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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0.20  통권 66호  필자 : 왕쓰웨  |  조회 : 2873   프린트   이메일 
[중국사역 체험기]
주님이 나를 부르신 이유

장(姜)장로의 눈물과 소망
J지역 삼자교회에서 지도자 훈련을 하는 동안 가장 인상에 남는 사람이 몇 명 있었다. 그중 00삼자교회 책임자 장(姜) 장로를 잊을 수 없다. 장 장로는 내가 지도자 훈련을 하는 동안, 급한 용무로 식사를 같이 할 수 없거나 외출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항상 같은 식탁에서 하루 세끼 식사를 하였다. 처음에 서먹서먹했던 관계가 대화하는 횟수와 시간이 늘어나자 점차 친숙한 관계로 변해 나갔다. 장 장로는 나이로 나의 큰 숙부뻘 되었으나, 내가 지도자 훈련의 강사라는 이유로 나에게 상당한 예의를 갖추었으며 말과 행동도 조심하였다.

어느 날 점심식사가 끝나고 차를 마시면서 나는 장 장로께 어떻게 이 교회를 목양하게 되었는지를 물어 보았다. 그는 한 모금의 차를 마신 후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장 장로는 원래 J지역이 아닌 남부 K지역 사람으로 1949년 이전, 경제적인 이유로 J지역으로 이주하였다. 젊은 시절 K 지역으로 이주해 와서도 교회를 찾아 신앙생활을 계속하였고, 그 후 중국의 공산화를 맞이한 1949년 이후에도 신앙생활을 계속하였다. 1950년대의 정치, 사회의 소용돌이 속에서 기독교 신앙과 현실생활 사이에서 갈등을 체험하기 시작하였으나, 그가 목사나 교역자가 아닌 관계로 큰 신앙적인 핍박은 받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기도하고 말씀 보는 생활은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문화대혁명 시절을 회고하면서 그는 하나님께서 중국에게 문화대혁명이라는 고난을 주신 것은 중국 사람이 패역(悖逆)한 이유도 있지만 고난을 통해 중국인들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될 줄로 확신하였으며, 매일 밤 이불을 덮고 무릎을 꿇어 하나님께 회개와 용서 그리고 부흥의 기도를 드렸다고 하였다.


다시 문을 연 예배당에서의 첫 예배

1980년대에 들어서자 J지역도 종교정책의 전환과 회복으로 옛날 예배당에 대한 복구가 시작되었다. 장 장로는 예배당이 복구되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다는 것을 알았고, 밤중에도 그 벅찬 감격을 참을 수 없어 집을 나와 공사 중인 예배당까지 가서 감사의 눈물을 흘리고 기도하였다고 한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장 장로가 비록 칠십이 넘은 나이지만 마음이 참 여리고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장 장로는 예배당이 복구되면서 다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는 기대를 안고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려다. 그러나 그의 기대와 희망은 첫 예배를 드리는 날에 무너져다. 교회에서 첫 설교를 담당한 설교자는 신앙이 없는 자로서 단지 준비된 설교 원고를 읽을 뿐이었다. 그 내용도 공산당의 영도와 통치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것이었다. 또 현실 생활에 대해서도 신도들끼리 서로 사랑할 것이며, 국가와 사회에 협조하고 공헌해야 할 것이라고 하였다. 예배 광고 시간에 정부사람이 나와 정부의 정책을 선전하면서 종교수칙을 지킬 것을 언명하였다. 정부 관리의 말이 끝나자 그 교회 지도자는 예배를 드리는 신도에게 정부 관리에게 감사할 것을 종용하기까지 하였다. 장 장로는 그 때 교회의 지도자들을 보니, 그들은 신앙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들 중에는 과거 예수그리스도를 부정하고, 배반하고, 형제를 팔았던 자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다시 문을 연 예배당에서의 첫 예배 후 장 장로는 더 이상 교회에 나가지 않겠다고 다짐하였다.


삼자교회로의 합류

그러던 어느 날 같은 지역의 몇 명의 기독교인들이 찾아와 장 장로와 교제를 나누게 되었다. 그 지역의 삼자교회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를 찾아온 기독교인들은, 정부에 의해 통제되고 관리되며, 또 비 신앙인들이요 과거에 예수를 배반하고 형제를 판 사람들이 지도자로 있는 그런 교회는 나가고 싶지 않으니 따로 장 장로를 중심으로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며 신앙생활을 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토로하였다. 장 장로는 이런 뜻밖의 제안에 대해 기도하겠다고만 하고 그날의 이야기를 마쳤다. 그 후 장 장로는 여러 사람들의 권유와 독자적인 모임을 갖는 거도 좋겠다는 생각에 모임을 시작하였으며, 그는 자연스럽게 모일 때마다 말씀을 전하였고 실제적인 목양을 하게 되었다.

