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
모든 선교사가 마찬가지겠지만 비단 선교지로 출발하기 전 뿐만 아니라, 선교지에서 사역을 하는 과정에서도 항상 주께서 확인 하시는 것은 소명인 것 같다. 그리고 그 소명을 확인하시는 가장 확실한 도구는 물질인 것 같다. 출국하기 전 전국의 교회에 기도편지를 발송하고 후원을 요청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후원 요청을 했던 교회나 개인을 통해선 재정 공급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주님은 나로 하여금 주께서 친히 나를 파송하셨다는 고백을 하게 하셨고, 이는 공급의 원천이 어디인지를 명확하게 인지케 되는 계기가 되었다. 주님이 나를 파송하셨으니 주님께서 책임져 주신다는 믿음의 기도를 드렸을 때, 예상 밖의 사람들을 통해 필요를 공급하기 시작하셨다. 사역에 필요한 재정이 주님께서 친히 예비한 이들을 통해 채워지는 것을 경험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들만이 경험할 수 있는 행복이리라. 
  기혼선교사들에게 물질 다음의 훈련은 자녀문제인 것 같다. 아이들이 중국 학교에 입학을 하고 1-2년 안에 중국어를 극복하여 날마다 우수한 성적을 받는다면 이것이 주님이 우리를 부르신 증거일까? 모든 문제가 술술 풀리는 것만이 부르심의 증거는 아닌 것 같다. 돌이켜보면 아이들을 현지 학교에 입학시켜 놓고 우리 부부의 삶은 전쟁과 같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저녁에는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을 하고, 정기적으로 담임선생님과 상담을 하며, 부부가 책상에 앉아 아이들의 중국어 단어장을 만들어 주었다. 주말이면 아이들의 기분 전환을 위해 외식을 하고, 저녁에는 ‘가족오락관’이라는 명칭 하에 아이들과 함께 윷놀이를 비롯하여 함께 할 수 있는 모든 놀이를 하였다. 한국인으로 키우기 위해 태극기를 거실에 걸어 놓고, 신앙인으로 키우기 위해 매일 함께 성경을 읽고 기도회도 가졌다. 그러나 아이들은 새벽에 학교에 가고 점심을 위해 집에 올 때까지 대소변을 참으며, 등받이도 없는 의자에서 하루 종일 공부를 해야 했다. 급기야는 학교를 가는 것을 두렵게 여기게 된 아이를 위해 고국에 긴급 기도 요청을 하고 정서적 안정을 위해 아이에게 더욱더 집중해야만 했다. 같이 학교를 졸업한 중국 아이들은 중학교에 진학했는데 우리 아이는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입학 허가를 주지 않아 길바닥에 눈물을 뿌리며 학교를 찾아야 했던 기억들…  그러나 이러한 과정들은 오히려 우리로 하여금 탄원서를 제출해야 할 곳은 우리를 파송하신 주님이라는 사실을 배우게 했고, 파송하실 뿐만 아니라 선교의 현장에서 나와 함께 눈물을 흘리시는 주님이심을 경험하게 하였다.    

이 땅의 주인이신 주님
타 문화권에서 사역을 하기 전에 정착이라는 과정을 겪게 된다. 그것은 단지 새로운 문화권에서 생존 할 수 있다는 의미를 지나 그 문화권의 영혼들을 섬기는 기초를 다지는 중요한 작업인 것 같다. 150원 달라는 운동화를 35원에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은 아주 작은 일이다. 통장을 만들기 위해 한 시간을 은행 창구에서 짧은 중국어로 실랑이를 벌이다 마침내 현금 카드와 통장을 손에 들고 뒤돌아서는 순간 내 뒤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던 수많은 눈동자들과 마주쳤을 때, 등줄기에서 흐르는 땀을 식혔던 일도 이제는 추억이 되었다. 공공장소에서 질서를 어기는 일은 다반사며, 너무나 뻔뻔하게 사람들을 끊임없이 속이는 이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일은 더욱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조금씩 중국교회를 알아가면서 믿음의 용사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들이 허락되었다. 모진 고문으로 인해 여러 장애를 갖게 된, 중국의 사역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주님은 중국교회에 대해 무례히 행치 말라고 하셨다. 공산화와 문화대혁명의 암울한 시기를 거치면서 서방의 그 누구로부터 보호 받을 수 없었던 중국교회는 주께서 친히 보호하시고 양육하신 주님의 교회였기 때문이다. 이후로 이것은 단기팀이 올 때 마다 역설하는 주제 중의 하나가 되었다.  ‘가르치려 하지 마십시오. 이 땅을 오염시키지 마십시오. 이 분들이라고 호칭부터 바꾸십시오.…’그 후 교회를 포함해서 이 땅의 주인은 주님이시라는 원칙이 나의 사역의 기초가 되었다.

