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3월5일 열리는 제10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를 앞두고 중국의 각 성(省)․ 시(市)․ 자치구(自治區)의 성장, 시장은 물론 각 지방 인민대표대회(인대) 주임이 대거 교체되고 있다. 또 중국 인민정치협상회의의 각 지방 정협 주석, 부주석 등의 교체가 진행되고 있다. 이와 함께 경제특구로 가장 먼저 경제개혁의 실험대에 올라 괄목할 성과를 내며 중국 경제의 성장엔진으로 부상했던 선전(深圳)시가 '중국식 삼권분립' 이라는 초유의 정치개혁 실험을 예고하고 있다.
특히 이번 전인대에서 상무위원장의 교체는 물론 국가주석, 부주석, 국무원 총리, 부총리 등에 이르기까지 대규모의 인사를 통해 제4세대 지도자군의 역할 지정이 최종 마무리 될 것으로 보인다. 또 이번 전인대는 민법전 등을 새롭게 만들어 법치국가로 나가는 길을 터놓을 것으로 예상돼 국제사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급진적인 변화를 거부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 공산당과 중국 국민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정치불안이다. 지방의 보호주의와 부패가 날로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대다수 중국인은 중앙에서 일관성있게 정책을 추진하는 강력한 지도부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이「사회주의정신문명(물질만능주의를 견제하기 위한 개념」의 건설을 역설하면서, ‘선진사회 건설을 위한 생산력의 발전 요구를 대변하고’, ‘선진사회 건설을 위한 생산력의 발전 요구를 대변하고’, ‘새로운 선진문화를 대변해야 한다’는 “3개 대표론(三個代表論)”도 앞으로 펼쳐진 중국의 법제개혁과 공산당의 미래를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여기서 광범위한 인민의 근본적 이익 대표라는 개념은 마오쩌뚱(毛澤東)의 교시, 선진사회 건설을 위한 생산력의 발전 요구라는 개념은 덩샤오핑(鄧小平)의 교시에서 왔다는 것은 결코 중국 정치가 단절 또는 분절이 아니라 연속선상에 있다는 것으로 알려주는 바로미터다. 필자는 이번 글에서 각 인대 및 정협의 인선안, 선전시 개혁의 내용과 의미를 되짚어보면서 법치국가로의 중국을 예상해보고자 한다.
전인대 분위기 말해주는 지방 인사 분위기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출신’, ‘젊은 고학력 엘리트’, ‘당 서기의 인대 주임 겸직’, ‘상영기업인의 지방정치무대등장’… 이는 1월 중 각 성 ․ 시․ 자치구 인대에서 선출된 시장, 성장 및 인대 주임들의 배경과 성급 인민정치협상회의의 인사 등을 집약해주는 키워드들이다. 중국 공산당이 중앙 및 지방 정부에 앞서 행정을 좌우지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이른바 초유의 정치개혁실험을 선전시에서 시행할 예정인 가운데 최근 잇따른 지방인사에서 당 서기가 지방자치단체 의회격인 인대주임을 겸직하는 것은 기현상이다. 과거 지방 당위원이 퇴직 전 인대 대표로 이동한 적은 있었다. 그러나 현재 31개성 ․ 시․ 자치구중 무려 58%인 18개 지역에서 당서기가 인대 주임직까지 거머쥐게 된 것은 이례적이다. 이는 요즘 인대 대표들이 중앙의 정책을 반대하거나 당이 지명한 시장 및 인대 주임들을 낙선시키는 현상이 빈번한 데 따른 견제 및 압박수단으로 풀이된다.
또 요즘 공청단 출신과 고학력은 출세 보증수표가 되고 있다. 공청단 출신 고학력 엘리트이ㅡ 발탁이 매우 신속하게 이뤄지며 후진타오(胡錦濤) 총서기의 든든한 기반이 되고 있다. 일정기간 장쩌민 국가주석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판단, 외곽 인사만큼은 자신의 권력배경이라 할 수 있는 공청단 또는 칭화방(淸華邦: 칭화대 출신), 중앙당교 출신 및 고학력의 엘리트들을 곳곳에 배치해 몇 년 후를 내다보려는 인사정책으로 풀이된다.
바이커밍(白克明) 허베이성 서기, 리커창(李克强) 허난성 서기, 리웬차오(李源潮) 장쑤성 서기 등 공청단 출신의 약진은 두드러진다. 그 중 리커창과 리웬차오는 각각 경제학, 법학 박사학위 소지자다. 황전둥(黃鎭東) 충칭시 서기와 장쉐중(張學忠) 쓰촨성 서기도 각각 국무원 교통부 부장, 인사부 부장 등을 역임한 실력자 들로 후 총서기의 지방장악을 위한 원군이 되고 있다. 특히 멍쉐농(孟學農) 베이징 시장과 한정(韓正) 상하이 시장, 황화화(黃華華) 광둥성 성장 등은 모두 공청단 출신이며 각각 석사학위를 소유하는 등 전문성까지 고루 갖춰 향후 후 총서기 체제의 버팀목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베이징과 상하이에까지 후 총서기 계열이 진출한 것은 향후 중국정치의 판도를 예고하는 것이다. 과거 장쩌민 국가주석이 당 정 군을 장악한 뒤 ‘상하이방(上海邦)’을 집중적으로 중앙정치무대에 진출시킨 것과 대비된다.
