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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2.20  통권 80호  필자 : 서베대  |  조회 : 1691   프린트   이메일 
[사역의 현장에서]
치앙후게이의 부활

 

 

꺼져가는 생명

 

치앙후게이!

기차역에서 나오는 그녀는 가녀린 몸을 가누지도 못하고 남편과 친정 어머니의 부축으로 겨우 출구를 빠져 나오고 있었다. 한달만에 만난 그녀는 눈으로 보아도 알 수 있을 만큼 너무도 초췌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나를 본 그녀는 힘겹게 그르렁거리는 소리로 “您好,歡迎謝謝您(닌하오 환잉셰셰닌)”하며 마중 나온 것에 대하여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2000년 4월초, 헤이룽장(黑龍江)성 북동쪽에 있는 G시에서였다. 40세 초반이라고 하는데 보기에는 오십이 다 된 내 아내보다도 더 나이가 들어 보였다. 치앙 자매는 심장 판막증으로 벌써 몇 년째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베이징(北京)에서도 진찰을 받은 적이 있는데, 의사는 “병이 너무 중하니 빨리 수술을 받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워낙 수술비가 많이 드니 그러다 그냥 죽을 생각으로 발걸음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일반 서민들이 받는 봉급에 비하여 병원비가 너무 비싸다. 중병에 걸리면 한국 돈으로 몇백만원 하는 수술비가 없어서 죽는 사람이 허다하다고 한다. 치앙 자매 역시 삼백만 원 이상 되는 수술비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녀도 그렇게 죽음을 기다리고만 있었다. 

 

S시의 교육 책임자가 교육차 나온 내게 그녀의 사정을 설명해주었다.

“무슨 방법이 없겠습니까?”

“방법이야 있지요. 그런데 그 자매의 집안 사정은 어떻습니까?”

“서 선생님, 그 방법이 무엇이죠? 자매의 집안 사정이 문제가 아니고, 어쨌든 살릴 수 있다면 방법을 모색해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심장병을 전문으로 수술하는 병원을 알고 있습니다. 지방에 있는 병원이기 때문에 수술비는 물론 입원비, 기타 비용 모두 베이징의 병원보다는 쌉니다. 그런데 그 병원은 원칙적으로 병원비를 삼분해서 내야 합니다. 보통 4만 위안(한화460만원) 정도 드는데 소개한 제가 1/3, 그 병원 후원단체에서 1/3을 부담 하지만 나머지 1/3은 본인이 부담해야 합니다. 물론 이곳 사업체에서도 대소에 관계없이 그녀를 위해 모금해주시고 기도해 주시면 제가 주선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서 선생님. 환자 부담금은 본인의 친지들과 상의하도록 하고 저희는 기도하고 저의 사업체에서도 작더라도 꼭 돕겠으니 어떻게든지 도와주세요.”

나는 치앙 자매를 데려오도록 하여 이러한 사정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내게 머리를 조아려 부탁해왔다. 그러나 하얼빈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10여 시간 이상 깊이 기도하며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보았다. 죽어가는 한 생명을 살리는 것은 귀한 일이다. 몇 년 전에도 심장병 수술을 위해 모금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모금하는 것이 너무도 어려워서 다시는 눈을 감고 귀를 막아서 관계하지 않으리라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막상 이렇게 꺼져가는 생명을 보고서 또다시 약속을 하고 왔으니 ‘어떻게 또 모금을 하나’하는 무거운 책임감에 눌려 좀처럼 눈을 붙일 수가 없었다. 집에 도착한 후 나와 아내는 아침 저녁으로 치앙 자매와 그녀의 병원비 후원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각이 떠오르는 곳으로 편지를 써보냈다.

돕는 손길이 이어지고

5월 초, 그녀를 만난 지 한 달 여만에 치앙 자매와 그녀의 남편, 친정 어머니가 J역에 도착하였다. 나는 역전 부근 여관을 거처로 임시 마련해 주고 짐을 풀도록 하였다. 그리고 함께 병원으로 가서 이사장과 병원장을 만나 수술 전 진찰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듣고 병원비에 대해서도 의논한 후 진찰에 들어갔다. 이틀 후 우리는 다시 병원으로 가서 원장 의사로부터 진찰 결과를 들을수 있었다. 

