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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중국의 심장 베이징(北京)에서 유학생 신분으로 한 선교사님을 도우면서 선교훈련을 1년 동안 받았다. 그때 선교사로 헌신하였고 같은 비전을 품은 아내도 만났다. 그리고 2년 정도 직장생활을 한 뒤 부르심을 따라 2005년부터 베이징의 한 대학 캠퍼스에서 사역을 하게 되었다. ‘전도, 육성, 파송’ 전략을 통해 제자로 삼는 사역을 한 지 13년이 지난 2017년 8월 어느 무더운 여름날에 공안국에서 취조를 받았다. 공안국은 두 가지의 ‘죄목’을 들어 취조를 하였고, 결국 우리 가족은 사랑하는 그 땅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공안국의 두 가지 죄목 중 첫 번째는 “중국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전도활동을 했는가?”라는 질문이었다. 나는 “당연히 했지요! 그러려고 온 건 데요!” 여기서 “아니오, 전도활동한 적 없습니다.”라고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필자가 중국에 온 가장 큰 목적은 바로 중국선교의 비전 즉, 중국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전도하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리고 또 그들은 두 번째 죄목을 확인한다. “중국에서 중국 사람들을 해외선교에 동원하고 훈련한 적이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했지요! 제가 이곳에 올 때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 ‘중국선교를 통한 세계선교’의 비전인데, 그러려고 왔고 자연스럽게 중국인선교사들이 해외에 장단기선교사로 나가도록 동원하고 훈련하고 파송하는 것을 도왔습니다!” 그 순간 10여 년 전 어느 여름 중국 농촌가정교회에서 보았던 한 장면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중국에 처음 왔을 때는 중국이 단순히 선교의 대상지라는 생각이 앞섰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미 1950년대에 중국의 많은 그리스도인 지도자들에게 꿈과 환상, 성령의 감동 등을 통해 중국교회에 말씀하신 것이 있었다. 중국교회에 큰 부흥을 주실 것과 그들이 복음을 들고 전 세계로 나아가는 선교사를 파송하는 국가가 될 것이라는 ‘선교중국’의 간증들이다. 오랜 핍박 속에서도 중국교회는 성장하였고, 선교중국의 비전은 많은 농촌가정교회가 함께 품고 노래하는 비전이 되었다.
2006년 여름, 필자는 선배선교사님 부부를 따라 중국에서 가장 많은 기독교인들이 있는 허난성(河南省)의 한 시골 마을에 간 적이 있다. 그 시골 마을의 3분의 1 이상이 기독교인들이었는데, 그들은 이미 많은 중국 내 소수민족지역과 중앙아시아, 중동 등 이슬람권 국가에 이르기까지 중국인선교사들을 파송한 것을 보았다. 이들은 2년에 한 번 고향으로 돌아와서 선교사수련회에 참가한다. 때마침 선배선교사님 부부가 상담을 하기 위해 초청을 받았는데, 필자도 함께 동행하는 기회가 주어졌다.
허름한 헛간 교회당, 마이크 하나 없는 무반주의 ‘선교하는 중국(宣教的中国)’이라는 찬양을 부를 때의 그 우렁찬 함성, 중국인선교사들의 뜨거운 열정과 하나님을 향해 포효하는 그 외침이 지금도 선명하게 들리는 듯하다. 하지만 상담 시간 내내 느끼게 된 것은 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농촌가정교회 출신의 선교사들이 선교지에서 겪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어려움들이었다. 영어를 못하기 때문에 주위 다른 나라 선교사들과 교제를 나누고 협력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 현지어 습득의 어려움, 열악한 재정후원으로 인해 선교지에서도 생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간의 대부분을 보내느라 현지인사역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이뿐만 아니라 부부관계의 어려움, 고향에 두고 온 자녀들 문제 외에도 많은 어려움들이 산적해 있었다. 이들은 내가 대학생사역을 한다고 하니까 이구동성으로 그 사역을 열심히 해서 대학을 졸업한 젊고 똑똑한 청년들을 선교지로 보내 달라고 했다.
