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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7.3 통권 251호     필자 : 김문한 프린트   이메일 
구미중국교회 이주민선교와 다문화목회

[편집자 주] 지난호에 이어 7월호에서는 ‘2023 이주민선교포럼’ 중에 ‘국내 이주민 선교현장’을 특집으로 다룹니다. 구미중국교회 이주민선교와 다문화목회(김문한 목사님), 재한 외국인유학생 사역(이해동 목사님), 제주 이주민선교를 위한 실태 파악 및 선교전략 제언(송은섭 목사님), 국내 무슬림선교 현황과 과제 및 전략(허은열 선교사님)을 통해 우리 곁에 와 있는 이주민들을 복음으로 섬길 수 있기를 바란다. 글을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신 모든 분께 감사를 드린다. 


다민족 국가로 살아가는 것이 유럽이나 미국에서나 있을 줄 알았던 것이 이제는 한국 땅에도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시대가 되었다. 이런 현실 앞에서 이주민선교, 다문화목회는 정말 하나님이 주신 또 하나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나는 68년생으로 중국에서 태어났으며, 2006년 신학공부를 위해 한국에 왔다. 부모님의 고향은 경북 의성이었다. 일제강점기 때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등에 업고 만주로 이주해서 지린(吉林)성 수란(舒兰)현에 정착했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스레 중국 땅이 고향이 되었다. 어려서부터 경상도 말씨를 사용하게 된 나는 조선족 중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부모님이 일상생활에서 한국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한국어를 사용하게 되었고, 중국에서 교육을 받다 보니 중국어 또한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인도해 가시는 하나님의 역사였음을 고백한다.

1980~90년대에 청년들이 도시로 진출할 때, 3년 동안 중국 톈진(天津)에서 한국 합자기업인 진미식품에 취직하여 한국인들과 교류하였다. 1989년 고향에 돌아와 처소교회 전도집회에 참석하여 미국(한국계) 선교사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였다. 그 후 고향 처소교회에서 강단에 세워 주셔서 말씀을 전하는 기회를 가졌으며, 말씀을 전하는 사역자로 훈련을 받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중국 땅에 복음을 전하는 일은 극히 어려웠고, 복음 전하는 일 때문에 중국 정부의 감시와 단속의 대상이 되어 늘 마음을 졸이며 신앙생활을 하였다.

우리 집이 가정교회 처소였기 때문에 믿음이 더 빨리 성장하지 않았나 싶다. 매일 동네 분들을 초청하여 모여서 성경을 공부하고, 예배를 드리고, 찬양과 집회를 하다가 성도들이 모이기 시작하여 자체적으로 교회당을 건축하게 되었다. 믿는 사람이 많아져서 뒤 터에 또 예배당을 증축하여서 200여 명이 넘는 교인이 되니 정부의 단속이 시작되었고, 주민 중에 신고자가 생겨서 단속을 받았다. 그래서 큰형님(목사)이 한 달 동안 감금되는 일을 겪었는데, 그 이유가 어떤 마을 주민이 한국 목사님들을 모시고 성경공부를 하고, 예배당도 한국에서 지원을 받아 건축했다고 신고한 것이다. 그래서 고향 땅에서 더 이상 교회를 섬기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과 또 이곳을 떠나고 싶은 생각이 있었던 차에 도시로 나갔다.

