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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8.30  통권 97호  필자 : 노혜숙  |  조회 : 4318   프린트   이메일 
[중국 영화]
중국영화 속의 여성
- <붉은 수수밭>과 <홍등>을 중심으로


1980년대 중반 까지도 세계의 영화 무대는 중국영화에 대해 거의 무지한 상태였다. 그러나 중국의 선봉파라 불리우는 5세대 감독들이 세계 영화 무대에 등장했을 때, 그들의 동양적이고 새로운 영화 미학에 세계인들은 충격을 받게 되었다. 5세대 감독 중에 가장 대표적인 감독을 손꼽으라면 주저 없이 장이머우(张艺谋) 감독을 꼽겠다. 그가 감독으로 데뷔한 첫 작품이자 서베를린 국제 영화제 수상작인 <붉은 수수밭>과 1991년 베니스 영화제에 감독상을 수상한 <홍등>은 그의 대표작이다.

영화 속에서 들여다 본 중국의 여성
이 두 편의 중국 영화는 장이머우의 대표작이면서, 중국 여성영화의 대표작이다. 1920년대 중국은 5․4 운동 이후 사회 각 방면에서 새로운 각성의 물결이 일어나며 변화가 시도되었다. 문학 방면에서도 봉건예교(封建禮敎)보다는 인간을 중시하는 새로운 문학 운동이 <신청년> 잡지를 중심으로 시도되어졌다. 이러한 인간해방 운동과 함께 여성에 대한 각성 또한 <신청년> 잡지의 지면을 통하여 발표하게 된다. <입센(Ibsen, Henrik Johan :노르웨이의 시인이자 극작가, 근대 사실주의 희곡의 창시자)>의 특집호를 통하여, 유교의 여성관을 비판하며 여성해방을 부르짖는다. 그 시대의 문단의 영수였던 루쉰(魯迅)도 문학작품과 강연 등을 통하여 중국 여성 해방을 주장한다. 그러나 1920년대 중국 여성의 현실은 여전히 열악하고 불평등하였다. 영화 <붉은 수수밭>과 <홍등>의 시대 배경은 바로 1920년대이며, 혼인 풍속에서 여자가 물건처럼 팔려가는 ‘매매혼’과 첩이 재산으로 계산되는 ‘축첩제’가 요지부동으로 가부장제를 받치고 있던 시기였다.

물론 이 두 영화는 장이머우라는 영화 귀재의 눈을 통하여 21C의 담론 ‘여성’에 참여하게 된다. 남성의 눈을 통하여 여성 문제 전반이 아낌없이 드러나는 충격과 여성을 보는 긍정적 따뜻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여성은 오랫동안 남성에 의하여 부차적이고 주변적 존재로 억압되어 왔으며, 남성과 여성은 얼마나 오랫동안 대립되어 왔던가? 장이머우는 영화를 통하여 여성문제의 답안을 제시한다. 나는 이러한 따뜻함을 성경에서도 자주 발견한다. 예수의 사랑은 남녀의 구별이 없었다. 

삶을 개척하는 능동적인 여성
<붉은 수수밭>의 주인공 구아는 가난한 친정을 구하기 위해 나귀 한 마리에 팔려서 문둥병을 앓고 있는 양조장 주인에게 시집을 간다. 사랑도 모르고 남편의 얼굴도 모른 채, 가마를 타고 신랑집으로 향한다. 흔들거리는 가마 문틈으로 보이는 구아의 가죽신에 가마꾼 여점오는 눈을 뗄 줄을 모른다. 그 후 산행길에 올라 친정으로 가던 날, 구아와 여점오는 붉은 수수밭에서 뜨겁게 맺어진다. 남편이 살해되는 비운 속에 과부가 된 구아는 혼자 힘으로 양조장을 재건하게 되는데, 우여곡절 끝에 수수밭에서 맺어진 여점오가 구아의 남편인양 양조장을 돌보게 되며, 이때 가장 나이 많은 일꾼 나한대야가 사라진다. 9년 후, 일본군이 마을을 침범하게 되며, 수수밭은 군용도로를 만들기 위해 베어지고 항일 게릴라로 활동하던 나한대야는 산 채로 잡혀 가죽이 벗겨지는 형벌 끝에 죽고 만다. 분노한 마을 사람들은 고량주에 불을 붙여 기관포를 앞세운 일본군과 싸운다. 전투 중에 구아는 일본군의 기관총 세례 아래 쓰러진다. 뒤늦게 터진 폭탄으로 수수밭은 온통 화염에 쌓인다. 삽시간에 수수밭은 피로 물들고 대지 위에 불사조처럼 여점오 부자가 우뚝 선다. 그리고 그들의 머리 위로 피덩이 같은 붉은 해가 이글거린다.

구아는 일본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인물로 가부장제로부터 여성해방을 몸소 실천하고 육체의 해방을 이야기하는 인물이다. 구아는 전통적 여인상에서 벗어나 양조장 주인이 살해된 후, 양조장 운영을 책임지는 반 모계사회의 가장이 되어 일본군에게 무참히 살해당한 나한대야의 복수를 이끄는 지도자이기도 하다.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개척자적이고 능동적인 여인상을 제시해주는 인물이다.