가장 힘들었던 사역은… 기다림
‘나도 사역이라는 것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과 함께 막막한 심정으로 불안해 할 때 한국의 한 교회에서 요청이 들어왔다. 후원을 할 테니 사역계획서를 제출하라는 것이었다. 단 한 푼이 아쉬울 때 이 말은 우리 가정에게 천국과 지옥이 교차하는 제안이었다. 후원을 받을 수 있다는 기쁨과 함께 ‘사역의 방향을 못 잡고 있을 때 무슨 계획서란 말인가?’ 하여 고민 끝에 솔직한 심정을 써내려갔다. ‘… 아브라함이 갈 길을 모르고 나아간 것처럼, 저도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중국으로 왔지만 어디로 가야 할 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  화려하게 계획서를 쓸 수도 있었지만 주님이 보여주신 것이 없기에 아무것도 쓸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당시로서는 그저 기다리는 것이 나의 사역이었다. 후원하겠다는 한국교회에 보고할 것이 없는 기다림은 참으로 비참한 일이었고, 아무것도 하는 일 없이 노는 것(?)은 나를 더욱 미치게 만드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 이 후로 주님은 비로소 사역의 문을 여시기 시작하셨다. 기다림의 과정을 통해 내가 사역을 계획하고 찾는 것이 아니라 선교의 주인은 주님이시라는 것을 배우게 하셨던 것이다. 지금 그 교회는 우리의 든든한 동역자가 되었다. 
  짧은 중국어로 사역을 하는 것은 정말이지 괴롭고 힘든 일이다. 그러나 더욱 힘든 것은 나에게 아무것도 선한 것이 나올 것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선교의 주인이신 주님은 동시에 사역의 주인이시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깨닫고 나서 사역이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일하시는 주님을 보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서 있고, 믿음으로 주님이 말씀하시게 하면 되었다. 지금도 기도 제목 중의 하나는 이 땅의 주인, 선교의 주인은 주님이시라는 사실을 잊어버리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다. 죽는 날까지 주님 집의 충실한 가정부가 되었으면 좋겠다.

십자가를 아십니까?
사역을 감당하면서 서서히 발견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나에게 말씀하시고 훈련하셨던 모든 것, 기질, 성품까지 주님은 나의 모든 것을 사용하시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과거에 내가 받았던 상처들까지도 사용하시는 오묘하신 주님의 섭리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결국 40년 나의 삶이 사역과 강의 가운데 고스란히 녹아나오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오늘의 삶 또한 미래의 어느 일을 위한 준비임을 깨닫게 되었다. 결국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사역이 아닌 나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언가 중국의 영혼들에게 더 많이 주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걸쭉한 죽을 쑤고, 죽을 쑤면 쑬수록 더욱 몸부림을 치며 좌절감에 휩싸이던 나를 주님은 치유하시기 시작하셨다. 중국의 지체들을 섬기면서 주님은 오히려 나를 온전케 하시고 있었던 것이다. 언어로 말미암아 답답해 할 때, 실패와 좌절로 눈물 흘릴 때 주님은 그 멍든 마음과 눈물을 통해 나를 만지고 계셨던 것이다. 이제는 사역 때문에 몸부림치지 않고 과장된 절제로 나를 혹사시키지도 않는다. 마음이 복잡할 때는 아내와 함께 KFC나 피자헛에 가서 커피 한 잔하는 낭만도 가지게 되었다. 오늘도 나는 더욱 주님을 알아가고, 주님께 사로잡히기 위해 기도한다. 어쩌면 나는 사역에 관심이 없는 선교사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을 나에게 부탁한 것은 사람을 잘못 선택한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단기팀에게 혹은 선교사 후보생에게 하는 말이 있다.“십자가를 아십니까? 주님은 십자가를 아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십자가를 모르면 자신의 사역을 합니다. 사역 이전에 십자가를 먼저 아세요.??아직도 멀었지만 자신의 전 삶을 십자가에 드리는 사람을 주님은 쓰신다는 믿음이 있기에, 선교사로서의 내가 아닌 주님의 신부로서의 나를 원하시는 주님을 알기에 오늘도 나 자신을 드리는 훈련을 해본다. 

그 날을 바라보며
지금 거주하고 있는 지역은, 오길 꺼려했던 곳이다. 공기가 안 좋을 뿐만 아니라 자녀 교육 문제가 해결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은 환경이 좋은 곳으로 가기 위해 몸부림치는 나를 굴복시키셨다. 환상을 통해 너무나 분명하게 지시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고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주님은 우리의 뇌리 가운데 한 조각 한 조각 청사진을 그려 넣기 시작하셨다. 도저히 말할 수 없고 감당할 수 없는 청사진들이다. 그러나 퍼즐을 맞추어 가듯 당신이 그려놓으신 청사진에 따라 열심히 일하고 계시는 주님을 믿는다. 그 주님은 오늘 드려지는 나의 조그만 헌신들을 모아 커다란 작품을 완성시키실 것이다. 그 날을 바라보며 나는 오늘 주어진 일들에 충성하고자 한다. 오늘 나는 그렇게 건축 현장에서 한 장의 벽돌을 쌓는 미장이가 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주님은 나의 현장 소장이시요, 작업반장이시다. 오늘 이쪽 벽을 쌓으라 하시면 쌓을 것이요, 저쪽 벽을 허물라 하시면 허물 것이다. 마침내 완공의 날 나는 먼지 묻은 작업복을 벗어 버리고 목욕을 한 후에 깔끔한 양복에 나비넥타이를 메고 기쁨으로 준공식에 참석할 것이다. 그 날만큼은 머리에 기름도 바르고 싶다. 주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그 자리에 나는 한 손에 쟁반을 받쳐 들고 레드 와인을 따르는 복무원이 되고 싶다.

홍수아/ 중국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