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는 세계 2위의 선교사 파송국이 될 정도로 국외에 선교사를 열심히 보냈다. 그런데 막상 선교사가 은퇴하고 귀국하는데 아무도 신경을 안 쓰더라. 몸은 망가지고, 여생을 보낼 집은 없고, 일자리조차 없는 선교사를 한국교회가 외면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몹시 아팠다. 주거 문제라도 해결하자는 심정으로 예수마을을 구상했다.” 지난 5월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에 38만3000㎡(약 11만6000평) 규모로 은퇴 선교사를 위한 ‘생명의 빛 예수마을’을 세운 홍정길 남서울은혜교회 원로목사의 이야기다. 예수마을은 은퇴 선교사들이 직면한 열악한 현실을 비춰주는 거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은퇴 선교사들은 대부분 주거·생계난, 건강악화, 사역 비전 부재 등 3중고에 시달린다.
◇지병 악화로 귀국, 후원 끊기고 생계도 막막=김광수(65) 선교사는 필리핀 선교사 시절 펄펄 날았다. 1988년 파송 받아 마닐라 라왁 지역에서 전도하고 봉사하며 교회를 세우는 일에 40대를 바쳤다. 14년 동안 현지에 머물면서 세운 교회만 12곳.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총회 해외선교부 간사 출신인 김 선교사는 20곳이 넘는 후원 교회의 지원을 받으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사역에 전념했다. 하지만 2002년 당뇨 합병증이 심해져 귀국길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지난 9일 서울 아산병원 입원실에서 만난 김 선교사는 오른쪽 다리 무릎 아래와 왼쪽 팔목 아래, 오른손 엄지와 중지가 없었다. 조직 괴사로 절단했다고 한다. 10년 전부터 혈액 투석을 시작한 그는 최근 들어 소변을 한 방울도 누지 못한다. 신장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기 때문이다. 그는 일주일에 3차례 오전마다 혈액 투석을 한다. 지난 12년 동안 서울 병원과 충남 서산의 요양병원을 오가며 그나마 치료를 할 수 있었던 건 아내 송재은(60) 사모 덕분이다. 초등학교 교사 출신인 송 사모는 사표를 내고 남편과 함께 선교지로 떠났다. 하지만 갑작스런 귀국으로 살길이 막막해졌다.
“아파서 귀국한다는 선교보고 편지를 후원교회들에 보내니까 거짓말처럼 후원이 싹 끊기더군요. 우리를 파송한 제1후원교회가 1년 정도 지원해준 게 전부였어요.”
송 사모는 다시 임용고시를 본 뒤 서산의 한 초등학교에 발령을 받았다. 전세를 얻고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해 지금까지 남편을 돌보고 있다. 아들과 딸은 결혼해 해외에 살고 있기 때문에 남편 간호는 전적으로 송 사모 몫이다. 그도 2년 전 디스크 수술을 한 터라 온전한 몸 상태는 아니었다.
“왜 노후 준비를 하지 못했느냐”고 묻자 송 사모는 “선교 현장에선 목숨을 내놓고 일한다. 그리고 그곳에 뼈를 묻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서 “하지만 돌이켜 보면 조금이라도 은퇴 준비를 해놓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답했다.
◇추방 당해 곤궁한 처지로 내몰리기도=김모(58) 선교사는 최근 A국에서 추방 통보를 받고 귀국했다. 그는 태권도를 특기로 30대 후반에 선교사가 됐다. 20년 이상 현지에서 태권도를 가르치며 복음을 전했다. 예수를 영접한 현지인들이 늘어나는 것을 보고 더욱 선교활동에 박차를 가했다. 5~6년 후엔 현지인 사범에게 어렵게 차린 태권도장을 넘겨주려 했다. 그러나 갑작스런 추방으로 계획은 어긋났고 아무런 대책 없이 귀국해야만 했다.
김 선교사는 집을 사거나 전세를 얻기 위해 모아둔 돈이 없었다. 교회 후원금은 모두 태권도 선교에 썼다. 설상가상으로 그를 후원했던 교회가 사정이 어려워졌다며 후원 중단을 통보했다. 다른 선교지로 가고 싶어도 나이 때문에 쉽지 않다.
그는 “선교지에서 20년 동안 일했는데, 갑자기 귀국하니 참 막막하다”면서 “살 집은 고사하고 뭘 하며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경기도 동두천에서 만난 차영수(88) 선교사는 “나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라고 했다. 가구점을 운영하다 1993년 아프리카 탄자니아 선교사로 떠난 차 선교사 부부는 수도인 도도마에서 자비량 선교사로 21년을 헌신했다. 그들이 세운 용자이초등학교는 3명으로 시작해 현재 학생만 550명 규모로 커졌다. 현지에서는 학부모들이 선호하는 명문 학교로 통한다.
그런데 차 선교사 부부는 올 초 급거 귀국했다. 몸이 좋지 않아 정밀 검진을 받은 결과 부부 모두 암 확진을 받았다. 남편은 대장암, 아내는 신장암. 차 선교사는 대장 절제수술을 받고 회복 중인데, 아내 최계숙(77) 선교사는 최근 경기도 용인의 한 요양병원으로 옮겼다.
차 선교사는 “인생을 정리하고 있다”고 짧게 말했다. 그는 “우리 부부는 그나마 자식이 한국에 있고, 사 놓은 집도 있어서 견딜 만하다”면서 “집 없고 후원 끊기고, 연고도 없는 선교사들은 얼마나 힘들겠느냐”고 오히려 다른 선교사들의 딱한 처지를 걱정했다.
◇선교사 2명 중 1명 “은퇴 준비 안해”=한국 선교사들의 ‘대책 없는’ 은퇴는 통계로도 나타난다. 미국 해외선교연구센터(OMSC) 김진봉 선교사가 해외 거주 한국인 선교사 34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국 선교사 은퇴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재 건강상태는 어떤가’라는 질문에 ‘좋지 않다’는 응답이 20%였다. 5명 중 1명은 지병이 있거나 건강에 이상이 있다는 의미다. 은퇴 후 한국에서의 경제생활에 대해서는 88%가 ‘어려울 것’이라고 답했다. ‘은퇴 후 다른 일도 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66%가 ‘그렇다’고 밝혔다. ‘은퇴 후 사역’에 대해서도 교단과 선교단체 등의 고민과 대책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총회 선교사관리부 남수현 목사는 “대다수 교단이나 선교단체가 아직 선교사 노후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은퇴 선교사에 대한 관심과 인식 개선은 물론, 실질적인 지원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박재찬 전병선 신상목 기자 출처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8769071&code=61221111&cp=d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