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최근 중국교회를 통한 통일선교 이야기를 점점 더 자주 듣게 된다. 이 이야기는 중국선교 전문가들에게서 나오고, 통일선교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나온다. ‘중국교회를 통한 북한선교 방안’이라는 주제로 포럼을 연 교회도 있고, 중국의 대도시에 있는 한인교회들 가운데, ‘우리가 어떻게 하면 통일선교에 동참할 수 있는지 알고 싶다.’며 국내의 통일선교 전문가들을 초청하는 일도 있다고 한다. 이 문제를 수면 위로 이끌어내고 있는 것은 바로 이 <중국을주께로>지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을주께로> 2015년 3월호에는 “중국과 북한선교: 그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제목의 글이 실려 이 문제를 공론화했고, 같은 해 10월 호는 “북-중 교역을 통한 북한선교”라는 기획을 마련해서 관심을 끌었다.
“뿌리 깊은 나무는 꽃이 좋고 열매도 많다” 먼저 알아야 할 일이 있다. 이 문제는 최근에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생소하거나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중국교회와 한국은 오래 전부터 관계가 많았다.
먼저 넓은 의미의 기독교와 관계된 일들이 있다. 한국교회사에는 ‘경교의 신라 유입설’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경교(景敎)’는 ‘광명정대한 종교’라는 뜻인데, 시리아 기독교를 가리키는 말이다. 경교는 기원 7세기에 당나라에 전래되어 널리 보급되었는데, 당시 신라는 당나라와 교류가 많았기 때문에 경교도 신라에 유입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경교의 신라유입설’이다. 경교가 실제로 신라에 유입되었는지 여부는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으나, 금강산 장안산 경내에 세워진 ‘대진경교중국유행비’ 모조비와 1956년에 불국사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는 십자가 형태의 석제물 등을 비롯하여 여러 ‘증거물’들이 전해지고 있다. ‘대진경교유행중국비’는 경교가 중국에 크게 퍼진 사실을 새긴 비석인데, 영국의 여류 고고학자 고든(E. A. Gordon)이 경교와 한국 불교의 연결 가능성을 연구하고 그 기념으로 모조비를 세웠다고 한다. 불국사의 ‘돌십자가’는 숭실대의 한국기독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고려 시절, 가톨릭의 사절 루브루크(W. de Ruburck)가 1253년에 원의 수도를 방문하고 귀환하였는데, 이때 압록강 부근까지 여행하면서, 고려를 ‘카울레(Caulei)'라는 이름으로 적었다. 이것은 한국이 최초로 서방에 소개된 일로 알려져 있다. 조선조 때 천주교는 중국을 주된 통로로 하여 전래되었다. 개신교가 한국에 전래되는 일에도 중국은 큰 역할을 하였다.
올해는 ‘한국 개신교의 첫 순교자’라고 불리는 토마스 목사의 순교 150년이 되는 해인데, 토마스 목사는 중국을 발판으로 하여 한국에 왔다. 그 훨씬 이전인 1832년에 한국을 방문한 네덜란드 소속의 귀츨라프(K. F. A. Gützlaff) 역시 마찬가지었다. 귀츨라프는 한국을 최초로 방문한 선교사이다.
더 중요한 일들이 있다. 중북 동북지역에서 의주 출신 한국 청년들인 서상륜(徐相崙) 등이 입신(入信)을 하고, 세례를 받고, 성경(「예수셩교전서」)을 번역한 일이다. 세례는 대단히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비록 외국 땅에서 행해진 일이기는 하지만 한국인이 최초로 세례를 받은 1876년을 한국교회의 시년(始年)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다.
요즘 디아스포라교회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는데, 최초의 디아스포라교회도 중국에 설립되었다. 「조선예수교장로회사기(상권)」에 “(1898년에) 中国 南满洲 楫安县 里扬子教会가 成立하다 先是에 李圣三 林得贤等이 同地에 寓居하야 热心传道함으로 数十人이 相继信主하야 教会를 遂成하니라”(55쪽)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 이양자교회가, 국외에 제일 먼저 설립된 한인교회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양자교회는 현재의 중국 길림성 집안시(集安市) 유림진(榆林镇) 양자촌(阳子村)에 있었는데, 그곳의 주민들은 이양자교회가 있었던 곳을 교당골(教堂沟)라고 부르고 있다. 그곳의 냇가에는 ‘야소교 초립 1898 됴선인’이라고 새겨진 큰 자연석이 있다.