지혜롭게 계속된 대학생 단기선교
2005년부터 캠퍼스사역의 부흥현장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학생들을 데리고 다른 도시로 국내 단기선교를 갔다. 많은 학생들이 단기선교에 참여하면서 잃어버린 영혼을 애타게 찾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 또한 여러 가지 모양으로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면서 신앙이 자라고 전도하는 삶으로 자연스럽게 훈련되었다. 여름 방학에는 타문화 단기선교사역을 중국의 미개척지 서북, 서남지역의 가난한 소수민족지역으로 다녀왔다. 우리 가족도 칭하이(青海)성의 티베트족 지역과 무슬림 소수민족지역으로 가서 1년간 중국인선교사를 위한 타문화선교 훈련을 하며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하였다. 베이징올림픽 때인 2008년 신장(新疆)위구르 유혈 사태 속에서도 단기선교는 이어졌다. 2009년에는 중앙아시아 K국에, 2010년에는 서남아 B국에도 학생들과 같이 다녀왔다. 중앙아시아에는 거의 매년 단기선교 팀이 갔으며, 중국인선교훈련생이 배출되어 파송까지 하였다. 더 나아가 대학 졸업생들이 장기선교사가 되어 이슬람권 국가에서 사역하게 되면서 선교중국 비전을 구체화하였다.
그러다가 2017년 파키스탄에서 한국인선교사가 운영하는 언어문화센터에서 사역했던 두 명의 중국인 단기선교사가 IS조직원에게 납치되어 결국 순교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중앙아시아 단기선교 지도자로 한창 준비 중이었는데 그런 민감한 시기에 중국인 단기선교팀을 파송한 것이 두 번째 죄목이 된 것이다. 어쩌면 ‘선교중국’의 비전을 향해 나아가다 보면 겪을 수밖에 없는 당연한 결과였다. 그렇게 13년간 섬겼던 사랑하는 그 땅과 사랑하는 제자들을 떠나게 되었다. 중국이 아닌 또 다른 나라에서 중국인선교사들과 함께 사역하는 가능성에 대해서 벌써부터 열려 있었다. 하지만 그 시기가 생각보다 빨리 갑자기 다가왔기에 당황스러웠을 뿐이다. 그동안 중국교회들은 이슬람권 선교에 대해 많은 관심이 있었으며, 필자 또한 학생들과 주로 갔던 곳이었기에 중국인선교사들이 파송된 이슬람권 나라로 보내 달라고 기도했다. 그러나 소속 선교단체를 통해 추천을 받은 나라는 우리 가족이 한 번도 가 본 적도 없고 갈 생각도 해 본 적이 없었던 동남아 인도차이나반도에 있는 V국이었다. 다음 진로를 놓고 기도하면서 1주일 동안 비전트립을 떠났다.


새로운 전환을 위해 기도하면서 떠난 비전트립
오토바이의 물결 속에서 발견한 한 가지는 젊은 부부, 어린 자녀들, 청소년과 청년들로 가득한 생동감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알고 보니 1억 가까운 인구의 40%가 30대 미만인 젊은 나라였다. 미래가 있는 나라! 이곳의 대학 캠퍼스에서 학생들을 만나 보니 2002년 선교훈련생일 때 중국에서 만났던 순수한 중국 대학생들의 모습과 비슷해 보였다. 기독교인은 전 인구의 1~2%에 불과했다. 거의 모든 집과 가게에는 조상과 우상을 숭배하는 제단이 있었고, 예수님에 대해서는 전혀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한 대학의 캠퍼스에서 혼자서 영어 말하기 연습을 하던 학생에게 다가가 영어로 대화를 시도해 보았다. 미국 유학을 위해 대사관 인터뷰를 준비 중이던 컴퓨터공학과 1학년 남학생이었다. 영어 인터뷰를 조금 도와줬을 뿐인데 마음의 문을 연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참이나 나누었다. 미국에 대해 더 궁금한 것은 없는지 물어보니, 그는 미국에 크리스천들이 많다고 들었는데 그들은 무엇을 믿는 것인지 좀 가르쳐 줄 수 있냐는 질문을 던졌다. 주님이 보여주시는 사인처럼…, 자연스럽게 내 휴대전화에 미리 다운로드해 둔 현지어로 읽어 주는 복음 메시지 앱을 열어서 들려주었는데, 그 학생은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영접하였다. 그는 마치 바울에게 나타났던 “와서 도우라!”라고 외쳤던 마게도냐 사람처럼 보였다. 역사박물관에도 가 보았는데 중국역사박물관에 온 줄 알고 깜짝 놀랐다. 알고 보니 V국은 중국의 원, 명, 청왕조에 의해 900여 년간 지배를 받았다. 그러다 보니 중국의 유교와 불교, 한자 문화가 오랫동안 이 나라에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이들의 언어도 70%는 한자어의 영향을 받았는데 발음은 광둥어(广东语)와 비슷했다.
