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79년 복음방송을 통해 주님을 믿게 되었다. 그 이후로 가정교회에 들어와 지금까지 교회와 함께 성정해왔다. 당시 집회를 시작한 가정교회가 매우 소수였던 것을 생각할 때, 하나님은 처음부터 나를 찾으셨음을 알 수 있다.
교회 지도자들은 문화대혁명 시기의 불같은 연단을 겪은 분들로, 나는 그들로부터 풍성한 영적 자원들을 얻을 수 있었다. 이것은 내가 늘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일이다.
“당신에게 영생의 길이 있으니, 내가 누구를 따르리요?” 예수님을 만난 이후로 나는 조금도 흔들림 없이 그분께 나의 몸과 마음을 맡겼다. 내 평생 주님만을 섬기기를 뜨겁게 소망한다. 그분 이외에 그 어느 것도 나의 마음을 빼앗지 못하리라.
모든 것을 인도하시는 하나님
여러 가지 사정과 압력으로 인해 내가 속한 가정교회는 안정된 조직과 장소를 얻기가 힘들었다. 내가 ㅁ치 굶주린 듯 영적 성장을 갈구하고 있을 때, 교회는 갑자기 해산을 선포하였다.
난 마치 고아가 된 듯 느껴져 얼마나 외롭고 서글펐는지 모른다. 바로 이 때 하나님께서 나에게 또 다른 무리의 ‘영적 고아’들을 돌보도록 강력히 촉구하셨다. 하지만 이것은 정말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나 역시 양육받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는데 다른 양들을 돌보라니... 아마도 이것은 다른 가정교회 사역자들도 동일하게 느끼는 감정이리라 생각된다. 결국 우리는 아무런 준비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길을 떠나야 했다. 하나님은 나에게 견고하도록 격려하셨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하리라!” 그러나 나는 늘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워하며 갈등하였다. 내가 마치 ‘어린 사역자’처럼 생각되었고, 감당하기 힘든 무거운 짐에 눌려 누군가가 앞에 서서 인도하고 부축해 주기를 마음속으로 얼마나 갈망했는지 모른다.
한 번은 내가 1주일간의 부흥회를 인도하도록 초청되었다. 천 명이 넘게 모이는 집회였기 때문에 승낙한 후에 두려워지기 시작하였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정말 물 한 방울 나지 않는 샘물 앞에서 목말라 간절히 부르짖듯 온 종일 하나님께 간구하였다. “저에게 생명수를 주신 참 하나님이시여! 저의 목마름을 적셔주소서!” 놀랍게도 다음날 하나님께서는 나를 위해 특별한 은혜를 베풀어주셨다. 한 유명한 장로님을 보내셔서 나를 위해 1주일 동안 성경공부를 하게 하셨다. 그녀의 풍부한 영적 경험과 말씀에 대한 지식은 나를 크게 감동시켰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강하게 나를 위로하셨다.
“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시리니 우편으로 치우치든지 좌편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정로이니 너희는 이리로 행하라 할 것이며” (사30:20~21) 그 때 나는 하나님 앞에서 중국식으로 스승에 대한 예를 올리며 “나의 스승이시여, 제자의 절을 받으십시오”라고 말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때부터 나는 어린아이의 상태에서 탈피하여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었다. 연이은 일주일간의 부흥회를 통해 하나님은 은혜를 부어주셨다. 내가 경험한 하나님의 생명수 같은 말씀이 마치 폭포수처럼 부흥회 가운데 흘러넘쳤고, 성령의 불길이 온 성도들을 사로잡았다.
나의 자비하신 스승이요 좋은 친구이신 하나님께서 모든 일 가운데 나를 가르치신다. 하나님께서 섬김에 대한 나의 생각을 변화시킨 사실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얼마 동안 아주 멀리 떨어진 농촌 지역에서 주님을 심길 기회가 있었다. 당시 그 지역에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매우 적었고, 게다가 이단의 세력이 강해 그리스도인들은 자주 공격을 받았다. 생활의 어려움까지 더하여, 주님을 위해 큰 고난을 받던 시기였다.
한 번은 오랜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우상숭배를 하는 사람들이 북을 치고 기우제를 지내며 자신들의 신에게 기도하였다. 믿는 우리들 역시 기도했는데, 만약 비가 내렸을 때 도대체 어떤 신이 비를 내린 것인지 알 수 없게 될까봐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이튿날 비가 어구같이 쏟아졌을 때, 비를 내려주신 분은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진정한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마을 사람들 모두 알게 되었다. 부분적으로 내리는 큰 비가 그리스도인의 밭에만 내렸기 때문이다. 동쪽과 서쪽의 땅 한 부분에 내리는 큰ㅌ 비는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과 딸들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었다. 이 일은 다시 한 번 나의 마음을 울렸다. 나는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였다.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도록 지극한 은혜를 주셨기 때문이다. 어떠한 말로도 그분께 대한 감사를 다할 수 없었다.