한국에 복음이 전해지는데 중국 동북지역의 역할이 이같이 컸음에 근거를 두고 ‘기독교 북방전래’라는 말이 생겼다. 중국과 한국교회와의 관계는 이와 같이 뿌리가 깊다. “뿌리가 깊은 나무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아니하므로, 꽃이 좋고 열매도 많으니”라는 “용비어천가”의 가사가 생각난다. 그대로 되었으면 좋겠다.
어려운 일 중국교회를 통한 북한선교는 쉬운 일이 아니다. 선교의 주제인 중국교회에도 제약이 있고, 선교의 객체인 북한에도 어려움이 있다. ‘중국교회’라고 하면 삼자애국운동위원회와 기독교협회를 중심으로 한 공인교회, 다시 말해 삼자교회를 들어야 하는데 삼자교회가 북한선교를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다. 아니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스스로 전도하고(자전), 스스로 양육하고(자양), 스스로 다스리는(자치) 것을 내세우는 ‘삼자’의 ‘실질 목적’은, 기독교가 외부와 연결되는 것을 막는데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런 것을 기본정책으로 하면서 다른 나라에 선교하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개 교회 별로는 할 수 있고, 또 하는 것도 보았으나, 삼자교회가 공식으로는 이런 일을 하지는 않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더구나 최근에는 중국의 교회들에 대한 정부의 탄압이 심해지고 있다는 소식이 이어지고 있는데 원저우(温州)같이 기독교가 왕성한 지역에서 더 심하다고 한다. 교회당의 십자가가 철거되고 이에 항의하는 목사가 체포되어 중형을 선고 받는다는 소식이 잊을 만하면 매스컴을 타고 있다. 중국의 종교자유는 ‘용인(容认)’된 범위 안의 자유인데 기독교의 성장이 빨라서, 그 범위를 벗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선교에 힘을 기울이기가 더욱 어려울 것이다.
북한은 ‘세계에서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가장 심한 나라’라고 매년 반복해서 발표되고 있으며, 선교에 대해 ‘증오감’이라고 해야 좋을 정도의 강한 적대감과 경계심을 갖고 있는 나라이다. 1981년에 평양의 과학, 백과사전출판사에서 발간한 「현대조선말사전」에는 ‘선교사’가 “미제를 비롯한 제국주의자들이 예수교를 선전하고 보급한다는 명목으로 다른 나라에 파견하는 종교의 탈을 쓴 침략의 앞잡이”(1430쪽)라고 풀이 되어 있다.
‘십자가’란 말의 용례는 “지난날 십자가를 들고 《하느님》을 부르던 미국선교사놈들은 침략의 척후대로서 가슴에 칼을 품고 기여든 살인백정들이다.”(1595쪽)라고 되어 있다. 1992년에 사회과학출판사에서 발행한 「조선말대사전」에는 이 풀이가 “기독교를 보급선전할 사명을 띠고 다른 나라에 파견되는 사람”(1권 1736쪽)으로 바뀌었고, 2007년에 발행된 이 사전의 증보판에도 ‘기독교’가 ‘그리스도교’로 바뀌었을 뿐 이 풀이가 그대로 올려져 있다(2권 700쪽). 종교용어에 대한 뜻풀이가 이렇게 부드럽게 바뀌었을 때 국내에서는 북한의 종교정책이 바뀌었다며 좋아하였다.
사전의 정의는 이와 같이 바뀌었지만, 선교에 대한 북한의 실제 관념은 「현대조선말사전」에 머물러 있다. 필자는 지금 2000년대「로동신문」의 종교관련 기사 목록 작성 작업을 하고 있는데 「로동신문」에서는 일관되게 ‘선교사는 침략의 앞잡이’이며 ‘살인백정’임을 강조하는 기사들이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중국교회를 통한 북한선교는 이렇게 양쪽 모두에게 어려운 일이어서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 10:18)는 말씀이 저절로 떠오르게 된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다면 “중국을 통한 북한선교”를 어떻게 해야 할까? 다음과 같은 방안들을 제시하고 싶다. 첫째, 가정교회가 북한선교에 관심을 갖도록 하자. 앞에서 중국교회라고 하면 공인교회를 들어야 한다고 말했는데, 실제로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은 가정교회이다. 이것이 사실임은 중국 당국자들도 인정하고 있다.
