하기   메일로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