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인 관측대로 현재의 후진타오를 중심으로 한 제4세대 지도부가 제 17차 당대회 기간(2007~2012년)까지 집권할 것을 전제 할 때 2005년은 집권기간의 1/4을 넘어서는 한 해였다. 2005년은 국내정치적 측면에서는 후진타오 중심의 권력체계가 공고해지고, 제4세대 지도부 통치전략의 밑그림이 거의 완성되었음을 보여주었으며, 국제관계의 측면에서는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 확대와 강대국화를 위한 이른바 ‘책임지는 대국외교(責任的大國外交)’ 전략을 전방위적으로 진행한 한 해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먼저 국내정치에서 후진타오 권력체계의 공고화 측면을 보자면, 3월에 개최된 제10차 전국인민대회 3차대회에서 예상대로 후진타오가 장쩌민으로부터 국가군사위원회 주석직을 넘겨받음으로써, 제3세대에서 제4세대로의 권력교체가 사실상 마무리되었다. 이로써 후진타오는 당, 정, 군의 모든 권력을 장악하게 되었고 중국공산당 역사상 가장 평화로우면서 짧은 시간 동안에 자신의 권력체계를 구축한 지도자가 되었다. 이는 중국 지도부의 권력승계가 점차 제도화되고 좀 더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진전이라 할 수 있다. 과거의 경험에서 볼 때 최고 지도부간의 비밀협상을 통해 권력승계를 둘러싼 엘리트간의 갈등은 정치안정을 위협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자 국가적 분열과 혼란의 촉발점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장쩌민의 정계은퇴에도 불구하고 그의 최측근이자 당서열 5위인 쩡칭홍(曾慶紅) 국가부주석 등의 견제가 어는 정도 존재하고, 최고지도부 내에서 후진타오 일인의 강력한 리더쉽이 관철되기보다는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9인의 집단지도체제 성격이 더 강하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일각에서는 10월에 개최된 중공중앙 제 16기 5중전회에서 예상과 달리 후진타오 측근의 인사중용이 전혀 없었다는 점을 근거로 그의 권력기반이 아직 공고하지 못하다는 주장도 제기한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가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그 원인이 상층 엘리트간의 심각한 균열이나 장쩌민의 막후 영향력이 여전히 건재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지도부간의 좀더 완전한 합의을 위한 자연스런 지체현상이자 진화과정으로 보이며, 전체적으로는 후진타오 권력체계의 공고화 과정으로 이해해야할 것이다.

다음으로, 2003년부터 공식적으로 제기한 이른바 “과학적 발전관”이 제4세대 지도부의 새로운 통치철학의 핵심개념으로 자리잡았음을 보여주었다. 중공중앙 제16기 5중전회에서 결의된 <제11차 5개년 국민경제 및 사회발전규획(十一五規劃)에 관한 건의>에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발전전략을 제시하였다. 과학적 발전관의 핵심적 주장은 경제정책에서 과거의 ‘선부론(先富論)’에 입각한 양적 성장위주의 ‘불균형발전 전략’에서 “공동부유론”에 입각한 질적성장 위주의 ‘균형발전 전략’으로의 전환이라 할 수 있다. 과학적 발전관의 또 하나의 핵심내용은 이른바 ‘조화로운 사회(和諧社會)’ 건설이다. 지난 시기 경제성장 과정에서 초래된 지역간, 계층간 빈부격차를 완화하고 균형발전을 통해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고 정치사회적 안정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중국 지도부는 다른 발전도상국가의 경험에서도 그랬듯이 일인당 GDP 1,000달러를 넘어선 현재부터 3,000달러에 이르는 향후 10여 년이 빈부격차의 확대에 따른 사회적 갈등과 혼란이 가장 심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실제로 현재까지 개발과정에서 농지를 잃은 실지농민이 4,000만 명에 이르고, 2004년 말부터 2005년 9월까지 크고 작은 집단소요(群體性事件)가 74,000건이나 발생하였다. 향후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보이는 이러한 혼란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전략으로서 균형발전과 공동부유론, 그리고 조화로운 사회건설을 강조하는 새로운 발전전략을 제시한 것이다.