난 5월 20일, 경희대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에서 미국 인디애나 주 퍼듀대 종교와 중국사회연구소 대표인 페강 양(Yang Fenggang) 교수는 중국의 기독교인 숫자를, ‘삼자교회에 등록된 교인수는 2,800만 명, 여기에 가정교회에 다니는 사람을 합하면 1억 명이 넘을 것’이라고 밝혔다. 페강 양 교수는 중국계 미국인으로 중국종교를 연구하는 종교사회학자이며 장로교인이다. 중국의 교인숫자에 대해서는 조금씩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개 양 교수가 제시한 숫자와 비슷하다. 그렇다면. 가정교회와 삼자교회의 비율이 7:3, 즉 가정교회와 공인교회의 비율이 7:3쯤 되는 셈이다. 지금 중국교회가 하고 있는 많은 일의 중심에는 가정교회가 있다. 이같은 가정교회가 북한선교를 중요한 과제로 인식한다면 놀라운 일들이 많이 일어날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 힘쓰자.
둘째, 중국의 번영과 교회개방과의 관계가 알려지도록 하자.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중국은 대단히 낙후된, 가난한 나라였었다. 지금은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기는 하지만, ‘대륙굴기 (大陆崛起)’를 외치며, G-2 국가로서 위상을 확고하게 하고서, G-1을 지향하고 있다. 중국이 일어서기 시작한 것과 중국의 교회 개방은 시점(始点)을 같이 한다. 이 사실이 북한에 널리 알려지도록 힘쓸 필요가 있다.
중국은 북한에 대해 중국식의 개방을 할 것을 여러 차례 권고하였다. 지금은 핵 문제로 중국과 북한의 관계가 소원(疏远)해졌지만, 앞으로 관계가 개선되면 계속해서 그럴 것으로 보인다. 그 때 중국의 번영과 교회 개방이 함수관계가 있는 것 같다는 사실이 여러 채널을 통해서 북한에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북한을 출입하는 조선족동포들이 자연스럽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것이고, 중국의 지식층이나 지도층 인사들이 그렇게 해 준다면 더 좋을 것이다.
사실 북한은 부분적으로 중국을 뒤따르고 있다. 북한은 ‘5․30 조치’를 통해 목표 생산량의 30%까지 개인의 소유를 허용하고, 목표 초과량은 모두 가져갈 수 있게 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국가 토지의 준 사유화'로 볼 수 있는 이 일은 중국의 농업개혁 조치와 유사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북한에 뿌리를 내리고, 경제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장마당 경제’는 ‘북한식 시장경제’라는 말을 들으며, 중국의 ‘정좌경우(政左經右)’를 닮아가고 있다. 중국을 닮아가는 가운데, 중국이 취한,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교회를 개방하는 정책도 닮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하는 것이 북한에 큰 유익이라는 사실을 알 수 유도하기에 힘써야 한다.
셋째, 중국교회와 북한교회의 교류가 확대되도록 이끌자. 중국 공인교회 지도자들과 북한 조그련과 교류는 생각 밖으로 활발하지 않다. 미국을 비롯하여, 캐나다, 일본, 그밖의 여러 나라 교회들과의 교류보다도 빈약한 실정이다. 거의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이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1980년대 후반에 중국교회 대표단이 북한을 방문한 일이 있었다. 이때 대표단의 일원이었던 조선족 목사에게 북한교회에 대해 물으니 ‘거긴 여기와 많이 달라요’ 하고는 입을 다물던 일이 기억난다. 그리고 1989년 3월에 조그련 대표가 삼자교회를 방문한 일이 있었다. 이것이 전부인 것 같다.
중국 공인교회 지도자들이 북한의 조그련을 자주 방문하도록 권고하고, 이 일을 지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중국교회의 지도자들이 조그련 지도자들에게 중국의 종교정책과 실태를 설명하고, 신앙개방의 유익을 설명하는 일이 많아져야 한다. 조그련 지도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범위가 넓은 편이 아니지만 이런 일을 통해서 조금씩이라도 변화가 있을 것을 기대할 수 있다. 현재 한국교회와 중국교회는 한중기독교지도자교류회를 비롯하여 여러 면에서 교류를 갖고 있다. 지난 4월 하순에도 이영훈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를 비롯한 중진 목회자 다섯 분과 유석성 총장(서울신대)을 비롯한 신학교육기관 책임자 네 분, CCC대표 등 한국교회 대표단이 중국을 방문하여 ‘2016 한중신학교류회’를 가졌다. 이런 흐름 속에서 중국교회 지도자들에게 북한교회 방문을 권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넷째, 북한에 있었던 화교교회의 교회당들 문제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북한의 평양, 원산, 청진, 신의주에는 화교교회가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한다. 이 사실을 근거로 그 교회들이 복원되는 일을 추진하는 것을 시도할 수 있다. 기록이 확인, 6․25 전쟁으로 인한 파괴 문제, 소유권자 문제, 북한의 토지국유화정책 등 난제가 하나, 둘이 아니지만 북한의 우호국인 중국과 관계있는 일이라는 점에서 그 교회들을 복당(復堂)‘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아주 가냘픈 희망을 가질 수도 있다. 북한에는 지금 빌리 그래함 목사의 아들인 프랭클린 그래함(사마티탄 퍼스 대표)에 의해 평양외국인교회(국제교회) 설립이 거론되고 있다고 하는데, 화교교회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무슨 일을 할 때, 현재 가능한 일부터 열심히 하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하나님은 작은 일에 충성하는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시며, 오늘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내일을 열어 주시는 법이다. 중국을 통한 통일선교 분야에서 지금 가능한 일은 어떤 것일까?