 

“부인을 진찰한 결과 당장 수술을 하기에는 문제가 많습니다. 첫째는 몸이 너무 약해서 수술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수술하기 전에 먼저 기력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둘째는 병이 너무 중합니다. 치앙 부인은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비대하고, 4개의 판막 중 이미 3개가 기능을 상실하였습니다. 만약 수술을 한다면 비정상적으로 비대한 심장을 잘라내고 4개의 판막중 하나는 성형하여 써보도록 하지만 3개는 인공판막으로 교체해야 합니다. 셋째는 이처럼 병세가 중하다  보니 수술비가 엄청 많이 듭니다. 인공판막 하나에 2만위안이니 총 6만위안(920만원)은 족히 들 것 같습니다.”

“그러면 언제쯤 몸을 회복하여 수술 할 수 있을까요?”

“아마 영양을 잘 공급하고 조치하면 7월쯤에는 수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부부는 6만원이라는 말에 깜짝 놀라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치앙 자매의 남편이 의사에게 묻는다. “수술을 못하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만약 수술을 하지 않은 채 그냥 놔둔다면 3개월 후 쯤에는 마지막 남아있는 판막까지 멈추게 되고, 그러면 목숨을 잃을 수 밖에 없습니다.

 

부부가 돈 때문에 걱정하는 것을 안 이사장이 말한다. “판막 하나를 교체하는 데 2만위안이 듭니다. 더군다나 부인의 심장 판막은 네 개나 문제가 있기 때문에 돈이 많이 듭니다. 이미 서 선생님이 수술비가 3만위안 정도라고 하셨다는데 사실 그것은 판막 하나 교체할 경우의 수술비입니다. 그렇지만 일단 할 수 있는 데 까지 해 봅시다. 나머지는 저의 병원 후원회를 통하여 준비해 볼테니 일단 1만위안만 준비해 보도록 하세요.”

 

이사장의 말에 그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는 것 같았다. 치앙 자매는 그 날로 병원에 입원하였고, 남편과 친정 어머니가 교대로 간호하게 되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입원 기간이 길어질 것 같아 두 사람이 교대로 간호하려면 잠시 머물 방이 필요할 듯 싶어 가까운 변두리에 방 한 칸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한나절을 헤매도 방을 찾지 못했는데, 마침 교회 옆에 조그만 집 한 채가 보였다. 나는 행여나 싶어서 “방 하나를 빌릴 수 있다면 돈을 드리겠다”고 치앙 자매의 사정을 전해 주었다. 내 말을 들은 한족 집주인은 자기들도 이웃에 있는 교회에 다닌다면서 자기 아내와 잠시 이야기 하더니 우리에게 들어오라며 말한다.

 

“외국인인 선생님도 큰 돈을 책임지고 그렇게 좋은 일을 하는데, 저희가 어떻게 집세를 받겠습니까?”하면서 방 하나를 쓰도록 내주었다. 그러더니 내가 내미는 돈을 굳이 도로 돌려준다. 나는 며칠간 기도하던 중에 한국의 십여 곳으로 편지하였다. 그러자 강남, 평택, 행당, 구로 등 4개 처에서 50만원씩 모금을 해 보내 주었다. 나와 아내는 ‘주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이제 치앙 자매의 생명을 구하게 되었구나’하고 감사 기도를 드렸다.

