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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  통권 158호  필자 : 김주한  |  조회 : 2504   프린트   이메일 
[쉬어 가는 페이지]
부자유친(父子有亲) - 유가사상의 공동체 윤리

 

 


“우리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동물과 같이 생존이나 생계를 위한 삶이라면 따분하다. 아름다움과 어울림이 없는 삶은 살아있다는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문화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사람답게 살아가는 삶의 흔적이다. 그것은 나와 남이 함께 문화적 소통을 통하여 삶을 질적으로 승화시켜 나아가는 일이다. 문화생명의 상징성은 인간다움이다. 나와 남이 함께 생명의 기쁨과 생활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인간다움이다.” _서경요
 

어느덧 가을이 되어 노랗게 빨갛게 물들어 떨어지는 나뭇잎을 생각하면 인생이 그렇게 고독해 보일 수 없습니다. 세월은 유수와 같이 흐르고 무엇을 얼마나 이루었건 간에 뒤돌아보았을 때의 허무함과 쓸쓸함을 지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오늘날의 경쟁사회는 개인의 역량과 성공을 중시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홀로서기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이렇게 분주하고 외로운 시대에 우리는 어디에서 행복을 구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사람의 인간다움을 동물과는 다른 ‘이성’으로 생각한다면 한 개인을 이성적인 주체로서 자리매김하는데 노력을 기울이게 될 것입니다. 공부를 잘해야 할 것이고, 일을 잘해야 할 것이고, 맡은 사회적인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가 생각하는 이성에는 그 이성적인 주체가 감당해야 할 책임의 무게가 드리워집니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처럼 더 많이 알기 위해 고군분투할 것이며 세상은 이성과 이성 간의 ‘투쟁의 장’이 될 것입니다.
 

유가사상의 아름다움은 바로 이 ‘투쟁의 장’인 세상을 보다 행복하게 하기 위한 고민으로부터 출발합니다. 권력투쟁의 아수라장이었던 춘추전국시대에 유가사상이 정립한 인간다움은 바로 ‘관계’였습니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유가사상은 힘을 통한 개인의 홀로서기가 아닌 관계를 통한 ‘함께 살기’를 강조하였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똑같은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을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공감 없이 사랑한다 말하는 것도 더욱 난해한 일입니다. 그런데 사람이라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그 어느 누구도 부모가 없이는 이 세상에 나올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인간다움을 ‘관계’로부터 설명하고자 할 때 우리가 가장 처음 생각해 볼 수 있는 부자유친(父子有亲)의 의미입니다.
 

사람에게 부모가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 어느 누구도 부모님의 헌신적인 돌봄이 없이는 제대로 사람노릇하기 힘들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개인’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적인 ‘관계’로부터 우리의 삶을 비로소 인간답게 시작하기 때문에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끊을 수 없는 인륜(人伦)의 시작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천륜(天伦)이라고 합니다. 유교문화의 기초를 효(孝)사상에 두고 있는 것은 자신의 인간다움을 바로 자기 자신으로부터 내세우느냐 받은 사랑으로부터 세워가느냐를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척도인 것입니다. 관계의 고마움을 알 때 비로소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유가사상에 기반한 예절문화, 제사문화, 의리문화 등이 함의하는 것도 우리의 인간다움이 홀로서기가 아닌 함께 세워가는 관계, 곧 인륜에 있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내가 나의 부모님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이고 그 사랑으로 길러진 아름다운 존재라면 다른 이도 똑같이 부모님에게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운 존재일 것입니다. 스스로 태어나고 자라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우리 모두는 헌신과 사랑으로 길러지는 존재이고 만남입니다. 거기서부터 시작할 때 우리는 외로움보다는 고마움을, 쓸쓸함보다는 든든함을 얻게 될 것입니다.
 

오륜(五伦)의 시작인 부자유친은 사회적 관계로 확장되어 군신유의(君臣有义), 부부유별(夫妇有别), 장유유서(长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 등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이것을 오늘날 사회의 병폐인 ‘갑을관계’로 상징되는 권위와 복종의 관계로 해석한다면 종속적인 윤리의 폐단으로 보일 것입니다. 실제로 한나라의 유학자인 동중서(董仲舒) 이래로 유가사상이 정치적 표준으로 규정되면서 계층적 질서와 종속적 윤리로 기능한 면이 있음은 비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부자, 군신, 부부, 장유, 붕우의 관계들이 모두 군림의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새겨보아야 합니다. 자리에 높낮이가 있을 수 있지만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도 자녀와 같이 돌보아야 할 책임이 있고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도 부모와 같이 섬겨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자는 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 자기가 하기 싫은 것은 남에게도 하지 말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仁)의 핵심입니다. 어질다는 것은 자기와 남을 경쟁관계로 가르지 않고 남을 나처럼 여기는 것입니다. 어느 한쪽이 없이는 한쪽이 설 수 없기 때문에 한 쪽만 잘 사는 종속적인 사회가 유지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약육강식의 사회인 것이지 인간다움이 실현된 사회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결국 부자, 군신, 부부, 장유, 붕우의 관계는 서로 하나 되는 ‘함께 살기’의 관계입니다.
 

만남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행복은 만남에서 비롯됩니다. 성취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도 있지만 함께 기뻐할 이가 없다면 그 얼마나 고독한 일이겠습니까. 우리의 만남이 항상 진실하고 서로를 위해주는 사랑 안에 있다면 만날 때마다 기쁘고 설렐 것입니다. 그것은 ‘한 마음’일 때 가능합니다. 부자유친에서의 친(亲)의 의미가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날 이익에 따라 관계를 쉽게 맺기도 하고 끊기도 하지만 부모와 자녀 간의 친함은 천륜이기 때문에 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 관계의 소중함을 잘 되새기며 가야 합니다. 관계는 인위적인 것이 아닙니다.
 

내가 있다는 것이 나 한 사람의 노력과 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나를 돌봐주고 길러주었다는 고마움에서 시작하는 부자유친을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에서도 그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은혜에 대한 감사가 충만할 때 우리는 그 안에서 자유함을 누립니다. 언제나 진리는 우리를 자유케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욕심이 가득할 때, 우리 스스로 자유하고자 하는 바로 그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간섭과 방해로 치부해버리고 진리는 우리에게서 멀어지고 맙니다. 그러한 깨어진 관계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추구하는 세상적인 성공 뒤에 감춰진 사랑 없는 현실을 만나게 됩니다.
 

나만을 나로서 여기는 사람은 ‘나’만큼의 세계에 갇혀버립니다. 그러나 남을 나로 여기는 사람은 ‘우리’만큼의 세계로 넓게 뻗어갑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 보려 하는 사람은 또한 ‘하나님 나라’만큼의 세계를 살게 될 것입니다.
 

낙엽이 떨어지는 것이 슬픈 이유는 그것이 죽어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오는 것은 앙상한 나뭇가지에게 죽음을 선포하는 일이 아니라, 새 생명이 돋아날 것을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낙엽은 떨어지지만 나무는 죽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한 개인의 흥망성쇠로 인생을 평가한다면 그것은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는 일과 같습니다. 그러나 관계 맺음의 인간다움을 생각해보고 또한 하나님과의 영원한 관계 안에서 사람과 세계를 바라본다면 그것은 만남을 통한 생명의 역동적인 행복을 풍성히 일궈가는 일이 될 것입니다.  ▩





♠ 김주한 | 길가에교회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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