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하거나 지켜야 할 도리를 말한다. 이런 윤리 의식이 시대에 따라 다르게 정의될 수 있을까? 최근 공정(公正)에 대한 인식의 차이로 다양한 분야에서 분열과 다툼이 일어나고 있다. 공정은 무엇인가? 공정은 공평하고 올바름이다. 옳고 그름에 관한 윤리적 판단을 근거로 하고 있다. 이는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고르다는 공평(公平)의 개념을 포괄한다. 오래전 우리 사회에 ‘공정’이란 단어가 크게 이슈화한 때가 있었다. 바로 ‘공정무역’이다. 공정무역은 글로벌 무역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형태의 불공정무역에 반해 등장한 무역 형태이다. 사람들은 지금까지 소비활동을 하면서 인식하지 못했던 생산자의 노동의 가치에 대해 주의하기 시작했다. 선진국들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개발도상국과 거래를 할 때 노동의 가치를 공정하게 인정하지 않고 부당한 이득을 취하고 있다는 것에 분노했다. 그래서 약자들의 입장을 대변하며 노동의 가치는 동일하니 이익의 분배 역시 공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게 되었다. 그 결과 공정무역은 소비자들에게도 합리적이고 정직한 소비의 즐거움을 선물했다. 대표적인 것이 커피다. 커피 소비량이 어느 나라 못지 않은 한국 소비자들은 적어도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원두 생산지 사람들에게 죄의식을 느끼고 싶지는 않았다. 그것이 한 잔의 커피에 바라는 우리의 공정이었다.
중국에서 공정은 도덕이나 법률, 규정 등의 의미로 쓰인다. 그래서 우리가 말하는 공정은 주로 공평으로 표현한다. 중국은 공산당이 지배하는 사회주의국가다. 공산주의 이념에 따르면 당연히 부의 공정한 분배, 교육의 공정한 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 또한 인간이 살아가는 데 기본적인 의식주의 기회는 공평해야 하고, 분배는 공정해야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아니, 한때는 그렇게 보였다. 모든 기업이 국영기업이었고 근무자 모두 철밥통(铁饭碗儿)이었다. 그리고 누구나 공평하게 식량배급표를 지급받았다. 1978년, 중국이 개혁개방을 실시한 뒤 중국 사회는 완전히 바뀌었다. 당시는 누구라도 먼저 부유해져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선부론(先富論)이 등장했다. 기회를 잡은 이들이 눈치가 빠른 이들이 먼저 富의 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갈수록 부의 격차는 심화하여 갔다. 노동 시간, 노동 강도, 노동 가치는 더욱 양극화하였고 정치와 경제의 간극은 더욱 커졌다.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었고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그리고 인구는 급속히 증가했다. 결국 국가의 개입으로 한 자녀 정책이 실시되었고 소황제(小皇帝), 소황후(小皇后)가 탄생하게 되는데 이른바 바링허우(80后), 주링허우(90后)이다. 이들은 경제적으로 안정된 사회에서 성장했지만 치열해진 교육 경쟁 속에서 성적에 강한 스트레스를 겪게 되었다. 대학에 진학하려면 우리나라의 수학능력 시험에 해당하는 가오카오(高考)을 치러야 한다.
중국에서 가오카오에 참가하는 인원은 매해 증가하는 추세다. 2017년에는 940만 명이 참가해서 700만 명(74.46%)이 합격했고, 2018년에는 975만 명이 참가해서 715만 명(73%)이 대학생이 되었다. 2019년 대학입학 시험 참가자는 1031만 명, 2020년은 1071만 명, 올해 2021년에는 그 수가 더 늘어 1078만 명이나 된다.1) 이 자료에 2019년 이후 합격률은 기록되지 않았지만, 평균적으로 75% 정도는 합격한다고 한다면 매년 700∼800만 명이 대학에서 고등교육을 받고 사회에 진출하는 셈이다. 2020년 우리나라의 대학 진학률이 72.5%인 36만 2,888명에2) 비하면 몇 배나 많은 수다. 하지만 중국 14억 인구에 비하면 아주 적은 학생들만 대학에 입학한다는 말이 된다. 높아진 교육열만큼 중국 학생들 간의 경쟁도 치열해졌다. 대학입시 과열 현상이 생기면서 터져 나온 게 대학입시 가점제도(高考加分)에 대한 불공정 논란이다. 당시 일부 예체능 특기생과 과학 올림피아드 수상자, 지덕체 모범 학생을 포함한 소수민족 학생들이 가점제도의 혜택을 받고 있었다. 중국은 한족을 포함해 56개의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다. 2010년 자료에 따르면 인구의 91.6%가 한족이고 나머지가 소수민족이다. 민족의 인구수는 적으나 소수민족이 생활하는 지역은 매우 넓어 중국 당국으로서는 소수민족을 배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일종의 소수민족 유화정책이다. 