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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은혜 선교문학] 장례식: 한국교회의 큰 별이 지다  
차하경  Email [2014-10-15 10:11:16]   HIT : 1847   

  

 


2014년 10월 14일 화요일 종로 5가에 있는 백주년기념관의 대강당, 오전 9시에 고 방지일 목사님의 영결식이 시작되었다. 영결식이 시작되기도 전에 아래층은 꽉 차서 나는 이층으로 올라갔다. 덕분에 영결식 장면의 전체사진을 찍기에 좋았다.

영결예배의 사회는 장로교 통합 측의 총회장이신 정영태 목사님이 맡으셨다. 설교는 증경 총회장이신 림인식 목사님이 하셨다. 림인식 목사님은 설교의 서두에 방지일 목사님은 우리에게 장수의 희망을 주셨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런데 고 방지일 목사님의 장수는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온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한 고 방지일 목사님은 104세까지 살면서 선교사, 목회자, 행정가, 상담가. 교육가, 저술가, 여행가로 사셨다. 

고 방지일 목사님은 장수목회의 본을 보여 주셨고, 동시에 초벌목회의 본이 되어 주셨는데, 초벌목회란 신학적 용어는 아니지만 바로 예수님의 목회 방식으로서 격식이 없는 목회를 말한다. 왜냐하면 방 목사님의 일생을 통틀어 보면 강단 외의 설교를 더 많이 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도 강단에서만 하신 목회가 아니었던 것처럼 방목사님도 그렇게 하셨다. 예수님은 한 사람 한사람(나다나엘, 수가의 여인, 삭개오, 거지 나사로 등) 만나서 목회하신 분이었는데, 방지일 목사님도 바로 그런 목회를 하신 분이었다.


방 목사님은 림인식 목사님의 4대손까지 이름를 기억하시며 하나 하나 이름을 불러 주셨고 안부를 묻곤 하셔서 림인식 목사님에게 감동을 주셨다고 하셨다. 사람은 자신의 이름을 불러 주고 기억해 주고 보살펴 주는 사람을 의지하고 따르게 되는데 방목사님이 바로 그런 분이셨다.

또한 고 방지일 목사님은 1958년부터 자택으로 목회자들을 초청하여 성경과 실천적인 신학을 가르쳤다. 목사님과 성경공부를 하며 거쳐간 목회자는 이미 수천 명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고 방지일 목사님은 교파와 교단을 초월한 목회를 하셨다. 길선주, 주기철, 한경직 목사님 처럼 교파 교단이 아닌, 한국교회를 위한 초월적인 목회를 하셨다. 그러므로 제도에 묶여서 초월목회를 잃어버린 목회자들은 고 방지일 목사님을 본 받아야 한다.

또한 고 방지일 목사님은 금과옥조 같은 어록을 많이 남기시고, 삶으로 본을 보이신 분이다. 이상과 같이 림인식 목사님의 설교가 끝나고, 충신교회 원로목사님이신 박종순 목사님의 조사가 있었다. 박종순 목사님은 고 방지일 목사님은 목회자의 사표가 되어 주셨으며, 언제나 검소하시고 겸손한 삶, 바른 목회와 정도를 걷는 삶을 사셨다. 그래서 후배 목회자들은 이런 분이 곁에 계시다는 것 만으로도 안심이 된다고 하셨다고 밝혔다.
또한 목사님은 여행 중에도 글을 쓰셨다. 흴체어를 타시고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셨다. 축사를 하셔도 1분을 넘기지 않으셨고 말도 글도 언제나 정확하고 간결하셨다. 고 방지일 목사님은 한국교회의 산 증인 이셨으며, 정도, 정직, 청빈을 보여준 큰 어른 이셨다. 그런 분이 돌아가셨으니 어찌 그 빈자리를 채울지 걱정 이라고 하시면서, "목사님! 그립습니다. 사랑합니다. 뵙고 싶습니다. 천국에서 뵙겠습니다. " 라고 하셨다.

추모사를 맡은 곽선희 목사님은 어떤 학자가 말하길 사람의 행복의 조건은 죽는 날까지 건강한 사람이라고 했는데, 고 방지일 목사님이야 말로 그런 행복한 분이셨다고 추모하셨다. 목사님은 불과 9시간 동안만 병원에 계셨다가 천국으로 가셨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또 사람은 하루 두끼를 먹을 수 있으면 행복한 사람인데, 칼빈이 계속적으로 절제하며 자기 부정, 순례자의 길을 간 것처럼 방 목사님도 철저하게 이 길을 가셨다. 방목사님은 자기 절제를 잘 하셨고 물욕에서 승리 하셨으며, 하늘나라를 지향하며 사는 삶이셨다.

이어서 주선애 교수님의 추모사에서는 얼마전 아프시다는 말씀을 듣고 ,방문하여 조반으로 무엇을 드셨느냐고 여쭈었더니, 요크르트 반병을 드셨다고 하셨다. 몸이 아프시니 식당에 가실 수 없으셨던 목사님. "목사님, 우리 모두는 목사님 앞에 죄인입니다." 라고 주 교수님은 울먹였다.

마지막 축도는 전 기독교감리교 감독회장인 신경하 목사님이 맡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성경 100구절을 외우시며, 오직 말씀과 기도로 한 세기를 경건하게 살아 오시면서 에녹처럼 주님과 동행하셨던 한국교회의 큰 별이 진 것이다.



사진 | 나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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