모인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숫자가 늘어나기 시작하여 자신의 집이 비좁을 정도가 되었다. 모이는 신도가 많아지자 원래 일주일에 한 번 드리던 예배를 두 번에서 네 번으로, 결국은 매일 그의 집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지역 삼자교회의 책임자와 종교사무국 직원이 장 장로를 찾아와 그의 모임이 불법이라고 선언하고 정지할 것을 명령하였다. 장 장로는 당황하였고, 모임을 중단하려고 하였지만 신도들은 그럴 수 없다고 하였다. 삼자교회와 종교 사무국 측에서도 장 장로의 모임을 금지시키는 것은 신도의 감정을 격동케 하여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 수 있다고 해서 그에게 모임의 참석자들을 이끌고 다시 삼자교회에 들어올 것을 제안하였다.

장 장로는 또다시 고민에 빠졌다. 그는 신도들과 이 일을 놓고 토의를 벌이면서 앞길을 인도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였다. 그렇게 기도하던 어느 날, 장 장로는 삼자교회로 들어가 신앙이 없는 자들과 주를 배반하고 형제를 팔았던 자들을 교회에 축출시키는 거도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교회로 하여금 참다운 교회 되게 하는 것을 주께서 기뻐하실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 후에도 그의 마음에 이런 생각이 계속 지워지지 않았으며, 몇 명의 핵심적인 동역자들에게 이야기를 하니 자신들도 최근에 기도하면서 그런 감동을 받았다고 하였다. 결국 장 장로는 그의 모임에 참석한 신도들을 이끌고 지역 삼자교회에 합류하게 되었다.


삼자교회 내부 척결작전

삼자교회의 합류한 장 장로는 당시 교회를 이끌고 있는 지도자들이 종교사무국 사람과 결탁되어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일단 어떤 일도 간여하지 않고 예배만 참석하였다. 교회 지도자와 종교사무국 사람은 장 장로가 교회로 들어 온지 1년이 넘었지만 교회 내에서 어떤 활동도 하지 않고 또 기존의 교회의 지도자를 공격하거나 비판하는 행동과 자기의 세력을 확장하는 일도 하지 않자 장 장로에 대한 경계심을 풀어놓기 시작하였다. 그런 장 장로에게 어느 주일 예배에 설교할 기회를 주었다. 장 장로는 성령 충만한 가운데 말씀을 전하였고 신도들이 설교말씀에 크게 감동을 받게 되었다.

그 후 교회의 신도들은 교회와 종교 사무국에게 장 장로가 교회에서 더 많이 설교할 수 있도록 강력하게 건의 하였고 교회 측과 종교 사무국은 장 장로가 단순하게 설교만하는 것이기에 신도들의 권유를 받아들였다. 장 장로의 설교가 늘어나자 교회신도들은 기존의 교회 지도자보다 장 장로의 영적권위를 더 인정하기 시작하였다. 신도들의 추대로 말미암아 장 장로는 삼자교회로 합류한 몇 년 후 교회의 영적 지도자가 되었다. 그러면서 장 장로는 이런 기회를 십분 발휘하여 교회 내에서의 활동과 위치를 본격적으로 확대해 나갔다. 그러면서 그는 교회내의 신앙이 없는 지도자와 예수를 배반하고 형제를 판 사람들을 하나하나씩 교회에서 축출하면서 지속적으로 신도의 존경과 신망을 얻었다. 이야기를 듣는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면서 나로 하여금 생각에 잠기게 한말 한마디가 있었다. “주님은 저에게 주를 배반하고 형제를 파는 자들을 척결하라고 부르셨습니다.” 이 얼마나 장엄하고도 무서운 말인가?

나는 조용히 때로는 카랑카랑하게 말을 하는 장 장로가 참으로 지혜 있게 그가 사명으로 생각하는 교회의 척결과 개혁 작업을 해 나갔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면서 교회개혁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장 장로는 그 후 장로로 추대되어 J지역 삼자교회의 지도자가 되었으며, 현재 열 명이 채 안 되는 무보수 사역자 (義工)와 두 명의 전도사와 함께 J지역에 있는 일만 명이 넘는 신도를 목양하고 있다. 장 장로에게 앞으로의 계획과 희망에 대해 물어 보았다. 그는 “무엇보다도 많은 일꾼들을 키워내야 합니다. 현재 일만 명의 신도와 앞으로도 늘어날 신도를 생각할 때 최소한 100명의 말씀의 능한 일꾼이 있어야 합니다.” 라고 말했다. 그의 초롱초롱한 눈에는 힘이 있었다. 그리고 나서 한참 내 얼굴을 보더니 왕 선생님 “일꾼을 훈련시키는 일을 꼭 도와 주셔야 합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저 “ 제가 이 일에 조금이라도 참여할 수 있게 되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라고만 말하였다.