1995년에 결혼과 동시에 교회를 개척하기 위해 중국 헤이룽장(黑龙江)성 하얼빈(哈尔滨) 도시로 나갔다. 1996년 한국 합자기업인 쌍태전자에 입사하여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30~40명가량의 청년들을 모아 예배를 드리다가 회사 내에서 예배드리는 것을 금지해서 회사 밖에서 건물을 임대하여 교회를 개척했다. 그 후 퇴사하여 전문 교회사역을 하면서 청산신학교(지하신학)를 입학하여 4년의 학부 과정과 3년의 신학대학원 과정을 마쳤다. 하지만 정식 문교부 인가가 난 학교가 아니다 보니, 신학 서적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리포트를 제대로 써 보지 못하고 졸업을 하게 되어 늘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한 선교사님으로 인해 한국에서 공부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왜냐하면 앞으로 중국교회가 말씀과 교리적으로 튼튼하게 새워져 있지 않으면 사역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인정되고, 성경적이면서 보수신학으로 자신을 준비하기 위해서 검정고시를 치렀는데 합격이 되었다. 2004년부터 하얼빈방송대학교에서 공부를 하면서 유학준비를 했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듯이 2007년 한국 총신대학교(사당동)에 꿈같이 편입하여 공부하게 되었다. 공부하는 과정에 영적 지도자훈련과 채플 시간 때마다 교수님들을 통해 주옥 같은 말씀들을 들으면서 믿음이 더욱 성장했으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총신대학교 학부 2년 동안 양수중앙교회(합동)에서 교육부서를 섬기면서 열심히 목회에 대해 배웠다. 그리고 2010년 신대원에 입학하면서 경기도 하남시에 위치한 비전교회에 외국인상담센터에서 2년 동안 중국인부를 개척하여 섬겼다. 그때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많은 것을 배우며 경험을 쌓았다. 2013년 2월에 총신 신학대학원을 졸업하면서 구미제일교회에 중국인부서를 맡아 섬기게 되었다. 구미제일교회에서 4년 7개월 동안 구미외국인상담센터에서 이주민근로자들과 만나고 여러 사역현장을 접하면서 많은 경험이 쌓였다. 구미지역은 공단지역이고, 외국인근로자가 많이 들어와 있다. 특히 중국인,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등 여러 나라 이주민들이 많이 살고 있다. 소외되고, 언어소통의 불편으로 많은 불이익을 당하는 모습을 볼 때 이주민들을 찾아갔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주고, 과로로 인해 몸이 아픈 친구들을 병원에 데리고 가서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왔다. 

구미중국교회 개척
2017년 6월 25일 구평동에 구미중국교회를 개척하여 섬기고 있다.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드려야겠다는 마음과 함께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교회를 개척하였다. 주중에는 중국인들의 임금 문제, 퇴직금 문제, 병원 진료 문제, 각종 전화상담과 행정업무 등을 도와주기 위해 구미 세무서 허가를 받아 구미중국복지선교센터를 설립하여 중국인들을 돕고 있다. 주중에 여러 사람을 만나서 그들의 어려움에 대해 들어 주기만 해도 때로는 피곤이 온몸을 싸고도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저녁에는 자리에 눕기만 해도 금방 잠에 떨어진다.

푹 쉬고 나면 또 이튿날 사명감을 가지고 또 다른 도움이 필요한 친구들을 만나러 간다. 그러나 이주근로자들을 도와서 문제 해결이 되었을 때의 성취감과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도움을 받았던 친구들이 자연스럽게 교회로 연결이 되어 예배에 참석한다. 구미중국복지선교센터는 비영리민간단체로 등록이 되어 있어서 특별히 임금체납이나 퇴직금 관련해서는 노동청의 신뢰를 얻어 많은 이주노동자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 개인이나 교회 명의로 상대하는 것보다 복지선교센터라는 단체 이름으로 노동청에 접수했을 때 좀 더 신속하게 일들이 처리되는 것을 보았다.

이주근로자들이나 이주민 중에 체류자격이 없는 분들에게는 의료혜택으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도록 회원증을 발급하여 구미 순천향병원, 구미 차병원, 구미 강동병원, 미리안과, 황상치과 등 병원들과 MOU 협약을 맺었다. 그래서 우리 복지선교센터의 회원증을 가지고 가면 20~30% 할인 혜택을 드리니 소문들 듣고 전국적으로 전화가 오고 실제로 도움을 받고 있다. 도움을 받은 이주민근로자나 중국인들이 우리 교회를 찾아오거나 또 다른 지인들을 소개하면서 교회 예배에 참석할 때가 많다. 교회에 찾아오는 분들을 대상으로 복음 메시지를 전하여 교회가 어떤 곳인가를 알리고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면 처음에는 거부하던 분들도 차츰차츰 마음의 문들 열고 예수님을 알아가려고 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매주일 소개를 받은 새로운 분들이 1~2명씩 찾아오거나 누군가 데리고 와서 자신들의 어려운 점들에 대해 도움을 받으려고 한다. 우리 교회는 주중에는 예배가 없고 주일에만 예배를 드리지만 하루 종일 교회에서 예배와 친교를 통해 예수님을 알아가고, 생활 용어들도 배우고 매주일 오후 프로그램에 맞춰 첫주는 생활 한국어, 둘째 주는 무료진료 등으로 진행된다. 중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말씀으로 양육하는 일을 하다 보면 한 영혼 한 영혼이 얼마나 귀한 존재임을 알게 된다. 개척 초기에는 구미국제교회를 빌려 예배를 드렸다. 오전 11시 예배는 구미국제교회가 드리고, 저희 구미중국교회는 오후 2시부터 저녁 8시까지 사용했다. 매주 새 신자들이 교회로 찾아와서 예배 참석자가 30여 명이 되었다. 그래서 예배장소를 위해 기도하며 적당한 곳을 찾아보았다. 마침내 현재 무상으로 사용하고 있는 구평동에 위치한 지금의 교회를 자체적으로 사용하도록 장로님이 허락해 주셨다.

