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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에서는 한국어 성어와 중국어 성어가 ‘형태는 동일하지만 의미가 다른 사자성어(同形异义)’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1. 경천동지(驚天動地): ‘하늘을 놀라게 하고 땅을 뒤흔든다’는 뜻으로, 어떤 사물이나 행위가 세상을 몹시 놀라게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 성어는 당(唐)나라의 유명한 시인인 백거이(白居易)의 시에서 나오는 말이다. 백거이가 이백(李白)의 묘를 지나다가 그 황량함을 보고 느낀 바 있어 시 한 수를 지었다. 그 시에서 이백의 시는 “일찍이 하늘을 놀라게 하고 땅을 뒤흔드는 문장이었다(曾有驚天動地文)”고 말한 데서 이 성어가 유래했다. 이와 대응하는 중국어 성어는 ‘惊天动地’ [jīng tiān dòng dì]로 그 형태가 동일하다. 그러나 중국어 성어의 의미는 소리가 매우 커서 천지를 진동하는 것을 형용하거나 또는 어떤 사건의 위풍과 기세, 의미가 아주 대단하다는 것을 형용하는 말이다. 한국어 성어는 어떤 행위가 세상을 뒤흔들 정도로 놀라운 상황을 이르는 말인데, 중국어 성어는 소리가 매우 크거나 또는 어떤 사건의 의미나 기세가 매우 크다는 것을 형용하는 말이다. 이 한중 사자성어는 형태는 동일하나 의미는 서로 다르다.
1. 경천동지(驚天動地): ‘하늘을 놀라게 하고 땅을 뒤흔든다’는 뜻으로, 어떤 사물이나 행위가 세상을 몹시 놀라게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 성어는 당(唐)나라의 유명한 시인인 백거이(白居易)의 시에서 나오는 말이다. 백거이가 이백(李白)의 묘를 지나다가 그 황량함을 보고 느낀 바 있어 시 한 수를 지었다. 그 시에서 이백의 시는 “일찍이 하늘을 놀라게 하고 땅을 뒤흔드는 문장이었다(曾有驚天動地文)”고 말한 데서 이 성어가 유래했다. 이와 대응하는 중국어 성어는 ‘惊天动地’ [jīng tiān dòng dì]로 그 형태가 동일하다. 그러나 중국어 성어의 의미는 소리가 매우 커서 천지를 진동하는 것을 형용하거나 또는 어떤 사건의 위풍과 기세, 의미가 아주 대단하다는 것을 형용하는 말이다. 한국어 성어는 어떤 행위가 세상을 뒤흔들 정도로 놀라운 상황을 이르는 말인데, 중국어 성어는 소리가 매우 크거나 또는 어떤 사건의 의미나 기세가 매우 크다는 것을 형용하는 말이다. 이 한중 사자성어는 형태는 동일하나 의미는 서로 다르다.
2. 난형난제(難兄難弟): ‘누구를 형이라 하고 누구를 아우라 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두 사물이나 사람이 비슷하여 낫고 못함을 정하기 어렵다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즉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비슷하다는 것을 말한다. 이 성어는 《세설신어(世說新語)》<덕행편(德行篇)>에 나오는 말이다. 후한(後漢) 말의 학자 진식(陳寔)은 덕망이 매우 높아서 그의 아들 진기(陳紀), 진심(陳諶)과 더불어 삼군자로 불리기도 했다. 게다가 진기의 아들 진군(陳群)도 역시 뛰어난 수재로 재상의 자리에 올랐었다. 진군이 어렸을 때 어느 날 진심의 아들 진충(陳忠)과 놀다가 서로 자신의 아버지가 더 뛰어나다며 논쟁을 벌이다가 할아버지인 진식에게 물었다. 그러자 진식은 “형이 낫다고 하기도 어렵고 아우가 낫다고 하기도 어렵구나(難兄難弟)”라고 대답했는데, 이 성어는 여기에서 유래하였다. 이와 대응하는 중국어 성어는 ‘难兄难弟’인데 이것은 2가지 방법으로 읽을 수 있으며 성조에 따라서 그 뜻도 달라진다. 첫 번째, ‘难兄难弟’ [nán xiōng nán dì]로 ‘难(nán)’을 2성으로 읽으면, ‘둘이 서로 엇비슷하여 정도나 수준에 큰 차이가 없다’, ‘막상막하다’라는 뜻이다. 당시에는 형제의 재능과 품성이 모두 훌륭하다는 뜻으로 칭찬하는 말로 쓰였지만, 현재는 의미가 변화되어 두 사람의 수준이 엇비슷하다고 비꼬거나 폄하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두 번째, ‘难兄难弟’ [nàn xiōng nàn dì]로 ‘难(nàn)’을 4성으로 읽으면, ‘생사고락을 함께한 사람’이거나 혹은 ‘서로 같은 곤경에 처한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한국어 성어는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는 뜻으로 중성적 의미는 가지고 있는 데 반해, 중국어 성어는 비꼬거나 폄하하는 의미로 사용하거나 혹은 어려움을 함께 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사용한다. 이 한중 사자성어는 형태는 동일하나 의미는 서로 다르다.
