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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4.20  통권 95호  필자 : 이홍자  |  조회 : 3719   프린트   이메일 
[중국 영화]
천리주단기(千里走單騎)
-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과 회복 -

이 영화는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의 최신작으로 일본의 유명한 노장 배우 다카쿠라 켄(高倉健)이 주연을 맡았다. 지난 해 10월에 열렸던 제18회 도쿄국제영화제에서 개막작으로 상영되기도 하였고 중국에서 크게 호평을 받았으나,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상영되지 않았다.

2004년 제39회 전미 비평가협회 감독상을 수상한 <영웅(英雄:2002년)>과 <연인(十面埋伏:2004년)>은 역사를 배경으로 한 무협물이었던 것에 비해, <천리주단기>는 사실주의적인 현대극에 해당된다. <영웅>이나 <연인>은 중국의 전통적인 특징과 아름다운 색상으로 화면을 화려하게 장식한 점에서 찬사를 받으면서도 내용이 단조로웠다는 점에서 지적을 받기도 하였는데, <천리주단기>는 중국의 전통적인 특징을 담아내면서 내용을 심도있게 다루고 있다. 

이 영화의 소재는 1920년대에 실제로 있었던 일을 근거로 하였다고 한다. 희곡을 연구하는 한 일본인 청년이 병에 걸리자,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숙원을 풀어주기 위해 중국으로 데리고 가서 희곡을 공부하게 하였다. 청년은 그곳에서 중국 여성을 만나게 되고, 폭력 조직에게 쫓겨 위기를 겪기도 하나 마침내 그녀와 결혼한다. 그는 지금도 윈난성(雲南省) 리장(麗江)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논픽션에 근거하여 만든 이 영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아버지와 아들
아버지 다카타(다카쿠라 켄 扮)는 며느리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며느리는 겐이치가 병원에 입원해있으니 이 기회에 부자간에 화해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한다. 다카타는 아내와 사별하면서 홀로 어촌으로 떠나 살았고, 아들 겐이치는 아버지를 원망하며 십 수 년간 연락을 끊고 지냈다. 다카타는 도쿄의 병원까지 먼 길을 찾아가지만 겐이치를 만나지 못한다. 겐이치가 만나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며느리는 비디오테이프 하나를 시아버지에게 건네준다. 겐이치는 동경대학 동방예술연구소에서 가면극을 연구하는 전문가였는데, 비디오테이프에는 특별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중국 윈난성 리장에서 공연한 가면극 취재 내용이 담겨 있었다. 어촌으로 돌아온 다카타는 비디오테이프에서 가면극의 주연을 맡았던 리자민(李加民)이 겐이치에게 그가 내년에 다시 오면 꽌위(關羽)의 이야기를 다룬 <천리주단기>를 공연하겠다고 약속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며느리는 겐이치가 간암 말기로 판정받았다는 소식을 전해준다. 다카타는 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들의 약속을 대신 지키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가면극 공연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곧바로 중국으로 떠난다.

리장에 도착한 다카타는 아들과 약속했던 리자민이 감옥에 갇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어떻게든 리자민이 공연하는 것을 촬영하려고 애를 쓰지만, 통역을 맡은 장원(蔣雯)은 성사되기 어려운 일이니 포기하라고 권한다. 다카타는 장원 대신 예전에 겐이치의 통역을 맡았던 치우린(邱林)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다카타는 어려운 과정을 거쳐 관련부서로부터 감옥에서 리자민이 공연하는 것을 촬영하도록 허가를 받는다. 결국 리자민은 복장까지 다 갖추어 입고 무대에 서지만, 갑자기 울음이 복받치는 바람에 공연을 하지 못한다. 다카타가 아들을 위해 중국까지 찾아왔다는 사실을 알고서 자기 아들이 생각났던 것이다. 그가 감옥에 오게 된 이유도 사생아를 낳았다고 흉보는 사람을 때려서 다치게 하였기 때문이다.

다카타는 리자민의 아들 양양(楊楊)을 데리러 산간벽지인 스터우촌(石頭村)으로 간다. 양양은 아버지를 만난 일도 없었고 어머니가 죽은 뒤 마을사람들이 공동으로 키우고 있었다. 다카타는 양양을 리자민에게 데려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하여 마을 사람들로부터 허락을 받는다. 마을 사람들은 외국 손님인 다카타를 위해 성대한 잔치를 베푼다. 그 때 며느리가 다카타에게 전화를 걸어 아버지가 중국에 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겐이치가 무척 감사해하고 있다는 말을 전해준다. 다음 날 양양을 데리고 길을 나섰는데, 중간에 차가 고장 나서 고치는 동안에 양양이 산 속으로 달아난다. 아버지는 양양을 찾아 산 속을 헤매고, 나중에 양양을 찾긴 했어도 결국 길을 잃어 양양과 함께 산 속에서 하룻밤을 지샌다. 다음 날 마을 사람들에게 구조된 뒤, 아버지는 통역을 통해 양양의 의사를 묻는다. 양양이 리자민을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서, 다카타는 그 의사를 존중하기로 한다.

