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신조어는 ‘탕핑주의(躺平主义)’이다. 탕(躺)은 드러눕다는 뜻이고, 핑(平)은 평평하다는 뜻으로, 탕핑은 바닥에 드러눕는다는 의미이다. 즉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침대에 누워만 있겠다는 것으로 자포자기에서 비롯된 극단적 생활태도이다. 그러나 중국 젊은이들이 탕핑을 하는 이유는 그들이 게으르기 때문이 아니라 노동과 그에 따른 대가가 비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아무리 열심히 돈을 벌어도 높은 물가와 집값이 오르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좌절감에서 시작되었다. 탕핑족(躺平族)은 자포자기한 채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중국 청년세대를 뜻하는 말이다. 이 단어는 우리 나라의 삼포족(三抛族: 연애, 결혼, 출산 세 가지를 포기한 세대)이나 사포족(四抛族: 연애,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네 가지를 포기한 세대), 오포족(五抛族: 연애,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취업 다섯 가지를 포기한 세대)과 같은 맥락의 신조어이다.
탕핑주의는 지난 4월 17일, 중국의 한 네티즌이 중국 포털사이트 카페인 바이두(百度) 티에바(贴吧)에 올린 ‘탕핑이 바로 정의다(躺平即是正义)’라는 게시물에서 시작되었다. 글쓴이는 20대 청년으로 직장이 없는 상태에서 2년간 매달 200위안(약 3만5천 원)으로 생활할 수 있었다면서 자신만의 비법을 공개했다. 그는 매일 집에서 두 끼만 먹으면서 낚시, 산책 등 돈이 많이 들지 않는 취미활동을 했고, 만약 돈이 필요하면 영화 촬영현장에 가서 엑스트라로 일당을 받은 뒤 그 돈으로 몇 달간 같은 생활을 했다고 한다. 이 청년은 “직장에서 열심히 일해 보았지만 자본가의 노예가 되어 매일 996(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주 6일 근무)을 하면서 착취만 당하고, 결국 남는 건 병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2년간 일하지 않고 놀기만 했지만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스트레스의 주된 요인은 남과의 비교, 어른들의 낡아빠진 사고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땅에 인간의 주체성을 높이 드는 사조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내가 스스로 하나를 만들어 내겠다. 탕핑이 곧 나의 철학이며, 탕핑만이 만물의 척도”라고 주장했다.
탕핑을 주장하는 그의 글은 큰 반향을 일으킨 뒤 삭제되었다. 하지만 이미 많은 네티즌들이 이 글을 캡처해서 여러 소셜네트워크(SNS)로 퍼 나른 뒤였다. 이 글은 다시 중국 최대 인기 마이크로블로그(글자 수 제한이 있는 블로그) 사이트인 시나 웨이보(微博: 중국판 트위터)에 등장하였다. 지난 4월 중순에 ‘호기심 많은 여행가’란 닉네임을 쓰는 한 청년이 ‘탕핑’에 관한 글을 올렸다. 이 청년은 “경쟁을 내려놓으면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더 이상 아등바등 살지 않겠다”면서 “오직 탕핑만이 현자가 되는 길이고, 이것을 위해서 5가지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청년이 포기하겠다고 말한 5가지는 결혼, 아이, 집, 차, 소비를 말하는 것이다. 중국 네티즌들은 “나도 탕핑에 동참한다” 라는 글과 함께 관련 그림을 인터넷에 올리며 폭발적으로 호응하기 시작했다. 일부 누리꾼들은 “내가 누우면 자본이 절대로 나를 착취할 수 없다” “사회가 험악하니 내가 먼저 눕겠다” “탕핑은 중국 젊은이들의 비폭력, 비협조 운동이다” 등 탕핑을 지지하는 이유를 댓글로 적어 놓기도 했다.
이와 같이 최근 중국에서는 탕핑주의를 숭상하는 바람이 불고 있는 데, 주로 20대, 30대의 젊은 층과 일부 중년층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일을 적게 하고(少工作), 내 집을 사지 않고(不买房), 승용차를 사지 않고(不买车), 결혼하지 않고(不结婚), 출산하지 않고(不生娃), 쇼핑하지 않고(不购买), 소비를 하지 않고(不消费), 욕구를 낮추고, 최소한의 생존 기준만 유지하면서 살자는 것이다. 그러나 일을 전혀 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다. 1년에 한두 달 정도 일하고 받은 월급으로 최소한의 생활만 유지하면서 1년을 생존하는 방식이다. 그들은 대기업이나 남의 돈을 벌어주는 기계로 전락되는 것을 거부하고,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노예가 되는 것을 거부하겠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이러한 탕핑주의 확산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탕핑 풍조가 사회 전반으로 퍼질까 봐 은근히 두려워하는 분위기다.
