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이번 호부터 강진구 교수님(고신대 글로벌교육학부)의 ‘중국 사회와 문화 이야기’ 코너를 새롭게 시작합니다. 앞으로 중국 사회와 문화 전반의 대내외적인 움직임을 성경적 시각에서 집필해 주실 것입니다. 독자분들께도 유익한 시간이 되길 기대합니다.
코로나19 시대에 탄생한 속성 영화의 참담함 판위린(范雨林) 감독이 지난해 개봉한 영화 《최미역행》은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5월에 제작에 들어가 두 달 만에 완성한 작품이다. 재난의 시간이 끝나지 않은 가운데서 이렇게 짧은 시간에 영화를 제작 상영하는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코로나19 방역을 강화하고 혼란한 민심을 통합하려는 중국 정부의 정책에 부합하려는 의도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코로나19가 처음 보고된 중국 우한(武漢)을 배경으로 코로나바이러스와 싸우기 위해 개인적 희생을 무릅쓰고 헌신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는 공안과 의료진들은 이 영화의 제목이 ‘최고의 아름다운 역행’이라는 제목이 뜻하는 대로 도망가거나 피하지 않고 거꾸로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영웅들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든 위기의 상황에서는 자신을 희생에서 타인을 구하려는 영웅을 찬미하기 마련이다. 특히 영화는 이러한 영웅의 이미지를 오랫동안 그리고 많은 사람의 마음속에 심으며 이에 대해 관객은 아낌없는 환호로 응답하고는 한다. 그렇지만 《최미역행》은 지나칠 정도로 작위적 성격이 너무 강하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흔히 국뽕과 신파의 결합으로 억지 눈물을 조장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 영화에서의 ‘국뽕’은 국가와 히로뽕(philopon)의 합성어로서 코로나19에 대처하는 중국인의 우수성이나 애국심이 만들어낸 문화라 할 수 있다. 마치 히로뽕을 맞은 사람이 기분이 좋아지듯이 코로나19 방역에 성공했다는 식의 좋은 평판 듣는 일에 몰두하고 그것을 즐기며 또한 영화를 통해 알리고 있는 중국인들의 행태는 국뽕이란 말로 표현될 수 있다.
‘신파’는 연인관계인 철도공안으로 나오는 여주인공 정잉(郑颖)과 형사인 옌룽(炎龙) 사이에서 최고조를 이룬다. 코로나19에 감염된 수배범을 붙잡는 과정에서 감염된 쩡잉은 죽음을 앞두고 병원의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옌룽과 결혼식을 올린다. 슬로우 모션과 감상적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유리를 사이에 두고 입을 맞추는 두 남녀의 모습은 60년대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신파조의 멜로물의 형식을 닮았다.
주인공뿐만 아니라 주변 인물들 또한 하나 같이 국가에 대한 충성행위이자 코로나19와 싸우기 위해 가족의 희생도 무릅쓴다.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느라 5일째 집에 들어가지 못한 여의사는 자신이 보고 싶어 병원을 찾은 어린 아들이 다가오는 것을 눈물로 막는다. 혹시라도 아들이 감염될까 봐 안아줄 수도 없는 상황을 묘사하는 장면이다. 분명 배우들은 울고 있는데 정작 보는 관객은 멀뚱멀뚱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아리송하기만 하다. 전후 맥락을 살펴 가며 관객의 감정을 고조시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관객을 울려야겠다는 감독의 욕심은 관객이 몰입하기 어려운 지경으로 몰아넣은 결과일 뿐이다.
이 모든 원인은 속성제작에 있다. 중국 정부의 입맛을 맞추는 데 급급한 나머지 이야기의 구조와 편집 그리고 연기와 음향 등 영화제작의 모든 요소들이 어설프기 그지없는 작품이 되고 말았다.
영화 《최미역행》을 비판하는 이유 중국의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7억 뷰를 기록한 영화가 한국에 와서는 고작 553명의 극장 관객수를 기록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리 코로나19의 영향이 크고 한중 간의 문화적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하지만 7억과 553이라는 숫자의 간격은 코로나19 팬데믹 현상을 바라보고 대응하는 한중 간의 인식 차이를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이 영화를 통해 중국 정부가 말하고 싶어하는 것은 세 가지이다.