3. 횡설수설(橫說竪說): 본래 의미는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여러 방면으로 설명을 하여 남을 깨우쳐 주는 것’을 이르는 말이었으나 지금은 ‘조리가 없이 말을 알아들을 수 없게 지껄이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이 성어는 《장자(莊子)》<서무귀편(徐无鬼篇)> 에 나오는 말이다. 전국시대 위(魏)나라 무후(武侯) 때 여상(女商)이라는 신하가 있었다. 여상은 무후에게 여러 번 진언을 올렸지만 한 번도 칭찬을 듣지 못했다. 그런데 서무귀(徐无鬼)라는 사람은 몇 마디 나누지도 않았는데 제후가 크게 웃으며 칭찬을 했다. 후에 여상이 서무귀를 불러 그 이유를 물어보면서 말했다. “내가 무후에게 횡설(橫說)로는 유가의 시(诗) •서(书) •예(礼) •악(乐)을, 종설(從說)로는 병가의 병법을 인용하여 말했는데 한 번도 웃거나 칭찬을 하지 않았소.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말했길래 주공이 크게 웃으시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가?” 이 이야기에서 ‘횡설종설 (橫說從說) ’이라는 말이 나왔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중기까지 ‘횡수설거(橫竪說去)’라고 쓰다가 지금은 ‘횡설수설(橫說竪說)’로 바뀌었다. 이와 대응하는 중국어 성어는 ‘横说竖说’ [héng shuō shù shuō]이다. 이 성어의 뜻은 ‘여러 방면으로 반복해서 설명해 줌으로써 상대방이 쉽게 깨닫도록 하는 것’을 이르는 말로 본래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한국어 성어는 조리가 없이 마구 지껄이는 말을 의미하는 데 반해, 중국어 성어는 상대방이 깨닫도록 여러 방면으로 설명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한중 사자성어는 형태는 동일하나 의미는 서로 다르다.
4. 조삼모사(朝三暮四): ‘간사한 꾀로 남을 속여 희롱함’을 이르는 말이다. 이 성어는《장자(莊子)》<제물론(齊物論)>에 나오는 말이다. 중국 송(宋)나라의 저공(狙公)이 원숭이를 좋아해서 집에서 수십 마리의 원숭이를 길렀다. 저공이 재정 문제로 원숭이들의 먹이를 줄이려고 생각했다. 그가 원숭이에게 먹이를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씩 주겠다고 말하자 원숭이들이 적다고 화를 냈다. 그래서 저공은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씩 주겠다고 하자 원숭이들이 좋아하였다는 데서 유래한다. 원숭이들이 당장 눈 앞에 나타나는 차이 때문에 기뻐했지만 결과는 같은 것으로 저공이 잔꾀를 써서 그들을 속인 것이다. 이와 대응하는 중국어 성어는 ‘朝三暮四’ [zhāo sān mù sì]이다. 이 성어의 본래 의미는 똑똑한 사람은 잔꾀를 써서 남을 희롱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상황 파악을 잘 못한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었으나, 후에는 변덕스러움이 반복되어 갈피를 잡을 수 없다는 뜻으로 쓰였다. 한국어 성어는 잔꾀를 써서 남을 속여 희롱한다는 본래 의미로 쓰고 있는 데 반해, 중국어 성어는 변덕스러워서 갈피를 잡을 수 없다는 의미로 쓰인다. 이 한중 사자성어는 형태는 동일하나 의미는 서로 다르다.