성공적인 수술로 다시 찾은 건강

7월 중순, 우리는 은행에서 돈을 찾아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병원장은 치앙 자매의 몸이 아직도 정상상태가 아니라서 수술이 어렵다고 말했다. 우리는 치앙 자매와 그녀의 남편을 만났다. 원장이 그 자리에서 “지금 부인은 병이 위중하고 몸은 너무 허약해서 수술하기에 어려움이 많습니다.”고 하자 치앙 자매는 “괜찮습니다. 수술하지 않고 3개월 밖에 살 수 없다면, 수술하다 죽더라도 꼭 수술을 받겠습니다. 죽으면 천국 갈 것이고 살아나면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겠습니다.” 듣고 있던 의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렇게 마음에 작정이 되었다면 수술하십시다.”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내일 아침6시에 수술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나와 아내는 아침 식사도 거른 채 일찍 옷을 차려 입고 집을 나섰다. 마침 김 선생 내외도 비슷한 시간에 도착하였다. 병원에는 이미 헤이룽장에서 온 치앙 자매의 가족과 친지 십여 명이 와 있었다. 내가 병실에 들어서자 그녀의 남편은 한 사람씩 가족을 소개하였다. 인사가 다 끝나자 우리는 치앙 자매의 수술 성공을 위하여 함께 기도 하였다. 우리가 기도할 때 치앙 자매는 기쁨과 감사로 인해 흐르는 눈물을 흘리며 위로하는 우리를 향해 환히 웃으며 수술실로 들어갔다. 나와 아내는 일단 집에 가서 식사를 하고 다시 오자며 병원을 나섰다. 집에 돌아와 아침을 겸한 점심을 먹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서 선생님, 여기 병원인데요. 지금 치앙 부인의 수술 중인데 피가 부족합니다. 부인의 혈액형이 B형이라고 하니 어떻게든 힘써주세요.” 나와 아내는 마침 여름방학으로 잠시 집에 와 있던 딸 리미를 병원에 데리고 가려고 했다. 그랬더니 리미가 말한다. “아빠, 나는 헌혈하고 싶어도 못 해. 학교에서 헌혈하려고 갔더니 빈혈이 있어서 헌혈하면 안된다던데 ...”그러나 우리는 밥을 먹고 있는 딸의 팔목을 잡아 끌면서, “그건 때에 따라서 다르니까, 생명에 지장이 없다면 헌혈하는 거야.” 병원에 도착한 나와 리미 둘 다B형이므로 혈액 검사를 하였다. 그런데 나는 간 치수에 문제가 있어서 채혈 할 수 없다고 하고, 딸의 검사 결과에 대해서는 “피는 깨긋해서 좋지만 빈혈 증세가 있는데 어떻게 할까요?” “생명에 큰 문제가 없다면 채혈해주세요. 지금 심장수술하는 환자의 생명이 우선 급하니 어쩔수 없지요.”

 

그래서 리미는 어쩔 수 없이 팔을 내밀었고, 병원직원들과 간호사들도 팔을 내밀어 헌혈하였다. 또한 나는 알고 있는 대학교와 각 기업체에 전화를 하여 헌혈을 호소하였다. 그랬더니 많은 대학생과 기업체 직원들까지 병원으로 와서 헌혈에 동참하여 주었다. 열 시간이 넘는 치앙 자매의 대수술은 이처럼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은혜 중에 끝이 났다. 그렇게 수술을 마친 치앙 자매는 점차 건강을 회복하고 퇴원하기에 이르렀다.

 

몇 달 후 재진을 받기 위하여 병원에 왔다가 우리 집을 찾아 온 치앙 자매를 만난 우리는 몰라보게 건강해진 그녀를 보고 물었다.

“몸이 참 좋아진 것 같아요.”

“예. 몸무게도 10여 킬로그램 이상 불었어요. 하나님의 은혜지요. 또한 서 선생님이 많이 도와 주셔서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군요.”

“그래, 요즈음은 어떻게 지내십니까?”

“집에 돌아간 후 병원에서 약속한 것처럼 가족 모두 주님의 일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이웃에서는 죽을 사람이 다시 살아 돌아왔다면 얼마나 놀라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부활의 체험을 전하는데 모든 시간을 드리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 동네교회도 제가 맡아서 일하고 있습니다. 죽을 목숨이 살아났으니 요즘은 정말 천국에서 사는 것 같습니다.”

치앙 자매의 성공적인 수술은 그들에게 있어서는 주님의 부활처럼 놀라운 일로 받아들여졌다. 그것은 치앙 자매 개인의 부활일뿐 아니라 그들 가족의 부활이요, 한동네가 새로이 일어나는 부활이었다.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의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그소리가 거리에 들리게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공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사42:1-4)

 

 

 

 

 

 

 

서베대 | 중국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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