그러나 가점을 받지 못하는 대부분 한족 학생들은 가점을 받은 이들 때문에 자신들이 역차별에 의한 불이익을 받게 된다는 사실에 불공정을 느꼈고 교육 당국에 이를 적극적으로 알렸다. 결국 2014년부터 가점제를 조정해 오다가 2018년에 이르러 소수민족 학생들에게 부여되는 가점 혜택이 대폭 축소되었고 혜택을 받는 소수민족도 일부 오지 학생에게만 적용하게 된다. 가점제도가 시행된 초기에는 소수민족이나 특기생들에게 가점을 주어 격려하는 일이 적절한 정책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면 사람들도 다르고 해당 정책에 대한 반응도 달라진다. 가점제 문제는 하나의 사건이 시간과 당사자가 달라지면서 느끼는 감정도 달라진 예라 하겠다. 하지만 공정에 대한 판단이 정책 당사자나 무역 당사국 간의 이해 차이로 완전히 달라지는 경우도 자주 발생한다. 특히 정무적 판단이 개입될 때 더욱 그러하다. 중국은 전 세계에게서 막대한 게임 수익을 창출하는 게임 강국이다. 지난해 한국 게임 시장에서 벌어들인 매출만도 1조 4800억 원에 이른다.3) 그럼에도 한국 게임에 대한 판호는 2017년 이후 단 3개에 불과하다. 국가 간 지켜져야 할 상호주의 원칙은 온데간데없다. 판호는 게임을 중국에서 서비스할 수 있도록 허가하는 허가서에 해당한다. 판호를 심사하고 허가하는 곳은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선전부 산하 출판국이다. 줄여서 중선부출판국(中宣部出版局)이라고 한다. 그런데 지난 4월 중선부출판국은 새로운 심사기준을 제시했다. ‘관념지향(观念导向)’, ‘원조창작(原创设计)’, ‘제품품질(制作品质)’, ‘문화적 의미(文化内涵)’, ‘개발정도(开发程度)’4) 등 5개 항목에서 평균 3점 이상의 점수를 받아야 판호를 발급한다는 것이다.5) 이것은 완전히 문화검열이고 불공정무역이다. 타국이 개발한 게임 내용 속에 중국 문화를 전파하는 내용이 있으면 심사에서 좋은 점수를 줄 수 있다니. 이런 말도 안 되는 규정을 근거로 심사를 한다는 것 자체가 불공정이다.
그동안 한국 게임의 유입을 필사적으로 제한했던 중국 정부가 최근 중국 미성년자들의 게임 시간을 법적으로 제한하고 나섰다. 지난 8월, 중국 정부는 미성년자들의 게임 시간에 대한 새로운 규정을 발표하였다. “게임이 미성년자들의 정신건강에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서비스 제공 시간을 제한하기로 규정을 변경하고 로그인 가능 시간은 매주 금, 토, 일 저녁 8시부터 9시까지 각 1시간씩이다. 미성년자들이 게임 사이트에 접속하는 총량을 주당 3시간을 넘지 않도록 하고 다른 시간대 서비스나 초과 사용 서비스도 금지된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규정은 중국 게임 산업을 국가 단위로 지원하고 발전시켜 온 중국 정부의 정책과는 매우 다른 행보라 하겠다. 이번에 중국 정부가 미성년자의 게임 시간 제한 정책을 시행하게 된 배경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겠다. 하나는 청소년들의 지나친 게임비 사용이 가정 경제의 부담을 증가시켜 이에 대한 일종의 제제 행위가 필요했던 것이고, 다른 하나는 청소년들의 게임 중독이 심각해서 정부가 제도적 장치를 통해서라도 청소년들의 게임 이용을 막아야 할 정도라는 의미가 되겠다. 반면 한국 정부는 지난 8월 25일 학생들의 심야 시간 게임을 제한하는 강제적 ‘셧다운제’를 폐지하고 게임 시간을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선택적 셧다운제로 완화하였다. 셧다운제는 2011년 여성가족부가 청소년들의 게임 과몰입을 막기 위해 10년간 실시한 정책이었으나 개인의 자유권을 침해한다는 지적과 함께 제도 시행 효과가 기대에 못 미친다는 지적도 있었다. 규제와 제약을 풀게 되면 당분간은 자정 능력이 부족한 사용자의 게임 과몰입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이러한 결정은 강제성보다 자율성의 가치를 더 강조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각국의 입장과 정세에 따라 사물과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같은 일에 대해서도 어떤 쪽은 공정을 느끼고 어떤 쪽은 불공정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콘텐츠 무역과 같은 주요 사업 부분에서는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상호주의 원칙하에서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고 이해한다면 한중 양국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질 것이며 무역관계에서도 불공정이라는 단어가 개입할 자리는 없어질 것이다. 미주 4) 용어 참고 :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aver?volumeNo=31361553&memberNo=24985926
사진출처 | 바이두 박애양 | 중문학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