5. 망양보뢰(亡羊補牢): ‘양을 잃고 우리를 고친다’는 뜻으로, 이미 어떤 일을 실패한 뒤에 뉘우쳐도 아무 소용이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이 성어는 유향이 편찬한 《전국책(戰國策)》〈초책(楚策)〉에 나오는 말이다. 전국시대 초(楚)나라에 장신(莊辛)이라는 대신이 있었다. 그는 초나라 양왕(襄王)에게 간신들을 멀리하고 국사에 전념할 것을 충언하였다. 그러나 왕이 장신의 말을 듣지 않자 장신은 조(趙)나라로 갔다. 그후 진나라가 초나라를 침공하였는데, 양왕은 그제서야 비로소 장신의 말이 옳았음을 깨닫고 조나라에 사람을 보내 그를 불러들였다. 양왕이 장신에게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자 장신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양이 달아난 뒤에 우리를 고쳐도 늦지는 않다(亡羊補牢).” 여기서 말한 ‘망양보뢰’의 본래 의미는 이미 양을 잃은 뒤에 우리를 고쳐도 늦지 않다는 말이다. 즉 실패를 했더라도 빨리 뉘우치고 수습하면 늦지 않다는 말이다. 그러나 후에는 ‘어떤 일을 그르친 뒤에는 뉘우쳐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의미로 바뀌었다. 이와 대응하는 중국어 성어는 ‘亡羊补牢’ [wáng yáng bǔ láo]이다. 이 성어는 어떤 일을 실패하더라도 빨리 수습하면 늦지 않다는 본래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한국어 성어는 어떤 일을 실패한 뒤에 뉘우쳐도 소용이 없음을 의미하는 데 반해, 중국어 성어는 실패해도 빨리 대책을 세우면 된다는 뜻이다. 이 한중 사자성어는 형태는 동일하나 의미는 서로 다르다.
6. 고목생화(枯木生花): ‘말라 죽은 나무에서 꽃이 핀다’는 뜻으로, 곤궁한 처지에 빠졌던 사람이 뜻밖의 행운을 만나서 잘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 성어는《삼국지(三國誌)》 <유익전(刘廙传)>에 나오는 말이다. “꺼진 재에서 연기가 나고, 죽은 나무에서 꽃이 피었다(起烟于寒灰之上,生花于已枯之木)”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또한 명(明)나라의 심수선(沈受先)이 쓴 《삼원기(三元記)》에서도 나오는 말이다. “내 한 목숨 풀잎 이슬과 같았는데, 오늘 이 은자(돈)를 얻었으니, 마른 나무에 꽃이 피고, 봄햇살이 퍼지는 것과 같구나(我一命如同草頭露滴, 今日得了這銀子呵, 一似枯木生花, 陽春布澤).” 이와 대응하는 중국어 성어는 ‘枯木生花’ [kū mù shēng huā]이다. 이 성어의 뜻은 말라 죽은 나무에서 꽃이 피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 듯, 어떤 일이 실현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한국어 성어는 어려운 처지에 빠진 사람이 행운을 만나서 잘된 것을 이르는 말로 긍정적인 면을 말하고 있는 데 반해, 중국어 성어는 ‘어떤 일이 실현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르는 말로 부정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다. 이 한중 사자성어는 형태는 동일하나 의미는 서로 다르다.
7. 정인군자(正人君子): ‘마음씨가 올바르며 학식과 덕행이 높고 어진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이 성어는 《구당서(旧唐书)》<최윤전(崔胤传)>에 나오는 말이다. 최윤(崔胤)이라는 사람은 당나라의 간신이었다. “(최)윤이 좋아하는 사람은 졸렬한 사람들이었고, 싫어하는 사람은 정인군자(품행이 방정한 사람)였다. 사람들은 모두 그를 두려워했는데, 아침저녁으로 일어날 일을 장담할 수 없었다(胤所悦者阘茸下辈,所恶者正人君子。人人悚惧,朝不保夕).” 이 이야기에서 정인군자라는 성어가 유래했다. 이와 대응하는 중국어 성어는 ‘正人君子’ [zhèng rén jūn zǐ]이다. 이 성어의 본래 의미는 품행이 단정한 사람을 가리켰지만, 지금은 그 의미가 풍자적으로 바뀌어서 ‘정직한 척 가장하는 위선자’를 이르는 말이다. 고대 중국어에서 정인군자의 의미는 현재 우리말의 의미와 같은 의미로 쓰였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세월이 흐르면서 본래의 의미가 완전히 바뀌어서 현재는 그 반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한국어 성어는 학식과 덕행이 높고 어진 사람을 이르는 말로 본래의 의미로 사용하는 데 반해, 중국어 성어는 정직한 척하는 사람, 위선적인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이 한중 사자성어는 형태는 동일하나 의미는 서로 완전히 반대이다.
사진출처 | 바이두
석은혜 | 본지 전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