최근 중국 정치정세의 변화에서 또 한 가지 주목할 지점은 중국공산당의 통치 능력(執政能力) 강화를 특별히 강조한다는 점이다. 당의 통치 능력 강화는 2004년 10우러 중공중앙 제16기 4중전회에서 중점적으로 제기된 주장이었다. 중국사회가 점차 다원화되고 자율성이 증대되면서 기존의 당국가체제가 이완되고 정부가 개입할 수 없는 자율영역이 커져나가자, 사회적 통제를 정부가 아닌 당의 역할확대를 통해 실시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시장경제제도가 안착되어가면서 정부와 시장, 그리고 정부와 사회관계에서 불가피하게 축소되는 정부의 개입능력을 당이 대신함으로써 정치사회적 안정을 꾀하겠다는 것이다. 후진타오 집권 이후 당의 지배력 강화를 위해 사영기업, 외자기업, 그리고 각종 사회단체 등에 대해 당조(黨組: 당 세포조직) 건설을 강화하고, 신문과 인터넷 등 언론매체에 대한 통제도 더욱 강화하는 추세다. 이와 동시에 당정 간부에 대해서는 더욱 더 엄격한 기율을 강조하고, 특히 부패간부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을 실시하여 점차 약화되는 인민들의 당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자 하였다. 정치체제 개혁 측면에서 볼 때 이와 같은 최근의 경향은 후진타오의 통치전략 역시 이전 시기와 마찬가지로 정치개혁의 범위를 경제발전에 필요한 효율적인 통제체제의 수립으로 한정시키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통제체제에서 축소되는 정부의 기능을 강화시키기보다는 다의 역할확대를 강조하는 것이다. 이런 추세는 중국정치구조의 근본이 공산당의 일당지배체제라는 점에 비춰볼 때 향후 상당기간(적어도 제4세대 집권기간)동안 정치체제의 근본적 개혁이나 민주화의 진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제관계의 측면에서 볼 때 2005년 중국의 외교는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 확대와 ‘중국의 강대국화’를 위해 파상적인 전방위 외교를 전개한 한 해였다. 외교 안보적 측면에서 볼 때 후진타오체제의 과제는 세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미국, 일본과의 갈등-협력관계를 경제적 상호이익을 매개로 조절해야 하면서 견제와 균형을 유지해야 하며 둘째, 북핵문제 해결과정에 대한 적극개입을 통해 한반도와 동북아지역의 안정을 유지하고 미-일 동맹에 맞선 균형적 세력관계를 구축하고자 하며 셋째, 대만의 독립 움직음을 저지하고 양안관계 해결과정에서 주도권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올 한 해 동안 중국은 유래없이 활발하고 파상적인 전방위 외교활동을 전개하였다. 먼저, 연초의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대만의 독립에 대해서는 무력사용도 불사하겠다는 강력한 경고를 담은 ‘반국가분열법’을 통과시겼고, 국방예산도 12.6%나 증액하였다. 대만 천수이볜 정부의 강력한 반발과 미, 일 등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오히려 대만의 야당인 국민당 당수 롄잔(連戰)을 대륙으로 초청하여 ‘신(新)국-공합작’을 성사시킴으로써 국제사회에 ‘하나의 중국원칙’과 중국주도의 대만통일을 기정사실화시켰다. 다음으로 중국은 러시아, 중앙아시아, 인도, ASEAN 등 주변국가와의 협력관계를 강화하였다. 미-일 동맹체제에 맞선 중-러 관계의 협력은 경제적 상호협력 수준을 뛰어넘어 군사적 동맹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다. 2004년 양국 정상회담에서 지난 300여 년 동안 양국간 갈등의 불씨였던 극동지역 아무르강 일대의 영토분쟁 협상에서 절반씩 나눠 갖기로 합의한 데 이어, 금년 8월에는 황해와 극동연안에서 대규모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하였다. 중국은 또한 중앙아시아 국가들 및 인도와의 협력강화에도 주력하였다. 2001년 중국주도로 결성된 ‘상하이협력기구(SCO)’를 통해 중앙아시아 국가와의 안보, 경제협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으며, 지난 4월 원자바오 총리는 인도를 방문하여 50여 년 간 계속된 국경분쟁을 해결하고 경제협력 강화와 전략적 동반자 관계 형성에 합의하였다. 특히 지난 6월 5일 ‘상하이협력기구’ 회의에서는 역내주둔 외국군(사실상 미군)을 철수 또는 제한하는 의견을 제시하여 우즈베키스탄과 키르기스탄의 동의를 구하는데 성공하였다. 이와 같이 2005년에 중국이 보여준 주변국가와의 활발한 외교활동은 에너지 수급문제 해결 등 경제협력도 중요한 목적이지만, 동시에 미국의 군사적 포위전략에 대한 맞대응 차원의 노력이었음을 분명히 확인시켜주었다. 마지막으로 중국은 대한반도 및 동북아 정책에서 북핵문제 해결과정의 주도적 개입과 이를 통한 동북아질서 재편에서의 영향력 확대라는 기본전략을 일관되게 관철시키고 있다. 지난 20년간 중국의 대한반도 정책기조는 경제적 측면에서 대남한 편향과 정치군사적 측면에서 대북한 편향정책을 통한 균형유지와 자국의 이익극대화 전략이었다. 하지만 한반도에서 남북간 화해와 교류가 촉진되고 북-미간의 핵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첨예화되는 등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면서 좀더 적극적인 개입전략을 선택하였다. 즉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국가간 세력구도의 근본적인 변화가 시작되면서 중국은 남과 북 모두에 대해 경제, 정치, 군사적 측면의 종합적인 협력관계가 필요해진 것이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의 방중, 2004년 김정일 방중, 그리고 금년 10월 후진타오의 방북에서 보여준 중국의 대한반도 정책은 남과 북 어느 한쪽 혹은  경제와 군사적 측면의 어느 한쪽만의 선택적 협력이 아닌 남, 북 모두에 대한 다방면의 협력강화를 시도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현 단계에서 중국에게 한반도문제가 갖는 의미는 인접지역의 평화적 안보환경 구축이라는 전통적 중요성 뿐만 아니라, 급변하는 국제질서에서 영향력 확대와 강대국화를 실현하기 위한 교두보 확보라는 중차대한 전략적 의의를 갖기 때문이다.





출처 | China21 Vol 41. P59-62
이문기 | 유한대학교 중국비즈니스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