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선교로 부르심을 받은 지 10년이 되어갈 즘에 읽었던 《산비》. 책장에서 꺼내 다시 한 번 쭉 읽어 내려갔다. 중국선교 20년이 되어가는 이 시점에서 제 자신이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나 까맣게 잊고 있었던 중국선교의 핵심을 이 책을 통해서 다시금 되짚어 보고 싶다. 앞으로의 사역에 더 큰 전진이 있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으로 이렇게 부족하나마 글을 적어 본다.
이 책은 중국선교 초기 한 선교사가 중국 땅을 처음 밟을 때부터 죽을 때까지 영적으로 육적으로 사투를 벌였던 사역의 경험을 엮었다. 이 선교사의 이름은 제임스 프레이저,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22세에 공학도로서의 빛나는 경력과 안락한 가정을 포기했다. 그리고 중국 내지, 그것도 중국에서 산이 높고 험하기로 유명한 윈난성에서 리수족을 대상으로 선교하였다. 혈혈단신으로 떠나온 머나먼 땅 중국, 때로 외롭고 때로 좌절감이 컸지만 그는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만을 붙들고 이겨냈다. 중국선교 역사상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큰 열매를 맺었다. 그러나 아직은 젊은 나이 쉰두 살에 자기가 그토록 사랑했던 중국 땅에서 일생을 마감하였다.
저에게 있어서는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 못지 않게 큰 영향을 미친 선배 선교사로서 영육이 연약해 질 때마다, 문득 그의 생애와 사역을 통해 저의 마음을 가다듬고 재충전하는 계기로 삼게 된다. 특별히 가슴에 와 닿고 다시금 깨달음을 주는 부분들을 소개하면서 중국선교사들과 중국을 품고 기도하는 예비 선교사들에게 좋은 교훈을 안겨주는 글이 되길 소망한다.
언어
제임스 프레이저 선교사가 중국어를 공부할 당시에는 제대로 된 중국어 학습자료나 사전 한 권조차도 구하기 힘든 시절이었다. 게다가 공학도였던 그는 뼈를 깎는 노력으로 중국어 습득을 마스터했다. 심지어 리수족 언어를 연구해서 문자가 없었던 그들에게 그들의 문자를 만들어 주었고 그가 만든 리수족 문자로 리수족 성경도 번역하였다. 요즘 세상이야 중국어 관련 책이 많아도 너무 많아서 어느 것을 사야 할지 모를 정도지만, 그 당시엔 중국어 학과도 없었고 제대로 된 사전조차 없었던 상황에서 중국어를 마스터한다는 것은 정말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초기 한국선교사들은 조선족 대상으로 사역을 하다가 점차 한족 대상으로 영역을 넓혔으나 여전히 조선족 통역을 사용하였기에 중국어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었다. 요즘의 선교사들은 그래도 초기 정착단계에서 특별하지 않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개 1년에서 2년 정도 어학연수 과정 하고 나서 사역을 시작한다. 한 나라의 언어를 2~3년 정도로는 맛만 볼 정도인데, 적지 않은 선교사들이 사역을 해야 한다는 강박감 때문에 바로 현장 사역을 시작하면서 바쁜 사역으로 인해 언어를 더 연마할 시간을 갖지 못하게 되는 지경에 이른다.
한 언어를 배우는 것은 단순히 하나의 말을 배우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그것은 한 문화를 배우고 그 언어권 사람들의 사고방식까지 배우는 것이다. 제임스 프레이저 선교사는 이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기에 중국어로만 만족하지 않고 리수족 언어까지 습득해서 그들을 이해하고자 했다.
언어습득에 있어서도 새로운 패러다임이 소개되고 있다. 기존의 방식은 중국 대륙의 언어연수 과정을 이수하는 것은 단순히 생활회화는 습득할 수 있지만, 실제 선교 사역에서 중국어로 설교하고, 성경공부를 인도하고, 신학을 가르칠 때, 많은 한계에 직면하게 된다. 새로운 방식은 싱가포르나 대만 등의 중국어권의 신학교에 단기로 혹은 정식 과정으로 입학해서 선교 사역을 위한 중국어를 배우고 현지 중국인교회에서 전도사로 실습하면서 배운 사역 중국어를 갈고 닦을 수 있는 기회까지 갖는 패러다임이다. 이 패러다임을 미리 내다본 선교사들은 중국어권 신학교에서 초기 언어습득이나 중국어를 업그레이드하는 시간을 갖고 있는 현실이다.
영적 전쟁
프레이저 선교사가 초기 리수족을 전도했을 때 몇몇 가정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개종을 해서 성공하는 것 같이 보였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을 넘어뜨리려는 집요한 사단의 공격이 가족 구성원 한 명 한 명을 넘어뜨려서 온 가족이 다시 우상숭배로 돌아가는 영적 전쟁을 치르게 되었다. 악령이 개종한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고 예수님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훼방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데살로니가전서 3:8에서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는 말씀을 붙잡고 다시 일어나 힘을 내어 전도에 힘썼다.
우리 선교사들은 사단이 노리는 가장 첫 번째 공격대상이다. 그 공격은 선교사 가족을 넘어뜨리거나 훈련시킨 현지인 사역자를 넘어뜨리거나 교회 안의 형제자매를 넘어뜨려서 궁극적으로 선교사가 사역을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때로 훈련시킨 현지인이 배반할지라도, 세운 교회가 위태로워 질지라도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신실하신 주님을 믿고 푯대를 향해 나아간다면 십자가의 승리가 오늘의 선교사에게 임할 줄로 믿는다.