그 밖에 사영기업인들이 정치무대의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최근 개편된 각 지역 정협 부주석에 사영기업인 2명이 선출된 것이다. 최근 충칭시 정협 부주석으로 선출된 인밍산(尹明善) 충칭리판(力帆)그룹 회장과 저장(浙江)성 정협 부주석에 선출된 쉬관쥐(徐冠巨)촨화(傳化)화학그룹 회장이 그 주인공들이다. 물론 정협의 역할은 중국 정치에 있어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떨어질 수 있지만, 정협 부주석은 정치지도층에 속하는 자리이다. 지역 정협은 해당 지역 각 정치세력의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이들의 요구 사항을 지역 인대에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지난해 12월 말에는 전곡공상(工商)연합회 전국대표대회에서 회장과 부회장 11명이 사영 기업인 중에서 선출되는 큰 변화도 있었다. 이 단체 회장에 사영 기업인이 선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정치발전의 실험대-선전시 개혁 가능한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당과 정부의 역학관계를 새롭게 정의해야 할 필요성은 오랫동안 제기되어왔다. 이념적 지표나 정책의 기준선을 제공하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는 것이다. 당의 역할은 정부의 구체적인 업무에 일일이 개입하는 것을 지양하고 거시적 관점에서 정책사안을 평가하는 것으로 새롭게 자리 매김 해 나갈 것이다.
이미 진행된 개혁을 통해 당(정부)과 기업의 관계는 상당한 변화를 가져온 것은 사실이다. 정부는 시장 가격경영을 통제하고 싶은 유혹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으며 명확하게 규정된 정책 지표와 토대 위에서 시장이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면서 필요한 경우에만 최소한 개입하는 분위기가 점차 확산 되고 있다. 이 와중에 선전시의 삼권분립을 통한 정치개혁 시도는 새로운 전환점인 것이다. 그 동안 정치개혁은 풀뿌리민주주의의 실험이라 할 수 있는 촌민자치(村民自治)에 국한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면에서 선전시 개혁구상은 파격적이다. 선전시는 초법적 권한을 행사하는 당으로부터 정부와 인대의 고유권한을 분리하고, 행정부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여 서방의 3권 분립과 유사한 정치개혁을 오는 2~3월 중에 실시한 계획이다. 중국식 삼권분립이 될 이번 실험에 대해 당 중앙은 매우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선전시의 위여우쥔(于幼軍) 시장은 “정치개혁의 핵심은 정부와 군부 위에 군림하며, 정책․ 인사면에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공산당을 행정부와 인대로부터 분리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선전시에서는 이제 경제발전 전략 주요 정책 방향 결정에서 공산당의 권한이 국한되고, 정부 위에서 정책 결정에 간여하던 행위는 금지된다. 지방 인대도 지방의 발전전략 개발과 정부의 대규모 예산 지출 계획 등을 검토․ 승인 하는 권한을 갖게 되는 등 행정부 견제 기능이 크게 강화된다.