주님은 우리 가족을 중국에서 뿌리를 뽑아서 새로운 이 나라에 잘 옮겨 심어 주셨다. 그 과정에서 아내와 세 자녀 모두 적응하느라 고생은 좀 했지만 벌써 새로운 나라에 온 지도 3년이 되어간다. 생활도 사역도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혀 가고 있다. 우리 가족은 이 땅에 와서 한창 언어를 배우고 적응하는 중에도 매일 주님께 기도하며 빠짐없이 물었던 것 한 가지가 있었다. “중국선교를 통한 세계선교의 비전이 지금 이 나라에 와 있는 우리 가족에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는 것이었다. 주님은 베이징의 대학생들이 기도하며 결정해서 처음으로 나갔던 해외 단기선교가 바로 이 V국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셨다. 또 중국인선교훈련생들만으로 이뤄진 팀을 이 나라 북부지역의 한 대학에 파송해서 캠퍼스선교사역을 1년간 했던 것도 당시 팀장이었던 현지사역자를 만나 듣게 되었다.
이 땅에 온 지 반 년 정도가 흘렀을 때 두 명의 중국인선교훈련생 자매들이 1년간 파송받아 이곳으로 왔다. 주님은 우리가 직접 요청한 것도 아닌데 그들을 돌보고 훈련하며 함께 선교하라고 보내 주셨다. 이 두 자매들과 함께 적응하면서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현지 대학의 캠퍼스사역을 하게 되었다. 역사적·정치적 이유 등으로 중국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이 나라 사람들의 정서도 두 중국인 자매들과 함께 경험하였다. 광둥어가 모국어인 한 자매는 발음이 비슷한 현지어를 필자보다 훨씬 빠르게 습득했다. 이 나라 최대 명절인 설에 현지 친구들의 초청으로 고향에 함께 내려가 일주일 동안 현지 문화 체험도 했는데, 중국의 80년대 농촌 모습이라고 한다. 농경 사회의 대가족 문화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것을 보니, 이 나라가 가족 중심의 문화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형제들이 상당히 많은 대가족 문화에서는 공부를 제일 잘하는 한 명의 자녀만이 대도시에 있는 대학에 진학을 할 수 있다. 단 한 명의 대학생을 위해 부모와 형제들은 농사일과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비와 학비를 댄다. 대학생이 된 한 명에게 가족들이 모든 기대를 거는 모습이 한국과 중국 예전의 모습 그대로이다. 그런 대학생자녀가 대학에서 예수님을 만나 헌신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전임사역자가 되기도 한다. 가족의 엄청난 핍박을 견디는 모습, 사회주의 국가이기에 여전한 제한과 핍박이 있는 모습도 보았다. 이들을 보면 10여 년 전 중국 대학의 캠퍼스사역 당시가 오버랩되어 떠오른다.
