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런타이(于仁泰) 감독의 영화 <무인 곽원갑>이 중국은 물론 싱가폴과 말레이시아 등 화교권 국가의 박스오피스 1위를 석권한 것은 예견된 일이었다. 홍콩 스타 리롄제(李連杰)의 화려한 액션을 볼 수 있는 마지막 무술 영화라는 소문이 나돌기는 했지만, 중국전통무술을 담은 민족적 영웅이야기라는 점이 중국인들의 마음을 끌었으리라는 예상은 쉽게 할 수 있다.
이미 <황비홍>과 같은 무술을 통한 민족적 영웅의 이미지에 친숙한 중국인들이지만 ‘무인 곽원갑(1869~1910)’을 바라보는 눈은 예사롭지 않았다. 그는 청조말기 서구열강의 세력다툼이 한창인 중국에서 점점 절망에 빠져든 중국인의 자존심을 한껏 고양시킨 역사적 인물일 뿐만 아니라 오늘날 세계대국과의 경쟁 속에서 중국인의 자신감을 보여주는 상징적 인물도 되는 까닭이다.
시작을 여는 의미심장한 자막 ‘청조말 서구열강은 중국을 동양의 병자로 조롱하였건만 어느 누구도 그들에게 맞서지 못했다. 한편, 반외세 움직임이 일어나자 상하이 소재 외국인 상공회의소는 중국 최고의 고수를 꺾어 중국인들의 자존심을 꺾을 계획을 세웠는데 이를 받아들인 무인이 있었으니 그의 이름 곽원갑이었다.’
자막만 읽더라도 이 영화가 어떠한 내용으로 전개되며 무슨 메시지를 전할 것인가를 알아채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즉 영화의 구성자체는 중국무술영화라는 장르적 특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이다. 난세(亂世)의 상황을 배경으로 강대국을 대표하는 무술인들과의 한판 대결이 펼쳐지고 이들을 차례대로 무찌름으로써 중국의 영웅 탄생을 알리는 영화임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
그러나 이 영화의 진정한 가치는 상대방을 압도하고 끝내 항복시키는 곽원갑의 호쾌하며 출중한 무술 자체에 있지 않다. 오히려 진정한 무예인으로 거듭나기까지의 개인사와 그 속에서 겪는 갈등과 인간가치의 실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선한 이미지를 가진 주인공이라면 사정이야 어찌되든 상대편을 흠씬 두들겨 패주는 액션으로 위장된 폭력의 카타르시스에 열광하도록 만들기 보다는 무술이라는 외적 수련과 아울러 최고의 무술인들이 잃어버리기 쉬운 내적 수행을 통한 인간의 완성이라는 중국의 전통적인 이상적 인간관에 접근하도록 새로운 길을 열어 주고 있는 것이다.
용서-진정한 내공의 힘 영화에서 복수가 얼마나 매력적인 소재인지 제작자와 관객 모두는 잘 알고 있다. 그것은 강한 시각적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는 투쟁과 싸움, 전쟁과 혈투 등 인간을 파괴하는 온갖 몸짓에 대해서 개연성과 정당성을 부여하는 조건이다. 특히 중국무술영화에서 ‘복수’는 인간이 행할 마땅한 도리처럼 비춰지기 일쑤다. 중국문화에서 용서의 미덕이 없는 바는 아니지만 복수의 가치 또한 그렇다고 무시되고 있지도 않다. 그것은 마치 자연의 원리처럼 태연하게 인간 본성을 자극하며 자행되는 무인의 덕목처럼 나타나곤 한다. 그러나 <무인 곽원갑>은 달랐다.
곽원갑은 어려서부터 톈진(天津) 최고의 무예가문에서 자랐지만 그의 아버지는 아들 곽원갑에게 무술을 가르쳐준 일이 없었다. “힘은 반드시 그 대가가 따른다”는 아버지의 철학이 그 이유였던 것. 곽원갑의 아버지는 비록 죽어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생사장(生死狀)’에 서명을 한 후 치루는 대결이라 하더라도 최고가 되기 위해 상대방의 목숨을 해치기보다는 자신이 지더라도 상대방의 목숨을 위하는 생명지향적 사고를 지녔었다. 그러나 이런 아버지의 철학을 이해 못하고 오직 무술만을 익혀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곽원갑은 자신의 제자를 해쳤다는 이유로 라이벌 관계인 진사부와의 대결 끝에 그를 숨지게 만들었다.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는 법. 진사부의 제자는 곽원갑의 어머니와 사랑하는 딸을 살해하고 마는 비극의 악순환은 끊이지 않게 된다.