첫째, 북중접경 지역에 있는 조선족교회들을 통한 선교이다. 그들이 이 탈북민들을 도우면서 복음을 전하는 일이 확대되도록 하는 것이다. 또 조선족 성도들이 친지방문이나 장사의 명목으로 북한에 들어가서 제한된 범위에서 전도활동을 하는 일이 더 활발해지도록 힘써야 한다.
둘째, 조선족 목사들이 이 일에 앞장서도록 하는 것이다. 조선족 목사들은 동포로서 분단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공유할 수 있다. “또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롬 9:3)는 고백도 공유할 수 있다. 조선족 목사들 가운데 많은 숫자는 동북지역에 분포되어 조선족교회들을 담임하여 사역하고 있지만 그 가운데는 중국교회의 중심부에 진입하여 있는 분들도 적지 않게 있다. 또 한국에 들어와 있는 조선족 목사들의 숫자도 적지 않은데 이들은 연합회를 조직하여 일하고 있다. 이들은 한국교회가 벌이고 있는 통일선교운동의 일익을 훌륭하게 담당할 수 있고, 좋은 협력자와 동반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중국인 유학생들에게 통일선교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는 것이다. 현재 한국에는 6만여 명의 중국인유학생들이 여러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설립된 교회들이 여럿 있고, 같은 목적을 가진 조직들도 있다. 중국 유학생들은 한국에서 분단문제를 보고, 듣고 있어서 통일선교에 대한 이해가 빠르고, 또 이 일에 대해 강한 동기를 부여 받을 수 있다. 그들에게는 분단에 대한 중국의 책임과 통일문제에서 중국이 취하고 있는 태도에 대한 판단도 기대할 수 있다.
넷째, 한국에 있는 중국인들을 위한 신학교육기관을 활용하는 것이다. 한국에는 중국인들을 위한 신학원이 있고, 재중동포 목회자들을 위한 목회 최고지도자과정(GTL)을 운영하고 있는 신학대학도 있다. 여기의 커리큘럼에 통일선교를 위한 과목을 넣으면 좋을 것이다. 필자는 중국인을 위한 신학원의 책임자로부터 ‘북한교회사를 강의해 줄 수 있느냐?’는 제의를 받고 반가워한 일이 있었다.
중국교회를 나무에 비교한다면, 공인교회를 통한 통일선교는 ‘줄기선교’, 지금까지 말한 여러 선교는 ‘가지선교’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성경에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창 49:22)라는 말씀이 있다. ‘중국교회’의 가지들이 북·중접경을 넘어 북한을 복음으로 뒤덮는 꿈은 백일몽이 아닐 것이다.
확대되어야 할 현재 진행형의 일 중국교회와 한국교회의 관계는 1950년대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가 되고 난 다음 해에 발생한 6․25 전쟁을 중국에서는 ‘항미원조(抗美援朝)전쟁’이라고 부르는데, 이 전쟁은 중국의 종교기본정책인 삼자정책을 촉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삼자정책은 1949년 ‘신중국’의 건설 직후에 발아되어 6․25 전쟁을 통해서 골격을 갖추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은 미국과 싸우기 위해 출병했다고 일관되게 말하고 있는데, 미국과 관계가 깊은, 국내의 교회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신경을 써야 했고, 자연히 삼자를 강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삼자의 첫 이름은 ‘항미원조삼자혁신운동위원회’였다.
1970년대 말에는, 잊고 있는 분들이 많은데, 중요한 일이 일어났다. 중국이 개방정책을 취하면서 중국 성도들의 편지가 국내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그 일은 한국교회에 큰 자극과 도전을 준 사실 말이다. 먼저,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가 되고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어 3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특히 1960년대 중반 이후 문화대혁명 시기의 엄혹(严酷)한 시련 때문에 중국의 교회는 거의 소멸된 줄로 여겼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아, 북한의 교회도 살아 있겠구나!’ 하는 소망을 갖게 되었다.