중국인선교훈련생들은 이곳에서 중국어와 영어를 가르치면서 현지 학생들과 교제하면서 전도를 하였는데 한 명, 한 명 주님께 돌아왔다. 그것이 현지 캠퍼스사역에 기초가 되어 지금은 중국 자매들을 통해 예수님을 믿은 학생들이 또 다른 제자들을 낳으며 사역하고 있다. 1년간의 선교훈련을 마치고 귀국하였는데 한 명은 중국 내 캠퍼스 전임사역자가 되었고, 또 한 명은 직장을 다니면서 후원하는 후원자가 되었다. 2020년 초,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면서 모든 길이 막혀 중국인선교사들을 보내 준다고 해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 사이에 말레이시아 화교 싱글 자매 선교사 한 명을 만나게 되었고 계속해서 중국어와 영어를 가르치면서 동역하고 있다. 우리가 숨 쉬고 있는 이곳 인도차이나 V국은 최근 복음의 문이 많이 열리고 있다. 여전히 많은 필요가 있는 이곳 대학생들에 대한 선교는 이 나라 사회를 바꿀 수 있는 효과적인 선교전략이다. 또한 중국인 다음으로 이 나라 학생들이 한국으로 유학을 가고 있다. 중국과도 인접하고 있어 중국어에 대한 필요도 크다. 얼마 전 이 나라 다른 지역 대학에 중문학과 교수로 와 있는 중국인선교사와 교제하는 기회가 있었는데, 서로 공감한 부분은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중국선교를 통한 세계선교의 비전’은 우리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불교권인 동남아 인도차이나에서도 동일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서구에서 일어났던 캠퍼스선교운동, SVM운동(Student Volunteer Movement) 등을 통해 미주와 유럽 대륙의 많은 젊은이들, 대학생들이 중국과 한국에서 복음을 전하며 많은 대가를 치뤘다. 그렇게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은 유대와 사마리아를 거쳐 유럽과 미주를 지나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90년대에 대학생이었던 필자에게도 ‘선교 헌신’이라는 선한 영향을 주었다. 한국에서 일어났던 대학생선교와 선교파송운동의 열매였던 것이다. 2000년대 초반 많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중국에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헌신한 열매로 중국의 젊은이와 대학생들이 더 열악하고 힘든 선교지로 파송을 받고 있다. 필자는 중국 대륙에서 더 이상 함께하지 못하더라도 그곳에 세워진 든든한 중국교회들이 있다. 이제는 이슬람권, 불교권 등 전 세계에 복음이 필요한 제3국에서 중국인선교사를 돕고 훈련하며 함께 동역하기를 원한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은 결코 사그라들지 않고 그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모든 한국인, 중국인선교사들과 교회들을 통해 아름답게 이루어져 갈 것이다.
중국선교를 통한 선교중국 비전에 대한 몇 가지 제안
필자는 13년 동안 중국에 있으면서 캠퍼스사역의 부흥기에 중국선교가 선교중국의 비전으로 연결되어 확대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특권을 누렸다. 당시에는 중국에서 중국인들과 함께 중국 내 타문화 선교지인 소수민족지역을 방문하고 단기선교를 진행했다. 또 1년은 서부 티베트지역과 이슬람권에서 한족선교사들과 함께 팀을 이루어 현지 소수민족들을 대상으로 선교하는 경험도 했다. 그때 소수민족들을 알아가고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는 데 있어서 다수 민족인 한족선교사들의 민족주의나 우월의식 등이 걸림돌이 되는 모습 또한 보았다. 앞에서 제시한 비전에 참여하는 데 있어 한 가지 제안을 한다면 ‘겸손한 섬김의 모습’이다. 선교는 천국의 영광을 다 내려놓고 이 땅에 가장 낮은 자의 섬기는 모습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다. 단순한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인격 대 인격의 만남 가운데 우리의 말과 행위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전해지는 것이 선교이다. 선교지에서 현지인들을 겸손히 섬기는 모습으로 그들의 문화와 언어를 배우고, 낮아지고 낮아진 예수님의 모습으로 그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중국선교는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계속되고 있고 또한 계속되어야 한다. 아직도 중국 안에는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영혼들이 너무나 많다. 하지만 이제 중국선교의 그 주체는 중국교회와 현지인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선교사들이 현지인들이 자치(自治)·자양(自養)·자전(自傳)의 중국교회가 될 수 있게 도왔듯이 이제는 선교중국의 비전도 그렇게 되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