힘의 과시와 오용이 가져온 불행은 신화 속 영웅의 일대기에서는 빠질 수 없는 이야기지만 영웅의 재탄생을 위해 겪어야할 중요한 요소로 전이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것은 치유와 회복의 단계이다. 이 과정은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사람을 경험하는 가운데 일어나며 궁극적으로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을 깨닫는 계기로 작용한다. 곽원갑은 도시를 떠나 죽음 직전의 방황 끝에 한 시골 마을의 장님 소녀 문에 의해 애정어린 돌봄을 받고 기사회생하게 된다. 수많은 군중의 환호성과 박수 속에 묻혀 있던 진정한 인간됨의 가치와 행복을 알게 되는 사건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내공의 덕목이 아닐 수 없다. 외적인 힘의 과시가 불러온 비극적 결과란 내적으로 빈약한 수양과정이 궁극적 원인이었던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이 영화를 바라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인상적이면서 동시에 중국영화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장면이 있다면 곽원갑이 자신이 죽인 진사부의 집에 찾아가 그 부인에게 용서를 구하는 일이다. 비록 자신의 제자가 진사부의 첩과 바람이 난 바람에 빚어진 결과이기는 하지만 자신 또한 어머니와 사랑하는 어린 딸을 잃지 않았던가! 어찌 보면 여전히 끝나지 않는 복수극일 수 있지만, 내적 변화를 겪은 터라 곽원갑은 먼저 용서를 구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마도 이 장면은 중국인들에게 곽원갑이 몸과 마음에서 두루 완성된 인간으로 변모했다는 의미로 읽혀질 수 있지만, 그렇다고 가족이 희생당한 처지에서 먼저 용서를 구하는 모습은 새롭게 와 닿을 것이란 생각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중국문화에서 용서란 힘있는 자 혹은 가진 자가 약자와 없는 자에게 베푸는 은덕과 같은 것으로 이해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용서를 구하는 쪽은 약자고 용서를 하는 쪽은 강자란 공식이 전통의식 속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곽원갑의 입장을 과연 용서를 비는 약자라 할 수 있겠는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도 있는 문제다. 어찌 보면 생사장을 들고 가서 이루어진 진사부와의 한판 그 자체는 정당하다고 볼 여지도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힘있는 자가 먼저 행하는 용서의 미덕은 앞으로 중국사회에 기독교적 가치와 신앙이 퍼질 수 있는 단초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모든 인간은 죄인인 까닭에 하나님 앞에서 용서를 빌 수밖에 없다는 기독교 세계관의 기초를 보다 쉽게 인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약자중심의 기독교 윤리가 수용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기독교사에서 황제를 포함한 모든 인간이 죄인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필요로하는 존재란 사실을 인식시키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는 새삼 설명할 필요가 없으리라.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마6:14). 인간관계에서 행하는 용서의 행위가 하나님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기독교적 윤리의 실천이 복음의 효력을 발생시키는데 매우 의미있게 작용할 수 있음을 암시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이 영화는 용서를 빈 이후에 주인공이 자신 안에서 내적인 평화를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민족을 향한 자신의 정체성을 발휘하게 된 다는 점에서 용서의 가치를 읽을 수 있는 중국인들이 많았으면 하는 바람을 감출 수 없다.
21세기에 갖는 중국인의 자신감 <무인 곽인갑>은 21세기가 중국의 세기가 되리라는 기대와 확신 가운데 나오는 문화적 반응이다. 영화의 첫 장면과 끝 장면에서 중국 무인들의 모임인 ‘정무체조회’의 대표로서 곽원갑은 4명의 굵직한 세계열강의 강호들과 싸워 이긴다. 영국의 복싱 챔피언과 벨기에의 육군 대장, 유럽펜싱 챔피언을 물리친 뒤 일본인 다나카와의 싸움에서 독이 든 차를 마시는 바람에 숨을 거두지만 그의 두려움 없는 용기와 불굴의 투지 그리고 최고의 무술 기량은 유감없이 관객들에게 중국이 세계 최고라는 민족적 자긍심을 건네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것은 단순히 감독 개인의 허구적 소망이 아니라 현재 중국인들이 기대하고 실현시키고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중국사회과학원은 21세기 중국 경제를 1995년 GDP(국민총생산) 7,003억 달러, 1인당 GNP 581달러에서 2010년 GDP 2조 3,952억 달러, 1인당 GNP 1,677달러의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속도로 간다면 중국공산당 창설 100주년이 되는 2020년에는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 경제대국이 되며, 2050년경에는 미국을 따돌리고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를 것으로 내다보았다.
뉴욕타임즈의 아시아통으로 알려진 퓰리처상 수상자 니콜라스 크리스토프는 <아시아로부터의 번개: 성장하는 아시아의 자화상(Thunder From the Asia: Portrait of a Rising Asia)> 이라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2020년에 중국은 아시아 시장 경제의 중심이 될 뿐만 아니라 ‘중국이 미국이 된다’ 고 내다보기도 했다. 번개처럼 순식간에 일어나 세상을 놀라게 할 것이란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다.
<무인 곽원갑>은 무술의 세계에서 서구 열강들을 물리쳤지만 그 이미지는 이제 세계경제 속에서 현실로 나타나기를 기대하는 중국인들의 소망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항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외적인 수준에서의 최고를 추구하는 가운데 내적으로 성숙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허망한 영웅의 비극으로 끝나버리고 만다는 역사적 교훈이다. 중국인의 정신세계를 포함한 내적 성숙의 문제를 한국의 기독교가 어떻게 제공해 줄 수 있는지 생각해 볼일이다.
강진구 | 크리스천문화커뮤니케이션 연구소장, 한동대 겸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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