첫째, 중국은 바이러스 발생에 대한 책임이 없다. 영화가 코로나바이러스가 번지고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상황을 다룬다면 최소한 바이러스의 원인이나 발생의 연유 등에 대한 언급이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일언반구(一言半句)도 없다.
지난해 3월 4일 중국외교부 정례 브리핑에서 자오리젠(趙立堅) 대변인은 우한의 확진자가 화난(華南)해산물시장에 간 일이 없다는 후베이(湖北)성 지방 정부의 주장을 인용하며 바이러스의 발원지가 중국이 아니라고 주장하여 세계적인 공분을 사기도 했다. 중국 정부는 코로나19 전파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가장 최근에는 코로나19가 중국 우한이 아니라 이탈리아 북부에서 시작됐다고 주장하는 등 코로나19의 ‘우한 기원설’을 부인하는 정도가 심해졌다.
이때 중국 정부가 활용하는 방법은 우선 어용 과학자들을 동원하여 코로나19의 외부 기원설을 퍼뜨리는 일이다. 인도 기원설이나 수입냉동식품설 등을 지어낸 후 언론과 미디어를 통해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하게 한다. 그리고 댓글 조작 등을 통해 중국 인민들의 동조를 끌어내는 순서를 밟고 있다. 여기서 영화도 제외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둘째, 영화는 희생자 코스프레를 통해 중국이 희생자임을 강조한다. 앞서 언급한 주인공의 병원 결혼식은 영화의 끝 장면에 해당한다. 중국발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가 당하는 고통에 대한 이해 없이 오직 가슴 아픈 이별과 죽음을 경험하는 당사자들만이 부각될 뿐이다. 감정이 고조될 때 이성적 판단은 제 기능을 발휘하기 어렵다. 신파조의 멜로에 눈물을 흘린 중국인이라면 《최미역행》이 보여주는 코로나19의 현실과 부정적 소문이 나는 것에 대해 전전긍긍하는 중국 정부의 행태가 보이지 않는 법이다. 셋째, 중국 정부는 코로나19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인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음을 말하고 싶어 한다. 영화는 중국 인민들을 향한 체제선전물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코로나19가 번진 우한으로 가겠다고 맹세하는 의료진의 모습들은 북한TV에서도 가끔씩 보아왔던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서로 지원하겠다고 충성경쟁을 하는 모습이란 공산주의 체제하에서 흔히 있는 집단의식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중국 영화에 창작의 자유는 없다 인터넷을 포함 중국의 언론을 포함한 모든 미디어는 국가의 검열과 통제 속에 있다. 영화만 하더라도 그동안 영화를 담당하는 ‘국가전영국(國家電影局)’이 2018년 3월부터는 중앙선전부 산하기관으로 변경되었다. 중국공산당 중앙선전부는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직속 기구로서 공산당의 사상이나 노선의 선전, 교육, 계몽을 담당하는 조직이다. 여기를 거치지 않는다면 영화를 포함해 어떤 미디어콘텐츠들도 세상에 나올 수 없다.
따라서 중국에는 사상의 자유나 개인의 창작물로서 독립영화가 나올 수 없는 현실이다. 우리가 전에 알고 있었던 중국의 유명 영화감독들은 홍콩에서 활동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홍콩에 대한 중국의 지배권이 강화되면서 많은 홍콩의 영화인들은 미국이나 캐나다로 떠나고 말았다. 한때 아시아를 호령하던 중국의 예술성 높은 영화들은 이제 자취를 감췄고 당의 선전물의 기능만 담당하는 영화들만 세상에 머리를 내밀고 있는 형국이다. 몸집은 커졌는데 머리는 더 작아지는 기형적인 모습이 중국 영화의 현실인 셈이다.
사진 출처 | 바이두 강진구 | 고신대 글로벌교육학부 교수, 영화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