중국교회가 가진 강점과 부르심을 따라갈 수 있게 조금 앞서 선교를 경험한 선교사들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그들을 훈련하고 이제는 제3국에서 이들과 함께하는 선교도 중요하다. 파송 목표와 열정만 가지고 준비되지 못한 선교사들을 급히 파송했다가 철수하는 사례가 나오지 않게 철저히 준비해서 보내야 한다. 중국 국내외에 많은 다양한 선교훈련 프로그램들이 있다. 학문적으로 치우친 지식 위주의 교육훈련보다 선교지에서 실제적이고 실천적이며 전수 가능한 훈련들을 발굴 개발해야 할 것이다. 기독교인 비율이 매우 낮은 선교지와 미전도종족에게 선교사를 파송한다면 불신자들과의 접촉점들을 마련하기 위한 전략과 훈련, 예를 들어 중국어 교육이나 다양한 기술 교육, 의료, 스포츠 등 다방면에서 접근할 수 있는 훈련을 해야 한다. 그리고 불신자들을 전도하고 그들을 또 다른 제자를 양육할 수 있는 제자가 되도록 제자를 삼는 사역을 중국 안에서부터 충분히 경험하는 훈련을 하고 나서 파송해야 할 것이다. 또한 성급히 사역에 임하기 전에 선교지의 언어와 문화 습득, 구체적인 사역 방향과 기초를 쌓을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최소한 1, 2년 이상 집중할 수 있도록 파송교회들이 책임지고 재정적인 후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독불장군식의 선교보다는 팀사역과 연합사역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선교지에서 외국선교사들과도 소통하고 그들의 도움을 받는 것도 필요하다. 그렇게 할 때 현지에 잘 정착하고 협력하여 더욱 효과적으로 사역할 수 있다. 중국 내에서 사역하다가 추방된 많은 외국인선교사들이 중국인선교사들이 파송되어 있는 지역으로도 상당수가 이미 이동, 정착하였다. 중국어가 되는 만큼 그들과 함께 사역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생겼다. 시니어선교사라면 그들의 목양과 돌봄도 기대할 수 있고 그들을 통해 다른 선교사들이나 현지사역자들, 교회와도 연결될 수 있다. 중국에서 선교사훈련생(인턴)들이 필자가 재파송받은 동남아의 이 나라에 왔을 때 처음 해외 선교지를 경험하는 젊은 두 자매를 돌보며 다른 나라 선교사들과 현지인사역자들과 함께 팀을 이루어 효과적으로 사역할 수 있었다.
오늘날 선교 패러다임은 ‘from everywhere to everywhere! 모든 곳에서 모든 곳으로!’이다. 즉, 선교사를 보내는 곳과 받는 곳이 따로 정해지지 않고 어디나 선교지인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선교중국 비전은 ‘Back to Jerusalem’만 있는 것이 아니다. 중국 주변 중앙아시아의 이슬람권을 꼭 거쳐서 이스라엘까지 파송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 중국에서 중앙아시아 K국에 러시아어 유학을 갔던 안 믿는 중국인대학생이 현지인기독교인의 전도로 예수님을 믿고 헌신하여 중국에서 사역하는 모습도 보았다. 중국 주위에 있는 수많은 나라들, 즉 동남아시아의 불교권, 또 인도 같은 힌두권 등 다양한 나라들을 품어야 한다. 어느 나라나 많은 필요가 있다. 중국 내에도 많은 유학생과 외국인노동자들이 있는데 이들에 대한 사역도 중요한 선교이다.
상대적으로 열린 지역도 있지만 닫히고 어려운 지역도 많다. 반중(反中) 정서가 강한 지역도 많다. 예수님과 제자들도 복음을 들고 가는 지역마다 환영보다 반대와 배척, 핍박이 더 많았다. 실례로 앞서 언급한 두 중국인 자매는 중화사상을 내려놓고 현지에서 그러한 반중 정서와 배척도 인내하며 극복해 나갔다. 중국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바꾸어 나가는 것도 이후 더 많은 중국인선교사들이 올 수 있는 길을 닦는 중요한 일이다. 따라서 우리 생각을 내려놓아야 할 것이다. 중국과 상대적으로 외교관계가 좋은 나라 가운데 도리어 반중 정서가 강한 나라들도 있고, 또 별로 관계가 없어 보이는데 의외로 중국어에 대한 수요가 높고 중국인을 반기는 경우도 있다. 주님이 보내시는 곳에 순종하여 나아가 인내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떼다 보면 선교중국의 비전은 하나님의 시간표와 뜻 가운데 아름답게 이루어질 것이다. 할렐루야!
사진 | 픽사베이
왕건국 | 선교사
왕건국 |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