다카타는 다시 리자민을 만나러 가고, 가는 도중에 며느리로부터 겐이치가 전날 밤 숨을 거두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다카타는 감옥에 도착한 뒤 리자민에게 양양의 모습을 담은 영상을 보여준다. 리자민은 답례로 공연을 하고, 다카타는 겐이치가 기뻐할 것이라며 이를 촬영한다.

 

가면을 쓰고
이 영화에서 다카타가 아들을 위해 촬영하려고 했던 것은 나희(儺戱)라는 중국의 전통 지방극이다. 나희는 윈난성, 꾸이저우(貴州)성, 장시(江西)성 등 비교적 문화의 정도가 낙후한 지역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는데, 귀신이나 질병을 물리치고 행운을 빌기 위해 제사를 지내는 민속 문화에 해당된다. 대개 장군이나 대문의 신, 재판관 등으로 분장한 인물이 가면을 쓰고 공연하는데, <천리주단기>에는 <삼국지>에 나오는 꽌위(關羽)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꽌위는 무예가 뛰어난 무장이기도 하고, 리우뻬이(劉備)에 대해 변함없는 충성심과 의리를 지녔다고 하여 숭배의 대상이 되었고, 신으로까지 추앙되기도 한다. 가면극의 제목인 <천리주단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꽌위가 천리 길을 말 타고 달렸다는 의미와 아울러, 이 영화의 주인공인 다카타가 중국으로 혼자 먼 길을 떠났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오늘날 인기를 추구하는 영화들이 엽기적인 일이나 폭력, 로맨스, 컴퓨터 조작으로 인한 눈속임 등에 의존하려는 것과 달리 이 영화는 자연과 소박한 인정 등 순수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중국에서도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리장의 아름다운 자연 풍경과 소수민족의 풍속, 산간벽지에 사는 사람들의 소박한 모습 등이 잘 나타나 있다. 소박함을 잘 나타내기 위해 그 지역 주민이나 전문 배우가 아닌 사람들을 기용하였다고 하는데, 그 외에도 스터우촌 마을 사람들이 사용하는 방언은 중국 표준어에서 느낄 수 없는 소박함을 더해준다.

이 영화의 주제는 단절과 화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단절의 측면을 보면 우선 다카타와  겐이치 부자 사이를 갈라놓고 있는 단절의 골을 들 수 있다. 부자간에 지닌 감정적 단절은 공간적으로도 단절되어 나타난다. 다카타는 아내의 죽음 이후 어촌으로 떠나 과거의 생활과 단절된 가운데 지낸다. 겐이치 역시 아버지와 소식을 끊고 동경대학에서 연구에만 몰두하였다. 중국 윈난성을 여러 차례 방문한 것은 연구 과제를 수행하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단절의 상황 속에 자신을 내던져 고독에 직면하려고 했던 것이 더 큰 목적이었다. 이렇게 각기 다른 공간과 시간의 흐름을 통해 부자간의 단절의 골은 더욱 깊어져갔다. 겐이치가 병문안하러 온 아버지를 거부한 것은 이러한 단절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또 다른 단절은 리자민과 양양 사이에 존재하는 단절이다. 리자민은 양양이 7-8세가 되도록 만난 일이 없었다. 두 사람 역시 공간적으로 단절되어 있었던 것이다. 공간적인 단절은 감정적인 단절과 직결되어 있었다.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아버지이기 때문에 아버지가 아니라며 만나고 싶지 않다고 거부하는 양양의 말은 부자간에 감정적 단절의 골이 깊다는 것을 보여준다. 게다가 리자민이 갇혀있는 감옥은 그와 양양 사이의 단절을 더욱 부각시켜주는 작용을 한다. 감옥은 또 다카타가 리자민의 공연을 촬영할 수 없게 만드는 단절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이외에 또 하나의 단절은 의사소통의 단절이다. 중국어를 전혀 모르는 다카타는 양양을 데리러 스터우촌으로 갔을 때, 마을 위원회 사람들과의 단절을 경험한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사소통의 단절은 다카타가 산 속에서 양양과 둘이 있게 되었을 때 다시금 경험한다. 