중국 일부 관영매체에서는 탕핑주의는 ‘독계탕(毒鸡汤)’이라고 하면서 비판을 일삼고 있다. 신화통신(新华通讯), 환구시보(环球时报), 광명일보(光明日报),신경보(新京报) 등 관영매체는 ‘탕핑은 부끄러운 일, 어디서 온 정의감인가(躺平可耻,哪来的正义感?)?’라는 제목의 논평을 게재했다. “젊은이들이 스트레스 앞에서 탕핑을 선택하는 것은 정의가 아니라 오히려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면서 부지런히 일해야만 꿈이 이뤄질 수 있다”고 각성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세계 최대 인구 대국으로 중국의 경제 전망은 매우 밝다”며 “어려움에 직면할 때마다 탕핑을 선택한다면 도대체 인생을 어떻게 바꿀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즉 탕핑주의는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되지 못한다는 취지이다. 그리고 중국 당국도 즉각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대응에 나섰다. 소셜미디어에서 해시태그 탕핑을 금지어로 지정하고 사건이 발단이 된 게시물을 삭제했다.
중국 젊은이들이 탕핑주의를 추종하는 원인은 여러 갈래로 분석할 수 있다. 첫째,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는 집값에 비해 한참 낮은 근로소득을 꼽을 수 있다. 즉 아무리 돈을 벌어도 집값 오르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에 내 집 마련이 힘들다는 현실에 부딪혀 애초에 일하는 것을 포기해 버리는 것이다. 베이징(北京), 상하이(上海), 선전(深圳) 등 일선도시의 집값은 이미 지난해 1㎡당 5만 위안(약 850만 원)을 넘어섰다. 반면 올해 4월 부동산회사인 헝다그룹(恒大集団, Evergrande Group) 산하 연구원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중국 내 주요 도시 20곳의 청년세대(1980년대생)의 평균 월급은 1만 2349위안(약 211만 원) 수준이었다. 베이징의 집값과 소득의 비율은 41.7이다. 이것은 월급쟁이가 41.7년간 먹지 않고 일해서 돈을 모아야 베이징에 집 한 채를 살 수 있다는 뜻이다. 또 선전의 집값과 소득의 비율은 43.5다. 즉 43년간 먹지 않고 돈을 모아야 선전에서 집 한 채를 살 수 있다는 말이다. 아마도 선전은 전 세계에서 가장 집을 사기 힘든 곳에 속할 것이다. 게다가 집값은 지금도 계속해서 오르고 있다
둘째, 중국 젊은이들에게 결혼과 육아도 쉽지 않은 문제이다. 집을 마련하지 못하니 결혼이 늦어지게 되고, 어렵게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다 하더라도 국공립 보육시설이 턱없이 부족해 맞벌이 부부 중 한 명이 직장을 그만두거나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아이를 맡기는 경우가 많다. 중국은 한때 인구 억제를 위해 ‘한 자녀 정책’을 도입하여 출산을 엄격히 규제해 왔다. 하지만 빠르게 진행되는 고령화와 저출산 문제로 인해 2016년 ‘전면적 두 자녀 정책’을 도입했다. 그리고 불과 5년 반이 지난 2021년 5월 31일 중국 정부가 40년 만에 산아제한을 폐지하고 ‘세 자녀 정책'을 선언했지만 젊은이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당시 중국 인터넷에서 ‘셋째를 낳을 준비가 됐는지’를 묻는 설문에 30분 만에 약 3만 명의 응답자가 몰렸는데 이들 중 90%는 ‘전혀 생각 없다’고 답했다. 중국 당국이 세 자녀 정책을 선언하자 중국 청년들이 웨이보에 이런 반응을 보였다고 중국 대표 테크 전문 매체 36커가 보도했다. “저는 탕핑합니다. 여러분은 네이쥐안(內卷: 질적 성장없이 소모적인 경쟁을 하는 것)을 하세요”, “고맙지만 사양할게요. 저는 탕핑할래요” 등등. 중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이들은 자본에 착취당할 수 없다면서 세 자녀 낳은 것을 원하지 않고 있다.