리 전도사의 참고도서       

장 장로와 함께 동역하는 사람 가운데 신학공부를 한 교역자가 두 명 있었다. 한 사람은 삼자신학교 4년 과정을 졸업한 리(李)형제이며 “또 한 사람은 양(梁)자매인데 그녀는 삼자신학교 2년 과정을 수료하였다. 그들과 식사 때 함께 이야기를 한 적은 있지만 긴 대화는 아니었고, 또 그들은 주로 장 장로나 우리가 하는 이야기를 듣는 입장이라 깊이 있는 교제를 나누지는 못했다. 리 형제와 양 자매는 교회 2층 우측 햇빛이 잘 들어오는 교역자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다. 나는 강의가 없는 시간에 그들의 사무실도 구경할 겸 해서 그들을 찾았다. 마침 리 형제가 사무실에서 설교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뜻 밖에 찾아온 나를 보고 조금은 놀라면서 매우 반가워하였다.

나에게 앉아라고 의자를 권하면서 차를 따라 주었다. 목회가 힘들지 않느냐 묻자 그는 웃으면서 ”주님께 감사해야지요(感謝主)“ 라고만 하였다. 나는 그가 어떻게 설교를 준비하고 주로 무슨 참고서를 보는지 물어보았다. 그는 일주일에 최소 10번 이상 설교를 하며 어떤 경우에는 하루에 5번씩 설교를 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제가 부족하므로 기도해서 하나님께 지혜와 말씀을 달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라고 말하였다. 그가 설교할 때 참고할 수 있는 주석도 변변한 것이 없음을 그의 책상 책 꽂이에 있는 책들을 보면서 알았다.

그가 가지고 있는 책이란 관주성경과 <<경문휘편>>(經文彙編)이라고 하는 성경용어 색인. 자위밍목사가 쓴 총 6권의 <<성경요의>>(聖經要義) 그리고 중국기독교협회 신학교육위원회에서 펴낸 중국기독교 신학교육 총서 몇 권, 남경진링식학원의 총신교제인 <<교재한자>>(敎材) 몇 권 정도였다. 나는 그에게 가장 필요한 책이 무엇이냐고 물었는데 그는 웃으면서 ”천종따오 목사의 식약주석과 바클레이 신약주석입니다. 구약주석도 있으면 좋은데 아는게 없습니다.“ 라고 말하였다. 나는 다음에 올 때 천종따오 목사의 주석과 바클레이 주석을 꼭 갖다 주겠다는 말을 하고 싶었으나 참았다. 사역을 하면서 현지인에게 무엇을 약속하는 것은 우리사역의 금기 사항이다. 환경과 여건이 좋지 않지만 리 형제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목회에 대한 소명을 조금도 비굴함과 열등감 없이 잘 감당하고 있었다. 내가 리 형제라면 일주일에 최소 10번이상의 설교와 수시로 있는 신방사역, 그리고 신도양육사역을 어찌 감당할 수 있을까?


“제가 그 안에서 자면 다른 사람이 밖에서 자야 합니다.”

하루에 모든 교육이 끝나니 밤 10시였다. 지도자 훈련을 받고 있는 이들이 휴식을 취할 시간이 되었다. 자매는 예배당 2층에서 형제는 1층에서 긴 의자 두 개를 붙여 그 위에서 잠을 잔다. 나는 훈련생들과 조금이라도 교제하기 위해 2층에 있는 내 숙소에서 내려와 형제들이 있는 예배당 1층에 들어왔다. 들어가 보니 어떤 사람은 밖으로 세면하러 나갔고 어떤 이들은 성경문제를 열심히 토의하고 있었으며, 또 어떤 이들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걸으면서 만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기도 하였고 간간히 서서 그들 이야기를 듣기도 하였다. 

조금 있다 막 출구로 나가려 하는데 어떤 이가 출구 쪽에 긴 의자 두 개를 붙여 잠을 자려고 하는 것이다. 그는 나를 보더니 “왕 선생님, 편히 주무세요” 라고 하였고, 나도 같은 인사를 하였다.  이에게 왜 예배당 중간에 있는 난로 쪽에서 자지 않고 추운 여기서 자려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숙쓰러운 듯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내가 또 “저 안쪽으로 가서 주무세요” 라고하자 그는 “제가 그 안에서 자면 다른 사람이 밖에서 자야 합니다. 저는 여기가 좋습니다.” 라고 하였다. 남들이 들을까봐 조용하게 한 그의 말에 나는 이 삼자교회에서 또 다른 새로운 감동을 받게 되었다. 더 이상의 말이 필요치 않다고 느끼고 나는 그에게 “이불 잘 덮으세요 감기조심하고요” 라고 말하며 출구로 나왔다. 2층에 있는 숙소로 돌아가면서 나의 마음에 사랑이라는 따뜻함이 감돌기 시작하였다. “제가 그 안에서 자면 다른 사람이 밖에서 자야합니다.” 이 이상의 사랑이 어디 있겠는가? 그날 밤 숙소에서 이불을 덮지 않고 잤는데도 계속 덥다고 느낀 것은 숙소 안에 있는 히터 때문이 아니라 내 마음을 감싼 그 사랑 때문이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 중국사역 체험기는 이번 호로 마칩니다.



왕쓰웨 목사 | 본지 편집위원 . 중국복음선교회 중국선교사훈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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