여러 해 동안 가정교회를 섬기면서 여러 방면에서의 한계를 체험하기도 하였다. 성도가 계속하여 증가하고 있을 때 더 이상 가정에서 집회를 갖기가 어려웠고, 장소 문제는 교회 성장의 장애가 되었다. 우리는 어떻게 돌파구를 찾을 것인가 고민하다가, 먼저 가정과 집회 장소를 분리하였고, 적당한 집회 장소를 찾게 되었다. 형제자매들은 적극적으로 자기 집이나 다름없는 새 장소를 꾸미면서 강렬한 소속감을 갖게 되었고, 이들의 강대한 응집력은 교회의 확장으로 펼쳐졌다. 그 후 우리는 교회를 위해 확고한 행정관리기구를 세웠고, 형제자매들은 더욱 자유롭게 교회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서 봉사하도록 하여 교회로 하여금 많은 방면의 사업을 펼칠 수 있도록 하였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을 더 알아가며 그분의 말씀을 실천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교회를 만들기를 끊임없이 갈망하였다. 나의 가장 큰 소망은 장차 “착하고 충성스러운 종아!”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
복의 길
예수를 믿고 영생을 얻음은 비할 길 없이 큰 은혜이다. 하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더욱더 큰 은혜 중의 은혜이다. 예수님의 손에 들려진 다섯 개의 떡과 물고기 두 마리처럼 내가 하나님 안에 있을 수 있다면 많은 이들의 축복이 되는 것이니 어찌 큰 복이 아니겠는가? 주님을 향한 나의 섬김은 대학생 단체를 인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몇몇 성경공부 소그룹과 몇 백 명이 세례를 받고 주께 나오기까지 성장하였다. 나는 이후 중국 전역의 훈련사역에 참여할 계획이다. 지금까지 십여 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나와 같이 연약한 그릇을 사용해오셨다. 게달의 장막 같은 나를 솔로몬의 찬란한 위장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하나님을 찬양한다.
처음 사역을 시작할 때 나는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영의 양식인 기독교 문서들을 통해 도움을 받으며, 또 영적인 굶주림으로 갈구하는 학생들을 도우면서 함께 배우고 성장하였다. 이러는 가운데 우리는 마침내 계시록을 제외한 신약성서 연구를 마쳤고 구약의 일부를 완성하였다. 처음 모임의 구성원들 대다수가 새로운 구성원들의 인도자가 되었다. 이제까지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사람들의 수를 더하셨고, 이를 보는 것은 큰 은혜였다. 변화된 한 생명, 한 생명들이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을 드릴 때, 내 마음의 충만함과 기쁨은 비할 길이 없었다.
이러한 모임이 점점 확장될 무렵, 전임 사역자로서의 필요성을 날이 갈수록 강하게 느꼈으나 경제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가 큰 압박감이었다. 바로 그 때 읽은 ⌜조지뮬러의 일기⌟는 나를 크게 격려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어제, 오늘, 그리고 영원까지도 변함없으신 예수님께 나의 삶을 완전히 의지하게 되었다. 신실하신 하나님! 이렇게 여러 해 동안 나에게 경제적으로 고정적인 지원을 해주게다고 약속한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는 아무런 부족함이 없이 생활하고 사역할 수 있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많든지 적든지, 하나님은 다른 사람들을 감동하셔서 그 모든 것을 공급하셨다. 사람들의 손에 쥐어진 한 푼 한 푼이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것을 깊게 깨달았을 때, 그 기쁨이 얼마나 컸는지 모른다.
광활한 대지 위에 복음의 불꽃을 태우리
비록 선교의 자유는 없을지라도, 중국의 이 광활한 대지 위에 복음의 진리 깃발이 높이 휘날리는 것을 막을 그 어떤 권세도 없다. 작은 불꽃 하나가 광활한 들판을 태울 수 있듯이, 우리가 주님께 인도한 한 사람이 복음의 불꽃이 되어 중국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작은 방에서 침대까지 가득 앉아 있는 성도들, 혹은 산지에 모여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형제자매들을 볼 때마다 나의 마음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크게 위로받고 격려 받지 않을 수 없다.
출처 | 綱上守望中華 2000년 4월호, “恩上加恩-新一代工人見證”
번역 | 이근숙. 자원봉사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