현재 구미중국교회 장소는 손원호 장로님이 운영하던 식당이었다. 손 장로님이 우연히 구미중국교회를 방문하셔서 기도제목을 들으시더니 식당을 폐업 신청해 놓은 상태이니 그 장소를 교회로 사용하라는 것이었다. 손 장로님 가정은 이미 중국 현지에 교회도 건축하셨고, 여러 선교지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선교의 열정을 가진 참 귀한 장로님이었으며, 모든 가정이 주의 일에 힘쓰고 있었다. 그렇게 구미중국교회는 예배장소를 옮기면서 2018년도 5월 26일에 설립감사예배를 드렸다. 
 
2020년 1월 말부터 시작된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것이 바뀌었다. 코로나19가 시작된 지 두 달여 만인 3월 중순에 필자는 코로나19에 감염되어 12일 동안 김천의료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교회는 화상예배를 드렸다. 코로나19로 민감한 시기였기 때문에 그 누구에게나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자고 감히 얘기하지 못했다. 주민센터 직원이 매주 교회를 방문해서 방역 체크와 예배 인원을 점검하기도 했다. 중국인들이 주민센터 직원을 보면서 뒷문으로 가만히 나가서는 다시 들어오지 않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불법체류자 신분이었기에 단속에 걸릴까 봐 염려가 되어 가만히 도망을 간 것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한 한국교회의 피해 역시 말할 수 없지만 개척교회와 이주민선교교회들은 치명적인 독이었다. 때로는 예배시간에 목회자 가족만 예배를 드릴 때도 많았으며 4~5명이 모여서 예배드릴 때가 대부분이었다. 출석하는 신자가 적으니 당연히 교회는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운영에도 차질이 생겼다, 일터에서 일하는 형제자매들을 만나려고 회사나 현장에 찾아갔지만 산업현장에서 허용하지 않고 만나려고 하면 퇴근 시간 후에 잠깐 회사 밖에서 만날 수가 있었다. 3년이란 긴 터널과 같은 시간 속에서 목회자의 생활문제로 생업현장으로 뛰어들어 겸직목회를 결심하게 되었다. 평일에는 정수기 코디로 집집마다 방문하여 필터 교체와 탱크세척을 하는 방문판매의 직업을 선택했다.

시간의 자유로움과 일에 대한 부담감이 크지 않기 때문에 목회하는 데 크게 지장이 되지 않고 매일 사람을 만날 수 있으니 꼭 적성에 맞는 직업이었다. 교회에서 사례비를 받지 않고도 자비량으로 목회를 할 수 있으니 만족스럽게 생각하고 일을 하고 있다. 선교사들이나 개척교회를 섬기는 사역자들이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어 마음이 매우 아프다. 기성교회가 선교현장에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고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대한민국에 와 있는 이주민들을 복음 안으로 한 발 더 빨리 이끌어 들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

코로나19 이후의 선교현장은 큰 변화가 크다. 국가 간의 정치적인 문제로 한중관계가 좀처럼 좋아지질 않고 있으며, 불법체류자들의 단속이나 이주민 정책에 변화로 인해 중국인들이 대한민국 입국을 자제하고 이미 입국하여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도 마음이 불편해하는 것들을 보면서 또 다른 대책이 시급하다는 것을 느낀다. 변화 속에서 교회가 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지 이대로 간다면 과연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고민을 하게 되며, 이주민선교와 다문화목회에 대해 다시 한 번 마음을 모아 대책 마련에 힘써야 하겠다.






사진 출처 | 픽사베이
김문한 목사 | 구미중국교회
필자 : 김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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