현실에 안주하는 여성
<홍등>의 주인공 송련은 본래 19세의 여대생이었으나 부친의 사업 실패로 집안이 기울자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고 나이 많은 진대감의 첩이 된다. 진대감에게는 이미 본부인과 두 명의 첩이 있었고 송련은 넷째 부인이라 불리운다. 첩들은 진대감에게 성의 대상일 뿐 아무 의미가 없는 존재일 뿐이다. 진대감은 저녁이면 하인에게 자신이 어디에서 잘 것인지를 말해주며, 이에 하인들은 명을 받들어 해당 화원에 홍등을 건다. 이런 우스꽝스런 예식은 제법 엄숙하게 진행되었고, 이때 부인들은 자신의 처소 앞에 나와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낙점된 부인은 발바닥 안마를 받았는데, 마치 다듬이 소리처럼 경쾌한 안마 소리가 후원에 울려 퍼지면 낙점된 여인에게는 승자로서의 쾌감이 그리고 소외된 여인에게는 말할 수 없는 굴욕, 수치, 질투 등의 감정이 고조되어 간다. 첩들은 진대감이 자신의 침실을 찾아오도록 치열한 암투를 하는데, 그 이유는 진대감을 사랑하기 때문이 아닌 집안 내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함이었다. 그녀들의 하루는 치장하고, 해가 지면 홍등의식에 참여하는 일 이외에는 없다. 무료함과 외로움을 견디지 못한 셋째부인이 집안의 주치의와 불륜행각을 벌이다 발각되어 사형을 당한다. 충격을 받은 송련이 진대감에게 당신들은 살인을 했다고 호소하지만, 오히려 송련은 미친 여자 취급을 받는다. 그 후로 다섯째 부인이 들어왔고, 진씨 집안은 자체적 메카니즘에 의해 또 그대로 반복 순환운동을 한다.

<홍등>의 송련은 1920년대 대학 중퇴생으로 신여성이면서 진대감의 첩이 된다. 그녀는 지식인으로서의 의식은 오간데 없고 오히려 자신의 학력을 내세우며 하녀와 마찰을 일으키고, 거짓 임신을 음모하고, 셋째 부인 매산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등 자신의 주체성을 찾지 못하고 가부장제의 폐단 속에 자신을 옭아매게 된다. 홍등과 발안마의 노예가 되어 첩들과 성의 권력 투쟁을 벌일 뿐이다. 불합리한 상황에서 저항하기는커녕 그것에 집착하는 한 여성을 통하여 지식인의 비애와 무기력을 보여주는 상징성도 있다. 주도적이지 못한 여성이 어떻게 환경에 의해 침몰되는가를 송련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구아와 송련을 비교해 본다. 송련과 같이 자신의 안일과 행복을 위해서 집착할 때 그 인생은 무가치하게 실패하게 된다. 그러나 구아와 같이 자신이 주체가 되어서 환경을 지배하며 능동적으로 살아가는 여성은 민족과 역사 속에 영향력을 끼치게 되는 것이다.

성경속의 여성들
하나님은 여성을 소외시킨 적이 없다. 여성에게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강력한 능력들이 잠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성경 속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과 헌신을 가지고 역동적인 삶을 살았던 여성들을 발견하게 된다.

민족과 여성해방의 선각자인 <드보라>, 하나님을 만난 이스라엘의 어머니 <한나>,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한 <에스더>, 사마리아의 첫 여성 선교사 <사마리아의 여인>, 해방된 여성으로서의 진정한 예수의 제자 <막달라 마리아>, 초대교회의 주역들인 <유니아>, <뵈뵈>, <브리스길라> 등이다. 

예수님도 제자들의 대열에서 여성들을 제외시키지 않았다. 막달라 마리아, 요안나, 수산나 등은 베드로, 요한, 야고보 등과 마찬가지로 예수가 활동을 시작할 무렵부터 줄곧 그를 따라다녔다(눅 8:1-3). 또 예수가 처형되는 과정에서 여성들은 남성들이 모두 도망간 자리를 지키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제자로서의 본분을 다 하였다. 그것은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 나라의 비밀과 그 성격을 여성 제자들이 더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죽음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는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사역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러한 충성스러운 여인들은 “자기들 소유로(눅 8:3)” 예수님과 열두 제자를 섬겼다. 그들의 섬김과 후원이 없었다면 그리스도의 사역은 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그들의 성실하고 일관된 모습이 없었다면 그렇게 넓은 지역을 다니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지탱하는 버팀목이었다. 그들은 섬김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탁월한 모델이었다. 

주님의 죽음과 부활이 전개되면서 남성 제자들은 곧바로 무대 뒤로 사라졌던 반면에, 그 여성들은 곧바로 전면에 나선다. 예수님을 따라 다녔던 여 제자들은 부활한 그리스도를 목격한 최초의 증인이 되었다.

막달라 마리아는 셋 가운데서도 두드러졌다. 그녀를 베드로에 비교하고 대비하는 일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무덤 앞에서 훨씬 더 분명해진다.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가장 먼저 보고 전한 증인이라는 특별한 역할을 맡음으로써 구원의 역사와 이러한 엄청난 사건들이 성취되는 과정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아담은 자기 앞에 마주 서있는 여자를 바라보면서 “드디어 나타났구나!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로구나(창 1:31).” 하고 탄성을 발했다고 한다. 그것은 남자와 여자는 대립존재가 아니라 나뉘어져 있으면서도 공통의 끈으로 매여있는 하나의 공동 존재임을 뜻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의 모습대로 남자와 여자를 만들고…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2:23)” 는 하나님의 창조 섭리에 순종하는 것이며, 여성을 제자로 삼아 활동하셨던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다. 또 그것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노혜숙 | 숙명여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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