단절과 아울러 이 영화의 또 하나의 주제가 되고 있는 화해는 다카타와 겐이치의 화해와 리자민과 양양의 화해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다카타는 리자민이 감옥에서 무대에 섰다가 양양이 보고 싶다며 가면을 벗고 통곡하는 모습을 보면서 ‘리자민처럼 많은 사람들 앞에서 큰 소리로 울고 마음  속에 있는 말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더라면 겐이치와의 관계가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는 생각을 한다. 다카타는 용기가 없어서 아들 겐이치와 단절된 상황에 이르렀다고 인정하지만, 중국으로 떠난 것 자체가 이미 큰 용기를 낸 것이었다. 임종을 앞두고 겐이치가 아버지에게 구술로 남긴 편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아버지와 마주하며 이야기하고 싶은 충동이 계속 일어납니다. 아버지를 만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가 병으로 아픈 것보다 더 마음을 짓누릅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었는데, 아버지는 아무런 해명도 없이 홀로 외딴 어촌으로 떠나셨지요. 저는 아버지가 도피하신 것으로 생각되었고, 저 자신도 줄곧 도피하여 문병을 오셨을 때도  도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국엔 왜 가셨습니까? 그 일은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닐텐데요.

그렇습니다. 저는 가면극을 좋아합니다. 가면 뒤에 숨기고 있는 얼굴이 바로 저 자신이라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익살을 떨면서 관객을 웃기지만 가면 뒤에서 저는 이를 악물고 인내하고 있고, 격분하여 춤을 추고 있지만 저는 상심하여 눈물을 흘립니다. 이것이 바로 제 마음 속에 있는 느낌입니다. 사실 가면극에서 누가 주인공 역을 하는 지는 제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가면을 벗어버려야 한다는 점입니다. 아버지 어서 돌아오십시오. 진정한 얼굴로 마주하고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단절에서 화해로
겐이치는 아버지가 자기를 위해 중국으로 갔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이미 아버지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고, 굳게 닫아두었던 마음의 문을 열었던 것이다. 아버지와 만나서 얼굴을 마주하고 진실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는 없었지만, 이로써 단절되었던 부자 관계가 화해의 관계로 변화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리자민과 양양 부자의 화해는 다카타와 양양과의 만남을 통해 간접적으로 묘사되었다. 원래 다카다가 양양을 데리고 가려고 한 것은 리자민의 공연을 촬영 하기위해서였다. 리자민이 아들 생각 때문에 공연을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양은 가기 싫은 것을 억지로 따라가고 있었다. 이처럼 서로 상반된 생각을 가지고 만난 두 사람의 관계 역시 단절된 상황에 있었으나, 외부와 단절된 공간 속에 갇히게 되면서 오히려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다카타는 어두운 밤 산 속에서 양양이 대변보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도 하고, 양양과 함께 호루라기와 불빛으로 자신들의 위치를 알리기도 하면서 점차 양양과 가까워진다. 다카타는 잠든 양양을 품에 안고 밤을 지새는데, 양양과 진정한 얼굴로 마주함으로써 단절에서 화해로 나아가게 된다. 다카타가 양양과 헤어지면서 힘껏 끌어안고 양양도 그의 품에 안기는 모습, 양양이 다카타가 준 호루라기를 불며 전송하는 모습은 다카타와 양양 사이에 화해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말해준다. 다카타가 양양과 함께 산 속에 있었던 그 날 밤 공교롭게도 겐이치가 세상을 떠나는데, 다카타와 양양 두 사람의 화해는 곧 다카타와 겐이치 사이의 화해를 형상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카타가 마주하여 자신의 진정한 사랑을 표현했던 대상은 양양인 동시에 겐이치였던 것이다. 

이 사건은 다카타와 양양 사이의 화해 가능성까지도 열어놓았다. 양양은 다카타와의 화해를 통해 아버지를 거부하고 있는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보았을 것이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언젠가 아버지를 만나고 싶어할 것이기 때문이다. 리자민은 다카타가 영상에 담은 양양의 모습을 보면서 공간적, 시간적으로 단절되어 있었던 양양을 가슴으로 받아들인다. 앞으로 감옥이라는 공간을 벗어나기만 하면 부자간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니, 리자민과 양양 부자의 화해를 기대할 만하다. 

한 가지 더 언급하고 싶은 것은 단절에서 화해로 나아가는 과정에 많은 도움의 손길이 있었다는 점이다. 다카타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여 양양을 리자민에게 보낼 수 있도록 결정한 마을 사람들, 다카타와 함께 관계기관과 감옥, 스터우촌까지 동행하며 힘껏 도와준 치우린, 다카타와 동행하지는 않았지만 필요할 때마다 전화로 통역을 해준 장원, 다카타가 리자민을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해준 관련부서의 책임자들, 그리고 시아버지와 남편간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마음을 다한 겐이치의 아내가 그들이다. 모두가 인간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도움이었다.         

이 영화가 감동을 주는 것은 인생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간관계, 그 중에서도 핵심을 차지하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다루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영화에서 부모와 자식 간에 단절되었던 관계가 화해의 관계로 회복되는 과정을 보면서, 원죄로 인해 하나님과 단절되었던 인간이 다시금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로 회복된다는 복음의 메시지를 떠올리게 된다. 하나님을 거부하며 단절된 관계 속에 있는 중국의 수많은 영혼들을 향해,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화해의 손길을 내밀고 계실텐데......



이홍자| 서울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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