기도
프레이저 선교사는 리수족 사역에 박차를 가하면 가할수록 알 수 없는 우울증, 절망감, 무력감, 좌절감이 자신을 엄습함을 느꼈다. 그럴 때마다 그가 취한 행동은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앞에 나아와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었다. 그는 《산비》의 절반에 가까운 분량을 할애하여 기도의 중요성과 기도의 능력에 대해 강조하였다. 또한 그는 자기자신의 연약함을 감추고 겉으로만 선교 사역을 잘 하고 있는 것처럼 꾸미지 않고 자기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중보기도팀과 중국 현지에서 동역하는 동료 선교사들에게 자신의 영적 상태를 솔직히 나누고 자기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자기자신 또한 그 십자가 앞에 나아와 무릎 꿇고 약할 때 강함주시는 주님께 의탁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믿음의 기도’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사역의 방향이나 당면한 문제들을 자신의 생각대로 판단하지 않았다. 오직 길 되신 주님께 기도로 나아갈 때 확실한 인도하심과 도우심으로 더 큰 도약을 경험했다.
기도는 당연히 해야 할 의무임을 모든 선교사가 인정하지만 정작 선교사 자신의 연약함을 정직하게 중보기도편지에는 나누지 못하고 본인조차도 주님 앞에 나아가 연약함을 드러내는 기도를 잘 하지 못함을 자주 보게 된다. 혼자 기도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선교현장에서 선교사 스스로의 연약함까지도 나누고 함께 기도할 수 있는 기도의 동역자들을 찾아서 정기적으로 함께 모든 것을 나누고 진심으로 중보해주는 가운데 서로가 윈윈(win win)하는 사역이 될 것이다. 그리고 고국에서 중보기도해 주시는 분들께 개인이든 교회이든 표면적인 사역만 나누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상황과 영적 전쟁까지도 나누며 기도를 부탁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바울이 선교지에서 힘써 전할 수 있었던 것도 많은 교회들이 합심하여 바울을 위해 기도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선교사는 기도와 말씀을 가르치기 이전에 내가 먼저 기도하고 말씀에 푹 빠져서 살아가야 한다.
자급, 자전, 자치
프레이저 선교사는 리수족과 다른 원주민교회를 세우고 한가지 고민이 생겼습니다. 가난한 원주민교회가 제대로 서려면 어떤 방법이 가장 옳은 방법일까 고민했다. 원주민에게 그냥 돈을 주고 교회를 세우고 운영하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외국 돈으로 외국 사람이 외국 교회를 세우면 그 교회는 연약하여 기초가 되었던 외국 자본이나 외국 사람이 사라지면 그 교회도 무너지기 쉽다고 말한다. 그래서 비록 원주민들이 가난했으나 가난한 가운데 주께 드리는 것을 배우도록 가르쳤고, 사역자에게도 스스로 희생하여 자신들이 교회당을 세우도록 권면했다. 그 결과 리수족교회들은 계속 부흥했고 영적 전쟁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믿음을 지켜나갔다.
적지 않은 한국선교사들이 한국교회의 자본으로 한국교회 이름까지 내걸면서 중국에 교회를 세우고 있다. 그 이유는 한국교회가 그것을 요구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선교사가 성급히 성과를 보여주기 위함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교가 아니다. 중국인 스스로 헌금을 해서 예배당을 세우고 현지인 사역자가 모금을 하든지 교회가 사역자를 키우든지 자립을 하도록 해야 현지 교회가 흔들리지 않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 또 한 가지 선교사들이 쉽게 간과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선교지에서 복음을 전하고 현지인 사역자를 훈련시키는 것까지는 하지만 그 현지인 사역자를 선교사의 동역자로 인정하고 스스로 복음을 전하고 다른 이들을 제자훈련 시키도록 도와주고 리더십을 이양하는 것이다.
프레이저 선교사는 믿음이 약해서 동역을 하기에 부적합해 보이기도 했지만 더 나은 미래를 믿으며 현지인들을 훈련시켜서 현지 리더십으로 세워주는 사역을 잘 했다. 제빵사였던 사람이 그 지역의 교회 지도자가 되고 짜이 가족의 다섯째였던 사람이 리수족교회의 지도자로 세워지는 역사가 일어났다. 선교사는 선교지에서 세례 요한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복음을 전하여 회개하고, 세례를 베풀고, 주의 제자로 양육하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도록 도와주고 나면 그곳을 현지인들에게 맡기고 리더십을 넘겨주고 돕는 자로서의 역할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적지 않은 선교사들이 자신들이 키운 현지인 사역자를 보며 아직 멀었다며 계속 자기 밑에서 배우게 하고 지도자로 자랄 수 있는 환경과 자리를 마련해 주지 않는 것을 보게 된다. 사실 자급, 자전, 자치는 삼자교회 때문에 알게 된 말이지만 원래 초기 선배 선교사들이 이미 실천에 옮긴 극히 성경에 입각한 교훈이란 것을 이 책을 통해 다시금 되새기게 되었다.
사실 이외에도 많은 깨달음이 있었지만 지면의 한계로 굵직한 주제만 다루었다. 주님의 부르심 을 받은 우리 선교사들이 중국을 품으며 선교할 때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 성경이 말하고 있는 진정한 선교가 무엇인지 우리가 잊고 혹은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남은 선교지에서의 시간들을 주님이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대로 생명이 다하는 그날까지 복음만을 붙들고 나아간다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의 도움과 능력이 오늘 선교지에 단비와 같은 성령의 부으심이 있으리라 믿는다. 중국인을 사랑하시고 그 영혼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시는 주님께 모든 영광을 돌려 드린다.
♠장승훈 | 대만선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