셋째, 치열해지는 중국의 근로 환경도 문제다. 중국에서는 최근에 ‘996, 007, 886’이라는 암호 같은 키워드가 유행하고 있다. 모두 중국의 근로 시간 패턴이다. ‘996’은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일하고, 주 6일을 근무한다는 뜻이다. ‘007’은 0시부터 익일 0시까지 24시간을 일하고, 주 7일을 근무한다는 뜻으로 휴식이 제로 상태인 것을 의미한다. ‘886’은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일하고, 주 6일을 근무한다는 뜻이다. 이 숫자들은 아주 강도 높은 중국의 노동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이런 근로 제도는 중국의 노동법에 어긋나지만 기업은 여전히 이런 근로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게다가 노동 시간에 비해 노동의 대가가 터무니없이 낮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중국 젊은이들은 자신의 노동력을 착취당하기보다는 차라리 탕핑하는 것을 선택하겠다는 것이다. 탕핑의 의미는 중국의 젊은 지식인들 사이에서 재해석되면서 내연을 넓혀가고 있다. 중국 충칭(重庆)에서 활동하는 한 언론인 그룹은 웨이보에서 “탕핑주의는 부추(韭菜)들의 비폭력 비협조 운동이자 막다른 골목에서 만들어 낸 궁여지책”이라고 평가했다. 부추는 어디에서나 잘 자라고 베어도 금방 다시 자라난다. 부추는 끊임없이 약탈당하는 중국 민초들이 자신을 자조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부추는 짓밟혀도 다시 일어서는 강한 생명력을 상징하기도 한다. 웨이보 아이디 원주민(原住民者)은 “탕핑은 미래와 사회의 공정성에 대한 극도의 절망감을 드러낸 것”이라고 하면서, 결혼한 부부가 양가의 재산을 다 털어도 평생동안 집 한 채를 살 수 없을 때 이런 결론을 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14억 중국 인구 중 약 42%가 중급 규모의 도시에서 집세조차 내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는 현실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을 했다.
재미(在美) 중국 미디어 평론가 우터(吳特)는 에포크타임즈(The Epoch Times) 중국어판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탕핑이 제시하는 결혼, 아이, 집, 차, 소비를 포기하고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사실 현재 중국의 교육과 취업 분야에서 과도한 경쟁과 학업, 업무 압박으로 앞날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상황에 대한 젊은이들의 소극적 저항”이라고 풀이했다. 이어서 그는 “이러한 소극적 저항으로는 당장 사회 상황을 바꾸기는 어렵다. 하지만 탕핑의 의의는 진로와 사회 상황에 대한 중국 젊은 세대의 절망을 극명하게 보여줬다는 데 있다. 중국공산당은 젊은이들이 연예인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나 취업, 출세, 아니면 사회 현실을 도피하기 위한 향락에 빠지기를 바란다. 이런 것을 거부하면서, 돈벌이는 시원치 않더라도 사회의 부조리에 관심을 갖고 독립적으로 사고하는 젊은이가 늘어나는 것은 중국공산당으로서는 간담이 서늘한 현상일 것”이라고 말했다. 우터는 “중국의 현명한 청년들이 하루하루 먹고 살기 바쁜 상황에서도, 중국중앙텔레비전(CCTV)으로 대표되는 중국공산당의 대중 문화 선전선동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스스로 사고하려 한다면 희망이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실 탕핑은 경제적 궁핍에 빠진 중국 청년세대가 중국공산당에 저항하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중국 청년층은 애국주의, 국수주의 선동에 가장 취약한 계층이었다. 인플루언서와 인터넷 댓글로 여론을 조작하는 부대인 ‘우마오당(五毛党: 댓글 하나 달때마다 5마오(약 85원)을 받는다는 소문에서 붙여진 이름)’의 공작에 상당수 젊은이들은 반일, 혐한, 반미를 외치며 각종 보이콧 운동에 동원되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탕핑주의의 반향이 커지자 중국 정부와 언론은 초기에는 청년들을 타이르는 어조로 대응했다. 그러다가 갈수록 엄격해지면서 그들을 비난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재미 중국 문제 전문가 알렉산더 랴오는 “중국 정부가 언론을 통해 탕핑주의를 비판하지만 별 효과가 없을 것이다. 탕핑족은 이미 귀를 막고 사회적 체면에 얽매이지 않기로 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탕핑은 정치운동이 아니지만, 오히려 정치운동보다 더욱 치명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부 학자와 기업가, 윗세대들은 탕핑하는 젊은이들의 태도를 “극도로 무책임하다”고 비판하고 있으며, “젊은이들이 누워버리면 나라의 미래는 누구에 의지해야 하나”라고 걱정하고 있다. 이제 중국 젊은이들은 ‘네이쥐안(内卷)’할 것인지 ‘탕핑(躺平)’을 할 것인지 자신이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놓여 있다.
<참고 자료> https://baike.baidu.com/item/%E8%BA%BA%E5%B9%B3/24123069?fr=aladdin https://zhuanlan.zhihu.com/p/376502714 https://new.qq.com/rain/a/20210520A0DAD700 https://zhuanlan.zhihu.com/p/375918917
사진 | 바이두 석은혜 | 본웹진 전 편집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