하지만 이번 개혁 실험은 지역과 규모 면에서 국한되어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전국 60여만 촌(村)에서 주민의 직접선거에 의해 촌장(村長)을 선출하고 있지만 이름 더 큰 행정 단위로 확대하지는 않을 계획이다. 또 국내의 민주화 세력이나 해외 화교 등의 ‘야당 설립’요구도 허용하지 않을 방침이다. 아무튼 선전의 정치실험은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건 이후 중단 됐던 정치개혁이 새로운 방향으로 나가게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정치발전의 토대-법치는 어디까지
한때 중국 문제 전문가들로부터 ‘공산당의 고무도장’, ‘거수기’라는 비판을 받았던 전인대는 최근 한 나라의 법을 입안하고 통과시키는 의회로서의 소임에 충실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후진타오를 중심으로 한 제 4세대 지도자군도 좀 더 법에 기반한 체계적인 구조를 통해 절대적 카리스마의 부족을 메꾸어 나가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수준 높은 합의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완벽하고 효율적인 법 체계를 완성시키는 것이 무엇보다도 시급하지만 당장 그렇게 되기까지는 어려움이 적지 않다. 왜냐하면 중국은 전통적으로 행정부와 사법부가 혼합돼 있었다. 역대 중국 황실처럼 공산당도 권력의 기반을 중앙에 두고 그 위에 복잡한 관료주의체제를 쌓아올렸다. 중국인이 오랫동안 고수해온 기존의 통치방식으로부터 심리적으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전인대 상무위원회가 중국 최초로 마련하려는 민법전은 사유재산 보호를 핵심으로 한다는 점과 함께 중국의 법치국가로의 전환을 위한 한편의 드라마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지금까지는 민법의 적용범위가 워낙 광범위한 데다 내용이 복잡해 관련법을 종합․ 정리한 민법전(民法典)을 제정하지 못했다. 총 9편 1209개 조항으로 구성된 민법 초안에는 총칙, 물권법(物權法), 계약법, 인격권법, 혼인법, 권리침해에 관한 책임법 등 민사관계에 관한 법률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20여 년의 개혁 개방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사유재산 보호에 관한 구체적인 명문규정이 없어 투자를 비롯한 각 경제 주체들의 불안감을 증폭시켜 왔다. 공산당은 이미 지난해 11월 당 제16기 전국대표대회(16대) 정치보고를 통해 “합법적인 노동을 통해 얻은 모든 수입과 합법적인 비(非)근로수입을 보호한다”고 밝혀 사유재산권 보호 의지를 천명한 바 있다. 또 전인대 법제(法制) 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민법에 담길 물권에 관한 기본 원칙과 보호규정 등은 일반 공민(公民)과 비(非)공유제 기업 (일반 사기업을 지칭함)에 모두 같이 적용될 것”이라고 밝혀 사유재산보호가 폭넓을 것임을 시사했었다.
초안 제2편의 물권법은 “국가는 개인의 저축을 보호하고 개인의 투자 및 투자 수익을 보호한다”, “국가는 사유재산 상속권 및 기타 합법적 권익을 보호한다”, “사영(私營) 기업의 부동산이나 동산은 법인 조건을 갖추었을 경우 법인 소유에 속한다”는 등의 사유재산 보호 규정을 상세히 담고 있다.
민법 초안 중 사생활 보호법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사생활의 범위를 개인 정보․ 개인활동 및 개인 공간 등으로 정하고, 도청과 훔쳐보기․ 정탐․ 공표 등 타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행위를 일절 금지시켰다. 민사소송 절차도 소송 시한을 2년에서 3년으로 늘리고, 소송 행위자의 연령을 10세에서 7세로 낮추었다.
중국에서 정책결정은 집단합의를 통해 이뤄진다. 입법과정을 예를 들면 법안의 기초단계부터 관련부처가 모두 모여 의견을 개진한다. 여러 차례의 실무회의에서 심도 있는 논의와 수정을 거쳐 완성된 법안에는 이 법의 영향을 받거나 이법의 집행에 관여하는 모든 부처의 다양한 입장이 반영된다. 이법이 최종적으로 공포되면 법안 심의에 관여한 모든 부처가 법의 집행에 균등한 책임을 진다. 법을 직접 집행하고 유지해야 하는 모든 정부 부처가 법의 입안과 심의단계에 깊숙이 참여하기 때문에 서구식 개념과 매우 다를 뿐 아니라 중국 공산당의 결정적인 역할도 배제할 수 없는 시스템이다. 이는 중국의 집단 협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당의 정책과 국가의 법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을 포함해 사법부를 분리시키는 노력은 올해를 기점으로 더욱 활발히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무엇보다는 중요한 것은 중국이 법률제도의 전통이 일천하고 국민의 법의식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라는 것이다. 근대적 법의식이 요구하는 법적 권리와 의무에 대한 종합적인 인식이 부족하다. 이것은 중국에서 법률제도가 정착하는 데 중요한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또 다른 법치국가로의 변신의 어려움은 중국인이 법률대신 전통적으로 발전시켜온 통치수단, 즉 행정제도이다. 특히 인민법원의 권한은 아직 미약하다. 중국 법원은 각종 행정기관으로부터 감시를 받고 있다. 각 인민법원 안에는 공산당 위원회가 있다. 그런가 하면 공산당 정법윈원회도 있다. 인민법원의 사법 해석권은 지극히 제한돼 있다. 행정법규와 규칙에 대한 사안에는 끼어 들지 못한다. 이런 사안의 해석은 국무원 산하의 행정부서가 담당한다. 행정소송법 행정 심판법 등이 제정돼 있지만 행정부의 활동에 대한 사법부의 심사는 미미하다. 또 수많은 중재기관과 행정기관은 사법부의 역할을 축소시킨다. 대부분의 분쟁, 특히 돈 문제가 결부된 분쟁은 인민법원이 아니라 중국국제경제무역위원회와 국내중재위원회의 이원체제로 이뤄진 증재제도로 넘겨진다.
함태경 | 국민일보 국제부 기자, 중국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