또 그 편지 내용의 순수함은 신앙이 무엇인지에 대해 새로운 깨달음을 주었다. 이 일은 한국교회의 ‘공산권선교’의 활력소가 되었다. 특히 북한선교에 그러하였다. 그 때는 김창인 목사가 설립한 기독교북한선교회가 북한선교활동의 주력이었는데 기독교북한선교회는 이 일을 통해 많은 힘을 얻었다. 당시에는 북방선교방송이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었는데 그 종사자들은, 중국 성도들의 편지가 오기 전까지는, ‘이 방송을 북방지역에서 듣기나 하나?’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가. 중국 성도들의 편지를 받으면서 ‘아, 듣는구나! 열심히 듣는구나! 중국에서 잘 들으니까 가까운 북한에서는 더 잘 들리고 많이 듣겠구나!’하면서 분발하게 되었다. 이렇게 중국 성도들이 북한선교의 자극제 역할을 하였는데, 그런 일이 이어졌으면 좋겠다.
중요한 일은 또 있다. 1990년대 중반기 이후, 북한에서 식량난이 심해지면서 많은 북한동포들이 살길을 찾아 강을 건너 중국으로 갔다. 거기에서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많이 생겼고, 그 가운데 고향의 일가친지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역도강(逆渡江)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심지어는 ‘의인 십 명이 있으면 소돔을 멸망하지 않으시겠다고 했는데(창 18:31) 내가 하나라도 보태야 하지 않겠느냐?’하면서 평양으로 들어간 동포도 있다고 한다. 이들을 중심으로 북한지역에서 지하교회가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필자는 북한교회사의 시기를 구분할 때 1998년 이후를 ‘지하교회 활성화기’로 분류한다. 중국이 북한 지하교회의 묘판(苗板)역할을 하면서 새 역사가 열리게 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을 통한 북한선교는 새로운 일이 아니다.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으며, 확대되어야 할 일이다.
나가는 말 중국교회의 힘은 나날이 강성해지고 있다. 앞에서 소개한 퍼듀대 페강 양 교수는 2030년에는 중국의 기독교인이 2억4000만 명에 달해 전 세계에서 기독교 인구가 가장 많은 국가가 될 것이라고 했다. 한국교회는 반대로 교인 감소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어서 그때쯤 되면 가톨릭보다 뒤질 것이라고 예측하는 분도 있는데 말이다.
중국의 교세가 왕성해짐에 따라 ‘중국선교’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선교중국’으로 바뀌었다. 중국 가정교회와 해외중국교회에 의해 「오늘의 선교〔今日宣敎: MISSION CHINA TODAY〕라는 계간지가 작년 10월에 창간되었는데 창간호의 주제가 “선교하는 중국”이었다. 이 잡지의 이사진에는 조선족 목사도 한 분 들어 있다. ‘중국선교’가 ‘선교중국’으로 바뀜에 따라 한국교회의 역할도 ‘어떻게 하면 선교중국의 좋은 동반자가 될 수 있을까?’ 하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 중국교회 역시 북한선교의 좋은 동역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지금 중국교회가 벌이고 있는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가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가기 운동(Back to the Jerusalem Movement, 转回耶路撒冷运动)이다. 성령은 예루살렘에서 강하게 역사해서 로마-유럽-미주-한국을 거쳐 지금은 중국이 그 무대가 되어 있고, 앞으로 이슬람권을 거쳐 발상지인 예루살렘으로 향할 것인데, 중국교회가 앞에 서서 예루살렘으로 가자는 운동이다.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슬람권인 실크로드를 통해야 하기 때문에 이 운동을 ‘BTJ Silk Road Challenge Movement’‘라고도 한다. 이를 위해 미국, 홍콩, 페낭, 예루살렘에서 회의를 계속해서 열었는데 필자도 한두 번 참석했었다. 중국교회의 지도자들이 평양이 ‘제2의 예루살렘’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평양을 복음으로 회복하는 일에도 힘썼으면 좋겠다. ‘백 투 더 평양 무브먼트‘가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지금 중국선교의 ‘핵심기지’로 부상한 제주도에서는 선교중국을 위한 회의나 대회가 종종 열리고 있다. 대표적인 것은 9월 하순에 열리는 ‘선교중국 2030’이다. 이런 모임에서 이 문제가 진지하게, 그리고 심층적으로 논의 되었으면 좋겠다. ‘중국교회가 북한선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아니 하도록 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모든 큰 일은 ‘인식’에서부터 시작한다. 졸고가 그런 인식을 갖도록 하는 일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
♧ 현덕손|북방선교 전문가, Ph.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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